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마지막 집
전경린
연못의 물은 불에 데운 듯 뜨겁다. 연못 아래로 두어 걸음 내딛어 구부정하게 몸을 숙이고 바께쓰를 담가 물을 떠낼 때마다 녹아버린 수초의 역겨운 냄새가 숨을 틀어막는다. 나는 여섯 번째 물을 길어 소들의 여물통에 부었다.
축사엔 엄연히 수도꼭지가 있긴 하다. 그러나 진작부터 물이 나오지 않는 고요한 수도꼭지이다. 처마 바깥에 햇볕이 달군 쇠붙이처럼 내려 쪼일 때, 물이 나오지 않는 수도꼭지란 얼마나 고요한 것인지 꼭지를 비틀고 기다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가뭄 때문이라지만, 나는 이제 그런 건 믿지 않는다. 그것은 엄마의 관용구대로 ‘니 아버지 하는 일이 그렇지’인 것이다. 아버지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엄연히 작은 도시의 시청 공무원이었다. 25년 동안 공무원이던 아버지는 어느 날 사표를 내고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땅을 사들여 새 집을 짓고 집과 멀찍이 떨어진 외딴곳에 축사를 지었고 축협 대출을 받아 소를 사들였다. 정부에서 축산을 장려해 퇴직자들이 축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것이 유행일 때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불운했다. 이른바 막차를 탄 것이다. 지금 소값은 사들인 때의 절반 값이다. 아버지는 사료 먹이고 쇠똥 치우고, 새끼소 받고, 꼭 이년 사이에 햇볕에 까맣게 탄 지치고 야윈 농사꾼이 되었으나, 그 노동의 결과란 축사 속에서 소 일곱 마리를 녹인 것이 전부였다. 그 일곱 마리 중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협에서 일하는 여동생의 적금을 대출해 사들인 송아지 두 마리도 들어 있었다.
나는 빈 바께쓰를 바닥에 놓고 햇볕 속에 주저앉는다. 깨알처럼 작은 하루살이와 등에 푸른빛을 내는 커다란 쇠파리들이 눈앞에서 잉잉거린다. 기진맥진한 나는 이따금 팔과 다리를 털어 파리들을 쫓는다. 멀리 고추밭을 매는 엄마의 작은 움직임이 보인다. 장바닥에서 산 챙 넓은 싸구려 모자에 두꺼운 수건을 덮어쓰고 소매 긴 헌 셔츠에, 쪼그리고 걸어도 당기지 않게 몸뻬바지를 입었다. 엄마는 고개 한번 들지 않고 골을 따라 무릎걸음을 하고 있다. 그 머리 위 햇볕은 미동도 하지 않고 밤나무 숲에서는 악의에 찬 뻐꾸기가 단조롭고 집요하게 운다.
나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시골로 내려와 발령을 기다리고 있다. 요 몇 달 사이에 내 몸은 많이 야위었다. 시골 사람들은 화장도 전혀 하지 않고 머리까지 깡똥 짧은 나를 열두 살 먹은 계집아이 같다고 말한다. 원래 몸이 숙성하지 않은데다 살이 빠진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런 광막한 시골 풍경 속에서는 나 스스로도 내 몸의 존재를 느끼기가 어려워진다. 발밑에 밟히는 풀꽃만큼이나, 키 작은 풀꽃 사이를 잠시잠시 나는 곤충들만큼이나 창백하고 조그맣게 느껴진다. 몹시 가문데도, 그래도 꽃들은 자꾸만 피어난다. 방치된 습지에 융단처럼 핀 붉은 패랭이꽃 무리, 빈터를 뒤덮는 희고 노란 냉이꽃, 숲길에 번지는 파랑 달개비꽃 떼와 무더기무더기 피어나는 토끼풀꽃, 띄엄띄엄 서 있는 잎이 거친 보라색 엉겅퀴, 나무처럼 키가 큰 오이풀꽃, 검게 고인 물가의 미나리아재비꽃……. 무더운 적막 속에 풀이 지쳐가는 여름의 비릿한 냄새가 들판에 가득하다.
마을 첫 집에 사는 범구아재가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경운기를 몰고 온다. 나는 마을 사람을 잘 모르지만 그는 늦봄 내내 축사 아래 밀밭에서 사료로 쓸 밀을 베어내는 일을 했기에 낯을 익혔다. 나는 잘린 밀밭 냄새가 좋아 아무 시집이나 들고 밭가의 길을 따라 선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다. 물기 많은 통통한 밀단들은 싱그러운 향내를 품으며 이내 시들어가고, 산에서는 뻐꾸기가 단조롭게 울어대고, 습기를 머금은 햇빛은 반짝이고, 돗자리 밑의 풀들은 시시각각 푸른 넝쿨을 뻗으며 꿈틀꿈틀 자라고 있었다. 바람이 책의 페이지를 제멋대로 넘기고 나는 그것이 재미있어 바람이 펼친 장을 무심코 읽었다. “바닷가 마지막 집, 나는 그대가 바닷가 마지막 집에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곳엔 활짝 핀 레몬나무들의 검은 우듬지가 향기로운 바람에 무겁게 흔들리지요.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그곳엔 모든 소리가 잦아들고요. 어스름만…….” 나는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그 모든 것 위에 그냥 떠 있었다. 흔들리는 요람 속의 아기처럼, 바람에 탬버린 소리를 내는 미루나무 잎사귀처럼, 거름내 나는 보잘것없는 풀꽃들처럼. 그리고 자주 눈물이 났다. 한낮의 연약한 그늘 속에서 누구를 기다리는 것처럼, 누구를 기다리다 지쳐 황폐해진 것처럼…….
“어어, 나온다!”
범구아재의 소리가 들려온다. 아침에 와서 어두운 축사를 들여다보니 어미 소의 엉덩이께에 무엇인가 커다랗고 벌건 덩어리가 들러붙어 있었다. 열린 자궁인 듯했다. 어미는 진통을 느끼는지 어찌할 줄을 모르고 이 구석 저 구석을 헤매며 비척댔다. 파리들을 쫓으며 몸을 일으키려 하는데, 현기증이 몰려온다. 나는 잠시 그대로 땅을 짚고 앉아 있었다. 현기증은 서늘하고 어둡다. 땀이 이내 식었다. 송아지가 다리부터 나오고 있는데, 범구아재가 억센 팔 힘으로 송아지 다리를 잡고 빼낸다. 눈이 부신 공포를 똑바로 쳐다보고 선 듯한 어미 소의 눈에 진물이 흐른다. 나는 바께쓰를 찾아들고 다시 연못의 물을 떠 나른다. 나는 성난 것처럼 거칠게 움직인다.
연못가에는 미루나무들이 둘러서 있고, 나무들 곁에 방 한 칸을 넣은 농막이 세워져 있다. 아버지는 그 방에 침대와 카세트 라디오와 전기밥솥과 전기 프라이팬, 작은 냉장고까지 구비해두셨다. 집을 짓기 전 아버지는 가족보다 먼저 내려와 이곳에서 지내셨다. 그때 아버지는 저녁마다 꿩 사냥을 해 전골을 해 드셨다. 나 역시 맛본 적이 있는데 닭보다는 작고 담백했다. 잔뼈와 특유의 냄새만 아니라면 차라리 쇠고기 전골에 가까웠던 것 같다.
물바께쓰를 들고 축사로 가니, 이미 새끼가 나와 있다. 새끼는 미음 같은 멀건 액체에 폭 젖어서 엎쳐져 있다. 송아지를 한 마리 얻었는데도 아버지는 좋은 기색이 없다. 지금은 그런 때다. 내다 팔아도 돈이 되지 않고, 먹이자면 사료 값이 아까울 지경인 것이다. 범구아재가 송아지의 몸을 대강 닦고, 태를 싼 짚을 들고 나가 축사 곁 산 쪽으로 간다. 질이 범구아재가 든 태를 기웃거리며 꼬리를 게으르게 흔들며 뒤따른다. 질은 송아지의 태를 탐내는 것일까. 엄마가 보았다면, 또 재수 없다고 입술을 바르르 떨었을 것이다.
어미 소는 비스듬히 서 있고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새끼는 벌써 일어서려고 절뚝거리며 애를 쓴다. 스무 번이나 서른 번쯤 절뚝거리다가 넘어지더니 마침내 송아지가 네 다리를 딛고 등을 번쩍 일으켰다. 송아지는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한 상태였는데도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앞으로 내딛으며 어미 소 쪽으로 위태롭게 걸어간다. 어미에게 닿은 새끼는 얼굴을 위로 들고 어미의 다리 아래 가슴 부분을 쿡쿡 들이받았다. 어미가 젖을 찾기 쉽도록 몸을 조금 틀어준다. 송아지는 이내 젖을 물고 빨아대기 시작한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가슴에 뜨거운 것이 치받고 올라 눈 사이가 뜨거워진다. 나는 바께쓰를 들고 또 물을 뜨러 비틀거리며 햇볕 속으로 나아갔다. 누가 살아가라고 가르쳤을까. 뱃속에서부터 배워 나오는 그것, 눈도 뜨기 전에 유일하게 명확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살아가야 한다는 것…….
밤이 온다. 나는 뒤늦게 마당에 널린 빨래들을 걷는다. 시골의 밤은 얼마나 어두운지. 엄마는 깜깜한 집 앞 개울에서 발에 묻은 흙덩이와 두 배로 커진 거친 손과 검고 깡마른 얼굴을 씻고 수건으로 닦은 다음, 목에 수건을 걸고 한 손에 늙은 상추를 뜯어 들고 다른 손에는 모자를 들고 들어온다. 엄마는 아침에도 한낮에도 저녁에도 상추로만 밥을 먹는다. 식구들을 위해서 양파와 풋고추를 많이 넣은 된장을 끓이고, 그리고 식탁엔 물을 털어낸 상추만 수북하게 올린다. 그뿐이다. “우린 빚이 너무 많다. 갚을 가망도 없어……. 그리고 집엔 현금이라곤 한 푼도 없다. 돈버는 사람은 저애 하나뿐이야.” 엄마가 중얼거린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의연하지만 돈을 버는 유일한 사람인 동생은 울려고 한다. 농협에 다니는 동생의 도시락은 늘 멸치볶음이나 오뎅볶음, 아니면 고추장아찌다. 나는 한낮에 졸아붙은 된장과 상추뿐인 식탁에 앉아 엄마와 말없이 밥을 먹다가 이따금 창밖에 쏟아지는 햇볕을 멍하니 보곤 했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딴청을 피우는 것이다. 그러나 저렇게 많은 햇볕이 나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눈물은 오히려 더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흡사 공중에서 새하얀 설탕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이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는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늘도 마을의 어느 마당이 캄캄한 집 마루에 올라앉아, 주인은 잠들었는데 혼자서 술이 머리끝까지 오르도록 마실 것이다. ‘공무원이란 정권의 시녀가 아니야, 공무원은 엄연히 국민의 녹을 먹는다구. 공무원은 국민과 국가의 충복이야. 내가 18년 독재정권 아래서 공무원을 했어도, 난 그런 신념을 갖고 일했어. 그런데, 우라질……. 이 빌어먹을 정권은 인간에게 그 정도 변명도 할 수 없게 해……. 그러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정년퇴직 5년 남겨놓고 나, 미련 없이 낙향했어. 내 고추친구, 니놈들과 어울려 남은 인생 물장구치고 놀듯 그냥 살아버릴려고 했어. 그런데 이놈들이 물귀신처럼 나를 따라와서는 끝까지 물을 먹이는군, 물을 먹여…….’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길로 상추로 싼 밥을 입이 미어지도록 밀어 넣고 우적우적 씹는다. 지난달엔 엄마의 거짓말로 집이 발칵 뒤집혔다. 10년 동안이나 한 식구처럼 키워온 질이 어느 날 사라져버렸을 때, 아버지와 동생과 나는 혹시라도, 질이 들쥐를 잡기 위해 놓은 농약이라도 먹고 죽은 것이 아니가, 하고 온종일 들판을 헤매고 다녔다. 어딘가에서 죽지 않았다면, 질이 제발로 집을 떠날 리는 없었다. 질은 도시에서 이사 온 후, 엄마와 동생 못지않게 시골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마을 사람 몇을 물기까지 해, 사람들이 집으로 몰려와 항의를 하는 소동을 겪기도 했다. 엄마는 갑자기 질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질이 귀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귀신이 씌인 것도 아니고, 귀신이 되었다니……. 엄마는, 짐승을 10년이나 한 집에서 키우면 귀신이 된다는, 동네 점집 여자의 모함을 그대로 믿어버렸다. 엄마는 질이 자신의 몸에 닿을 때면 주먹을 꼭 쥐고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리고 질이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질 때문에 집안에 재수가 없다고도 하고, 질의 눈이 징그럽다고도 했다. 엄마는 가족들 몰래 슬쩍 질을 굶기기도 했다. 내가 집을 비운 날은 하루 종일 굶긴 때도 있었다. 어쩌다 그런 일이 생겼을까. 엄마는 질을 젖도 떼기 전에 얻어와 미음을 먹여 키웠다. 그리고 개에게 이미 질이라는 이름이 있다고 우리에게 전해준 사람도 엄마였다. 질이라니, 개 이름치고는 이상했다. 우리는 모두 친구 집의 개처럼 해피나 메리 같은 이름으로 새로 짓고 싶어 했다. 그러나 엄마는 우리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질이라는 이름을 고집했다. 전 주인이 이미 질이라고 불렀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질이라는 이름에 익숙해지는 데는 여러 달이 걸렸다.
집을 나갔던 질이 돌아온 것은 엿새째 날 새벽이었다. 질은 우리의 염려와는 달리 살까지 올라 더 커진 듯한 모습이었다. 질이 돌아와 컹컹 짖자 우리는 모두 자다가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너무 신기해서 믿어지지 않았다. 목에는 개목걸이가 채워졌고 긴 쇠사슬도 그대로 달려 있어서 질이 움직일 때마다 철렁철렁 소리를 냈다. 납치니, 유괴니 몇 가지 그럴싸한 추측들을 했으나 의문은 곧 풀렸다. 그날 아침 가족들이 세수를 하는 시간에 개장수가 들이닥쳤던 것이다. 개장수는 곧바로 엄마를 불러내어 거세게 따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질을 보신탕집에 팔아 그 돈으로 새 가스레인지를 들이고 치마를 사 입고 쇠고기를 사와 구워먹은 것이었다. 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유일하게 돈을 버는 동생이 적금을 넣고 남은 월급을 털어 질의 몸값을 갚았다.
“짐승은 십년 넘게 키우는 법이 아니다. 난 질이 무서웠다. 질은 이제 귀신이 됐어.”
엄마가 동생에게 변명했다.
동생은 엄마를 향해 소리를 꽥 질렀다.
“난 그러는 엄마가 더 무서워. 그러는 엄마가 무서워서 죽겠다구!”
그 후로 마당에 혼자 선 채 질을 노려보는 엄마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빛, 흡사 상추로 싼 밥을 입이 미어지게 밀어 넣을 때의 눈빛과 같은 그 낯설고 막막한 표정.
밥을 다 먹은 엄마는 추적추적 안방으로 들어가 베개도 내리지 않고 방바닥을 가르며 모로 눕는다. 엄마의 눈은 약간 치켜떠진 채 문갑 위의 사진틀에 박힐 것이다. 오빠는 군복을 입고 어깨에 총을 메고 웃고 있다. 그러나 웃는 모습이 내가 보아도 안쓰럽기만 하다. 총을 멘 남자가 으레 보여주어야 할 바로 그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 같은 웃음을 흉내 내고 싶어 하지만, 오빠로서는 불가능하다. 총을 쥔 손도 너무 작고 연약해 보인다. 오빠는 오히려 울려고 하고 있다. 엄마는 밤마다 방바닥에 눈물을 투둑, 투둑 떨어뜨려놓고 잠이 든다. 반 컵쯤 물을 쏟은 것처럼 제법 흥건해서 걸레로 닦아내고 이불을 깔아야 한다. 나는 엄마의 머리를 들어 베개를 밀어 넣는다. 짐승의 털처럼 함부로 뭉친 머리카락이 푹 젖었다.
세수를 하고 제 방에 들어간 동생은 다시는 나오지 않는다. 동생은 밥도 먹지 않았다. 동생은 나와 달리 몸이 통통하고 키도 조금 더 크며 장딴지는 무처럼 둥글고 희며 재클린처럼 각이 진 얼굴은 조그맣지만 꽃핀 나무처럼 화사하게 생겼다. 마을 사람들은 그애가 명랑하며 잘 웃고 인사도 잘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애는 집에만 오면 말을 하지 않고 웃지도 않는다. 집에서는 질만이 그애와 통할 뿐이다. 질은 동생이 출근할 때면 고갯길까지 바래다주고, 저녁에 동생이 돌아올 때도 고갯길까지 마중을 나가는 각별한 식구인 것이다. 그애는 읍내의 농협연쇄점에서 일한다. 이른 아침에 나가 저녁까지, 계산도 잘하지 못하고 억지를 써대는 촌늙은이들에게 설탕과 밀가루, 식용유와 소주, 사탕과 빨랫비누와 소금, 심지어 커다란 포대에 든 비료 따위를 팔며 하루 종일 실랑이를 벌인다. 그애는 그 일을 지겨워한다. 그애가 만날 수 있는 젊은 남자라고는 물건을 대주는 음료수회사의 직원뿐이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남자마저 유부남이라고 한다.
그애는 도시로 나가 젊은 여자들과 젊은 남자들 속에서 일하고 걸어 다니고 생활하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그애가 넣은 적금은 이미 대출되었다. 아버지가 소를 사버린 것이다. 적금은 속이 텅 빈 채 메워야 할 빚이 되어버렸다. 3년 만기 적금을 이자와 함께 다달이 갚지 않고는 떠날 수도 없다. 그애는 한밤중에 가끔 운다. 그런 뒷날 아침이면 눈 속이 붉고 눈두덩이 부은 채로 나에게 더욱 쌀쌀하게 군다. 그애는 대학까지 나와 하루 종일 집에서 놀고 있는 나를 경멸한다. 그러나 나는 매일 밤, 그애가 농협에서 입는 유니폼을 손으로 세탁하고 아침에는 바싹바싹하게 다려 차갑게 식혀서 건네준다. 나는 속으로 조금만 더 참으라고 말한다. 머지않아 교직발령이 날 거라고, 그러면 함께 도시로 가자고, 네 어린 피가 밴 적금은 내가 다 갚아줄 테니 아무 걱정 말라고…….
밤하늘이 흐려지고 있다. 구름이 별들을 하나하나 지운다. 별은 얼음조각처럼 차가울 것 같다. 내 방의 창은 아주 크다. 벽 하나가 온통 창문이다. 아버지는 이제 막 땅을 고르고 그 위에 벽돌을 겨우 두어 줄 쌓았을 때, 먼발치에서 보고 선 나에게 손짓을 해 이곳이 네 방이다, 여기선 정원이 바로 보여, 라고 했다. 그때는 정원도 없었고 그곳이 방이 될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싸한 젖은 시멘트 냄새 때문에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때 나는 4학년이었고, 이곳은 아버지의 고향일 뿐, 내가 이곳에 내려와서 살 일은 없으리라고 믿었다. 나는 그때 무엇을 믿었던 것일까, 이제 와서 생각하면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교직을 얻기가 어려울 것을 알고, 다른 곳에라도 취직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게다가 나는 사회라는 것을 몰랐다. 그것을 생각하면 눈을 감고 코끼리를 만지는 듯했다. 투명하면서도 들어설 문이라고는 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이상한 성…….
승혜, 나는 그를 사랑한다. 사랑이, 그 순간순간의 섬광으로, 다가오는 미래를 염탐하는 두 눈을 감기고 두려움까지 지워버리는 거칠고 열광적이고 아무것도 바랄 게 없는 허무한 것이라면 말이다. 나는 무엇엔가 부딪쳐 부서지듯이 그를 사랑했다. 나의 두 손 안에 안긴 그의 머리……. 나의 머리를 감싸던 그의 손바닥……. 우리는 누군가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기라도 하는 양 다급하게 서로를 끌어안고 안심시키기 위해 부벼대곤 했다. 그와 나는 6개월 정도를 같은 방에서 지냈다. 나는 4학년 마지막 학기였고 그는 현장생활을 할 때였다.
나는 졸업을 했는데, 승혜는 복학해 겨우 3학년이 되었다. 승혜뿐 아니라 남자애들이 좀체로 자라지 않는 시대이다. 집에 내려가서 교직발령을 기다리겠다고 말했을 때, 승혜는 농담하느냐고 했다. 오빠는 군대엘 갔고, 엄마는 가망 없는 시골 생활로 인해 우울증에 걸렸으며 아버지는 귀향의 낭만을 즐겨볼 사이도 없이 막노동에 지치고 있었다. 그리고 여동생은 적대감을 가지고 나를 대했고, 집의 경제는 이자에 이자가 물리면서, 하루하루 빚이 불어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정해준 나의 방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말대로 정원이 바로 보이는 방이다.
밤이 깊어지자 마른번개가 치고 바람이 거세지며 마른 흙냄새와 큰 하천이 뒤집히는 듯한 비릿하고 개운한 비 냄새가 몰려온다. 비가 올 것 같다. 아버지는 아직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 마당 어두운 집 마루에서 쓰러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풍경 속에 깊숙이 안개비가 스민다. 열린 창문가에 서서 오랫동안 바깥을 내다본다. 구부러진 개울의 끝에 걸린 작은 다리는 안개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색이 칠해지지 않은 블록 축사와 연못의 미루나무들과 성냥갑처럼 작은 농막, 참나무와 아카시아, 소나무로 가득 찬 축사 곁의 산과 어린모가 촘촘하게 심긴 연푸른색 들판, 하천변의 자갈돌과 습지의 풀밭, 말뚝에 묶인 누런 소 두 마리와 검은 염소 다섯 마리, 이따금 에에에, 울어대는 새끼들, 반대편 밤나무 과수원이 있는 산기슭……. 안개비에 젖은 풍경은 버려진 화투짝같이 진부하다. 개조차 짖지 않는다. 완전한 정적……. 나는 아주 옛날부터 창가에 서 있었던 것 같다.
비가 내리는데도 엄마와 아버지는 모심기 품을 갚으러 나갔다. 오늘은 대정댁네 모심는 날이라고 한다. 나는 우산도 받지 않고 집을 한바퀴 돈다. 비가 오는데도 새떼가 날아간다. 지렁이도 성급하게 땅속에서 기어 나와 바깥 공기를 쏘인다. 질은 개집 안에 우두커니 앉아 가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다. 공기 속에는 눅눅하고 매캐한 짐승의 털 냄새가 무겁게 떠 있다. 질은 쓸데없이 비를 맞고 다니지 않는다. 귀신이 되었다는 말은 너무 현명해져서 듣게 된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대문간에서 파란 잉크로 군사우편이라고 찍힌 편지봉투를 주워든다. 글씨들이 빗물에 젖어 얼룩이 지고 있다. 후방에 계신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도 군인들의 의무일까, 오빠는 한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엄마에게 편지를 보내오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둥실이나, 두둥실, 두리둥실 같이 구름의 양을 암호로 하여 부쳐야 할 돈 액수를 엄마들에게 알려온다고도 하지만 오빠는 자신의 군대 월급을 엄마에게 보내기까지 한다. 그리고 편지 마지막에 언제나 같은 말을 쓴다. ‘사랑하는 어머니, 사회로 돌아가면 꼭 효도하겠습니다. 만수무강하십시오.’ 엄마는 아직 쉰두 살일 뿐이다. 오빠가 자신의 형편에 맞지도 않는 판에 박힌 속 빈 말을 하고 있어서 가슴이 더욱 찡해진다. 엄마도 무척 감동하는 것 같았다.
된장을 데워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정전이 된 듯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빗줄기가 굵어진다. 나는 식탁이 잘 보이지 않아 일어나서 불을 켠다. 창밖을 내다보니, 주렴을 친 듯 빗줄기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밥그릇과 숟가락을 씻고 있는데, 엄마가 뒷부엌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밀짚모자를 쓰고 투명한 비닐 우의를 입었는데 모자 밖으로, 우의 속으로 빗물이 줄줄 타고 흐른다. 엄마의 얼굴에도 굵은 빗물이 타고 흐른다. 우의를 벗으니, 남루한 셔츠, 장딴지까지 걷어 올린 흙물 밴 몸뻬바지, 늙은 써커스 여자나 신을 법한 코가 줄줄 풀린 검은 스타킹, 앞이 막혀 물이 찔꺽거리는 플라스틱 슬리퍼 차림이다. 들판을 내내 달려왔는지, 엄마의 숨은 거칠고 얼굴은 발갛고 명랑하게도 보이지만 어찌 보면 울기라도 한 듯, 눈가가 붉다. 불안하다. 손에는 작은 보퉁이를 들고 있다.
“물 좀 다오.”
물에 젖은 엄마는 부뚜막에 걸터앉자 검은 스타킹을 쥐어뜯듯이 벗으며 물을 찾는다. 나는 솥에 물부터 올리고, 마침 끓여둔 따뜻한 찻물을 준다. 엄마는 물을 마시고 그 자리에서 몸에 척척 달라붙은 옷가지들을 떼어낸다. 옷에서 김이 올라온다. 내가 물을 데운다고 말해도 엄마는 바가지로 찬물을 떠서 몸에 쏟아 붓는다. 엄마의 얼굴은 여전히 발그레하다. 목욕을 마친 엄마는 수건으로 몸을 닦고, 보퉁이에서 소주병을 꺼내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엄마의 젖은 옷들을 빨래통에 담그고, 편지와 김치와 풋고추를 담은 쟁반을 들고 방문을 연다. 엄마는 누빈 홑이불을 끌어 덮고 소주를 병째 들어올려 홀짝 마신다.
“엄마, 오빠한테서 편지 왔어.”
엄마는 말없이 손을 벌린다. 손톱 밑엔 검은 흙물이 배어들었고, 물과 흙이 파고든 손등은 붉게 부어 있다. 나는 그 손에 편지를 쥐어준다. 엄마는 구겨지도록 꼭 쥔다. 엄마는 집에 오기 전부터 취해 있었던 것 같다.
“잘란다.”
엄마는 편지를 꽉 쥔 채 오빠 사진을 향해 팔을 베고 모로 눕는다. 얼마 전만 해도 엄마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자주 도시에서의 편리하고 화사했던 생활을 되새기며 자신을 학대했다. 그때는 그래도 기운을 잃지는 않았다. 그 어떤 독기가 엄마를 지탱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엄마는 아버지는 물론이고 자신마저 원망하지 않는다. 엄마는 주위에 무심한 채 일만 한다. 일할 때 엄마의 얼굴은 깊은 우물 속에 혼자 빠진 듯 적막하다. 엄마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벌써 방바닥에 눈물이 고였다. 집 안도 바깥도 너무나 축축하다.
방안에 고기 굽는 냄새가 가득하다. 나는 눈을 뜬다. 시침과 분침과 숫자 판들이 어둠속에서 푸른빛을 내는 탁상시계는 두시를 가리키고 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온다. 한밤중에 깨어 음식냄새를 맡으니, 흡사 어릴 때 겪었던 제삿날 같다. 그러나 바깥이 너무나 고요해서 무섭고 의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나는 문손잡이에 잔뜩 힘을 주어 소리 없이 열고 얼굴을 내민다. 컴컴한 거실 너머 부엌에 누군가 있는 것 같다. 보이지는 않지만 기척 없이 움직이는 모양이 엄마인 것 같다. 이 시간에 부엌에서 혼자 고기를 굽는 엄마와 마주친다면 어쩐지 고통스러울 것 같다. 나는 다시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닫고 납작하게 눕는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는다. 기분이 이상해진다. 질이 짖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아침에 세수를 마친 동생이 스킨을 얼굴에 두드려 바르며 꿈 이야기를 한다. 어젯밤, 집에 세 명의 저승사자가 왔다고 한다. 저승사자는 동생의 방문을 열고 땅속에서 몰려나오는 듯한 으스스한 바람을 일으키며 들어섰다. 검은 갓을 쓰고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검은 신을 신은 채였다. 동생은 너무 놀라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동생은 잠자던 몸을 일으켜 그들을 따라나섰다. 주위는 검고 황토색 길은 구불구불 한없이 계속되었다. 오랫동안 걸어간 뒤에 황토길 가운데서 질을 만났다. 뜻밖에도 질은 길가에 앉아 계란을 팔고 있었다. 질 앞에는 계란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동생이 반가워하자 질도 반가워하며 계란을 하나 주었다. 삶은 계란이었다. 동생이 계란을 먹자 저승사자들이 사라졌다. 질은 동생에게 어서 집에 가라고 소리쳤다. 동생은 질에게 함께 가자고 말했다. 질은 자신은 죽음으로 가는 길가에서 계란을 팔아야 하니 어서 집에 가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동생은 등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동생은 마치 발에 자전거 바퀴가 달린 것처럼, 미끄럼틀을 탄 것처럼, 등에 작은 날개가 달린 것처럼 빨리 달렸다.
동생이 구두를 신고 마당에 나서서 질을 부른다. 보통은 동생이 나서기도 전에 질이 현관문을 두드리는데 오늘은 이상한 날이다.
“질― 질―”
질은 나타나지 않는다. 개집 안에도 질은 없다. 흙과 눌어붙은 음식 찌꺼기가 뒤섞인 밥그릇 속에 고기 한점이 들어 있다. 가슴이 서늘해진다. 밤중에 고기를 굽던 냄새와 부엌에서 나던 숨죽인 인기척이 떠오른다.
“마을에 나갔나봐.”
내가 말한다. 동생은 시계를 보더니, 총총히 걸어 나간다. 고개를 넘어 큰길로 나가 버스를 타야 할 시간이 빠듯하다. 나는 개 밥그릇을 멍하니 들여다본다. 고기 한점……. 밤에 비가 왔는데도 빗물 따윈 고여 있지 않았다. 나는 내 방에 들어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듯 납작하게 누워 눈을 감는다.
동생은 사흘 동안 질을 찾아 들판을 헤집고 다녔다. 나는 그날 밤 누군가 부엌에서 고기를 구운 일에 대해 악착같이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동생은 이미 엄마를 의심하고 있었다. 나흘째부터는 동생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연쇄점 동료들에게 물으니, 동생은 전날 퇴근 후, 음료수회사 트럭을 타고 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생을 태우고 갔던 음료수회사 남자는 여전한 얼굴로 오후에 연쇄점에 들렀다. 그는 단지 동생을 버스터미널까지만 태워주었다고 말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버스터미널이란 어린 여자애들에게는 불온한 곳이고 막다른 곳이다. 터미널의 화장실 바닥은 언제나 질척하고 흙과 알 수 없는 검은 가루들이 뒤섞여 있으며 문짝들은 부서져 고리가 걸리지 않고 쓰레기통은 넘쳐나고 거울은 김이 서린 것처럼 부옇고 물이 고인 세면기엔 머리카락들이 엉겨 있다. 그리고 그 앞엔 언제나, 어디로 떠나는지 알 수 없는 여자애들과 지친 여인들이 분과 립스틱을 새로 바른다. 그 지독한 지린내 속에서 코로 숨을 쉬며……. 동생은 엿새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애는 어디로 갔을까, 동생은 바다가 있는 도시를 꿈꾸곤 했다. 아주 낯선 작은 도시들, 가령 강릉.속초.주문진, 혹은 충무.목포.여수 같은 곳.
오늘은 일요일이다. 아버지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도시에 갔고, 엄마는 앓아누웠다. 밖에는 여우비가 오고 있다. 엄마가 점심으로 먹은 죽 그릇을 씻고 거실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다본다. 햇빛이 쨍한데, 슬픈 꿈처럼 비가 내리고 있다. 저 고운 햇빛이 내게는 아무 소용도 없구나, 하는데 창 바깥에서 넘어온 그림자 하나가 문득 나와 겹쳐서 마주선다. 승혜……. 나는 꿈에서 깨지 못한 소녀처럼 몽환적인 눈으로 그를 마주본다. 그와 나는 웃지도 않는다. 이렇게 마주쳐도 금간 유리접시들처럼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나는 슬리퍼를 끌고 현관문으로 나간다. 빗속의 햇볕, 햇볕 속의 비 때문에 그가 온 것이 현실 같지가 않다.
“이렇게 갑자기, 미리 연락이라도 하지 않고…….”
“나도 이렇게 오게 될 줄은 몰랐어.”
자기 발로 온 사람이 나의 얼굴을 보고는 더 놀란 얼굴이 된다. 머리카락이 젖어 그리워했던 그의 체취가 더욱 짙다. 비를 피할 곳이 필요한데 엄마가 아픈 중이라 집으로 들어가자고 할 수는 없다. 나는 그를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마당 뒤편 녹슨 쇠문을 열고 등을 굽히고 나간다. 대문으로 나가면 작은 마을이라 금세 소문이 퍼질 것이다.
뒷문 밖은 바로 하천변이다. 담장에 기대어 만든 낮은 닭장이 있을 뿐, 마을은 돌아앉아 있다. 하천의 물은 치마를 걷어 올리고 건널 만할 것 같다. 조금씩 굵어지는 빗방울이 흐르는 물 위에 떨어지고 있다. 내가 방죽을 내려가 슬리퍼를 손에 들고 치마를 걷어 올리자 그도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들고 바지를 걷어 올린다. 그는 웃음이 조금씩 묻어나는 눈으로 창백하도록 새하얗고 가녀린 나의 다리를 쳐다본다. 나도 그의 벗은 발가락을 정답게 쳐다본다. 빗방울이 굵어져 그의 발등에 뚝 떨어진다. 우리는 손을 잡고 물을 건넌다. 바닥에 푸른 물이끼가 끼어 미끄럽다. 그의 발이 미끄러지자 나는 치마를 걷어쥔 손을 풀고 안간힘으로 그를 붙든다. 나의 치마가 물결을 따라 펼쳐진다. 우리는 목쉰 듯한 조그만 소리로 웃는다. 개울을 건너니 발바닥에 융단같이 부드럽고 푸른 풀밭이 느껴진다. 풀밭이 빗물에 잠겨 그 위를 맨발로 걷는 것이 꿈같다. 그는 나의 치마를 걷어 올려 물기를 짠다.
오늘은 풀을 뜯는 가축이 한 마리도 없다. 황소 두 마리, 염소 다섯 마리, 그리고 아기 염소들, 오늘은 볏짚이 깔린 훈훈한 우리 속에서 주인이 베어다 준 풀을 먹을 것이다. 들판에는 토끼풀꽃과 강아지풀, 키 큰 오이풀과 엉겅퀴꽃이 가득하다. 하늘이 기우뚱 기울어지듯, 갑자기 햇볕이 사라지고 빗방울이 굵어진다. 우리는 찔레덤불에 다리를 긁히며 하천 둑길을 걷는다. 군데군데 소똥이 퍼져 있어서 그가 깨끔질을 하며 웃는다. 비가 더 거세어지자 우리는 뛰기 시작한다. 나는 축사로 그를 데리고 들어가 새로 태어난 송아지를 보여준다. 축사에는 짙은 거름냄새가 나고, 소들의 되새김질로 김이 피어올라 공기가 훈훈하다. 송아지는 젖을 먹다 말고 불안한 듯 어미 뒤로 몸을 숨긴다. 송아지의 등은 곱고 앳된 노란 털로 덮여 있고, 두 귀 사이의 머리는 까까머리 아기 같다. 우리가 꼼짝 않고 서 있으니 아무것도 본 적 없는 말간 두 눈이 어미의 몸 뒤에서 가만히 내다본다. 나는 그들이 지금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가 또 소를 낳는 거라고…….
며칠 내린 비로 연못에도 물이 많이 차올랐다. 우리는 미루나무들을 지나 농막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비워두었던 방이라 먼지가 덮여 있고 서늘하지만, 모든 것이 잘 정돈된 빈 공간은 슬레이트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미루나무 잎사귀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그와 나의 체취와 온기로 이내 가득 차고 조금씩 조금씩 흐트러진다. 작은 유리창을 여니 가지 하나가 팔을 뻗쳐 젖은 미루나무 잎이 우수수 들어온다. 빗방울도 날려 들어온다. 짙고 상큼한 한여름의 냄새다. 아버지의 고물 카세트에는 남과 여, 모나코, 마지막 콘서트 같은 낡은 영화음악 테이프가 들어 있다. 우리는 마음이 따뜻해진다. 벽에 등을 기대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젖어버린 우리의 몸에서 짙은 체취가 풍겨 나온다. 나는 몸과 마음이 동시에 달아오른다. 그것은 아픔과도 비슷하다. 그에게 안기고 싶다. 그도 애가 타는지 눈 속이 붉다. 파같이 새하얀 나의 맨발이 감자처럼 노란 그의 발가락 위에 천천히 놓인다. 그의 발가락은 구운 감자처럼 뜨겁다. 우리의 발가락이 서로를 만지며 꼼지락거린다. 나의 발가락 사이사이가 조금씩 열리는 것이 느껴진다. 우리는 끌어안는다. 이마 위에 굵은 빗방울이 날려 와 떨어진다. 나는 그를 너무나 그리워해왔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고백한다. 나의 얼굴에 그의 입술이 닿자 눈물이 솟구친다. 갑자기 바깥이 어두워지고 빗방울은 폭우가 되어 쏟아진다. 그와 나는 살이 부러진 작은 우산 속에 있는 것 같다.
마지막 키스를 나누고, 작은 유리창 앞에 선다. 비가 그쳐 나뭇잎에서 물방울이 연못 위에 똑똑 떨어질 뿐이다. 너무 오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밖은 어둑하다. 창문을 닫으려고 뻗친 미루나무 가지를 밖으로 내보내려니, 미루나무 잎사귀에 달팽이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손짓한다. 그는 달팽이를 보지 않고 말한다.
“이곳에 있지 말고 나와 함께 지내자. 지금 가자.”
나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달팽이만 쳐다본다. 달팽이는 소라껍데기 같은 것을 끌고 천천히 움직인다. 그는 바다에서 왔다고 말한다. 바닷가의 집을 끌고 그렇게 먼 곳에서 왔다고.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는 말이 없다.
우리는 왔던 길을 돌아간다. 그러나 하천 둑길에 오르자 말문이 막힌다. 우리가 밟고 왔던 풀밭 위로도 깊고 누런 황토물이 콸콸 흐르고 있다. 그 사이에 비가 그렇게 퍼부었던 것일까. 개울물이 불어 강이 되어버렸다. 긴 꿈을 꾼 것만 같다. 나는 몸을 돌려 축사 쪽으로 다시 걷는다. 산은 벌써 어둡다.
“이곳에서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너희 집이 이렇게 된 것도 다 놈들의 짓이야. 그들은 농촌 사람들에게 축산을 장려하고, 뒤로는 쇠고기를 수입했어. 지금 우리나라 농가 전체가 빚더미에 올랐어. 농협과 축협은 그들을 상대로 흡혈적인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축사에 이르자 그에게 길을 가르쳐준다.
“먼저 나가. 이리로 쭉 가서 마을 앞길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네가 우리 집으로 왔던 그곳이 돼. 그러면 왔던 길로 되돌아 나가 고개를 넘고, 큰길에서 버스를 타면 돼.”
“함께 가자. 나와 함께 지내자.”
나는 완강하게 고개를 젓는다. 그는 우두커니 서 있다가 발을 옮긴다. 성난 듯 나를 보지도 않고 곧바로 걸어간다. 그의 뒷모습이 많이 흔들린다. 그는 곧 밭가의 감나무들 속으로 사라진다. 나는 맨다리에 한기를 오소소 느낀다. 한참 뒤에 마을 앞길을 걷는 그의 모습이 다시 보인다. 그가 다리를 지난다. 그리고 사라진다. 나는 축사에 들어가, 새하얀 송아지의 눈을 한참 들여다본다.
나는 그가 먼저 간 길을 걷기 시작한다. 모 심은 논을 지나 플라타너스가 줄을 지어 서 있는 밭길을 지나, 감나무밭 사이를 지나 동네 앞길을 지나고,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널 때, 개울가에 마을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있는 것이 보인다. 아이들 한 무리는 위에서 뗏목을 타고 물살 위를 떠내려 오고 있다. 그들이 비명을 지르며 가파르게 지나자 개울가에 선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뒤따라 하천 방죽 위를 달린다. 자세히 보니 아이들은 공터에 내버려져 있던 찬장을 물에 띄우고 대나무 장대로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 우리 집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마을 입구의 길 쪽을 보니,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친구 아들 결혼식을 보러 간 아버지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동생도, 질도,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어머니는 저녁 죽을 먹고 다시 모로 누운 지 오래다. ‘이곳에 있지 말고 나와 함께 지내자. 지금 나와 가자.’ 나는 라디오 심야프로그램을 듣다가 라디오를 끄고 눈을 감는다. 그러나 그 소리가 눈 안에서 울려 잠들 수가 없다. 나는 책상 위에 앉아 책을 펼쳤다가 다시 덮고, 편지지를 꺼내 여우비, 여우비, 햇볕 속의 비, 빗속의 햇볕, 여우비라고만 쓰다가, 그만 폭삭 엎드려버렸다. 나는 별안간 겉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낡은 구두를 신고 마당으로 나간다. 내일은 맑으려는지 밤공기 속에 뿌연 안개가 걷히고 있다. 나는 대문을 빠져나가 마을을 나가는 길을 따라 아무 작정도 없이 호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걷는다. 호주머니 속에는 늘 어딘가로 갈 차비 정도는 들어 있다. 언제든 나서기만 하면, 뜻대로 가버리자고 넣어두고 간혹 잊어버렸던 비상금이었다. 하늘은 캄캄하고, 마을엔 불빛들이 꺼져 세상이 어디로 떠내려가 버린 듯 칠흑처럼 캄캄하다. 나는 내가 가는지, 가지 않는지, 가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희미하게 드러나는 길만 쳐다보며 마을 바깥을 향해 걷는다. 떠나는 사람은 다 이럴까, 이런 마음으로 자신도 놀라면서 한걸음 한걸음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일까……. 그러나 고갯길을 오른 나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선다.
불꽃나무……. 차갑고 맑은, 무수한 불꽃들이 이교도 무리처럼 은밀하게 명멸하고 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리가 접히며 아득히 까무러지는 듯하다. 미확인의, 다른 차원의 비밀을 보아버린 것만 같다. 한참만에야 나는 그 명멸이 반딧불 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토록 많은 반디들이 나무에 붙어 깜박이고 있는 것이었다. 신비스러운 불꽃나무는 고갯길을 가로막은 채 나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한걸음도 더 걷지 못하고 어둠속을 두리번거렸다. 숲의 깊은 어둠속에서 나무들이 가지와 잎사귀를 뒤치며 바람에 흔들리는 기척이 들렸다. 뒤집히는 배들같이 흰 속을 드러내는 나뭇잎들, 아무도 모를 어둠속에서 세찬 바람에 흔들리며, 그래도 무엇인가 밀고 당길 때, 밀리거나 당기 우며 흔들릴 수 있는 펼쳐진 가지와 이 많은 잎사귀가 있어서 좋다고, 이렇게 살아서 내게 닿는 고통을 노래하니 좋다고 탄식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 집으로……. 꿈속의 질이 떠오른다. 질은 죽음의 길 중간에 앉아 계란을 팔고 있다.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빗물에 잠긴 풀밭 같은 마을 쪽을 바라본다. 그러자 머릿속에 문득 책장을 화르르 넘기며 바람이 지나간다. 그리고 시가 적힌 책장 하나가 무심하게 펼쳐진다. “나는 그대가 바닷가 마지막 집에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곳엔 활짝 핀 레몬나무들의 검은 우듬지가 향기로운 바람에 흔들리지요.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그곳엔 모든 소리가 잦아들고요. 어스름만이 소곤소곤 한 시절을 노래할 뿐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은 바닷가 마지막 집이라고, 미루나무 잎사귀만큼이나 작은 한 시절일 뿐이라고…….
(tanb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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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소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달픈 삶을 너무 고운 언어로 엮었네요. 섬세하고 아련한 수채화를 종일 들여다 본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