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김대건 신부 유숙(留宿)성지 복원 사업 전개
상해서 서품 후 입국, 2주간 머물던 강경 포구 구순오의 집
- 김대건 신부가 한국 땅에 도착해 2주간 머물렀던 구순오의 집 자리. 대전교구와 논산시는 이곳을 ‘김대건 신부 유숙성지’로 복원하기로 했다.
대전교구와 논산시(시장 황명선)가 ‘김대건 신부 유숙(留宿)성지 복원 및 관광자원화 사업’을 전개하기로 했다.
대전교구와 논산시는 3일 오후 5시 논산시장실에서 교구 하부내포성지 전담 윤종관 신부, 논산지구장 이원순 신부, 강경본당 윤종학 주임신부 등 논산지구 사제단과 황명선(토비아) 시장, 논산지구 사목회장단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가졌다. 이 간담회에서 올해 김대건 신부 유숙성지 고증을 위한 학술용역을 발주하고 유숙성지(389㎡) 및 주변 부지 총 7필지 858㎡를 매입한 후 2015년 유숙성지 건물복원, 주변정비와 성지순례코스 활성화 사업을 펼치기로 의견을 모았다. 사업비로는 8억 원이 투입된다.
간담회 자료에 따르면 김대건 신부 유숙성지는 성 김대건 신부(1821~1846)가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은 후 라파엘호라는 목선을 이용,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훗날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 주교) 등과 함께 1845년 10월 12일 밤 8시 경 충남 강경 포구에 도착해 약 2주간 머물렀던 구순오의 집(현 충남 논산시 강경읍 홍교리 101-1번지)을 가리킨다. 구순오의 집은 페레올 주교가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조선교구장 착좌식을 거행한 장소이기도 하다. 페레올 주교는 1845년 10월 29일 강경에서 바랑 신부에게 보낸 서한에서 “사공 두 사람이 우리를 등에 업고 순교자들의 땅에 내려주었습니다. 내 취임은 그리 찬란한 것이 못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윤종관 신부는 김대건 신부 유숙성지 복원과 연계해 “강경이 본래 나바위성지로 정확한 학술 용역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전했다. 강경본당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유숙지 관련 자료’에서 김대건 신부가 구순오의 집에서 한국 땅에서의 첫 번째 미사를 봉헌한 일은 자명한 일로 한국 가톨릭 교회사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김대건 신부가 구순오의 집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일성록’과 「한국가톨릭대사전」에도 명시돼 있다. 1846년 6월 26일(양력) ‘좌우포도청에서 보고한 죄인 김대건의 공초’가 기록된 ‘일성록’에는 “작년(1845년) 8월 저는 교우들을 만나보기 위해 이재용, 임성룡과 함께 은진 구순오 집에 가서 머물렀는데”라는 김대건 신부의 진술이 나온다.
구순오의 증손녀 구안나는 1966년 1월 교회사가 고 오기선 신부에게 구순오의 집 위치를 확인하고 “방 5개가 딸린 ㄱ자 모양의 기와집”이라고 증언했다. 논산시는 이를 근거로 구순오의 집을 복원하기 위한 평면도, 정면도, 좌측면도를 마련해 놓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4년 3월 16일, 박지순 기자]
한국인 첫 사제 발 길 머물렀던 곳, 성역화 작업
논산시, 강경본당과 김대건 신부 유숙한 강경 포구 개발 논의
논산시가 최근 김대건 신부가 1845년 10월 12일 상륙해 머물렀던 강경 포구 유숙지에 대한 성역화에 나섰다.
이 유숙지는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와 김대건 신부가 1845년 10월 29일자로 파리외방전교회 바랑 신부에게 보낸 서한에서 확인된 교회 사적지로, 이에 앞서 그해 8월 17일 중국 상하이 진자샹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고 조선을 향한 김 신부 일행이 뜻하지 않은 풍랑을 만나 제주도 용수리에 도착했다가 다시 서울로 향하던 길에 들른 곳이었다.
논산시는 내년 말까지 총 8억 원의 예산을 들여 김 신부 일행이 머물렀던 충남 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 24번길 16-2(구 강경읍 홍교리 100-1) 일대 858㎡(259.6평)를 성역화하기로 하고, 강경본당과 관광자원화를 위한 구체적 개발 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시는 일단 올해 말까지 연구용역을 한 뒤 유숙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규명하는 한편 유숙지와 그 주변 부지 6필지를 사들이기로 했으며, 내년 말까지는 유숙지 건물 복원과 주변 정비사업을 시행키로 했다.
현재 김대건 신부가 강경 구순오 교우의 집에서 머물렀다는 기록은 관변기록인 「일성록」 1846년 윤 5월 3일(양력 6월 6일) 좌포도청에서 보고한 죄인 김대건의 공초 기록에 상세히 남아 있다.
강경본당(주임 윤종학 신부) 측은 이 유숙지에서 김 신부 일행이 미사를 봉헌하셨다는 기록은 없으나 당시 교우였던 구순오의 집에서 미사를 봉헌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비록 집이 남지 않아도 장소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 만큼 논산시와 협력해 성지로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평화신문, 2014년 3월 16일, 오세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