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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오회장님의 카톡에서]
[맥아더장군]
⭐⭐⭐⭐⭐
“노병은 죽지 않는다. 사라질 뿐이다.''
🎩트루먼에 의해 보직이 해임된 맥아더의 고별사
(연방 상하원 합동 회의) 말미에 나오는 명언이다.
한국인들의 맥아더와 관련한 지식은 딱 여기까지.
그 이후는 대부분 잘 모른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역사의 무대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몇해 뒤 트루먼도 물러나고 의회 권력도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넘어가자 ‘맥아더 승진안’ 이 상정됐다.
원래 별 다섯은 종신 계급장으로 미 연방법에 의해 퇴역이 안 된다.
나이가 많아 보직만 주어지지 않을 뿐 죽을 때까지 현역이다.
그래서 법안 명칭이 ‘승진안’이 된 것이다.
영어로
별 다섯 = the general of the Army,
별 여섯 = the general of the Armies.
기자들이 은퇴한 트루먼에게 달려가 질문공세를 폈다.
“맥아더 승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트루먼은 주저하지 않았다.
“맥아더는 건국 이후 미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군 전략가임이 분명하다.
별 여섯개 충분히 자격이 있다.
그러나 또 다시 (군 통수권자인 나에게)도전 한다면 나는 맹세코 해임 시키겠다.”
맥아더 자신은 어떤 말을 남겼을까.
“내가 어찌 감히 (조지)워싱턴과 계급이 같을 수 있느냐.
그러고 이 늙은이가 별을 더 달아서 뭣에 쓰겠느냐.”
워싱턴은 비록 상징적이지만 미국의 영원한 군서열 1위다,
(2차 대전때 별 다섯개가 나오자 워싱턴은 이후 별 여섯으로 특별 승진했다.)
맥아더가 거부한 탓에 그의 승진안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맥아더는 케네디만 빼고는 역대 대통령들과 늘 불화하고 반목했다.
린든 B. 존슨과도 그랬다.
케네디가 암살 당해 운 좋게 대통령 직을 이어받은 인물이다.
존슨이 베트남전을 확대하자 맥아더는 수시로 백악관에 전화를 걸어 말렸다.
“한국전은 소련의 스탈린이 북한을 부추겨 일어 났지만 베트남전은 자기네들 끼리의 내전이다.
미국이 개입할 명분이 없다.
왜 우리 젊은이들이 아시아의 정글에서 속절없이 죽어가야 하나.
”존슨은 맥아더를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그래도‘영웅’을 홀대할 수는 없을 터.
맥아더가 노환으로 워싱턴 D.C.의 월터리드 육군 병원에 입원하자
문안을 갔다.
그 자리에서도 ‘철군’을 당부한 맥아더에 슬그머니 화가 치민 존슨.
“장군, 몸조리 잘하세요” 하고는 서둘러 병실을 나왔다.
당시 기록엔 화난 표정이 역력했다고 쓰여있다.
문병 한 달 후 맥아더는 끝내 눈을 감았다.
1964년 4월 5일.
보고를 받은 존슨은 즉각 애도 성명을 내며 7일간 미 전국에 국장을 선포했다.
시신은 당일 군 수송기편에 실려 뉴욕으로 보내졌다.
수도 워싱턴에서 사망했는데 웬 뉴욕행?
보직해임 후 맥아더 부부는 뉴욕의 6성급 호텔인 월도프 아스토리아에서 살았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고국 땅을 밟았지만 맥아더는 시쳇말로 똘똘하기는 커녕 허름한 집 한 채조차 없었다.
당시 아스토리아 호텔은 힐튼 가문 소유였다. 맥아더의 딱한 사정을 전해 들은 힐튼 측이 선뜻 호텔 맨 꼭대기 펜트하우스를 내줬다.
힐튼의 호의로 부부는 팔자에 없는 호강을 누린 셈.
방 값은 얼마나 됐을까. 공짜로 줄 수 없어 연 1 달러만 받았다.
그 뿐이 아니었다.
맥아더 부부 전용 엘리베이터까지 마련해 주고.
그래서 맥아더 시신은 뉴욕으로 운구 돼 국장 기간이 길어졌다.
뉴욕 군기지에 빈소가 마련돼 각국 유엔 주재 대사들을 비롯해 뉴욕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줄을 이었다.
이어 특별 열차가 투입돼 시신을 다시 워싱턴으로 옮겼다.
존슨 대통령 부부와 전임 대통령인 케네디를 대신 해 로버트 케네디 부부가 열차에 올라 맥아더를 직접 ‘영접’했다.
각군 의장대와 기수대, 웨스트포인트(육사) 생도대 등 수천의 병사들이 광장을 가득 메운 채 장엄한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시신이 안치된 의사당엔 그와 함께 싸웠던 옛 부하들과 시민 등 무려 15만명의 조문 인파가 몰렸다.
시신은 다시 군 수송기에 실려 버지니아주 노퍽의 맥아더 기념관으로 운구됐다.
대통령은 이번에도 공항에 나와 맥아더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눴다.
생전엔 그토록 미워했지만 영웅에 대한 배려엔 한치의 소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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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상호 방위 조약--작전명
에버-레디(Ever-ready)
에버-레디(Ever-ready)는 6·25전쟁중이던 1953년 5월 유엔군사령부가극비리에 수립한 작전 계획이다.
중공군 격파 작전이 아니다. 대한민국 이승만 정부를 붕괴시키고 이 대통령을감금하는 작전이다.
이승만의 치열한대미(對美) 투쟁은 한미 관계를 파국직전의 갈등 상황으로까지 몰아갔고
급기야 미국은 이승만을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면 이승만은 왜 그토록 미국에투쟁적이었을까?
1951년 시작된 휴전 회담을 이승만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국토와 국민이 결딴났는데 통일도 없이분단된다는 것은 새 지옥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7만명 이상의 미군 인명 손실과 막대한 전쟁 비용으로 인한 국내 여론 악화로
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이승만은, 이대로 휴전이 이뤄지면 미군은 한국을 떠날 것이고, 고립된 섬으로 남는 한국이 중·북·소련에 의해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았다.
아니더라도 일본 세력권에 편입될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전망이었다.
미국이 그걸 원하고 있었다. 이승만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1953년 5월부터 7월까지 3개월간'이승만 대(對) 미국'의 살벌한 갈등은 약소국이 살아남는 지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한편의 교과서다.
노르웨이 대사를 지낸 최병구씨가 지은 '외교의 세계'는 그 드라마 같은 3개월을 잘 기록하고 있다.
1953년 3월 스탈린이 죽자 휴전 회담이 다시 활기를 띠었다.
이승만은4월 22일, 중공군의 북한 주둔을 허용하는 휴전 협정이 맺어지면, 한국군은 유엔군에서 이탈해 독자적으로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클라크 주한 유엔군사령관은 이승만 보호 감금과 임시정부 수립을 미국 정부에건의하기에 이른다.
미 국무부까지동조해 5월 에버-레디 작전이 수립된다.
한국은 독자 전쟁이 불가능했다. 전쟁 유류가 단 2일치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이승만이 독자 전쟁을선언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한·미 동맹(상호방위조약) 체결이었다. 그것만이 공산 세력과 일본의재침을 막는 유일한 방패라고 보았다. 불세출의 예지(叡智)였다.
미국에선 한국과의 동맹은 불필요하다는 견해가 다수였다.
한국은 가치가 없는 나라였다. 그런 터에 한국이 미국을 동맹으로 만들기 위한 방책이라면
오직 하나 '죽을 각오로 물고 늘어지기', 곧 '함께 죽자'고 나서는 것뿐이었다.
미국 국무부, 국방부, 합참의 합동 회의에서 격론이 이어졌다.
수십 년 미국에서의 활동을 통해 축적해 둔 종교계와 군부를 비롯, 미국조야에 두루 포진해 있던 이승만의인맥이 알게모르게 작용했음은 주지의 시실이다.
5월 30일 이승만의 요구를 들어주는것 외에는 6·25전쟁을 중단할 방법이 없다는 결론이 났다.
에버-레디는폐기됐다. 한국의 운명이 결정되는순간이었다.
같은 날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에게 친서를 보내 한·미 동맹을 맺으면 휴전에 동의하겠다고 했다.
아이젠하워는 동맹이 아니라 미정부의 '한국 방어' 성명과 군사 지원행정 협정을 맺자고 했다.
10억달러 경제 원조도 제시했다.이승만은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조약'이 아니면 미국을 붙잡아둘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6월 8일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 송환 문제가 타결됐다.
한·미 동맹을 못 얻었는데 휴전이 목전에 온 것이다.
이승만은 6월 18일 3만5000여명반공 포로 석방이라는 극약 처방을내린다.
휴전 회담을 무산시킬 조치였다.
느긋하고 배포가 두둑한 처칠이 식사중에 숟기락을 떨어뜨렸을 정도이니
그 사건이 얼마나 기상천외한 국제적 폭거였을지 짐작할 만하다.
이승만은 그 다음 날 주한 미 대사에게
"이것이 자살 행위라 해도 그것은우리의 특권이다."고 말했다.
한·미동맹 없이 휴전이 되면 자살도 불사하겠다는 결의였다.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을 '정신착란자'라고 격렬하게 비난했다.
이승만은 굴하지 않았다. 아이젠하워에게편지를 보내'한·미 동맹 없이 휴전되는 것은 한국에 대한 사형 집행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7월 9일, 휴전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약속과 함께 한·미 동맹 조약 초안을 제시했다.
미국은 이승만이 향후 어떤 망령된일이라도 벌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판단했다.
아이젠하워는 어쩔 수 없이 방위조약을 맺을 특사를 한국에 파견했다.
그러나 미국 측 초안에는 '한쪽이 공격받으면 다른 한쪽이 자동 개입한다.'는 동맹 조약의 핵심 부분이 없었다. 이승만은 미 특사에게반세기 전의 '가쓰라-테프트 밀약'에대해 따져 물었다.
배신 행위였다고다그치며 한·일 합방과 한반도 분단에 대한 빚을 갚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전쟁 참여는 행정부 아닌 상원의 권한이었다.
이승만은 우회로를 택한다. '한쪽에 대한 공격을 다른 쪽에 대한 공동 위험으로보고
각자 헌법에 따라 행동한다'는조항을 신설하고 바로 그다음에 '미군의 한국 주둔'을규정했다
미군이주둔하면 유사시 개입하지 않을 수없다. 외교 귀재의 발상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1953년 7월 27일 마침내 휴전이 성립됐고 8월 8일 서울에서 한·미 외교장관이 동맹 조약에 서명했다.
한·미 동맹은 국민의 피와 모든 것을건 한 지도자의 필사적 투쟁으로 이뤄낸 것이다.
이승만은
한·미 동맹으로
"우리 후손들이 여러 대에 걸쳐 갖가지 혜택을 누릴것"이라고 했는데
그대로 적중했다.
한강의 기적은 한·미동맹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에 힘이 없다"고 토로했다.
우리는 많이 성장했으나더 큰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다.
한국의 지도자는 한·미 동맹사(史)를
읽고 또 읽어야 한다.
요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전쟁 중에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못한 것
가장 아프고 억울한 심정, 우리도 이러한 위험에 닥치기 전에 동맹과 외교가 얼마나 중요한 것
깨달아 하지 않을까?
2천년전에 고구려가 수와 당을 물리친 것도 돌궐과 외교하여 군사적으로 서쪽에서
위협이 있었기에 나라를 안위하며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역사를 되돌아
보고 우리도 나라를 위해서 국방은 물론
상호방위 조약을 튼튼히하여 안보와 경제가 더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을
확신하며 항상 건강하시고 온 가정이 주안에서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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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의 덕담 💜
영국 대처 수상의
아버지도 대처에게 늘 이말을 해줬다고 한다
“생각을 조심해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해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해라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해라
운명이 된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
"서로간 편하다고
함부로 대하지 말고,
"잘해 준다고
무시하지 말고,
"져 준다고
만만하게 보지 말고
곁에 있을 때 잘 해라.
"늘 한결 같다고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사람 마음 한순간 이다.
"실수가 계속되면
실망하게 되고
"실망이 계속되면
포기하게 되고
"포기가 계속되면
외면하게 된다.
"사람이 사람에게
등 돌리는게 쉽다.
"소중한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면
그러니까
계속 노력해야 한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은,
대단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함께 밥을 먹고
전화를 걸고.
오늘의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3월에도
험한 세상길 조심히
걸으시어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2월은 겨울의 끝자락
"봄"이라는 기다림과
설레임을 품게 하네요.
2월 편안히 잘 지냈듯이
3월도 좋은일만 가득하고
삶의 행복과 사랑이넘치는
달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행복을 담는그릇🌷
https://myun5381.tistory.com/m/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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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음악 3월 8일(수)*
▲초대 ‘트롯맨’-손태진
◾성악 트롯의 재탄생
◾손태진
◀상사화(남진)
*결승 2차 나의 인생곡
◾박민수
◀망모(亡母:나훈아)
◾손태진
◀귀한 그대(윤일상)
*결승 1차전
◀백만 송이 장미(심수봉)
◀타인 (이미자)
◾손태진
*2016년 팬텀싱어 첫 무대
◀오래된 노래(김동률)
◉베이스 바리톤 손태진,
그의 다소 무모해 보였던
성악 트롯 도전은
멋지게 피날레를 장식하며
성공했습니다.
오늘 새벽 0시를 넘겨
결정된 우승입니다.
손태진의 ‘불타는 트롯맨’
우승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결이 다른 트롯 스타가
탄생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끕니다.
◉물론 6억 원 이상의
상금을 가져가고
개인의 이름이 빛나는
영예도 축하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트롯을 고품격 음악으로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
더 큰 의미를 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트롯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손태진의 우승 소감도
그와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전공한 성악을 바탕으로
크로스오버 음악에 발을
들여놓고 대중과 가까워진
손태진입니다.
이제는 트롯으로 대중과
더 가까워지면서
트롯에 크로스오버 음악을
접목해 나가는 작업을
차근차근 풀어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트롯 속에 블루오션을 심어가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기 투표 1위에.
결승 1차전까지 1위를 달리던
황영웅의 하차는
어쨌든 결과적으로
트롯 음악의 긍정적
발전을 위해 길을 열어준
수순이었다고 해석하고
이해해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황영웅의 과거 전력 시비에
실망한 시청자나
그래도 여전히 황영웅의 하차가
억울한 그의 팬들이나
엉거주춤한 선택으로
실망을 줬던 제작진이나
이쯤에서 가라앉은 분위기를
추스르고 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우승자를 결정하는
결승 2차전 미션은
‘나의 인생곡’을 부르는
순서였습니다.
결승 진출자 7명에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었고 그들의 인생곡도
대부분 가족과의 관계에서
나왔습니다.
◉손태진이 고른 인생곡은
남진의 ‘상사화(相思花)’였습니다.
싱가포르에서 17년 동안
학창 시절을 보내고
서울대학교 음대 성악과에
입학했던 손태진입니다.
칠순이 넘은 아버지는 아직도
동남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사화의 꽃과 잎처럼
서로 떨어져 살면서
쉽게 자주 볼 수가 없습니다.
손태진이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선택한 노래입니다.
아들을 위해 귀국한
부모 앞에서 부릅니다.
상사화는 꽃이 필 때 잎이 없고
잎이 나면 꽃이 져서
서로 만나지 못하는
수선화과의 식물입니다.
◉손태진은 흔히 말하는
‘공기 반 소리 반’으로
완벽하게 완급을 조절하며
관객과 연예인 판정단을
휘어잡는 레전드급 무대를
만들어 냈습니다.
윤일상은 원석으로 시작한
손태진이 마침내 완전한
보석이 됐다고 극찬했습니다.
윤명선은 성악이 아닌
완벽한 가요라며
손태진의 변신을 칭찬했습니다.
연예인 판정단 점수
만점 65점에 63점으로
최고점수를 얻은
마지막 무대입니다.
https://youtu.be/wcbjbil8eBU
◉최종 순위는 5위였지만
결승 2차전 ‘나의 인생곡’에서
손태진과 함께 63점 최고점으로
공동 1위를 차지했던
‘서천의 아들’ 박민수가 부르는
나훈아의 ‘망모(亡母)’도
만나보고 갑니다.
나훈아가 자식을 위해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며 쓴 곡입니다.
◉박민수가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처음 본 아버지의 눈물을
떠올리며 고른 노래입니다.
진한 효심을 담아 차곡차곡
부르는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외할머니가 좋아했던 노래
‘명자’에 이어 기억에 오래 남는
또 하나의 무대를 선물한
박민수입니다.
https://youtu.be/2Bm-JKsCk70
◉다시 손태진의 이야기와
노래로 돌아갑니다.
결승 1차전 신곡 미션에서
손태진은 윤일상이 작사 작곡한
‘귀한 그대’를 불렀습니다.
달콤한 발라드풍의 트롯은
손태진의 따스하고 감미로운
목소리에 어울리는 노래입니다.
특유의 성악 트롯 창법을
분위기에 맞게
강약으로 조절하며
흡인력 있는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손태진표 로맨틱
세레나데라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작곡자인 윤일상은
기대 이상을 잘 불러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다만 작곡자가 자기 노래를
점수로 평가하는 모양은
조금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나만의 그대는
너무나도 아름다워’
결혼 축가로도 어울릴 것 같은
이 노래로 손태진은
결승 1차전 1.2라운드 합계
1위에 올랐습니다.
https://youtu.be/mdBqz_pJTWk
◉손태진은 오디션 초반에는
추가 합격으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등 출발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그의 성악 트롯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후반 레이스에서는
노래 점수는 거의 1, 2위를
다투며 우승 후보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레전드 미션 무대에서 부른
‘백만 송이 장미’였습니다.
이 노래를 부른 심수봉은
알려진 대로 손태진의
이모할머니입니다.
이야기하듯 편하게
이어가는 손태진의
‘백만 송이 장미’는
심수봉과 다르고
라트비아와 러시아의 원곡과도
다른 색다른 맛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https://youtu.be/padt0PUc87U
◉손태진은 5명씩 팀을 이룬
단체전 최강자전에서
이미자의 ‘타인’을 불러
최고점수를 받아 팀 성적 1위로
5명의 팀원 모두를 준결승에
진출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절절한 감성을 단계적으로
쏟아내 남다른 감동과
몰입감을 줬다는 평가를 받은
손태진의 정통 트롯 무대입니다.
https://youtu.be/gXC4IgwZs6Q
◉이틀 후면 ‘팬텀싱어
시즌4가 시작됩니다.
7년 전인 2016년,
28살의 손태진은 ‘팬텀싱어’
시즌1 무대에 처음 섰습니다.
그때 손태진은 김동률의
5집 수록곡 ‘오래된 노래’를
불렀습니다.
◉기교도 별로 없고
아마추어 느낌이 폴폴 나지만
가슴 한편을 울린 따뜻하고
부드러운 저음과
특이한 음색으로
당시 마이클 리 윤종신으로부터
크게 칭찬받았습니다.
손태진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된 무대입니다.
그때의 초심을 지금까지
잘 지켜온 손태진인 만큼
앞으로도 서두르지 않고
그 길을 찬찬히 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때의 무대를
가져옵니다.
https://youtu.be/5pkwxE4i5XQ
◉‘불타는 트롯맨’을 통한
손태진의 트롯 도전 성공은
‘미스터 트롯’을 통한
김호중의 성공에 이은
두 번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트롯은
결이 다르고
색깔도 다소 틀립니다.
베이스 바리톤인 손태진의
트롯은 섬세하고 좀 더
감성적입니다.
테너인 김호중의 트롯은
좀 더 힘이 있고
선이 굵은 편입니다.
그래도 각자의 색깔을
살려가는 방향으로 가다 보면
서로 만나는 지점도
생길 것 같습니다.‘
그때는 또 다른 시너지 효과도
날 수도 있을 겁니다.
◉두 개의 남성 트롯 오디션이
동시에 시작해서 하나는
끝이 나고 다른 하나는 곧
끝내려고 순서를 밟고 있습니다.
시끌벅적했던 두프로그램을
지켜보면서 얻은 건 역시
노래보다는 사람이 먼저라는
평범하고 간단한
메시지입니다. (배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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