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나와 딸들의 핸드폰에 '준이할미'로 저장되어 있다. 이하 준이할미로 칭한다.
준이할미는 딸부잣집의 맏딸로 태어나고 자랐다.
그리고 나와 결혼해서 딸만 둘을 낳아 길렀으니 여자들만의 세상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넘어와 남한에 발이 묶였던 장인께서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장모님과 여동생들과 살았으니 더욱 그랬다.
그런 그녀에게 환갑이 넘어 심장이 뛰는 사랑의 상대가 나타났으니 그가 준이이다.
외손자인 녀석이 태어날 때부터 딸을 제치고 온갖 정성을 다하더니 녀석과 단짝이
되었다. 녀석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 할머니가 최고예요. 김치는 할머니 김치가 정말 최고예요.
- 할머니가 만든 음식이 제일 맛있어요
- 할머니 제가 안마해 드릴게요 등의 멘트를 날리는가 하면 그저 할머니만 찾아댄다.
준이 할미는 홀어머니 아래 여동생들의 군기를 잡느라 엄숙, 근엄, 진지함을 뜻하는
'엄근진' 을 생활 모토로 살아왔다. 그리고 그녀는 엄근진과 함께 트리플 A(?) 혈액형
답게 속을 내비치지 않는 전술로 자기 동생들은 물론 나를 포함한 두 딸과의 어떠한
의견 대립에서도 단 1패도 없이 전승가도를 달려왔다.
그런 그녀가 얼마 전 평생 처음으로 1패를 당했다.
손주 녀석이 우리집에 있다가 할머니와 의견이 엇갈리자 자기집에 가겠다고 가방을
메고 나선 것이다. 버스를 타야 하는 거리라 혼자 나서면 미아가 될 상황이었다.
전승가도를 달리던 전적에 어울리지 않게 당황한 준이할미가 생애 첫 패배를 예감한
듯 녀석에게 회유책을 썼으나 결국 완패하고 말았다. 나는 몰래 킥킥대고 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얘기만 나오면 입이 귀에 걸린다.
녀석이 람보르기니, 포르쉐, 마이바흐 등 세계적인 명차들의 이름을 나열하면 마치
손주가 아니라 아인슈타인이 재림한 것으로 알고 감탄해서 어쩔 줄 모른다. 내 눈엔
그저 호박벌 처럼 뚱뚱하고 동작이 둔한 어린이일 뿐인데 말이다.
오늘도 그녀는 녀석에게 다녀왔다.
나는 저녁밥을 먹으며 수백 번도 더 계속되는 그녀의 사랑 준이 얘기를 들어야 했다.
그렇지만 준이 녀석이 자라더라도 할머니와는 친하게 지내기를 기원한다. 참고로
녀석은 외하비인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살 빼고 운동하라고 잔소리를 하니까.
2024.09.03
앵커리지
// 가을이.......... 온겨? //
첫댓글 사모님의 외손주 사랑이 아주 지긋하십니다
하나뿐인 제딸은 결혼할 생각이 전혀없고
아내는 제가 지난 사월 지하주차장에서 구조한
아기고양이 해피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답니다
그산님은 손주를 아직 못 보셨군요.
요즘은 비혼주의자들이 많으니까 그러려니 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뭐 이래저래 아이가 있으면 더 좋구요.
며칠만에 아내랑 뒷동산 돌고 들어와 글을 읽습니다. 늦사랑이 나중에 짝사랑으로 남더라도
할머니들의 손주사랑은 쭈욱 계속될듯 싶습니다.^^
할머니들의 손주 사랑은 어디나 똑같이 차고
넘칠 겁니다. 오늘 북한산에 다녀왔습니다.
의상능선 힘들고 덥던데요.
ㅎㅎ
환갑이 넘어 심장이 뛰는
사랑의 상대가 나타났으니
준이 할머니는 얼마나 좋으시겠어요.
우리집하고는 반대네요.
이제 두돌 갓지난 외손자는
제가 죽으라고 돌봐줘도
하비만 좋아합니다.
영상통화를 해도 하비만 바꾸라고
하고 저는 안중에도 없어요.
저는 짝사랑만 하고 있답니다.ㅎ
이제는 체력이 바닥이 나서
손자 케어도 그만하기로 했어요.
아침 공기가 넘 상쾌합니다.
구월의 아침공기가
제 가슴을 뛰게하네요.ㅎ
앵커리지 님,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손주들도 있군요.
울집 손주들은 할아버지는 찾지 않고 할머니만
찾는답니다 ㅋ
우리나라 지도를 180도 회전해서 보아야 우리가 중심이 되는
정상적인 지도보는 방법이라는 김용옥 선생의 말이 생각나네요.
그래서 이북에서 내려 오지않고 넘어 왔다는 묘사가 신선해 보입니다.
단풍이 글 올릴때마다 아내 흉을 본다고 수필방 할,아지매들이 수시로 엄청 욕을 하는데 동지를 만났음다 ~
그라고 다음부터는 손지 이바구에 단풍 댓글 기대하지 마셔유 ㅠㅠ
애달퍼야 가을사랑이지요, 아직 가을은 아닌듯 ~
단풍님의 댓글 방침(?) 존중합니다 ^^
오늘 북한산에 갔더니 가을이 아직 멀었더군요.
그래도 풍경은 명불허전이었습니다.
아이쿠, 큰일 났네~
저는 이미 지난 일이지만...^^
앵커리지님, 사랑을 얼른 뺐어야 합니다.
손자 길러주고 사랑주고 줄 것 다 줘도
남는 것 없어요. 팔다리 쑤신다는 일 외엔.
손주 학교에만 갔다하면,
황혼기의 할머니~~~~~ 사랑은 고파져요.
그래도 사랑은 주는 것이니까...^^
하하하~ 그런가요?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니 울집 할매도 나중에 가서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 마음껏 행복하라고 제가 자주 말해줍니다.
손주가 자식보다 이쁘니
사랑은 내리사랑이 맞는거 같아요.
준이할미의 그 마음이
곧 제 마음이기도 하고요.ㅋㅋ
건조하고 푸석해진 감정에
늦게 찾아와 준 풍성한 사랑이 그저 감동이지요.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오르고
생각만으로도 미소짓게 만드는
마법같은 손주사랑~~
그런데 우리 손주들은
할아버지가 최고래요.
힘으로 잘 놀아주니까요.
댓글 쓰는데 손님이 와서
눈치껏 흔적 남기고 갑니다.ㅋㅋ
앗 제라님 반가워요 ^^
울집은 반대라서 큰손녀가 왈가닥에 운동하기를
아주 좋아하는데, 맞장구를 칠 사람이 저 하나라
할아버지를 매우 좋아한답니다.
손주녀석은 방에서 게임만 좋아하구요 ㅋ
게시판에서 자주 뵈어요.
샛별 같고 보석 같고
때 묻지 않은 어여쁜 천사가 내 곁에 있으니
어찌 사랑을 주지 않고 또 이길려고 하겠나요.
존재만으로도 가슴 한 가득 충만한 사랑동이입니다.
남자인 저도 손주가 그리 예쁜데 할머니들은
오죽 예쁘겠습니까.
훌쩍 자라면 늙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찾지
않겠지만 지금 예쁘면 그만이지요 ^^
아내의 손자사랑에 푹 빠졌군요.
옆에서 바라보는 앵커리지님도 내심 흐뭇한 듯 합니다.
저는 그저 무덤덤한 듯 행복하게 바라봅니다.
짧은 시한성 행복임을 잘 아니까요 ^^
ㅎㅎ 할부지도 할머니도 다 부럽습니다.
그렇군요.
언능 할아버지가 되길 기원합니다 ^^
저도 같은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
저를 쳐다보는 눈빛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
마주보고 웃습니다 .
어디서 이런 사랑을 만날 수 있을까요?
앵커리지님 질투 하셔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ㅎㅎ
아녜스님도?
짐작이 갑니다 ^^ 할머니들의 손주들 사랑은
정말 대단함을 아니까요.
질투가 소용없음을 알기에 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