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찬 선배는 나보다 배재 5년 선배이신데 시카고에서 내가 담임하던 갈릴리감리교회 아주 열심히 나오신 분입니다. 그 선배는 서울에서 대학교를 나와 미국 회사에 들어갔었다고 합니다. 영문학과를 나와 비교적 영어에 능통했던 그는 그 회사에 있으면서 주한미군들이 한국에서의 현행법을 어겼을 경우 법정 통역의 일을 하면서 미국 젊은 군인들의 좋지 않은 점을 많이 보면서 따라서 미국사람들에 대한 아주 좋지 않은 선입감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가 결혼을 하고 1970년대 초 미국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인디애나 주립대학교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은 그는 시카고에 있는 한 회사에 취직이 되어 열심히 일 하며 사남매를 정성껏 양육했습니다. 그 사이 동생네 식구도 미국으로 이사를 와서 인디애나 주의 자그마한 도시에서 생활하며 형제는 비록 가깝지는 않았지만 서로가 오가며 의지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성탄절을 맞아 12월 24일 오후 송 찬 선배는 식구들과 함께 동생네 집에 가서 성탄 연휴를 함께 보내고자 길을 떠났습니다. 아내가 옆에 타고 뒤에 앉은 삼남매가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즐거운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떠날 때부터 흩날리던 눈이 점점 탐스러운 송이의 눈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앞이 잘 안 보이게 쏟아져 내리는 미국 중서부지역 특유의 폭설에 아빠 마음은 염려가 되었지만 그러나 아빠의 염려와는 달리 아이들은 그 눈송이를 바라보며 더 즐겁게 웃고 떠들었습니다.
그러나 눈은 더욱 크게 쏟아지고 게다가 바람이 불면서 눈들이 이리 저리 날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한 시간 정도만 더 달리면 될 거리에서 자동차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샛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길 양 쪽으로는 밭이 있고 길도 구불 구불 하였습니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것은 세찬 바람이 쌓여있는 눈을 옮겨 길과 밭을 구분하기 힘들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우리 송찬 선배는 나름대로 길과 밭을 구분하려 애를 쓰면서 조심스럽게 달렸습니다. 그런데 아쁠사! 차가 기웃둥 하더니 눈에 덮여 있던 도랑으로 쑥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길이라 생각하고 달린 곳이 길이 아니라 밭이었던 겁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자동차를 전진 후진 시키며 빼 내려 했으나 그럴수록 자동차는 점점 더 밭 쪽으로 밀려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이 모두 나와 자동차를 밀어 보았지만 자동차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송찬선배는 트렁크 안에 있던 이런 저런 물건들을 빼 내 바퀴에 깔고 헌 옷가지들도 바퀴에 넣고 자동차를 빼 내 보려 했지만 전혀 가망이 없었습니다. 송찬선배는 혹시 어디에서 자동차라도 오지 않나 해서 사방을 둘러 보았지만 밤 12시가 넘은 그 시간에, 그 샛길에 더군다나 모두가 제각기 쉬임을 갖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동차가 나타날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밤은 깊어지고 차는 빼 낼 수 없고 중서부 지역의 무섭게 차거운 바람은 온 몸으로 스며들어 식구들은 자동차 안에 들어가 서로 부둥켜 안고 체온을 유지시키려 애를 썼지만 점점 얼어오는 추위를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빠 엄마는 아이들을 가운데에 놓고 계속 몸을 맛사지 해 주었지만 이제는 힘이 다하고 몸도 굳어져 팔을 움직일 수 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점점 얼어들어오는 몸을 느끼며 송찬선배 부부는 “하나님 우리 식구 여기에서 이렇게 죽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라고만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추위 속에 의식까지 몽롱해 질 무렵 송찬 선배는 저 멀리에서 불빛이 반짝 비추어지고 없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혹시 헛것을 보았나 싶어 계속 그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역시 불빛이었습니다. 자그마한 불 빛 두 개가 점점 가까워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송찬 선배는 얼어붙은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사이 눈은 그쳤지만 매서운 바람에 몸을 가누기 조차 힘이 들었습니다. 송찬선배는 있는 힘을 다 해 “Help me! Help me!" 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행히 그 불빛이 송찬선배 쪽으로 점 점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의 손에는 제각기 손전등과 눈삽이 들리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송찬 선배는 지금도 그들이 그 시간에 어떻게 눈삽을 들고 자기에게로 왔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 하면서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하나님이 자기를 내려다 보고 지켜 주신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송찬 선배 보고 지금 혹한 주의보가 내렸으니 당신도 차 안에 들어가 있으라 하고는 거의 한 시간동안 눈을 치우고 각진 언덕을 깍아내리고 하더니 모두 나오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한 사람이 찬 안으로 들어가 엔진을 켜고 아주 힘겹게 자동차를 그 눈 속에서 끄집어 내 주더랍니다. 그러더니 이제 당신 갈 곳으로 가라고 하더라는 겁니다.
송찬 선배는 너무나 고마워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름이라도 알려 주십시오” 하니까 “패시란” 하더라는거죠. 그래서 어느 동네에 사느냐 물어보니까 그냥 이 근처에 산다고만 하고는 훌쩍 떠나 가더랍니다. 송찬선배와 그 가족은 그들의 도움으로 얼어 죽음을 면하고 무사히 동생네 집에 들어갔습니다.
다음 날 성탄일 아침 송찬선배는 식구들과 함께 동생을 따라 교회에 가서 온 식구가 죽음을 면하고 다시 살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예수님 오심을 감사하는 뜻 깊은 성탄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예배 후에 송찬 선배는 그 교회의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고는 혹시 이 근처에 “ 미스터 패시란”이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하니까 목사님은 그런 이름은 없다고 하면서 왜 그 사람을 찾느냐 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송찬 선배는 지난 밤에 있었던 그 감격스러웠던 일을 죽 이야기 해 주니까 그 이야기를 다 들으신 목사님은 껄껄! 웃으시면서 “아! 그 패시란 이란 사람을 내가 알겠다” 하더랍니다. 송찬선배는 너무나 반가워 그 사람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느냐 하니까 그 목사님 말씀이 그 “패시란”이란 말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Pass it on"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더라는 거죠. 이 말을 우리 식대로 읽으면 “패스 잍 안” 이 되지만 미국사람들 식으로는 “패시란”으로 발음하게 됩니다.
그 목사님은 그 "Pass it on" 이란 말은 우리의 신앙용어로 “네가 받은 그대로 전해주라” 란 말이라 하면서 그들이 자기의 이름을 Pass it on 이라 한 것은 “우리가 당신에게 해 준 그대로 당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랑을 나누어 주십시오.” 란 의미로 그러한 이름을 준 것일거라 하더랍니다.
송 찬 선배는 여기에서 또 한가지 자기의 교만을 고백합니다. 자기딴에는 영어를 잘 한다 큰 소리를 쳤었지만 도대체 그 "Pass It On"이란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 무슨 영어 잘 한다고 큰 소리를 쳤었는지 생각할수록 부끄럽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송찬 선배는 목사님이 들려주신 그 "Pass It On"의 의미 설명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 때 까지도 미국사람들은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강한 불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때 그 경험을 통해서 송찬선배는 미국사람들 속에 있는 아름다운 품성 특히 신앙을 바탕으로 한 좋은 점을 깊이 깨달아 알고는 미국사람들과 아주 가까운 관계로 살아오고 있다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칫 “기복신앙”으로 빠져들 수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이유가 “복을 받아 행복하게 사는 것”에 둘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믿고 복 받아 잘 사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패시란, Pass It On”입니다. 예수님께 이미 받은 사랑과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 전해 주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엄청난 사랑과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패시란, Pass It On” 즉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그 사랑을 우리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신앙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Pass it on!” 우리도 우리가 받은 사랑을 나누어 주며 살아가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