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영원한 신원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사도 11,26)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비록 신상 기록 또는 어떤 조사 때에만 종교란에 천주교 또는 개신교라고 적지만 이 신원은 나의 삶 전체를 정의한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세상 법으로는 한국 여권이 훨씬 큰 힘을 발휘하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내 이마에 새겨진 인호,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만 남는다. 그 외 나머지 신원과 신분은 전부 쓸모없는 것들이다. 이것을 믿으니까 지금 여기에서부터 그리스도인으로 충실히 살려고 노력한다. 믿는 만큼 그렇게 살게 되는 거다.
사도행전의 이 말씀으로 보아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처음에는 서로를 ‘형제들’(사도 1,15), ‘신자들’(2,44), ‘제자들’(6,1),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9,2), ‘성도들’(9,13) 등으로 불렀다. 그런데 말끝마다 그리스도 어쩌고저쩌고하니까 약간은 비난하고 얕잡아 보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예수님에게 그랬으니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더 충실히 살면 세상 사람에게 미움을 살 거다.
예수님 살아계실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데, 예수님 이야기를 듣고 모두가 그분을 구세주 그리스도라고 믿는 건 아니다. 아버지 하느님이 예수님께 붙여줘야 믿게 된다. 그런데 예수님께 일단 붙기만 하면 절대로 버려질 일은 없다, 내가 스스로 그분께 등을 돌리고 떨어져 나가지 않는 한 말이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님을 팔아넘겼고 그 죄책감으로 자살했다. 그는 그분에게 용서받을 걸 믿지 못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한다. 1년에 한두 번 미사 참례해서 성체를 모시더라도, 성당에는 안 가도 십자고상을 치우지 않는다면 그들은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29-30)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
영원한 생명은 무병장수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건너감이고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다. 하루하루 새로운 사람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변해간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 그분과 함께 세상을 다스린다. 그게 어떻게 되는 건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구원되는 건지 잘 알지는 못해도,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서 영원히 산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 믿음이 지금 여기 내 삶을 규정한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로마 1,17) 그 기쁨과 희망이 내가 더 많이 사랑하게 한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라 선하고 의로운 일을 더 많이 하게 하는 힘이다. 살면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약자 편에 서고, 있는 힘을 다해 용서하고, 교정되지 않는 그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그게 잘 안되면 꾹 참는다. 나 혼자는 못한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며 나를 도와주시고 힘을 북돋아 주시니 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세상을 다스린다. 하느님께서 태초에 남자와 여자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음을 기억한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28)
예수님, “정녕 주님 앞뜰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습니다. 저의 하느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 안에 살기보다 더 좋습니다.”(시편 84,11) 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주님 곁에 있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콘으로 기도하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