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신(勤愼)
일주일 전 경주 산내 골짝에서 텃밭을 일구는 친구를 찾아갔다. 친구의 텃밭은 면적이 꽤 넓어 혼자서 관리하기엔 힘이 부쳤다. 농사일에 서툰 친구를 돕느라 땀을 꽤나 흘리고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을 좀 움직였다. 창원의 집으로 복귀한 후 며칠이 지나도록 팔다리가 뻐근하다가 이제는 다 풀렸다. 그런데 그곳에서 일손을 도운 후유증은 다른 곳에서 나타나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땀이 많이 흐를 여름날을 대비하여 반바지를 준비해 갔더랬다. 나는 친구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그때 친구가 자기가 작업 때 입는 여벌 긴 바지가 많으니 그걸 입으라고 권했다. 그럼에도 나는 고집을 부려 내가 가져간 반바지를 입고 농장 진입로와 살림집 뒤란의 우북한 잡초들을 잘랐다. 이튿날은 고추밭 밭둑 풀도 말끔하게 잘라주었다.
이튿날 오후 농장을 빠져오면서 친구는 내가 해둔 제초작업을 둘러보고 놀라워하고 고마워했다. 자신의 힘으로는 엄두가 나질 않고 외딴 곳이라 마을까지 내려가 인부를 구해 쓸 형편도 못 된다고 했다. 문제는 집으로 돌아온 이후였다. 나는 반바지를 입은 채 작업하다 무릎 아래 정강이부분이 환삼덩굴에 스쳐서 긁히어 벌겋게 달아올랐다. 급기야 풀독이 올라 가렵고 따가웠다.
병원을 가질 않고 버티니 정강이 풀독은 수그러들 기세가 아니었다. 하루는 일과 중 보건실을 찾아갔더니 보건교사가 어떤 연고를 건네주어 아픈 곳에 발라 점차 가라않았다. 그래서 병원을 가질 않고 다음날 한 번 더 발랐더니 본디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오후 산딸기를 따러 갔다가 말벌한테 쏘여 손목이 퉁퉁 부어올라 다음날 보건실로 가서 암모니아수를 발랐다.
교사라면 그냥 집이나 학교를 오가면서 교재연구나 충실히 해서 학생들이나 열심히 가르칠 일이지 산이나 들로 나다니다 풀독이 오르고 말벌한테 쏘였다. 직접적인 교육활동과 연관 없이 보건실을 다녀온 일로 자존심이 상했다. 보건실을 나오다가 나는 혼자말로 사고뭉치가 다녀간다고 중얼거렸다. 아프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기도 하고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감한다.
산내 친구 텃밭 일을 돕고 온 지 일주일 지난 때였다. 장맛비 틈새 토요일 아침 평소 출근 시각보다 일찍 산행을 감행했다. 댓거리에서 밤밭고개로 가서 만날재와 쌀재를 거쳐 바람재에 닿아 광산사로 내려왔다. 쌀재와 바람재는 초행이었는데 생각보다 먼 길은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점심나절이 조금 지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쳤는데 오후는 편히 쉬게 되어 다행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낌새가 느껴졌다만 입술이 부르트고 입안이 헐어왔다. 입술은 따갑고 혀 밑이 불편하니 침이나 음식을 삼키려니 많이 불편했다. 자고난 일요일엔 입술과 입안의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 출근 날 이런 상황이라면 아이들 앞에서 수업을 진행하기 상당히 거북할 지경이었다. 일요일이라 병원은 모두 문을 닫았기에 아침부터 당번 약국이라도 찾아가야 할 처지였다.
먼저 인터넷으로 입술이 왜 부르트고 입안이 왜 허는지 검색을 해보았다. 피로가 누적되고 긴장이 지속되면 그런 증세가 온다고 되어 있었다. 그간 내가 모르게 몸을 무리하게 혹사시키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았다. 그냥 두어서는 잘 낫지 않을뿐더러 한동안 고생하지 싶었다. 관련 홈페이지를 방문해 일요일 당번 약국을 검색했더니 우리 동네 약국은 문을 여는 날이 아니었다.
아침 식후 장대처럼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시청 근처 할인매장 구내 약국을 찾아갔다. 아마 내가 매장 첫손님이었을 것이다. 여 약사가 입술을 보더니 단번에 연고를 바르고 알약을 며칠 먹으면 나을 거라고 했다. 내복약은 증세가 다 나아도 마저 먹으면 좋다고 했다. 마침 종일 비가 오락가락 했기 망정이지 웃비라도 멎었다면 바깥으로 나돌다가 입술과 입안이 더 덧났을 것이다. 13.07.07
첫댓글 어지간히 혹사를 시키셨는지요? 이 계절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