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정을 마치고 리장의 아침 고속버스를 타고 곤명으로 돌아왔다.
중간에 식사시간 40분 정도 쉬고 논스톱으로 달린 고급버스였다.
야간 버스를 타고 이동할까도 싶었으나 이제는 바빠야 할 일도 서둘러야 할 일도 없기에 그냥 숙면을 취하는 쪽으로 선택했다.
곤명에 도착하니 어느새 공기가 다르고 도시의 움직임이 달라 몸과 머리가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날도 흐려 곧 비가 내릴 조짐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때 우산이란 놈이 한 번도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네...
빠른 적응을 위해, 호스텔 이동을 위해 담배 한 대 물고 머리를 굴려본다.
담배가 1/3도 다 타지 않았을 무렵 벌써 자가용 삐기 형님, 아줌마 떼거지로 달려들어 시비를 건다.
일단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거절을 하며 주변의 다른 손님들과 삐기들의 동태를 살핀다.
담배가 운명하실 때 억세게 강해보이는 아줌마 삐끼에게 나의 목적지을 적은 종이를 살짝 보여준다.
40원...여긴 서부버스터미널...그리 멀지 않은 곳인 것 같은데 좀 비싸다는 느낌에 튕겨본다.
택시들이 많이 서 있는데도 안태워주는 것을 보니 장거리 고객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
다시 아줌마랑 실랑이를 붙어본다...이미 자가용에는 튕튕하니 별로 안어울리는 화려한 복장의 아가씨 한 명이 타고 있다.
이 아가씨가 나보고 뭐라한다...느낌에 같이 타고 조금싸게 가자는 것 같다.
결국 30원에 합의를 보고 모르는 아가씨와 함께 숙소로 이동한다.
보아하니 기사는 남편이고 아줌마는 영업...모두 함께 타고 간다.
숙소 주소를 보여주니 기사 양반과 옆자리의 아가씨가 목적지를 서로 확인하며 나를 위해 신경을 많이 써준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이내 빗방울이 떨어진다...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차가 많이 밀려 30원은 족히 나왔을 것 같아 가격은 나름 만족한다.
그리고 내릴 땐 비도 잠시 그쳐준다...덤으로 주시는 작은 축복이다.^^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간다.
지난 번에 공자팀과 훠궈를 먹었던 보행가에서 조금 더 지나니 야시장이 있었다.
열 발자국 걸을 때 마다 취두부 냄새가 코를 진동시킨다.
각종 먹을거리들이 널려 있다.
문득 유리공예로 만든 목걸이가 무척 맑고 예뻐보인다...두 개 사준다.
왜 두 개를 사느냐면 모르겠다...아무 목적도 없이 그냥 한 개 사기엔 아쉬워 두 개 샀다...
받는 사람에게 주면 알아서 하겠지...^^
그리고 백화점 6층에 식당이 있다는 간판을 보고 올라가니 몇 안되는 식당 중에 고맙게도 한국식당이 하나 있다.
간판은 '내고향'...ㅋㅋ 컨츄리하다.
주메뉴는 역시 고기...그러나 난 육계장을 시켰다.
맛은 먹을 만은 하고 육계장 흉내만 내었다고 볼 수 있다...제 점수는요!..."5점 만점에 2.5점" ㅋㅋ
열심히 먹는데 우리네 밥과 달리 찰지지 않는 중국쌀은 쉽게 수저에서 떨어진다.
밥 한 톨이 힘든 삶을 못견뎌 나의 밥그릇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이 추위를 맞으신다.
오랜 기간동안 지친 나그네에겐 저 한 톨의 밥알도 웬지 눈물겹다...그리고 가슴이 시리다.
저 밥 한 톨의 모습과 23일간 홀로이 차갑고 낯선 이국땅에서 외로이 지낸 나의 모습이 웬지 동병상련으로 다가온다.
저녁에 축구팀이 조 2위로 올라 이란과 8강전을 치른다는 기분나쁜 소식에 혼자 조금 씩씩거리며 잠을 청한다.
마지막 잠이다...전기 장판이지만 쓸쓸한 나그네는 온돌보다 더 따뜻함이로다.
꿈을 꾼다...그런데...
지난 여름 불의의 교통사고로 먼저 간 아들이 꿈에 나타난다.
병실에서 녀석이 나의 어루만짐에 눈을 떠 버린다.
그리고 눈동자를 움직이며 입도 씰룩거린다.
이미 사망선고를 받고 모두 침통해하는데 녀석이 눈을 뜬다.
그리고 머리를 싼 붕대를 풀어보니 상처도 깨끗하니...
사망선고를 내린 의사 자식에게 주먹 한 방 날려주려 뛰어가다 잠이 깨버린다...
새벽 4시 30분 무렵...
여행중에 처음으로 녀석의 꿈을 꾸었다.
그것도 다시 회복된 모습으로 ... 그 감격에 새벽녁 잠시 눈시울이 적셔진다.
눈 뜬 녀석의 모습을 보아 너무 감격스럽고 행복하다...
다시 잠을 청해 녀석을 다시 만나보고자 하였으나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마지막 밤...또 하나의 덤으로 선물을 주셨다.
덤으로 주신 꿈으로 인해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한없이 감격스럽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 함께 한 아들도 수고했다고 격려한다.
못난 애비지만 하늘 천사되어 심약한 나를 끝날까지 지켜주리라 믿는다.
나는 그렇게 녀석을 지켜주지 못했기에 마음 후미진 구석이 많이 아린다.
아침...넉넉히 여유를 가지고 짐을 챙긴다...
내일 아침 새벽 2시 비행기를 타야하기에 장시간 밖에서 버텨야 한다.
더 이상의 덤은 없어도 만족한다.
이제 남아있는 사랑하는 가족에게로 돌아가 한동안 못주었던 정을 쏟아야 할 시간이다.
돌아가면 각종 일거리들이 산적하여 이 여행의 여운을 길게 주지 않을 것 같다.
그게 우리네 인생 아니던가...
만족이란 끝도 없고, 현실은 하나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공통된 삶일 것이다.
또 부지런히 벌어서 새로운 길을 나설 수 있는 그날까지 열심히 뛰자...
공연 후 더 멋진 앵콜처럼 덤으로 주어진 하루가 행복하여 몇 자 적어본다...
2011년 1월 19일 중국시간 오전 12시 39분...곤명 The Hump Hostel 카페에서...솔개그늘 적다...
첫댓글 지난 여행중에 일어났던 그어떤 해프닝과 만남들 보다 마지막 덤으로 주는 만남이 이번 여행에서 제일큰 기쁨이었으리라 짐작 되네요. 아~~~가슴한켠이 아려 오네..
그렇습니다...형님...아름다운 엔딩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종일 넋놓고 곤명의 취호공원과 대관루 호수를 걸었습니다.^^
육신이 함께 하지 못했더라도 영혼이 함께하며 지켜주었음을 알게 되네요. 여러모로 힘든 세월을 보내면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늘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번 여행에서 많이 외로우셨겠지만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 되었을거라 보고, 저 또한 생생한 여행기를 통해 단순한 여행기가 아닌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심슨님 이하 같은 동행 여러분도 저의 여정에 한 그림이 되었고, 또 외로움 가운데 한 힘이 되었었습니다...
솔직하게 아픔을 모두에게 얘기할수있는 자네의 용기가 ...나이들은 내게도 많은 위안과 힘이 되네.고맙네.
별 말씀을요...터 놓아버리면 오히려 가슴 한 켠이 후련합니다...
솔개는 역시 진정 싸나이~ 근데...솔개는 좋은데.. 그늘은 뭘까요?
솔개그늘? 오래 전 내가 PC통신 천리안 동호회 시절부터 만들어 쓰던 닉네임이었는데 순우리말로 "아주 작게 지는 그늘"이란 뜻임...하늘에 솔개가 날면 그 솔개의 그림자가 땅에 비치는 데 작지 않겠음? ...음 그냥 의역을 하자면 욕심없이? 소박하게? ^^
하늘에서 자알 지낸다고,, 아빠한테 전화한통 한건가 봅니다... 저의 하늘에 있는 가족도 이따금씩 꿈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곤 하더라구요.
좀 자주 등장했으면 좋겠는데...그럼 내 삶이 유약해질까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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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제겐 멋진 여행이었어요...저마다 아픔과 기쁨이 있겠지만 여행을 통해서 덜어내고 여행을 통해서 더 담아내고...그렇게 새롭게 거듭나는게 여행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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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담님, 서울에서 나나나가 삼칠가루인가? 형님께 전해드리라던데요. 언제 드리면 좋을까요. 내일은 좀 어려울 것 같기도하고.
하이고 두 사람 다,,, 경황이 없을텐데,,,, 이런 것 까지 챙겨주고,,, 아무때나 전화주면 됩니다~
삼칠가루가 뭐여? 나는 전해줄꺼 없는겨? 시우담 만날때 나두 불러줘.
이참에 진역 앞 "북경"에서 번개 한 번 하지요~
월요일이나 화요일 낮에 어떤가?화요일이 더 좋은데...
왕누님 저도 직업이 있는 사람입니다 ^ ^ 낮시간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요일도 괜찮은디...그냥 둘이 약속해서 그날 내가 시간이 맞으면 나가볼께.
화요일저녁은 절대안됨.
솔개그늘님 우수회원 되셨습니다. 나중에 다시 오실 때 500원 상당한 호텔이나 항공권 끊어드리겠습니다. 아니면 1000원 상당한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최우수회원까지 노력해보세요^^
와우...감사합니다...이번 여행에서 이러저리 많은 선물을 받게 됩니다...당분간 키핑 좀 해두겠습니다...뭔가 의미있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습니다.^^
누군가를 떨어진 밥알처럼 서럽게 하지 않았을까..내가.. 솔개그늘님의 글 부러워하며 부러워하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시고.. 기분 좋은 일 자꾸자꾸 생기길 바랍니다.
늘 좋은 일만 생겼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렇지 못한 세상 살이 아닙니까...각 처소에서 열심히 일합시다...그리고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하며 외치고 항상 떠날 준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