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관객들과의 팽팽한 심리 싸움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 영리한 스릴러 [시크릿]은, 형사의 아내가 살인을 저질렀다면, 이라는 가정 아래 시작된다. 범인을 잡아야 할 형사가 범인을 은폐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이면에는 불행한 가족사가 깔려 있다. [시크릿]은 아주 정교하지는 않지만, 관객의 지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소재를 던져 놓고 두뇌 싸움을 시작한다. [세븐데이즈]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인 윤재구 감독은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지속되는 긴장감 속에서 인간미 넘치는 휴먼 스릴러를 만드는데 뛰어난 솜씨를 발휘한다.
김성열(차승원)은 강력반 형사다. 몇년전 그는 정부와 함께 술을 마신 후 자식을 차에 태우고 운전하다가, 정부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냈고 자식은 죽는 사고를 당했다. 성열의 아내 지연(송윤아)은 남편을 용서할 수 없다. 그 이후 부부 사이는 냉랭해진다. [시크릿]의 도입부는 형사 성열 부부의 차가운 모습을 보여 주면서, 한편으로는 살인 현장에 출동한 성열이 범인이 남긴 것으로 짐작되는 귀걸이와 옷의 단추를 발견하고 놀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자신의 부인 소지품이기 때문이다. 아들의 사고 이후 성열은 부인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고, 그 때문에 부인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지문이 부인의 묻어 있는 와인잔을 깨트리고 몰래 귀걸이와 단추를 주워서 보관한다.
[시크릿]의 내러티브는 성열에게 복합적 갈등을 부여하는데, 우선 경찰 조직 내부에 성열과 각을 세우는 동료 최형사(박원상)를 등장시킨다. 최형사는 2년반전 성열의 증언으로 옷을 벗었다가 최근에 복직했다. 최형사의 사적 감정이 실린 과잉행위로 범인이 죽었기 때문이다. 성열은 경찰대학 동기이자 동료인 최형사를 위해 정당방위라 주장하지 않고 냉정하게, 자기가 목격한 사실대로 증언해서 동료의 옷을 벗게 만들었다. 최형사는 사사건건 성열과 부딪치다가 살인사건의 범인이 성열의 아내일지 모른다는 단서를 잡고 매섭게 성열을 몰아부친다.
한편 성열의 부인 소지품이 발견된 범죄현장에서 살해된 사람은, 범죄조직 보스인 재칼의 동생이다. 재칼(류승룡)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찰보다 먼저 범인을 잡아 응징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재칼은 범인이 사건을 담당한 김성열 형사의 부인일지 모른다는 단서를 잡고 성열과 각을 세우며 대치한다. [시크릿]에서 가장 돋보이는 배우는 류승용이다. 그는 차가우면서도 집요하고 잔인한 재칼 캐릭터를 섬찟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성열과 각을 세우는 사람은, 성열의 부인 지연이다. 지연은 성열이 자신 몰래 바람을 피고 있었고 그 결과 자신의 자식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성열과 부인 사이의 차가운 기운과 날카로운 대립각은 [시크릿]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그러나 이 관계는 마지막에 가서야 완전하게 베일을 벗는다.
마지막으로 숨겨진 히든 카드가 정체불명의 목소리다. 성열에게 사건과 관련된 단서를 계속해서 흘려주는 전화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이렇게 [시크릿]은 네 가지 복잡한 갈등 속에서 전개되면서 파편적으로 흩어진 조각들이 마지막에 끼워 맞춰지며 이야기의 전체적인 윤각이 제대로 드러나게 구성되어 있따. 시나리오는 매우 영리하지만, 그것들이 단선적이지 않고 복합적이기 때문에 대중적 파괴력은 [세븐 데이즈]에 비해 떨어진다. 하지만 훨씬 더 사려 깊은 대본이고 공들인 작품이다.
형사가 범인을 은폐하려는 아이러니컬한 모습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시크릿]의 승부수다. 그 핵심에 부인과의 갈등이 숨어 있다. 따라서 [시크릿]의 모든 에너지는 형사의 부인에게서 나온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크릿]에서 형사의 부인 역을 맡은 송윤아는 그 깊이 있는 떨림을 섬세하게 표현하는데 힘이 부친다. 미스 캐스팅은 형사 역의 차승원도 마찬가지다. 차승원은 김성열 형사의 특징적인 캐릭터를 잡지 못하고 사건의 큰 덩이리 속에 함몰되어 버린다. [세븐데이즈]에서는 자식의 유괴범과 싸우는 어머니의 심리 대결이라는 단선적 구조였지만, [시크릿]은 다층적 시선의 복잡한 구성이 정교하게 장치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영화적 에너지의 원천이 되어야 할 형사와 형사의 아내가 미스 캐스팅으로 흔들림으로써, 섬세한 파장을 불러 일으키는데는 실패하고 있다. 하지만 윤재구 감독은, 형사 개인의 인간적 치부를 드러내면서 부부의 사랑이라는 코드를 삽입하여 관객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