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달리다 보면 눈에 담을 보석들이 지천으로 널려있습니다.
동트며 햇살이 대지로 퍼져나갈 때,
비 내릴 때의 나뭇잎들,
바람 앞에 의연한 수억 수만 년의 바위들,
해 질 녘에 나는 새들...
때와 장소에 따라 셀 수도 없습니다.
순간순간 눈앞으로 닥쳐드는 그 수많은 보석들은 소유하고 싶다는 욕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 저를 큰 부자로 만들어주니 또 얼마나 다행인지요.
눈처럼 귀도 쉬지 않습니다.
차는 별로 없고 길은 곧은 미국의 고속도로라 이런 멀티태스킹을 더 쉽게 만들어주네요.
유튜브를 틀어두고 그 내용을 듣다 보면 눈만큼은 아니지만 귀도 보석들을 드문드문 주워 담습니다.
귀가 담은 보석들은 많지 않으니 담을 때마다 하나 둘 들려드리고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첫 보석 하나를 올려 봅니다.
불교계의 큰 인물 중에 경허스님이 있습니다.
수월, 혜월, 만공이라는 큰 스님들을 제자로 두셨고, 동학혁명의 주역인 전봉준 장군과는 처남매부지간으로 처형당한 전봉준 장군의 사체를 수습하셨던 분입니다.
오늘의 보석은 그분의 일화 한 토막입니다.
경허스님이 제자 만공스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시냇물을 건너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는 젊고 아리따운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만공스님에게 업어서 건네줄 수 없겠냐고 부탁을 했지만 만공스님은 '승려의 도리가 아닙니다.' 하며 거절을 했답니다.
그때 경허 스님이 그 여인에게 강을 건네주겠다면서 여인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넜습니다.
“출가자가 어찌 젊은 여자를 등에 업을 수 있습니까?”
한참 뒤에 만공스님이 경허스님에게 묻자, 경허 스님은 이렇게 대답을 해주었답니다.
“나는 그 여자를 냇가에 내려놓고 왔는데 너는 아직도 그 여자를 등에 업고 있느냐?”
"마음은 어떻게 내어야 합니까?"
부처님의 제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머무는 바 없이 내어라."
귀로 담는 보석들은 때로 천둥소리를 냅니다.
첫댓글
깨달은 자와
아직 깨달음에 미숙한 자의 다름이네요.
'나는 그 여자를 냇가에 내려놓고 왔는데~ '
짧은 말씀 속에,
천둥소리가 나는 듯한
경허스님의 말씀입니다.
마음자리님, 감사합니다.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살기가 훨씬 가볍고 편해질 것
같았습니다.
머무는 바 없이 내어라 라는 말씀에 고개가 끄덕입니다. 비우면 살라는 말씀이지만 이걸 못하고 사는게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래서 아주 힘든 일에 처해있을 때
그 말을 떠올려보곤 합니다.
'붙잡고 있나?'
세상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는데 장소가 따로 있곘습니까. 산길을 걷거나 대중교통으로 멀리 갈 때, 혹은 자가운전으로 먼길을 갈 때도 그저 마음을 열면 모든 풍경들이 의미를 가지고 들어와 박힌다고 생각합니다.
가을이니 아름다운 픙경들을 더 많이 담아야겠어요.
맞습니다. 아름다움은 찾아가지 않아도 도처에 있습니다.
새길의 가을 풍경은 어떨지 또 가슴이 부풉니다.
마음자리님의 눈과 귀가 보석이라
보석을 들을 수 있고 보석을 볼 수 있는것 같습니다 .
"머무는 바 없이 내어라 "
언제쯤 그런 깨달음 실천이 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잔뜩 웅켜지고 있는것 뿐이니 ...
잔잔하고 평안하게 사시는 아녜스님이 잔뜩 움켜쥐신 것도 있나요? ㅎㅎ 잔잔한 물에 비치는 풍경들은 붙잡은 듯해도 금새 지나가고 바뀐답니다.
전 그때 그것을 읽고
번쩍 ~
그 이후 경허선사 덕후가~
선사의 화광동진 그 삶을
흉내쟁이 하면서 살아가지요~^^
늘평화님의 작품에서 나는 묵향에는 이미 선사님들의 향기가 베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웃동네 예산 수덕사 인근에는
만공스님과 관련된 탑이 있습니다.
일명 만공탑이라고 크고 둥근 돌이 탑위에 위치하지요
유골을 봉안한 부도탑입니다.
말씀듣고보니 경허스님이란 분의 제자였군요.
만공스님은 만해 한용운과 친하고
제자로 여류시인 일엽 스님이 있습니다.
만공스님도 경허스님 못지않게 많은 일화를 남기셨지요.
이 땅에 참 대단하신 분들이 많이도 사셨습니다. 길 가다 멈추면 그분들이 남기신 가로등불들 의지하며 나아갑니다.
우리 주변에는 귀로 담는 보석. 눈으로 담는 보석이 지천입니다.
마음을 열고 보석을 잘 찾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