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 2:6-7)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받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감사는 넘칠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은혜와 복도 넘치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신학자 메튜 헨리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국은 열두 진주 문이 있는데 그 첫째 문이 감사의 문이라.” 예수 믿고 감사하는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행복의 문이 열립니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시100:4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제사장들은 감사찬송을 부르며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럼, 왜 감사를 넘치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우리가 세상에 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만큼 좋은 아버지가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최고의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사람이 부모를 잘 만나는 것도 복입니다. 부모가 모든 것을 다 예비해 놓았다면 그 사람은 세상 말로 금수저입니다. 물질만이 아닙니다. 경건한 신앙의 부모를 만난다는 것은 1.000대에 이르러 복을 받을 복된 것입니다. 그래서 출20:6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부모가 그렇지 못한다 할지라도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에게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잘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한없는 복으로 내려주십니다. 약1:17에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했습니다. 안 보인다고 무시하지 말란 말씀입니다.
시34:9-10에도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알면 우리는 감사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믿고 감사하는 것 말고는 원하시지 않습니다. 감사하고 영광돌리며 살면 복을 줄텐데 사람들은 그것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탈무드에 "혓바닥에게 '감사합니다'는 말을 버릇 들이기 전엔 아무 말도 하지 말라" 했습니다. 독일의 위대한 문인 괴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시50:22-23에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했습니다. 이왕 하나님 섬기는 것 복 받게 섬기십시다. 즐거움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감사함을 넘치게 하시기 바랍니다. 또 왜 감사를 넘치게 해야 할까요?
2.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받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6-7). 물어봅시다. 세상에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 있습니까? 있다면 생명의 은인인 줄 알고 잘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롬5:6-8에 “우리가 아직 연약한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6-8절) 했습니다. 이런 주님을 위해 감사할 줄 모른다면 사람도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감사함으로 예수 안의 은혜와 복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롬10:10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는데 감사가 바로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감사만큼 좋은 믿음의 시인이 없습니다. 거기다 넘치게 감사한다면 은혜는 더욱 넘칠 수밖에 없습니다. 고후4:15에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왜 감사를 넘치게 해야 할까요?
3. 우리와 함께 하신 성령님 때문입니다.
요14:16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하셨는데 다른 보혜사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옛날 예수님을 만나려면 예수님의 몸은 하나이고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성령께서 우리 곁에 와 계시게 해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굉장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보이지는 않지만 믿고 의식하고 감사하고 찬송하고 대화하고 조심하며 그를 시인하는 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나타내십니다. 그래서 잠3:6에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셨습니다. 두려워 마시고 여쭈어보세요. 우리의 삶을 복되게 하는 귀한 지혜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어떤 사도에 대해 전해오는 일화입니다. 그 사도는 길을 다닐 때나 집에 있을 때나 무엇을 하더라도 언제나 단정한 몸과 마음가짐으로 조심스럽게 행동하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지나치다 싶어 “답답하지도 않으십니까? 그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 사도는 웃음을 띤 얼굴로 “나는 성령님을 모신 몸일세. 내 몸은 곧 성전이란 말일세. 그러니 어떻게 조심하지 않을 수 있으며 깨끗하게 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했다는 이여기입니다.
캔달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감사를 좋아하신다. 그러나 감사는 훈련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많은 일들을 기억해 내려는 노력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면서 캔달 교수는 “먼저 하나님께 10분 동안 감사하기 전에는 단 한 가지도 간구하지 않도록 훈련하라.”고 말합니다. 노만 빈센트 필 목사도 “당신이 감사의 방법을 더 많이 연습하면 연습할수록 당신은 더 많은 감사를 하게 될 것이다.” 했습니다.
어떤 유대인 여인이 아들을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그는 유식하지도 않고, 육아법을 알고 기른 것도 아닌데 세상에 명망 있는 아들로 키웠습니다. 그 방법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모든 일에 무조건 감사하며 살도록 가르쳤습니다. 불평은 입에서 내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둘째는 원망 불평하는 사람과 놀지 않도록 했습니다. 불평이 감염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감사하며 사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도록 했습니다.
감사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유가리스티아’라고 하는데 명사로 쓰일 때는 ‘좋은 은혜, 행복한 은혜’라는 뜻이고, 동사로 쓰일 때는 ‘숙고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깊이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더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넘치게 감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왕이었으나 여호와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실 때 바지가 내려간 줄도 모르고 춤을 추며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때 누르고 흔들어 넘치게 주시는 것처럼 우리들도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다하여 즐겁고 넘치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함께 하심을 깊이 생각하고 날마다 넘치는 감사로 영광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