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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의 외출
오종락
거울은 삶의 동반자다. 항상 주인 가까이에 머물고 있으며 주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서비스할 자세를 갖추고 있다. 용모와 옷맵시를 점검해 주는 소중한 도우미다.
특히 손거울은 자신을 사랑하는 주인과 함께 늘 외출을 한다. 핸드백 속에 가만히 쉬다가 주인이 부르면 제 빨리 나온다. 손에 잡힌 거울은 주인의 용모를 요모조모 살펴보며 부족한 부분을 바로잡아 교정해 준다. 잠시 후 주인은 만족해하며 미소를 짓는다. 손거울도 자신의 역할에 만족한 듯, 주인이 보낸 표정과 똑같은 미소를 지어 보내며 화답한다.
거울은 젊은 여성 주인을 따라 지하철을 타기도 한다. 출근 시간에 바쁜 주인을 도와 지하철 안에서 화장 도우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옆 좌석 승객들의 눈총 때문에 신속히 임무를 완수한다. 젊은 주인은 거울을 사용한 후 매정하게 가방에 쑤셔 넣어 버린다. 그래도 거울은 불평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나이 든 거울은 주인과 작별하고 제2의 인생을 사는 경우도 간혹 있다. 동네 뒷산으로 일자리를 찾아 나서서 그곳에서 등산객들의 용모를 보살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 동네 뒤편에는 내가 가끔 산책을 나가는 나지막한 학산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 정상에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은 거울이 상수리나무 허리 부분에 걸려 있다. 헌 화장대에서 떼어낸 직사각형의 엔틱가구 거울이다. 이곳을 찾는 등산객들의 몸 전체를 비춰주며 걸음걸이와 건강상태를 확인시켜 주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이 거울은 새벽부터 오후 해 질 녘까지 쉼 없이 손님들이 찾아와 심심치가 않다. 그러나 밤 시간대는 찾아오는 손님이 아무도 없다. 혼자 밤을 지새워야 하는 처지라 무척 외롭고 지루하다. 여기 오기 전까지는 따듯한 거실에서 안방마님 대접을 받다가 노후에 이런 처지가 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고 하소연이다. 산책 나온 등산객들은 힐끗힐끗 쳐다만 보고 지나가며 이용만 할 뿐이다.
그러다 등산객들 중에는 이런 거울의 속 터지는 심정을 알아차린 마음씨 착한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거울과 친구라도 하라며 집에 걸려있던 헌 둥근 벽시계 하나를 맞은편에 서 있는 소나무 가지에다 걸어 주었다. 그 이후 거울은 옛날 집에서처럼 시간을 늘 알게 되었다. 밤중에 재깍재깍 하며 돌아가는 시계 소리에 지루함도 잊어버렸다. 밤하늘에 별들을 바라보며 시계의 노랫소리를 들으니 새로운 세상을 만난 기분이었다. 이른 새벽 먼동이 트는 시간도 알게 되었고, 새벽이 밝아오면 새로운 손님이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 속에 한밤의 추위도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다. “나도 아직까지는 쓸모가 있어!, 세상사 제2막을 사는 존재들은 다 이럴 테지”라고 자위를 하면서......
손거울의 일생은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대우가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고급 승용차 뒷좌석에서 여왕 대접을 받으며 우아하게 일을 하기도 하고,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상시 이용하며 승객들의 틈바구니에 짓눌리기도 한다.
손거울의 처지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에 회자되고 있는 금수저론이 거울의 세상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느낀다. 우선 손거울이 들어가 사는 집만 봐도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몇백 만원 짜리 고급 명품 가방 집에 들어가 사는 거울이 있는가 하면, 어떤 거울은 못 사는 주인을 만나 단돈 1-2만 원짜리 가방에 들어가 주인과 함께 한평생 고생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또 할부를 좋아하는 주인을 만나면 월세집에 살기도 하고, 허영심 많은 주인을 만나면 무늬만 명품인 짝퉁 집에 들어가 살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부잣집 주인을 만난 손거울은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는 반면, 가난한 주인을 만난 손거울은 여행은커녕 고달프게 일만 하다가 먼지만 뒤집어쓰는 처지가 되기도 한다.
때론 거울도 시대변화에 역행하지 않고 변신하기도 한다. 첨단기기 스마트폰 한 구석에 ‘손거울 어플’이란 이름으로 둥지를 틀어 살기도 한다. 이 둥지에는 젊은 여성들이 화장품 냄새를 솔솔 풍기며 손끝으로 눌러 수시로 방문한다. 나는 몹시 고달펴도 그들을 반긴다. 그 까닭은 바로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거울도 때론 자신이 이 세상에 온 사명을 주인이 통 알아주지 않을 때 약간의 배신감도 느낀다. 지각없는 주인이 끝까지 자신을 단순한 미용 보조도구로만 사용하는 데 대한 불만이다.
거울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며 아주 정직하다. 주인의 표정을 액면 그대로 비춰준다. 그런데 주인은 이유 없이 불평하며 자신을 타박하거나 던져버릴 때도 있다. 어떤 날은 주인이 이러면서 “오늘은 내 얼굴이 영 안 좋아!, 옷이 촌스럽고 통 어울리지 않아!” 할 때 거울은 무슨 죄인이나 된 양 몸 둘 바를 모른다. 이럴 때 거울은 주인에게 이렇게 한마디 하고 싶지만 참는다. “주인님! 거짓말 못하고 솔직한 것도 무슨 죄 인가요?”라고.
거울이 주인에게 바라는 것은 소박하고 단순하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자신을 너무 나무라지 말고 수고한다며 자주 미소를 지어 주기를 바란다.
또 나이를 먹은 오래된 거울은 철없는 주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를 자주 찾기보다는, 마음씨를 넓고 착하게 가지시면 자연히 주인님의 외관은 아름다워진다고요!라고 한다.
끝으로 거울은 주인이 자신의 속마음을 비춰보는 데도 가끔씩 자기를 활용해 달라고 부탁한다. 오늘도 거울은 아침 일찍부터 주인의 시중을 들며 주인의 손을 잡고 외출에 나선다. (2017.03.22.)
첫댓글 언제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거울. 인간에게 필수품이 된거 같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거울과의 대화가 자연스럽고 친구같은 느낌이 듭니다. 생각해보니 손거울은 여자들과 함께 있는것 같습니다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손거울의 기능과 역할을 소탈한 글솜씨로 엮어 내셨습니다. 좀은 익살스러운 표현이 재미를 더합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마치 거울이 사람인냥 서로 대화하는 형태의 글 잘 읽었습니다. 거울은 우리들의 주인이 될 수 있고, 동시에 종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거울은 우리 인간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입니다. 사람이 외출할때 거울도 같이 외출 한다는 기발한 발상이 돋보입니다.
거울은 언제나 우리들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착한 물건입니다.
나이를 먹은 오래된 거울은 철없는 주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를 자주 찾기보다는, 마음씨를 넓고 착하게 가지시면 자연히 주인님의 외관은 아름다워진다고요!라고 한다. 는 구절 정말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도정기드림
거울을 의인화해서 쓰신글 , 참 재미있었습니다. 각각 위치한 장소따라 대접받는 금수저 논란 현시대상을 말해 주는 듯 합니다. 엔틱가구거울의 변신, 오가는등산객에게 사랑을 받는 제2의 삶, 우리네 인생도 2모작의 삶이 더 값질수도 있겠지요. 재미있는 글 참 잘 읽었습니다.
거울을 보는 눈이 예리하고 거울과의 대화가 자연스럽습니다. 글 재주가 대단 하십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