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출애굽기 33:14)
두려운 미래와
막막한 사명의 길 위에서
홀로 남겨진 듯한
고립감에 울부짖는 자녀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어떤 완벽한 평안을
약속하시는지를
가장 아름답게 선포하는
소망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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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친히 가리라
(파나이 옐레쿠)
– 내 모든 얼굴과 인격을 다해
너의 시선을 마주하며 앞서 걷겠다
직역하면
'나의 얼굴이 갈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고대 히브리 문화에서
누군가의 '얼굴(파님)'은
그 사람의 존재 전체와
인격을 대변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범죄 사건 이후,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는
엄중한 선언을 듣고
깊은 단절감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떨고 있는
모세와 백성들을 향해
대리인이나 천사를
대신 보내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격 없는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으시고,
나의 가장 영광스럽고
따스한 얼굴을
네 삶의 현장에 직접 비추며
함께 가겠다고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나의 연약함과
죄책감 때문에
주님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멀리서
우리를 외면하시거나
차갑게 돌아서지 않으시고
우리의 상한 얼굴을
부드럽게 손으로 감싸 쥐시며
가장 가까이서
눈을 맞춰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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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바하니호티 라크)
– 세상의 거친 소음을 잠재우고
영혼의 가장 깊은 안식처가 되어주다
여기서 '쉬게 하다'의 어근인
'누아흐(נוּחַ)'는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잠을 청하는
일시적인 휴식을
의미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노아의 방주가
거센 홍수를 지나
마침내 아라랏산에
'안착하여 머물렀을 때' 쓰인,
'근원적인 안전지대'를 뜻합니다.
사방이 거친 광야이고
앞으로 맞이할
전쟁의 위협 때문에
심장이 거칠게 뛰며
불안해하던 모세에게,
주님이 보장하신 평안은
그 어떤 대적도 깨뜨릴 수 없는
영혼의 견고한 요새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안한 환경을
단숨에 바꿀 만한
치밀한 계획이나
대단한 조건을
준비해 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거센 풍랑 속에서도
방주를 지키시는
주님의 신실한
임재 안으로 들어와,
온전한 영혼의 안식을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의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가장 확실한 안식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지치고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주님은
광야 한복판에
가장 안전한
쉼의 자리를 펼치시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우리 삶의 모든 걸음걸음마다
새로운 하늘의 평강을
가득 채워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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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의 무게와
두려움에 짓눌려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던
모세의 고독한 부르짖음은
오늘날 삶의 무거운 책임감과
인간관계,
혹은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에
불안해하며 떨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로움에 지쳐 흐느끼는
당신을 찾아와
지긋이 바라보시며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얼굴을 들고
친히 너와 함께 걸으며,
네 영혼을 가장 안전하게
안식하게 하리라고 "
속삭여 주십니다.
불안의 소음을 가라앉히고
가장 고요한 평안을 선물하시는
하나님의
이 따스한 돌보심이,
오늘 저와 당신의 심령을
눈물 속에서 다시 미소 짓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https://youtu.be/UI1DSSwyWrY
첫댓글 팔일간에 걸쳐 구르아터스에 해방신학 책을 구해 읽었읍니다 라틴 아메리카에 억압 기아 압제 소외 가난에서 외면말고 그런 불쌍한 자들을위해 신학도 나서서 참여하고 싸워야 한다는 내용 이엿읍니다
인간해방을 위해서 ᆢ
라틴아메리카에서 외치는
광야에 소리였읍니다
나위에 하나님에 존재와 나밖에 압제 받 는 이웃들을 품는것이 정의라 생각했읍니다
아멘♡
오직 주 안에서 완전한
쉼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아멘
안전지대 ;;;
아버지하나님
사랑합니다
안식의 참된 평화
감사드립니다 😊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