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는 음식이 없고 음식 중에서는 특히 면을 좋아합니다.
집에서 칼국수 잔치국수 콩국수 냉면등 다양한 국수를 즐기다가 그것도 지겨우면 간짜장을 주문해서 집에 가져와 먹습니다.
미국의 다른 곳은 모르지만 제가 사는 텍사스주 달라스나 휴스턴의 한인 반점에서는 간짜장 일인분의 양이 한국 간짜장 곱배기보다 조금 더 많습니다.
일인분을 시켜 제가 2/3, 아내가 1/3, 서로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데도 다 먹고나면 배가 많이 부릅니다. 물론 남기진 않습니다.
간짜장은 그 맛도 좋지만 간짜장이 불러다 주는 첫 간짜장의 추억이 있어 더 좋아합니다.
그 추억은 1970년의 경북 도청 입구에서 시작됩니다.
도청 담장을 따라 도청 안쪽 순환도로가 있었는데, 키 큰 가로수 나무들이 줄을 선 그 도로의 인도를 국민학교 5학년인 제가 도시락 하나를 들고 걷고 있어요.
어머니는 아버지 숙직 도시락 배달을 길을 잘 찾아다니는 저에게 꼭 시키셨습니다. 저는 한번 간 길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길 천재였거든요.
도청에 가는 것은 별로 타볼 기회가 없던 버스까지 탈 수가 있으니 제가 마다할 수 없는 심부름이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도청 입구로 들어서면 앞서 말한 가로수 줄 선 길이 도청 담장따라 죽 이어져 있었지요.
그 길을 따라 돌고돌아 더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곳에 이르면 아버지가 일하시는 곳이 나왔습니다.
그곳의 세로 현판에는 '한국 기생충 박멸협회'라고 한글로 적혀 있었어요.
4학년 때부터 심부름을 가끔 다녔는데, 그날 마침 제가 도착했을 때가 점심 무렵이었던가 봅니다.
"익이 밥 안 묵었제? 아부지하고 같이 밥 묵으로 가자."
같이 근무하시던 분들과 다 같이 뒤쪽 언덕을 올라 경북실내체육관쪽에 있던 식당(중국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익이 짜장면 무 봤나?"
"어언지예."
"그라마 오늘 간짜장 함 무 봐라. 맛있을 끼다."
짜장면은 들어본 적이 있은데 간짜장은 그날 처음 들었습니다.
'짜장면이면 좋겠는데...'
짜장면을 먹어 본 친구에게 들었던 것과는 다르게 생긴 짜장 따로 면 따로인 간짜장이 나왔고, 아버지가 친절하게 제 것을 비벼 주셨지요.
젓가락으로 말아 간짜장의 첫 맛을 보았을 때,
아... 세상에 이렇게나 맛있는 국수가 있다니..!!
그후로부터 참 오랫동안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국수는 간짜장이었습니다.
세상의 부침 따라 입맛도 변해갔지만 그 첫 맛의 강렬함으로 인해 간짜장은 외식음식 순위에서 삼등 밖으로 밀려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께 쉬는 날 점심에 짬뽕과 간짜장이 경합을 했지만 결국 간짜장이 낙점되고 말았던 이유는 짬뽕은 맛은 좋지만 별 불러올 추억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ㅎ
첫댓글 자상했던 아버님! 제일 부럽습니다.^^
어린시절부터 길천재셨군요~
지금 하고 계시는 일이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그러시니 쉽지 않으실텐데도 행복스런 일상을 표현하고 계신가 봅니다.^^
네. 길 찾아 다니는 지금 이 일이 참 적성에 맞습니다. ㅎ
저도 둥실 님처럼 자상하신
아버지가 넘 부럽습니다.
그때는 경북도청이 산격동에
있었던가요?
면을 참 좋아했는데
얼마전부터는 예전처럼 그렇게
좋지는 않네요.
그래도 오늘처럼 밥먹기 싫은
날에는 간짜장 생각이 나네요.
마음자리 님, 글 잘 읽었습니다.
지금은 자리를 옮겼나요?
네. 그땐 산격동에 있을 때입니다.
최근에 체력이 좀 달리시는 것 같던데 이젠 괜찮으신가요?
지금은 경북도청이 안동에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외손자 봐주고부터 체력이
급격히 다운되더니 그저께는
집에서 엎어졌습니다.ㅎ
엎어진김에 쉬어 간다고
이제 외손자 그만 봐준다고
했습니다.
마음자리 님, 걱정 고맙습니다.
우리들 어린시절은 외식하면,
짜장면이었지요.
혹시라도, 누군가가 선심 쓰느라
뭐 먹을래 하면,
생각할 것 없이 짜장면이었지요.
초등학교 때, 선생님 가정방문을 하셔도
짜장면으로 대접하고,
선생님따라 친구의 고모 집에 갔는데
그때도 짜장면이 나왔습니다.
넘 맛나게 먹었지만,
선생님은 총각이었는데, 왜 친구의
고모집을 갔는지 모르겠고
왜 저를 데리고 갔는지 모릅니다.^^
ㅎㅎ 왜 그랬을까요?
선생님 인기 많을 때이니 아마도 선 보는 자리였던가 봅니다. ㅎ
짜장면 류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중 하나 입니당
짜장면은 화교가 처음으로 인천에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잘 만든 음식중 하나 입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중국에는 없는 짜장면으로 화교들이 쉽게 자리 잡았다 들었습니다.
크아 그 짜장면 얼마나 맛있었을까요.
저는 산골 초등학교 때 동네의 작은 교회에서
시내의 큰 교회에서 열리는 백일장에 나갔는데
그때 우동을 처음 먹었어요.
지금도 우동을 좋아하는데, 입맛이 까다롭게
변했는지 우동을 잘 하는 집이 드무네요.
세상 제일의 간짜장이었습니다.
그후로 한동안 간짜장 맛자랑 하고 다녔습니다. ㅎㅎ
간짜장에 대한 아버지와의 따스한 추억이 있으시네요
저도 4.5학년무렵 안양에서 아버지가 하시던 목재소옆에서
처음으로 짜장면을 먹어봤는데 참 맛있었지요
그리고 중학교입학식이 끝나고 학교앞에서 아버지와
둘이서 짜장면을 먹었던 추억이 있습니다
제아버지는 이북분이라 그런지 아주 과묵하셨는데
마음만은 따스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산님의 춘부장 어른 이야기는 간간히 그산님의 글을 통해 들었습니다.
외롭게 정착하시느라 많이 힘드셨을 테지요.
그럴수록 더 속깊은 자식사랑 하셨을 겁니다.
면은 언제 먹어도 맛있지요.
오늘 점심은
친구와 베트남국수를 먹었답니다.
맘자리아재가 간짜장에 감동하셨듯이
저는 국민학교때 오뎅을 먹어보고
세상에는 이렇게 맛있는 것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아버지께서 사주셨던 간짜장은
추억의 음식중에서도 으뜸일 것 같습니다.
베트남 쌀국수, 저는 이곳으로 와서 아주 즐겨먹고 있습니다.
한국 식당은 많지않아도 베트남 식당은 제법 많고 맛도 우리 입에 맞아서요. ㅎ
오뎅 저도 아주 좋아하는데, 먼 시장 오뎅공장에서 오뎅 사오는 심부름도 제 차지였습니다. 심부름값 10원으로 오가는 길에 멍게를 사먹곤 했어요. ㅎ
저도 처음 간짜장을 먹었을 때가 잊혀지지 않군요.
세상에 이렇게 고소하고 달콤하고 짭조롬한 음식이 다 있구나....
지금도 저는 간짜장 좋아합니다.ㅎㅎ
푸른비님 맛 경험이 바로 제 경험입니다. ㅎㅎ 그 맛~!
칼국수 잔치국수 콩국수 냉면 가락국수 우동 옛날짜장 삼선따장 간짜장 보통짜장 유니짜장 짬뽕 쟁반짜장~ 어째 제가 좋아하는 음식은 항개도 없네요.
저는 라면도 싫어해요. 군대 주특기가 일종계라 만 삼년을 일종창고에서 혼자서 라면 끓여 묵었더니 이젠 질리지요 ㅠㅠ
면 음식은 전혀 식성에 맞지 않는데 특이하게 빵은 잘 먹습니다
야금야금 빵 잘먹는다고 딸이 흉을 봅니다 ㅎ
군대에서 오래 먹던 음식은 질리기도 하지요. ㅎㅎ
저는 면은 좋아하는데 빵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ㅎ
사람마다 다 다른가 봅니다.
저는 자장면을 초등학교 졸업식날 먹었습니다 .
음 ~ 저는 자장면 종류는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
아마색깔 때문인지 .. 돼지고기때문인지 ..
안 먹진 않고 먹긴 먹습니다 .
저는 짬뽕에 한표 입니다 .
짜장면은 일단 첫 인상은 좋지 않지요.
냄새는 괜찮고... ㅎ
사람따라 고기 가리시는 분들에겐
꺼리는 음식일 수도 있어요.
저는 워낙 가리는 음식이 없어
닥치는 대로 많이 먹습니다. ㅎ
아, 가끔 짬뽕이 짜장을 이길 때도 있습니다. 제가 얼큰한 국물을 먹고 싶을 때요. ㅎㅎ
60년대 가난한 후진국을 거친 우리 또래에게
짜장면에 대한 추억은 필수코스지요
국민학교 입학식날 아버지는 저와 동생을 데리고
읍내 청요리집이라 불리던 실비반점에 갔지요
인생 첫짜장면, 와리바시에 미끌거리는 그 음식
에 당황하던 아들을 안스럽게 도와주던 아버지의
굵은 정이 새삼스럽습니다, 60년전 이야기..
그 이후 반월당 동성로 뒷골목 대덕반점 삼화반점
명성루는 중고등 악동시절 저의 아지트가 되었고
간짜장 한다라이는 제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습지요
와~ 구봉님은 짜장 맛을 일찍 보셨네요.
눈 감고도 길 찾아갈 수있는 지명들을 대하니 반가움이 울컥 솟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