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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소피 브라슴 '숨쉬어'
열일곱 살이 쓴 열일곱 살들 이야기
친구 사라에 기대다 배신당한 샤를렌은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를 떠올리고…
《이방인》에서 영감을 얻다
명작 소설을 읽은 뒤 영혼이 주인공과 함께 멀리 떠나버린 듯 아득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으리라. 책을 읽고 ‘재미있다, 감동적이다’에서 끝나는가, 내가 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가.
지난주 소개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강한 영감을 얻은 프랑스 소녀 안 소피 브라슴은 소설쓰기에 들어갔다. 열일곱 살 브라슴이 쓴 《숨쉬어》는 프랑스 메이저 출판사에서 출판돼 돌풍을 일으켰고 17개 언어로 번역됐다.
프랑스 문단에 데뷔한 최연소 작가의 작품 《숨쉬어》는 ‘이미 거장의 면모를 갖췄다’는 평가와 함께 프랑스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페미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소르본에서 문학을 전공한 브라슴은 스물한 살에 두 번째 소설 《몬스터 카니발》을 발표해 역시 호평을 얻었다.
1984년생인 브라슴이 열일곱 살 때 딱 그 나이 친구들을 그린 만큼 《숨쉬어》는 10대의 정서를 날 것 그대로 풍긴다. 미묘한 마음이 방향 없이 흔들리다가 곤두박질치는 모습이 현기증 날 정도로 선명하다.
긴 인생에서 10대는 어떤 나이인가. 아직 배우고 충고를 들어야 할 때라는 어른들의 말을 무시하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지금이 인생의 정점’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아직 인생의 초입이고, 많은 것을 익혀야 한다’는 생각으로 주인공의 삶을 따라가 보길 권한다. 열여덟 살인 주인공 샤를렌 보에는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서 지내고 있다. ‘확실히 나는 잔인했다.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잔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잔인했다’고 읊조리면서.
풍족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아버지는 늘 집에 없고 어머니는 다른 아저씨를 좋아하며 남동생은 말이 없다. ‘우리 가족은 이방인처럼 살았다’고 말하는 샤를렌은 ‘얼음으로 만든 벽 같은 아이’가 돼간다. 샤를렌은 처음으로 마음을 준 친구 바네사가 열한 살 때 이사를 가자 1주일 내내 울면서 ‘사는 것이 괴롭다’고 생각한다.
샤를렌은 명문 쇼팽중에 입학하면서 어린 시절과 작별하고 최고가 될 것을 스스로 다짐한다. 쇼팽중에서도 가장 우수반에 들어간 샤를렌은 성적이 떨어질까 봐 두려움에 떨면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철저히 혼자가 된다. 사춘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살을 기도한 샤를렌은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삶은 부조리일 뿐이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어디서나 인기를 끄는 매력적인 소녀 사라와 친해진다.
매사에 자신없고 마음 붙일 데 없던 샤를렌은 사라에게 빠져들며 행복을 느끼지만 시도 때도 없이 마음 지옥에 빠지고 만다. 친구를 추종하는 샤를렌의 강박증과 친구를 이용하는 사라의 교묘한 태도가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좋은 책을 읽고 멋진 작가가 돼라
이 책은 열일곱 살 소녀가 또래의 이야기를 그린 만큼 생생하면서 설득력이 있다. 아울러 열일곱 살 소녀들의 섬세한 감성이 잔인한 결과를 낳는, 개연성 넘치는 과정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샤를렌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타이르면서도 결국 늪에 빠져버리고 마는 일련의 과정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가 샤를렌이라면 마음을 헤집는 복잡함을 이렇게 걷어낼 텐데, 그 해법을 생각해낸다면 책을 덮는 순간 성숙한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혼란한 샤를렌에게 다행스럽게도 소년 막심이 다가온다. 막심을 사랑하면서 사라의 늪에서 서서히 빠져나오는 샤를렌을 또다시 교묘하게 흔들어 놓는 사라. 결국 배신당하고 만 샤를렌이 중대한 결심을 할 때 《이방인》이 등장한다. 뫼르소가 방아쇠를 당기던 순간을 되새긴 샤를렌은 ‘뫼르소의 운명이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열일곱 살에 썼다고 믿기 힘들 만큼 치밀한 《숨쉬어》가 《이방인》에서 어떤 영감을 얻었는지 짚어보는 것도 독서 포인트이다. 감성이 빛나는 10대에 가능하면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생글생글’ 친구들이 좋은 책을 만나 작가도 되고 중요한 영감도 얻기 바라는 마음에서 열일곱 살이 쓴 《숨쉬어》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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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거부당한 소녀는 숨을 쉴 수 없다―안 소피 브라슴의『숨쉬어』을 발표할 당시 안 소피 브라슴은 열일곱 살이었다. 그녀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구상했다는 이 소설은 살인을 저지렀던 열여덟 살 소녀 샤를렌 보에의 고백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소설의 문장은 충격적인 사건에서 좀더 거리를 두고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파격적이고 강렬한 살인이라는 단어로 진입하는 대신, 샤를렌의 은밀한 기억을 파헤치는 것이다.
샤를렌은 현실과 유리된 아이다. 그녀는 이를 두고 ‘세계는 나를 주목하지 않았고, 나는 그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다(p.14)’고 표현한다. 이런 샤를렌의 불안정한 입지는 후에 그녀를 중심으로 형성된 퀴어적 관계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1) 이런 샤를렌을 최초로 현실로 끌어낸 것은 다섯 살 때 만난 바네사였다. 스스로를 ‘작은 괴물(p.25)’이라 지칭하던 샤를렌은 ‘파란 사탕을 닮(p.25)’은 바네사를 통해 변화한다.2) 그 당시 샤를렌과 바네사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 이해하는 데는 때로는 말 한마디, 눈짓 한번으로 충분했다. 때로는 침묵만으로도 족했다. (…) 우리가 만들어낸 이미지, 우리의 생각, 우리가 하는 놀이, 우리의 세계는 모두 똑같았다. 우리는 같은 행성 위에 살고 있었다. 멀고, 이상하고, 다른 행성들과 떨어져 있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3)
‘타인에 대한 몰이해(p.28)’를 바탕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던 샤를렌에게 있어서 바네사는 최초의 ‘주고받음’이었다. 하지만 열한 살 때 둘은 헤어지게 된다. 샤를렌은 바네사와의 이별이 ‘내 어린 시절의 완전한 종말을 의미(p.35)’한다고 느꼈다. 바네사가 떠난 뒤 중학교에 진학한 샤를렌은 호흡 곤란을 느낀다. 글을 통한 소통이 부정당했던 그때처럼. 그러나 초경을 겪고,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갖기 시작할 때쯤 샤를렌은 사라를 만난다. 사라를 본 순간 샤를렌은 자존감을 상실해버린다. 천식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던 그녀는 쉬지 않고 달리는 것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그리고 자살을 시도해 병실에 누워 있던 샤를렌에게 사라가 병문안을 온다. 샤를렌은 사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해받았다고 느꼈고, 안정감을 느(p.56)’낀다.
“내가 쇼팽 중학교에 처음 왔을 때부터, 너는 줄곧 내 호기심을 끌었지. 너는 혼자이고, 말이 없고, 무엇인가에 갇혀 있었지. 네가 불행하다는 걸 알아, 샤를렌. 분명히 그래. 너에겐 자아가 없어. 또 나는 네가 이렇게 병원에 있게 된 것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 그건 사고가 아니었어, 그렇지? 너는 천식발작이 일어나면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너무 힘들면 멈춰 서서 숨을 가다듬을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어.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지. 너는 계속해서 뛰었어.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나는 다 알고 있어. 네 마음 이해해.”4)
사라는 바네사가 주지 못했던 것을 샤를렌에게 준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삶을 발견하려는, 다시 태어나려는, ‘숨쉬어야 할’ 필요성이(p.58)’며, 새로운 샤를렌으로서의 정체성이었다. 샤를렌은 사라와 함께 지내면서 빠르게 안정감을 찾는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그녀들의 관계는 파국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라는 샤를렌을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샤를렌은 그저 ‘그 아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p.62)’다고 표현할 뿐이며, 작품 내내 그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샤를렌은 ‘대체 사라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다른 누구와도 닮지 않은 그 아이, 내 삶을 변화시킨 그 아이를(p.66)’이라 말하며 답답함을 직접 토로한다.
사라는 샤를렌에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그녀에게 존재의 정체성을 부여했다. 때문에 샤를렌은 사라가 ‘생을 사랑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 해가 갈수록 강해지는, 한없는 욕구를 느(p.73)’끼게 된다. 그러나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라는 샤를렌에게 싫증을 내는 한편 그녀를 지배하며 사디스틱한 쾌락을 맛보기 시작한다. 이해의 통로가 막히면서 샤를렌은 ‘단단한 덩어리가 다시 내 목구멍을 죄(p.82)’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오로지 그애를 가져야 했다. 내가 첫발짝을 뗄 수 없는 이상, 그애가 나에게 오게 해야 했다. 사라는 진실로 나에게 하나의 강박증이 되었다. 사라는 내 삶 속에서 필요불가결한 것, 내가 갈망하는 모든 지표, 과거, 내 모든 행복, 내 자유가 되어버렸다.5)
그러나 샤를렌은 사라 앞에서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한다. 그녀의 ‘말들은 꽉 막혀버린 (…) 목구멍 속에 고정된 채 남(p.87)’는다. 대신 샤를렌은 자기 안으로 틀어박혀, 자신이 애착을 가질 단 하나의 대상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나를 우리 가족이나 이 세상과 다르게 만드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애착을 가질 대상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사라였다.
그때부터 나는 사라에게 내 모든 것을 주기로 결심했다. 나는 사라와의 관계에 더욱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나는 내 가족보다도, 나 자신보다도, 삶 자체보다도 사라를 더 사랑했다. 나는 사랑이 왜 그렇게 멀리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랑은 선(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 증오에 이르기까지 사랑하는 것, 그것은 자신의 명예를 희생하는 것이고,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고, 불가피하게 악(惡)을 행하는 것이다. 내가 사라에게 준 사랑, 그것은 비뚤어지고 고통스럽고 격렬한 열정이었다. 광기가 나를 갉아먹었다. 내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 그것은 그 아이, 바로 사라였다.6)
사라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을 결심한 뒤, 샤를렌은 우연히 바네사를 만난다. 바네사와의 만남은 사라에게서 벗어날 기회였다. 샤를렌은 사라와 있었던 모든 일을 울며 털어놓고, 얘기를 전부 들은 바네사는 샤를렌을 끌어안는다.
“널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다. 방법만 안다면 그렇게 할 텐데 말이야.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하는 게 어떤 건지 나는 알아. 강박증이 어떤 건지도. 나도 너처럼 그걸 겪었으니까. 다만, 어느 곳에 있건 내가 항상 너와 함께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잊지 마. 그 무엇도 우릴 갈라놓을 수 없을 거야, 샤를렌, 그 무엇도. 나에게 그렇게 약속한 게 바로 너잖니. 잊지 마.”7)
이후 바네사는 교도소에 있는 샤를렌에게 편지를 보내온다.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는 “너의 파란 천사가(p.112)”라는 서명이 첨부되어 있다. 흥미로운 건 바네사는 샤를렌과 같이 젠더퀴어적 면모를 지니고 있는 인물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바네사는 샤를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푸른 꽃이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바네사 역시 샤를렌의 곁에 머물지 않는다. 이때 바네사를 대신하여 등장하는 인물이 막심이다.
샤를렌에게 영향을 끼치는 캐릭터 중에서 유일한 남성인 막심은 무성적 존재로 그려진다. 그는 ‘열여섯 살 소년치고는 너무 약해 보였(p.136)’이고 ‘다른 남자아이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감미로움을(p.143)’ 지니고 있다. 다섯 달 동안 둘은 진지하게 관계를 맺게 되고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인다. 하지만 ‘사라를 잊을 정도로 막심을 사랑(p.153)’한다고 여기면서도 샤를렌은 ‘어떤 불안 같은 것이(p.157)’ 뱃속에 달라붙어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불안은 현실이 된다.
“할 말이 있어, 막심.”
나는 그애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애의 반짝이는 시선에 눈이 부셨다. 나는 중얼거렸다.
“가끔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꿈을 꿔.”
나는 막심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막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애의 시선이 그때처럼 나를 겁나게 했던 적은 없었다.8)
막심은 바네사처럼 ‘진한 파란색(p.173)’의 눈을 갖고 있다. 바꿔 말하면 막심은 샤를렌의 마지막 이상향, 혹은 마지막 구원자였던 것이다. 막심은 사라처럼 끊임없이 이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샤를렌은 막심과 함께 있으면 편히 호흡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막심은 샤를렌을 이해하는 데 실패하며 이는 결말 부분에서까지 이어진다.9)
그런데 후반부에 묘한 지점이 나온다. 샤를렌이 사라를 살해하는 계기로 작용한 전화 통화에서, 사라는 샤를렌에게 이렇게 말한다.
“(…) 나는 살려고 떠나는 거야. 너에게서 도망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려고 말이야. 너의 존재는 내가 성숙하는 걸 방해해. 너는 아직도 어린애야. 더 이상 너를 감당할 수가 없어. 물론 나는 어떤 점에서는 네가 내 뒤에 있지 않으면 숨쉴 수가 없지. 하지만 너는 나를 숨막히게 해. (…) 네가 이런 식으로 영원히 나에게 매달린다면, 나는 절대로 발전할 수가 없어. 너는 나를 숨막히게 해. 그러니까 나를 내버려둬. 그럼 안녕.”10)
사라는 샤를렌이 자신의 숨을 막히게 만든다는 것을 두 번이나 강조한다. 소통의 불가능으로 호흡 곤란을 겪고 있던 것이 샤를렌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지없이 언어는 의식 위를 미끄러져 간다. 사라의 말은 샤를렌에게 닿지 않았다. 샤를렌은 밤중에 사라의 집에 들어가 자고 있던 사라의 얼굴 위로 베개를 짓누른다. 자신이 겪던 호흡 곤란의 고통을 사라에게 확실히 느끼게 만든 것이다.
사라가 죽은 다음날 샤를렌은 막심을 만난다. 막심은 샤를렌에게 “샤를렌, 그만 해. 나는 알고 있어(p.189)”라고 말하며 자신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한다. 하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샤를렌은 ‘숨쉬는 것을 잊어버(p.189)’린다. 그리고 샤를렌은 자신과 막심이 전혀 소통이 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막심은 내 손목을 잡고 오랫동안 나를 응시했다. 나의 증오를 누그러뜨리려는 듯, 내게서 진실을 끌어내려는 듯.
“샤를렌, 내 눈을 봐. 그리고 네가 한 일을 후회하고 있다고 말해봐.”
갑자기 나의 흐느낌이 잦아들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막심이 내 얼굴을 보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막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그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고통과 혐오와 수치심을 느끼기는 하지만 내가 그 증오스러웠던 삶으로부터 영원한 승리자가 되어 빠져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막심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11)
다시 작품의 첫 부분으로 돌아가 보자. 샤를렌은 ‘그 사건 이후, 내 안에서는 나 스스로도 구별해낼 수 없는 두 가지 정체성이 충돌하게 되었다(p.15)’고 말하고 있다. 불완전한 정체성을 지녔던 소수자는 자립하지 못하고 붕괴된 것이다. 『숨쉬어』는 이해받고 싶었으나 이해받지 못했던 한 소녀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인정투쟁의 과정과 그 실패를 담은 작품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