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6일 경북 구미의 금오산을 다녀왔습니다.
금오산(金烏山)의 높이는 976.5m로, 기암 괴석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경사가 급하고 험난한 편이나, 산정부는 비교적 평탄한데 이곳에 금오산성(金烏山城)이 있다.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는데, 중국의 오악 가운데 하나인 숭산(崇山)에 비해 손색이 없다 하여 남숭산(南崇山)이라고도 하였다.
금오산이라는 명칭은 이곳을 지나던 아도(阿道)가 저녁놀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 짓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금오산의 능선을 유심히 보면 ‘왕(王)’자처럼 생긴 것 같고, 가슴에 손을 얹고 누워 있는 사람 모양인데, 조선 초기에 무학(無學)도 이 산을 보고 왕기가 서려 있다고 하였다.
이곳은 구미시의 성장과 함께 관광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좁고 긴 계곡 입구에는 금오산 저수지가 있으며 구미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었다. 계곡 안에는 고려 말의 충신이요, 성리학자인 길재(吉再)의 충절과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768년(영조 44)에 세운 채미정(採薇亭)이 있다. 일명 '금오서원(金烏書院)'이라고도 한다.
케이블카가 닿는 중턱에는 대혜폭포[大惠瀑布, 이칭: 명금폭포(鳴金瀑布)]가 있다. 암벽에 ‘명금폭(鳴金瀑)’이라고 새겨진 27m 높이의 작은 폭포이나,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고 하여 명금폭포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그 앞에는 의상(義湘)이 수도하였다는 도선굴(道詵窟)이 있고 해운사(海雲寺)와 약사암(藥師庵)의 절도 있다.
정상의 암벽에는 1968년 보물로 지정된 4m 높이의 구미 금오산 마애여래입상이 새겨져 있는데, 신라 시대의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 말기에 쌓았다는 석성인 금오산성은 북쪽만 트인 천험의 요새로 ‘성안마을’이 있다. 이 산은 1970년 6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주차장을 출발하여 관리사무소, 대혜폭포를 거쳐 정상인 현월봉을 올랐다가 약사암, 법성사쪽으로 하산할 계획이었으나 법성사쪽 등산로가 입산금지되어 같은코스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정상까지 힘든 회원은 대혜폭포까지만 가거나 금오산저수지둘레길을 돌았습니다.
▲주차장에서 내립니다.
▲저 위에 보이는 봉우리(뒷쪽)이 정상입니다.
▲정상 등정이 힘든 팀은 금오산올레길(둘레길)을 돌아보기로 합니다.
▲조금 가니 성리학 역사관이 있습니다. 구미(선산)에 성리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합니다.
성리학에 대해 간단히 알아봅시다.
[성리학 요약] 남송의 주희에 의해 성리학의 집대성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성리학을 주자학이라고도 한다. 성리학은 자연과 사회의 발생·운동을 이와 기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에 의해 우주 만물이 생성되며 기는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기에 의해 구성되는 우주 만물은 차별성·등급성을 가지며, 결국 자연·인간·사회가 모두 위계질서를 갖는 것이다. 이의 개념은 인간과 사물의 원리적 보편성을 설명하는 범주이다. 성리학에서 강조하는 이의 내용은 삼강오상을 비롯한 유교적 윤리도덕이었으며, 관료제적 통치질서, 신분계급적 사회질서, 가부장제적·종법제적 가족질서를 포함하는 명분론적 질서였다. 성리학은 명분론적 질서를 합리화하는 사상체계였으며, 명분론적 질서에 맞는 생활을 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도덕적 의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성리학] 성리학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고려 말기 원나라를 통해서였다.
이미 고려 중기부터 유교를 심성 수양의 도리로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무인란 이후 유불일치의 사상 경향이 대두하면서 유학자들 역시 심성 수양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학문사상계의 이러한 동향은 이 시기의 정치적·사회적 변동에 대응하여 새로운 방향에서 주체를 확립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후 원나라를 통해 도입된 성리학은 이러한 노력에 부응하는 것으로서 관심을 끌게 되었으며, 새로운 개혁이념으로, 국가 교학으로 받아들여졌다. <다움백과>
▲입구의 안내판을 보고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영남에서 한양을 가려면 꼭 거쳐가야되는 곳이 이곳 선산입니다.
▲구미성리학역사관을 나와 다시 둘레길을 갑니다.
▲백운공원은 앞에서만 보고 그냥 지나갑니다.
▲제방이 보이는 곳 까지 왔습니다. 원래 호숫가에 있는 데크둘레길로 오면 바로 제방으로 이어지는데 공사중이어서 전에 다니던 길인지 산쪽으로 조금 올라간곳에 있는 길로 돌아왔습니다.
▲화물연대 파업 영향이 여기도 있네요.
▲호숫가 데크길
▲저수지 건너편에서 보는 성리학 역사관
▲저수지를 한바퀴 돌아 다시 주차장에 왔습니다.
▲아직 12시도 안됐는데 버스는 3시까지 여기 있는다고해서 대혜폭포까지만 다녀오기로하고 올라갑니다.
▲데크계단이 한참 계속됩니다. 그래도 경사가 완만하고 고무를 붙여서 걷기가 좀 수월합니다.
▲빌려온사진입니다. 사진에는 글씨가 잘 안보이는데 실제 장소에는 접근이 금지돼 있다네요.
▲대혜문
▲급수대인데 겨울철이어서인지 물을 잠가놓았네요.
▲해운사를 잠깐 보고 갑니다.
▲나무 뒤로 폭포가 보입니다.
▲물이 없어서 참 아쉽습니다.
▲정상까지는 2km 남짓인데 2시간 가까이 걸릴정도로 가파르고 힘들다네요.
▲대혜폭포를 보고 앞쪽 바위 절벽에 있는 도선굴로 갑니다.
▲절벽을 깎아 만든 가파른 길입니다.
▲다 올라왔습니다.
▲도선굴에서 내려다보는 구미시내 전경
▲굴 내부. 벽위에 무슨 글이 써있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해설을 찾아보았습니다.
▲다시 내려갑니다.
▲다 내려왔습니다. 여기서 늦은 점심을 먹고 정상까지 갔던 일행을 만나 같이 내려갑니다. 법성사쪽이 통행금지가 되어서 이리로 내려왔다고 하네요.
▲다 내려왔습니다. 오늘 산행을 마칩니다.
아래 사진은 정상 까지 다녀온 박용규님이 찍은 사진입니다.
◆네비자료 첨부합니다.
▲저수지 둘레길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