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B4
“평균적인 예일대 출신은 24년도 졸업생 기준으로 볼 때 연간 25,111 달러를 번다”라고 타임지가 보도했다.
잘 된 일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부적절하게 정확하고 건강에 좋은 숫자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당신이 아들을 예일에 보낸다면 늙어서 일할 필요도 없고 당신 아들도 마찬가지라는 게 확실한가? 이 평균은 최빈값인가 중간값인가? 그 샘플은 근거가 무엇인가? 당신은 텍사스의 정유업자 한 명과 굶주린 프리랜서 작가 200명을 묶어서 그들의 연봉을 25,000 달러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셈법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숫자가 확실히 정확하다 해도.
바로 그런 방식으로 통계의 언어는 비밀을 갖고 있다. 사실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매력이 있으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과장하고 헷갈리게 하고 지나치게 단순화 한다. 통계 용어는 사회 및 경제 트렌드, 기업 여건, “여론” 조사, 금년 인구조사에서 대규모 데이터를 리포팅 하는 데 필요하다. 하지만 작가가 정직하고 명철하게 그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고 독자들은 그 의미를 모를 때, 그 결과는 단지 의미상의 넌센스일 뿐이다.
과학 연구에 대한 흔한 글쓰기에서 악용되는 통계는 안 좋은 조명의 실험실에서 시간외 5할 할증 수당도 없이 과로하는 흰색 재킷 입은 영웅의 모습을 거의 밀어내다시피 하고 있다. “little dash of powder, little pot of paint”(약간의 분가루와 작은 화장품 단지 = 약간의 화장과 단장)라는 말처럼, 통계는 많은 중요한 사실을 “사실과는 다르게 보이도록” 하고 있다.
“little dash of powder, little pot of paint”: 통계가 복잡하거나 불리한 수치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을 화장에 비유
2019A7
나는 성 가까이에 이르자(이 사건 이후로 요새를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급히 뛰어들어갔다. 이때 처음 만들어놓은 사다리를 타고들어갔는지, 아니면 문이라고 부르는 암벽 사이의 입구로 들어갔는지, 지금 기억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그 다음 날 아침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온 후 덮게 위로 뛰어다니는 토끼나 땅으로 뛰어다니는 여우 소리가 그처럼 겁을 준 적이 없었다.
밤에 한숨도 못 잤다. 공포의 원인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이러한 일은 보통의 경우 특히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 일이 너무나 놀랍고 당혹스러운 것이어서, 그 사건의 장소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불길한 예감이 일어났다. 때로는 그것이 악마가 틀림없으리라 상상했는데, 악마가 아니라면 사람의 모습이 아닌 다른 어떤 동물이 어떻게 이곳에 올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타고 온 배가 어디 있는가? 다른 발자국이 어디 있던가?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올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조금도 그럴만한 장소가 아니어서, 악마가 사람의 탈을 쓰고 발자국을 남겨두어야 할 일도 없고 그럴 이유마저 없다고 다시 생각하자, 한편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악마가 나를 놀라게 할 작정이라면 단 하나의 발자국을 남겨두는 것보다 달리 얼마든지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 생각으로는, 내가 살았던 곳은 섬 반대편이긴 하나, 내가 그것을 봤건 아니건 간에 악마가 만분의 일 확률인(ten thousand to one) 곳에다 흔적을 남겨뒀을만큼 단순할 리는 없었다. 또한 모래에도 흔적을 남겨뒀을 리도 없었는데, 높은 바람에 편승한 파도가 한번 불기만 해도 그게 완전히 지워졌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실 자체에 부합되지 않으며, 우리가 악마의 간교함(subtility)에 대해 보통 재미삼아 상상하는 모든 개념들하고도 부합되지 않는다.
(출전) Daniel Defoe, Robinson Crusoe
22B8
패션 비평은 엄격해야 하고, 명확하게 진술되어야 하며, 역사적인 통찰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현재의 패션 비평이 자주 그러하듯) 지나치게 단순화해서도 안 되고, (현재의 예술 비평이 흔히 그러하듯) 불필요하게 난해해서도 안 된다. 비평은 생기와 대담함을 추구해야 하며, 독창적인 것과 모방적인 것을 구별해야 한다. 디자이너의 발전 과정을 추적하거나 정체 혹은 퇴보를 지적해야 하며, 디자이너가 왜 특정한 미적 선택을 했는지를 밝혀내고, 사용된 기법과 재료를 자세히 설명하여, 궁극적으로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적절한 판단은 단순한 의견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근거 있는 또는 정당화된 의견으로서 더 넓은 타당성을 지향한다.
비평은 결코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상당 부분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비평의 대상뿐 아니라 비평가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비평을 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비평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아직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는 것과의 씨름에 대한 것이며, 판단을 내리고, 자신을 노출시키며, 자신의 명예와 정체성 자체를, 알면서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했듯이, “취향(각자의 주관적 측면)은 분류하며, 그것은 분류하는 자를 또한 분류한다.” 이 진실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지만, 특히 비평가에게는 더욱 날카롭게 적용된다. 왜냐하면 비평가의 판단은 가장 공개적인 검토를 받기 때문이다. 진정한 비평을 쓴다는 것은 매번 자신을 시험대에 올리는 일이다.
그렇다면 비평가들 간의 의견 차이는 어떠한가? 그것은 환영받아야 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에 동의하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다. 그것은 거의 항상 우리가 충분히 사고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 비평가들 사이에는 의견 차이가 있어야 한다. 예컨대 알렉산드르 허코비치와 피비 파일로 같은 두 디자이너의 상대적 가치에 대해 두 비평가가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비평가들 사이에는 일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판단 수렴(convergence)이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은 허코비치를 더 선호하고, 다른 사람은 파일로를 더 좋아하며,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콜렉션이 평범하여 특색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허코비치나 파일로가 실제로 미적 가치를 전혀 지니지 못한 디자이너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매우 놀라운 일일 것이다. 진지한 비평가라면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의견 차이는 존재할 수 있지만, 그런 차이는 훨씬 더 넓은 합의(agreement)의 배경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26B7
과학은 강력한 설명적 이야기의 풍부한 원천이다. 예를 들어 뉴턴은 힘이 어떻게 질량을 가속시키는지 설명했다. 이는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이야기이자,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도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또한 로켓 엔진이 얼마나 세게 밀어줘야 달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게 해 준다. 인과 모델은 공장이나 컴퓨터처럼 매우 긴 인과 사슬을 가진 복잡한 기계를 설계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기계들은 입력을 우리가 원하는 출력으로 변환한다.
우리는 인과관계에 대한 이런 이야기들이 세상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믿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사실 그것들은 세상을 조작하고, 우리 자신의 이해를 편하게 하기 위해 설명을 구성하는 데 사용하는 하나의 틀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뉴턴의 방정식 F=ma는 실제로 힘이 가속을 일으킨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며, 질량이 힘을 일으킨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보통 힘을 원인(causes)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힘을 가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질량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을 의인화하여, 마치 자연의 힘이 질량을 밀기로 결정하는 것처럼 상상한다. 가속이 질량을 일으키기로 결정한다고 상상하기는 훨씬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이야기를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한다. 우리는 행성이 태양 주위를 계속 돌게 하는 것을 중력 덕분으로, 사과를 나무에서 끌어내리는 것도 중력 탓으로 돌린다.
이렇게 편하게 자연을 의인화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적 스토리텔링 장치를 활용해 자연 세계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인과관계 패러다임은 특히 과학이 공학에 사용될 때, 즉 세상을 우리의 편의에 맞게 배열할 때 매우 잘 작동한다. 이 경우 우리는 종종 인과관계라는 환상이 거의 현실이 되도록 상황을 설정할 수 있다. 컴퓨터가 그 완벽한 예이다. 컴퓨터가 작동하는 핵심은 입력이 출력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 반대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컴퓨터를 구성하는 부품들 역시 동일한 일방향적 관계를 만들도록 설계되었다. 논리 게이트 같은 부품들은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입력을 예측 가능한 출력으로 변환하도록 특별히 설계되었다. 다시 말해, 컴퓨터의 논리 게이트들은 인과관계의 기본 구성 단위(<- 원자적 구성 블록)가 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출력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부분이 우리가 입력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부분에 영향을 미칠 때, 인과관계 개념은 무너진다. 양자역학의 역설이 바로 그 완벽한 예이다. 여기서는 한 입자를 관찰하는 우리의 행위만으로도 멀리 떨어진 다른 입자의 상태를 “일으킬”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진짜 역설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스토리텔링 틀을 그 틀이 맞지 않는 상황에 적용하려는 데 문제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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