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산 가는 길의 소나무
나비를 좇아
봄날의 깊은 산을
헤매었어라
(蝶追うて春山深く迷いけり)
―― 스기타 히사조(杉田久女, 1890~1946)
▶ 산행일시 : 2018년 5월 12일(토), 비, 안개
▶ 산행인원 : 21명(자연, 김나영, 영희언니, 모닥불, 스틸영, 일진, 악수, 대간거사, 한계령,
상고대, 산정무한, 인치성, 도솔, 두루, 향상, 신가이버, 해마, 해피, 오모육모, 무불, 메아리)
▶ 산행거리 : GPS 도상 14.4km(GPS마다 약간씩 차이가 난다)
▶ 산행시간 : 8시간 12분
▶ 교 통 편 : 두메 님 대차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3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46 - 서울양양고속도로 홍천휴게소
08 : 50 ~ 09 : 00 - 하추리(下楸里) 싸리메기, 산행준비, 산행시작
09 : 25 - 능선 진입
09 : 43 - 677m봉, 첫 휴식
10 : 10 - 719.3m봉
10 : 38 - 781m봉
10 : 48 - 임도, 안부
11 : 18 ~ 11 : 58 - △876.7m봉(영진지도에는 △873.1m봉), 점심
12 : 20 - 안부, 군사도로
13 : 25 - 한석산(寒石山, △1,119.1m)
14 : 08 - 1005.6m봉
14 : 41 - 908.2m봉
15 : 25 - △984.8m봉
16 : 12 - 719m봉
17 : 12 - 용부터(龍富垈) 아래 도로, 산행종료
17 : 40 ~ 19 : 45 - 원통, 목욕, 저녁
21 : 53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
진작 오늘 하루 종일 비가 내릴 거라고 예보한 대로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기온도 뚝 떨어졌다. 이런데 산을 간다는 건 그것도 원행으로는 조금 청승맞은 점이 없지 않
다. 동서울터미널 대합실에 여느 때 주말과는 달리 등산객들이 뜸한 이유다. 어쩌면 우리는
오지산행의 우천불구의 유구한 전통을 계승하고 유지하며 발전시키고자 하는 무언실행의 발
로인가 한다. 20명 만차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촉촉이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안개 속 산길을 걷는다? 정취는 잠깐이다. 그 대신 고역이 길
다. 준봉을 오르려면 이내 땀에 흠뻑 젖게 되고 비옷은 거추장스럽고 스패츠 방수는 잠시뿐
양말까지 젖어 발은 신발 속에서 벌컥대고 앙가슴과 등줄기에 서늘한 빗물이 흐르고 젖은 속
옷에 허벅지는 쓸려 걷기조차 불편하고 전도는 안개로 목측할 수 없어 능선 분기봉에서는 길
을 잘못 들기 일쑤이고 그러다보면 산행시간은 늘어지고 아울러 허기지고…….
주말이면 어지간히 막히곤 하던 서울양양고속도로가 뻥 뚫렸다. 홍천휴게소에 들러 라떼 커
피로 졸음을 깨고 다시 달린다. 인제IC에서 빠져나와 현리를 지나고 하늘이 약간 열려 협곡
이나 다를 바 없는 소양강변 31번 국도를 간다. 피아시유원지를 지나고 Y자 갈림길 검우석
하추교에서 왼쪽의 하추리계곡으로 들어가 산자락 굽이굽이 돌고 싸리메기 마을이다.
우장 단단히 갖춘다. 스패츠 매고 배낭 커버 씌우고 비옷 여민다. 조만간 지리산 태극(할) 전
사 오모육모 님과 해피 님의 척후로 산기슭 너른 빈 밭을 오르고 울창한 잡목숲을 뚫는다. 물
구덩이로 변한 인적 없는 풀숲을 헤치는 건 유영이다. 바지자락이 물에 빠진 듯 젖어 다리에
휘감긴다. 오르막길 거친 입김 내뿜어 안개에 보탠다.
한 피치 24분 올라 능선이다. 등로 주변에 즐비한 아름드리 소나무숲이 볼만하다. 사열하자
면 짐짓 근엄해야 할 것이라 가쁜 숨 숨기고 고개 쳐들고 가슴 펴고 행보한다. 앞사람이 낸
발자국계단으로 오를 만큼 가파른 677m봉은 앞뒤로 비슷한 표고의 쌍봉이다. 쌍장의 1장인
대자 우산을 깊은 절벽 아래로 떨어뜨렸다가 주우러 가느라고 짜릿한 손맛을 본다.
677m봉 뒤쪽 봉우리에서 첫 휴식한다. 일행이 다 모이자면 시간이 꽤 걸린다. 입산주 탁주
가 여러 잔 오가고 한기를 느껴 일어난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은 719.3m봉을 넘도록 이어진
다. 781m봉 넘어 왼쪽으로 농금덕 마을이 가까운 넙데데한 능선을 지난다. 농금덕(弄琴垈)
마을은 마을 지형이 거문고를 타는 형국이라고 한다. 내가 사는 곳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기 마련이다.
야트막한 안부는 임도가 지난다. 잣나무숲 펑퍼짐한 사면이라 흩어져서 오른다. 줄딸기 질긴
덩굴이 온 사면을 덮었다. 가시덤불이다. 줄딸기 꽃들이 줄줄이 방싯방싯 웃지만 지나가기가
상당히 사납다. 평소의 발걸음으로 걷다가는 줄기에 걸려 넘어지기 쉬우니 걸음걸음 무릎을
치켜 올려야 한다. 더구나 오래전에 간벌한 나뭇가지도 숨어 있다.
2. 한석산 들머리인 싸리메기 빈 밭
3. 능선 등로, 소나무가 볼만하다
4. 능선 등로, 소나무가 볼만하다
5. 빗속 안개 속 신록은 눈부시고
6. 한석산 가는 길
△876.7m봉. 정상 너른 풀밭에 둘러앉아 이른 점심밥 먹는다. 오늘은 뜨뜻한 메뉴가 다양하
다. 상고대 님의 염소탕, 산정무한 님의 감자라면, 신가이버 님의 콩나물라면. 내 밥은 절반
밖에 먹지 못한다. 이런 만복의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두루 님과 해피 님, 무불 님이 후줄근
하여 올라온다. 그 3명은 안개 속에 길을 잃고 엉뚱한 데를 헤매다 온 것이다. 이들은 앞으로
도 길을 잃어 그 분야 대삼관(大三冠)을 달성한다.
△876.7m봉에서 일진 님은 북진하여 장승고개 쪽으로 탈출한다. 일진 님은 너무 오랜만에
나온 데다 하필이면 궂은 날이라 더더욱 힘들었다. 아름다운 동행은 스틸영 님이다. 우리는
서진한다. 고도를 높일수록 안개는 자욱하고 비 또한 점점 더 심하게 내린다. 제법 우뚝한
870m급 봉우리를 2개 넘고 길게 뚝 떨어져 내린 안부는 군사도로가 지나는 삼거리다.
이 군사도로는 능선마루와 바로 이웃하며 한석산 정상까지 간다. 군사도로 따라 간다. 산모
퉁이 공제선은 안개에 가렸다. 도로 왼쪽 산등성이는 벌목하여 소나무 모수만 몇 그루 남겼
다. 다른 경치 없으니 이나마 그림으로 보려 한다. 한석산 중턱에서 잠시 휴식하여 홍탁타임
을 갖는다. 산을 가는 건 홍탁 먹을 기대인지, 그 홍탁 먹은 힘인지 모르겠다.
여기서 산정무한 님과 자연 님, 도솔 님은 온 길을 뒤돌아 새동 마을 쪽으로 탈출한다. 종주
하기가 어렵다면 여기 말고는 탈출할 데가 마땅하지 않다. 역시 오랜만에 나온 도솔 님으로
서는 계속 산행이 버거웠을 것. 그러나 이들의 탈출은 종주 못지않은 큰 한몫을 해냈다. 새동
마을 가는 길에 보기 드물게 실한 두릅을 무더기로 따와서 산행 후 원통 저녁식탁이 한층 맛
났다.
몇몇은 군사도로를 따라 걷기가 따분하여 능선을 오르기도 하지만 곧 안부에서 군사도로와
만난다. 산허리 돌고 돌아 너른 공터인 한석산 정상이다. 삼각점은 2등 삼각점이다. 설악 25,
1997 재설. ‘한석산 점령 50주년 기념비’를 둘러싸고 단체 기념사진 찍는다. 1951.5.10.의
전투였다. 아군 제9보병사단 30연대가 이 산을 점령하고 있던 북한군 제12사단을 무찔렀다.
적 사살 895명, 포로 42명, 아군은 전사 72명, 부상 200명이었다. 1,000미터가 넘는 산악능
선에서 아군이 대승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한다.
북서진한다. 이제부터는 인적이 뜸한 우리의 길이다. 봉봉 벙커와 토치카를 넘고, 교통호를
지나야 한다. 울창한 잡목숲을 헤친다. 온 비 오는 비 다 맞는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서 작지
않은 즐거움을 맛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이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스패츠를 매지 않은 악
우에게 양말이 젖지 않았는지 뻔히 묻는 건 내가 스패츠 맨 보람을 새삼 느끼기 위해서다.
오지산행에서 앞서가는 대열에 끼는 건 불안하다. 빗속에서 안개 속에서 지도를 수시로 꺼내
어 등로를 확인하며 가기란 쉽지 않다. 해마 님이 멀리 선두로 가는 대간거사 님 대열에 진행
방향이 틀리다고 외친다. 그럴 리가 없다고 이 길이 맞다며 내려오라고 한다. 해마 님이 메아
리 대장님 눈을 빌려 그 길이 아니라고 재차 외친다. 그제서야 뒤돌아 오른다. 북서진해야 하
는데 남서진하고 있었다. 오른쪽 사면을 대 트래버스 하여 북서진 능선을 잡는다.
7. 한석산 가는 도중 휴식, 홍탁타임
8. 한석산 가는 길의 왼쪽 사면은 벌목하고 모수만 드문드문 남겨두었다
9. 한석산 가는 길의 왼쪽 사면은 벌목하고 모수만 드문드문 남겨두었다
10. 한석산 가는 길의 왼쪽 사면은 벌목하고 모수만 드문드문 남겨두었다
11. 군사도로가 따분하여 능선을 올라도 보지만 이내 도로로 떨어진다
잘못 가다가 뒤돌아 오르기를 반복한다. 고비 평원인 1,005.6m봉에서도 잠깐 삐끗한다.
이럴 때면 의외의 수확이 생긴다. 곰취를 본다. 몇 줌이지만 산행 후 올 들어 처음인 신삼합
(곰취, 삼겹살, 생더덕주)을 맛볼 것이라 입맛이 미리 동한다. 길게 내렸다가 약간 오르면
908.2m봉이다. 휴식한다. 그러나 입은 쉬지 않는다. 메아리 대장님이 큰 꼬막(나는 피조개
라고 했으나 포장지에 꼬막이라고 적혀 있다)을 방금 뜯은 곰취에 싸서 나누어주는데 덕산
명주인 탁주와 아주 잘 어울리는 색다른 별미다.
봉봉 오르고 내린다. 굴곡이 심하다. △984.8m봉은 암봉이다. 암벽이 석이버섯이 마치 널어
놓은 것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귀물이라 하기에 일전에 뜯어서 집에 가지고 갔다가 아내
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석이버섯에 붙은 모래를 제거하려면 상당히 애먹어서다.
그 암벽 왼쪽을 어렵사리 트래버스 하여 암봉을 넘었는데 길이 끊긴다. 뒤돈다. 암봉 오른쪽
사면으로 가파른 내리막이 있다.
암릉 암봉이 자주 출몰한다. 비에 젖어 미끄러운 암릉이라 감히 직등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사면으로 깊숙이 떨어졌다가 오른다. 851.7m봉을 넘고 길고 가파르게 내린다. 잠시 멈칫한
719m봉은 너른 공터 옆에 벙커가 있다. 신가이버 님의 눈에는 이 너른 공터가 골프장 크기
로 보였다. 골프장이네 하자 해마 님이 골프장에는 벙커가 있기 마련이라며 맞장구친다.
719m봉은 Y자 능선이 분기한다. 하산하기 가깝고 완만한 능선을 골라 오른쪽을 잡는다. 그
런데도 능선마루는 암릉과 잡목이 사나워 잡목 성긴 왼쪽 사면을 헤쳐 나아간다. 오늘 산행
의 하이라이트가 다가오는 줄을 모르고 간다. 발아래 실뱀 같은 도로가 내려다보인다. 용부
터 마을을 돌아오는 도로다. 그 아득한 깊이를 가늠하니 당장 수직의 내리막이다.
암봉을 돌아 넘으려고 사면을 내렸으나 암릉 암벽을 바라보며 협곡으로 들어서고 말았다. 수
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외길인 2m 밖에 되지 않는 수직 암벽이 험로의 예고다. 엎드려서 잡
목 밑동을 붙잡고 그에 매달려 내린다. 그 다음은 사태 난 듯 잡석과 쓸려 쏟아지고, 잡목 속
너덜을 지난다. 등산화 비브람창이 전혀 맥을 못 추는 너덜이다. 돌 틈에 낀 발을 미처 꺼내
지 못한 채 나아가려다 엎어진다. 이끼 낀 바위나 나무 뿌리에서는 여지없이 미끄러진다.
얼굴이며 옷차림이며 온통 흙투성이다. 도대체 넘어지지 않고 내린 사람이 있을까? 719m봉
에서 무려 1시간이나 걸리는 일대 험로인 1.2km 내리막이다. 인북천 지천을 징검다리 만들
어 건너고 옹벽을 부축 받아 올라 도로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데 한참 걸린다.
고개 뒤로 젖혀 올려다보는 내려온 급사면이 설마 우리가 온 길 같지 않다.
12. 한석산 정상에서
13. 고비평원
14. 등로 주변
15. 일부러 사면을 누비고
16. 길 잘못 들어 사면을 누비기도 하고
첫댓글 11번 사진, 앞에서부터 모닥불, 해마, 무불 님 입니다.
여하튼 능선마루금을 고수하려는 의기가 돋보입니다.^^
비님도 오시는데~ 만차라니~감축드려요
한석산을 몇번인지는
봄비와 함께한 산행 넘 좋았습니다
우중산행 - 묘두들 고생 많으셨을터인데 이 글을 읽고 있는 전 왜 이리 절로 웃음이 나는지 ...
제가 진정한 산꾼이 아닌게 다행으로 여겨지네요.
하지만, 그래도 - '오지'의 산님들, 여러분들을 존경(?)합니다 ~!!
비가 오는 것도 나름 좋아요. 만물이 제 색깔대로 살아나고 안개때문에 독도 재미도 배가 되는데다 진정한 목욕의 즐거움 까정.
이끼 덮힌 가파른 너덜 골길 하산은
이날의 백미입니다 !!
아주 맛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