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아주 이질적인 것
운동 삼아 걷는 숲길에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다. 참 보기 싫다. 은방울꽃, 제비꽃 앙증맞은 야생화는 숲과 어울려 있어서 눈여겨봐야 보인다. 그런데 쓰레기는 저 멀리서도 바로 눈에 띈다. 아마도 이질적이어서 그런가보다. 요란스러운 색깔이거나 지나치게 깨끗해서 그럴 거다. 거기에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느님 눈에 우리 죄가 그럴 거다. 사람을 빚어 만드실 때 당신 마음 안에 있던 피조물 사람에게는 그런 모습은 없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날은 비닐 봉투 하나 들고 집을 나선다. 예상보다 빨리 봉투가 가득 찬다. 그러면 그 후부터는 속으로 꾸역꾸역 쓰레기들을 봉투에 구겨 넣으며 불평불만에 비난까지 나온다. ‘이런 걸 여기에 버리고, 게다가 안 보이게 박아놓고 가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어린 시절 내가 그랬을 거다. 노느라고 집안을 어지럽히고, 장독을 깨 먹고, 친구들과 흙장난하며 옷을 더럽혀 오면 어머니는 그런 걸 다 치우고 빨고 그러셨던 거다. 난 몰랐다. 그냥 그런 건 줄 알았을 거다. 감사하거나 죄송한 줄 몰랐다. 자식을 키웠으면 훨씬 더 일찍 알았을 텐데, 그 고마움과 송구함을. 애들이 다 그런 거라는 걸, 사람이 다 그렇다는 걸. 제자들이 한목소리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라고 외치자 사람들은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 대답은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사도 2,36-38) 사죄를 청하고 합당한 벌을 받으라는 게 아니라 와서 용서받으라는 거다. 이 세상에는 없는 셈법이고 판결이다. 하느님 마음이 그런 거다. 그런 마음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인간의 언어와 개념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마음이다. 기껏해야 아이가 어질러 놓은 집안을 치우는 엄마 마음 정도밖에는 없는 거 같다.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아셨다. 그리고 그것이 인류 구원을 위한 대속적(代贖的) 죽음이라는 거도 알고 계셨다. 인류의 죄를 없애려고 당신은 죽임을 당하셨다. 아버지 하느님에게는 당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피조물 인간에게 죄라는 매우 이질적인 것들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가 먼 거처럼 하느님과 죄는 함께 있을 수 없다. 쓰레기는 뒤져보지 않고 그냥 버리거나 태워 없애버리는 거처럼 하느님은 우리 죄도 그렇게 없애버리신다. 양들이 목자 목소리를 듣고 졸졸 따라가는 거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그렇게 믿어 죄를 없애고 그분 뒤를 따라 하늘나라로 들어간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람들이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문이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9-10)
“사랑하는 여러분, 선을 행하는데도 겪게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면,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받는 은총입니다.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1베드 2,20-21) 선행을 하고 의로운 일을 하면 상이 아니라 방해와 비난 그리고 박해를 받는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계속 그 일을 멈출 수 없다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거다. 예수님이 바로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늘 같은 분이다. 내가 그렇다면 나는 바른길로 걷고 있는 것이고, 그리로 계속 가면 푸른 초원,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푸지게 먹고도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찰 정도로 빵이 남은 바로 그런 데에 있게 된다.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모든 걸 아버지 하느님께 맡기셨던 예수님을 따라 하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로마 8,18)
예수님, 주님은 우리 착한 목자, 바르고 곧은 길,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길입니다. 그길로 걷다가 넘어지고 쉬어갈지언정, 다른 길로 가는 길은 없을 겁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길의 인도자시니 이 이콘으로 기도하면 아드님을 따르게 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