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생극 권근 정승삼대 묘(인품이 형편 없어도 명당을 차지하는가?)
1 권근 삼대(三代)
* 안동권씨 양촌 권근(權近, 1352~1409)은 고려 공민왕때 18세에 과거에 급제한 천재(天才)이고 정몽주의 제자이다. 고려때 춘추검열관을 지냈고 이성계의 이조창건에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그 후 이방원에 포섭되어 사돈관계를 맺고 왕자란때 공을 세우고 대제학에 올랐다. 문장이 뛰어나고 주옹설 입학도설등을 저술하였다. 임란때 장군인 권율의 6대 선조이다.
* 권제(權踶 1387~1445)는 권근의 둘째로 박팽년등과 용비어천가를 지었다. 기생첩에 반하여 본처를 버리고 자식들을 폭행하고 딸을 발로 차서 죽였다. 말년에 5년간 중병을 앓다가 졸(卒)하여 이곳에 묻혔다.
* 권람(權擥 1416~1465)은 권제의 둘째로 가출하여 35세까지 한명희와 어울려 전국을 유람하였다. 계유정난을 성공시켜 세조때 좌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재물에 욕심을 내어 여러번 탄핵 당하였다.
* 권근에 대하여 절개를 지키지 않았다는 비난이 있으나 무학대사처럼 왕조를 바꾸어야 된다는 신념을 가질 수 있으니 꼭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권제는 과히 흉악범이라 생각할 수 있고 권람에 대하여는 명분없이 일신 영달을 도모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적덕선행 없이 명당을 차지할 수 있는가? 일원에 위의 세 사람외에도 몇기의 일족 묘가 있다. 함께 보기로 한다.
2. 묘소(충북 생극 방축리 산7)
* 권근 묘는 경기 광주에 초장하였다가 지관의 말에 따라 30년이 지난 1440년(세종 22년)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광중을 파자 도인이 찾아와서 물이 날 것이라 하였고 과연 물이 나므로 도인에게 비보책을 물어 10리 떨어진 산정을 파고 단단히 다져서 산정(山頂)과 혈처 사이의 지하 물길을 막으니 광중의 물이 잦아들었다는 믿거나 말거나하는 설화가 있다. 이런 설화 때문에 물명당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 ①건해룡으로 입수하는 회룡고조형이고 밑에 있는 방축저수지는 진응수이다
조선8대명당이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급지는 아니고 중급지라는 견해도 있다.
②입수래룡이 생기가 없는 무맥지이다. 오히려 재사 왼쪽 옆등에 있는 권걸(증손자)묘가 차혈이고 그의 부인 의령남씨 묘가 주혈이다.
3 답사
* 중국---태조 속리산-중조 보현- 소조 수레- 주산 수리
* 소국 ---
* 세개의 나뭇가지에 과일이 달려 있는 형국이다. 첫째 가지에는 권근 삼대 묘가 있는데 권근 묘는 생기가 있으나 안산이 별로이다. 권제 묘는 당판이 좁아 청룡쪽에 바람이 침범할 것 같다. 권람 묘는 앞바람에 생기가 흩어졌다.
둘째 가지에는 증손 권걸부부 묘가 쌍분으로 있는데 중간을 띄우지 않고 연결하여 이상했다. 부인 남씨묘는 생기가 없고 권걸 묘에 작은 생기가 있다.
셋째 가지에는 권념의 묘가 있는데 넓은 당판에 당당하게 앉았다. 전순도 후덕하고 백호가 야물고 안산이 몇겹을 이루고 좋다. 권념의 내력이나 후손들의 상황에 대하여 아는 바 없지만 풍수적으로는 중상(中上)에 가까운 대혈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권근 묘는 중등초급, 권제와 권람 묘는 평범하다. 사필귀정이다. 권걸 묘는 동네 길지급이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권념 묘가 수레산의 말락으로 중등상급 대혈이다. (2023.11)
* 문종때 사관의 권제에 대한 평가---
* 삼대정승 묘---
* 권걸 묘---정재삼 유투브에서 인용(감사합니다)
* 권념 묘---대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