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 왕이 예후에 의해 죽임당하는 것을 본 남왕국 유다의 왕 아하시야는 도망가지만 결국 예후에게 쫓기어 이블르암(Ibleam)에서 가까운 구르(Gur) 비탈에서 부상을 입은 후, 므깃도(Megiddo)까지 도망갔지만 결국 므깃도에서 죽게 되었고, 아하시야는 예루살렘으로 운반되어 유다의 왕들의 묘실에 장사되었습니다(27절, 28절). 27절의 “정원(庭園)의 정자(亭子) 길”은 정확하게 어디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정원의 정자라는 단어의 히브리어 원어에서는 베트 학간(בֵּית הִגָּן, Beth-Haggan)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영어로 “the Garden-house”라는 의미입니다. 아하시야는 결국 왕위(王位)에 오른 지 1년 만에 이렇게 죽음을 맞이했는데,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고 악을 행하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과 도모(圖謀)하다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 것입니다. 아하시야는 남왕국 유다의 여호람 왕의 아들이지만, 여호람 왕이 아합의 딸인 아달랴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로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들과는 친족(親族)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아마 유다의 아하시야 왕은 어머니인 아달랴의 영향을 받아 우상 숭배를 하였고,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않고 거역하였는데, 결국 북왕국 이스라엘 왕인 요람(여호람)이 예후에게 죽임을 당할 때 아하시야도 죽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요람(여호람) 왕과 유다의 아하시야 왕까지 죽인 예후는 곧바로 이스르엘 성으로 와서 요람의 어머니인 이세벨을 제거합니다(30절~37절). 아마 이세벨은 예후가 반역을 일으켜 요람 왕을 죽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후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세벨은 화장을 하는데, 이세벨은 결국 자신이 죽게 될 것을 감지(感知)하고 왕후(王后)로서의 품격을 갖추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30절). 그렇게 예후가 오기를 기다리던 이세벨은 예후가 들어오는 모습을 창으로 내다보고는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31절)고 소리 지릅니다. 예후를 시므리(Zimri)라고 부른 것은 예후를 비아냥거리는 말이었습니다. 시므리는 열왕기상 16:8~20에 나오는데 바아사(Baasha) 왕조를 멸절시키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된 시므리는 칠일 정도만 왕위에 있었을 뿐이었고, 오므리(Omri)에 의해 시므리는 죽게 됩니다. 이세벨은 반란을 일으킨 예후도 시므리와 같이 금세 망할 운명이 될 것이라 비유한 것입니다.
예후는 이세벨이 머물고 있는 창을 향해 내 편이 될 사람이 있다면, 그곳에서 이세벨을 창 밖으로 내던지라고 외쳤고, 이세벨과 함께 있던 내시들이 이세벨을 창 밖으로 내어던져서 이세벨은 처참하게 죽게 되었습니다(32절, 33절). 이세벨의 시체는 두골(頭骨)과 발과 손 외에는 찾을 수 없었다고 기록합니다(35절). 들짐승들에 의해 다 먹히고 두골과 손과 발만 남았다는 말입니다(36절). 그리고 이세벨은 무덤조차 없는 처참한 꼴이 되었다는 것을 기록합니다(37절). 이렇게 하여 오므리 왕조와 아합과 이세벨의 악독함은 종지부(終止符)를 찍게 되었고, 예후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악행을 저지르고 돌이키지 않는 자에게는 참혹한 결말을 맞이하게 하십니다. 예후가 요람 왕을 죽이고, 이세벨을 죽게 하는 과정은 매우 냉혹하고 참혹하지만, 하나님은 예후를 통해서 오므리 왕조를 심판하시고 처벌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께 맞서는 자들의 최후는 비참할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늘 겸손하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돌보심과 복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