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invisible
어디에나 두루있는ubiquitous
전인류의 보편적인universal
평범한normal
청송교도소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일과를 마치고 짬이 나는 시간에 산책을 하다가 벚꽃 나무를 발견하고는 휴식을 취했습니다. 아찔한 벚꽃 향기와 꿀을 나르는 꿀벌의 날개짓 소리가 아득하기만 한데
문득 이런 평안한 기분을 주는 나무가 고맙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고맙다고 생각만 하지 않고 직접 고맙다고 나무에게 말하고 안아주었습니다.
(누가 볼까봐 부끄러워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한 행동입니다.)
비록 말못하는 하나의식물이지만 인간보다 인간적인 생을 누리는 식물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저의 생각은 나무 한 그루 전체가 사회사업의 토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무한한 철학적 가치를 지닌다고 봅니다. (생명과 감사, 자기 희생)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자연주의 사회사업(naturalfare) 철학과 비슷한 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무(복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invisible)
사실 이 말은 억측이 있을지는 모르나 우리가 굳이 나무가 보인다, 나무가 저기 있다고 자주 표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인간과 함께 머물러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나무가 내어주는 보이지 않는 공기의 가치는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생명은 공기 없이 살수 있나요?
귀한 공기로 인해 우리가 오늘 하루 하루 숨쉬며 살아가고 있음에 나무에게 감사합니다. 나무가 지니는 보이지 않는 가치, 이것이야 말로 자연스러운 인간 삶의 토대일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아." 어린 왕자의 말처럼 그 본질적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나무(복지)는 어디에나 두루 편재하는 전 인류의 보편적인 평범한 존재입니다.
(unbiquitous, universal and normal)
나무 없는 곳이 어디 있을까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나무를 특별하다고 여기는 일은
드뭅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숨을 쉬는 일이 그다기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문명 이기의 중심인 도시에도 나무는 있습니다. 농촌보다
편한 삶을 누리는 도시인들은 오히려 더욱 나무를 필요로 하죠. 사람이라면 누구나
맑고 신선한 공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정작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다면 나무를 귀히 여기고
나무를 심어야 하겠지요.
산소 같은 사회복지사를 꿈꾸며 활동하고 계시는 동찬형이 생각납니다.
복지나무를 꿈꾸며 전라도 일대를 순례한 경희 누나가 생각납니다.
억겁의 세월을 침묵으로 일관하고 온 몸으로 내어주는 일만하는 나무. 봄에는 스잔한 꽃향기도 보내어주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고, 가을에는 탐스러운 과일, 그리고 곱게 물든 잎으로 눈을 즐겁게 하고, 겨울에는 아랫목을 데워주는 땔깜이되고 결국엔 그루터기가 되어 지나는 사람이 편히 앉아서 쉬어갈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러고보니 사람은 혜택만 받고
나무에게 내어준 것이 없네요.
여기서 하나 중요한 것을 발견합니다. 대전에 있는 월평종합사회복지관의 김종생 관장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복지의 중심은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회복지사 선생님들도
이와 비슷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저로써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금은 거기서 좀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해봅니다. 제 생각입니다면 '사람이 중심'이면 어디까지나
복지의 초점은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을 위한 편안한 그 무엇(문명과 이기)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그런 무엇을 발견하기 위한 개발이 필요하겠지요. 그 개발에는 분명 파괴가
있을 것입니다. 앉을 의자가 필요하면 나무를 베어야 하고, 멀리 이동할 수 있는 자동차가
있으려면 그외 자원을 캐기 위해 산을 파헤쳐야 할 것입니다.
사람도 중요하되 사람을 살리는 그 외의 생명을 한 번더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굳이 서양 철학은 사람 중심이며, 동양 철학은 생명 중심이라는 논의는 다 아실 것 같아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나무처럼 생명 중심으로 나아가면 어떨런지요?
매일, 아니 자주, 아니 가끔도 못하지만 나무를 보면 나무를 위해 기도 한 번 하고 고맙다고
전하는 건 어떨까요?
* 나무가 가지는 사회사업적 방법론
나무는 스스로 다가가지 않습니다. 스스로 다가가기 전에 이미 많은 생명들이 다가오지요.
사람, 풀벌레, 새...
어쩌면 사회사업 프로그램도 이와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인의적으로 다가가서 프로그램을 전달하지 않고 사람들 스스로 찾게 되는 것.
뜨거운 햇살 비치는 여름에는 가족과 함께 나들이 와서 나무 그늘 밑에 쉬는 일.
사회사업 또한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일이 아닐까요?
누군가에게 전해줘야 할 인위적 노력이 아닌 스스로 나무 한 그루가 되어
생명을 싹틔우는 일. 더불어 숲이 되어 청정한 공기 속에서 만물이 저마다 숨을 쉬는 일.
섬 사회사업이 그 한 예가 아닐까 합니다. 직접 가서 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표면적으로는 사회 사업이지만 무언가 새롭게 개척하고
새로운 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생일도에 계신 분들이 이미 자신안에 내재된 나무 한 그루를 그 때 발견했을 뿐이고
이제 그 나무를 스스로 키우려고 하시는 건 아닐런지요?
서로간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 사랑을 더 풍요롭게 나눌 수 있었다는 건 아닐런지요?
'그대는 더욱 배움을 얻어야 하고, 진정한 갈매기(사람)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갈매기(사람)들 속에 있는 선함을.
그리하여 그들이 자신 안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내가 말하는 사랑의 의미가 그것이다. 그대가 그 방법을 터득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갈매기의 꿈'에서 조나단이 했던 말입니다. 위에서 발견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 안에
내재된 사랑을 발견하는 일일 것이며, 그 방법은 그것(사랑)을 다른 이와 나누게 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사회사업은 인간에 내재된 사랑을 발견하고 나눌 수 있도록하는 최고의
가치있는 일입니다. 노숙인, 장애인, 여성, 아동...지식으로써 어떤 약자를 지칭하며 특별한
프로그램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보고,
그리고 그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저마다의 사랑을 일깨우는 일,
그리고 그것을 서로 나누도록 하는 일이 아닐런지요?
어쩌면 인간으로 태어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악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회사업. 사랑을 일깨우는 사업.
사회사업이 천국을 건설하는 일인 것 같아 '함께 동참하지 않을래' 라고 조나단이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첫댓글 그렇구나~ 참 공감되는 글이다. 나무에게서, 동찬이와 경희에게서, 갈매기 조나단에게서 배우고 또 그 교훈을 연관지어 생각했구나. 참 귀하다. 고맙다. 참 고맙다...
진원형의 글을 읽고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사회사업이란 무엇일까? 정말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진원이의 글을 읽는데, 호스피스를 생각하게 했을까?
사회복지에 관한 생각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우리 카페가 있다는것이 새삼 감사해지는군요........^_^
이렇게 좋은 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진이형의 책, 진원형의 글... 모두 '저'만의 사회사업을 생각하게 합니다. 모두다 귀하고 감사합니다^^
산다라누나(?) 왜 호스피스를 생각하게 되셨어요.. 궁금해요.. 답변 부탁드립니다..
참 귀한 글입니다.
진원이형...감사 합니다...
저역시 나무를 참 좋아한답니다.. 그런 형의 마음이 부럽네요^^ 스크랩 하께요..!
나무와 복지.
나무와 생각.
김진원 선생님의 귀한 글,
따뜻하고 깊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