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의 “일본은 없다”를 비판한다(4)-우리 지성계의 실수
“일본은 없다”라는 책에서 저자가 시도하는 논점은 결국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일본의 여성문제로서 여성의 인권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주 열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일본은 과거청산이나 과거의 만행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세 번째는 티브이나 언론에 나타난 일본 문화의 상업성과 대중성에 관한
저자의 불만으로 요약된다.
그 중에서 특히 1장과 2장은 이 책의 성격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 책은 “일본은 없다”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였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책의 기조를 전형적인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본
일본의 여성문제를 다룬 책으로 보고있다.
과거청산이나 과거의 만행 부분을 거론할 때도 지나치게 감정적이어서
한바탕 화풀이는 되었을지언정 해법을 모색하거나 향후 전개에 대한 예측을
시도하지 못한 점 등으로 미루어 이 문제에 있어서도 진정으로 고민하는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문화에 대해서도 언론이나 티브이 같이 아주 피상적으로 노출된 문화만을
시시콜콜 따지고 있어서 그 부분도 문화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지성적 자세와
균형 감각이 전혀 보이지 않으므로 약간의 점수라도 줄만한 내용이 전혀 없다.
단 이 책에서 그나마 봐줄 부분이 있다면 종군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면서
날카롭게 일본 정부의 행태를 비판한 점이며
이 책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취할 만한 부분이다.
이 글도 이성적 고려가 없는 특유의 감정적 문체를 구사하고 있으나
그 정도는 우리 한국 여성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고 감정적 대응도
사안을 고려해 볼 때 결코 도가 지나치다 볼 수 없는 좋은 글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에 있어서도 이 책의 제목을
“일본은 없다”로 한 것은 논평을 쓰는 이 필자를 가장 불만스럽게 만드는 부분이다.
전여옥씨가 일본에 대한 척박한 지식과 몇 가지 안 되는 주제에 대하여
뻥떡 어멈 잔소리 같은 글을 쓰고서도 감히 책의 제목을 “일본은 없다”라는
커다란 간판을 내건데 대해 이 평론이 끝날 때 까지 필자는
끈질기고 집요하게 그 과오를 물고 늘어질 생각이다.
"일본은 없다"라는 제목은 단지 한사람의 분별없는 저자가 함부로 쓴
즉흥적인 책제목이라는 단순한 문제 이상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제목은 전 일본 우익과 일본 지성의 관심을 유발하고 있으므로
그냥 지나칠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필자는 보기 때문이다.
차라리 제목을 감정적 대응에 걸맞게 “짜증나는 일본인”이라고 하던지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이 책의 표절시비를 걸었던 유재순씨처럼 “하품의 일본인”,
이렇게 제한적 제목으로 출판하였으면 최소한 필자가 이처럼 비판적으로
글을 쓸 소지는 어느 정도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어령 선생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서도 일본에 대해서는
그냥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란 제한적인 제목으로 글을 썼다.
조양욱씨는 역시 전여옥씨와 같은 기자의 신분으로서
“천의 얼굴, 일본 일본 일본”이란 책을 쓰면서 일본에 대해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기자로서의 느낀 바를 그나마
균형 감각 있게 냉정하게 쓰고 있다.
왜 다들 글을 쓰면서 전여옥씨처럼 만용을 부리지 않고
작은 제목으로 조그만 글을 쓰고 있는가.
왜 그런가.
필자는 한일간의 현재의 상황에 대해 우리의 지성사회는 일본에 대해서는
쓸 말도 많고 할말도 많지만 숨죽이며 암암리에 때를 기다리며
자중하는 상황에 있다고 본다.
그 자중하는 상황은 작은 제목으로 작은 글을 쓰며 관망하는 자세,
이것은 우리 지성계가 합의하지는 안았으되 마치 암묵적으로
합의한것 처럼 연출하고 있는 그런 상황으로 필자는 인식한다.
즉 권투로 치면 탐색전이고 쨉만 던지는 상황에 해당한다.
그런데 갑자기 전여옥의 큰 훅이 터졌다. 터져서는 안될 상황에서..
그것도 상대에게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한 커다란 헛손질이 터진것이다.
논평을 거듭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필자의 의견을 개진하겠다.
지금 현재의 일본은 전후 일본주의를 기치로 내세우는 우익의 활동이
가장 왕성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서울 시장에 해당하는 동경도(東京都)지사인 이시하라의 망언은
연일 계속되고 있으며 “새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라는
극우 단체가 저술한 역사교과서 왜곡도 전입가경의 수준에 있다.
그리고 전후 일체의 자위적 병력 외에는 어떠한 군대의 보유도 포기하겠다던 일본은
이제 헌법을 뜯어고쳐서라도 파병과 공격을 위한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양태를
서슴없이 보이고 있다.
전여옥씨가 책에서도 언급하는 일본의 극우파 와타나베가 “오선화”라는
한국여자를 내세워 한국사회를 비방한 내용과 “추악한 한국인”같은
일본 극우 단체의 사주를 받은 유령 한국인의 저서가 일본의 출판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있어서도 한국 지성계는 이에 대해 언론이나 여러 미디어를 통해
우려하거나 비난하는 목소리를 내었지만 전여옥씨처럼 이렇게 큰 간판을 걸고
큰소리로 일본을 비난하였으며 크게 베스트셀러가 된 책은 일찍이 없었다.
상황을 놓고 보자면 일본의 극우파의 한심한 작태에 맞서서
전여옥씨가 통쾌하게 일침을 가하여 반격한 상황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 책이 출판될 당시에 지금 이 논평을 쓰는 필자보다
훨씬 비중감있고 학식이 높은 누군가가 나서서 바로 전여옥씨를
나무랐어야했었다고 본다.
그때 아무도 그녀를 제지하거나 그녀의 책에 대해 문제 삼지 않은 것은
우리 지성계의 큰 실수였다.
왜냐하면 일본 극우세력에 대한 통렬한 반격을 시도한 것 자체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반격하려면 제대로 했어야 했기 때문에...
즉 전여옥씨가 야구로 치면 번트도 잘 못되는 기량으로 일본 극우 타도의
사번타자 역할을 맡겠다고 청둥벌거숭이처럼 나선 것에 대해 너는 깜이 아니다라고
제지하는 감독이나 코치가 한국 지성계에 있었어야 했다는 말이다.
왜 그랬어야 했는가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차회(次回)에서 다시 이야기 하겠다.
아무래도 이번 논평은 길어질 모양이다.
처음의 프롤로그에서는 전여옥의 논조만 비평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것이
필자 스스로 흥분하는 바람에 한일 지성계의 암투까지 논평의 범위가
확산되고 있다.
써보는데 까지 써볼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