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 국무회의에서 '가짜뉴스는 반란 행위’라고 발언했던 이재명 대통령이 정작 그 ‘반란’의 주역이 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10일 오전, 이 대통령이 엑스(X·옛 트위터)에 공유한 팔레스타인 관련 영상 논란은 국제망신으로 비화됐다.
대통령 공식 X계정의 황당한 ‘인용알티’ 이 대통령이 공유한 흐릿한 영상은 엑스 이용자 @Jvnior가 게시한 것으로 “라이브, 이스라엘군이 어린이를 고문한 뒤 건물 옥상에서 던졌다"는 충격적인 설명을 달고 있었다. 이 대통령은 해당 영상을 공유하며 “이게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어떤 조치가 있었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우리가 문제삼는 위안부 강제, 유태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라는 설명을 추가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공유한 영상의 설명은 가짜뉴스에 가까운 ‘오정보’ 였다. 해당 영상은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시간 상황이 아니라, 약 1년 반 전인 2024년 8월 요르단강 서안지구 제닌 인근 카바티야 마을에서 촬영된 것으로 이미 SNS 상에서 널리 공유된 영상이었다. 영상 속 인물들은 '어린이'가 아니었으며, '살아있는 상태에서 고문 후 던져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 외신(NBC, 워싱턴 포스트, 로이터 등) 보도에 따르면, 교전 중 사살된 팔레스타인 무장 대원들의 시신을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붕 아래로 밀어 떨어뜨린 사건이 일어나 외교문제가 되었다. 당시 미국 백악관도 이 행위를 "혐오스럽다"고 비판했으며, 이스라엘 당국 역시 내부 조사를 통해 해당 병사들의 행위가 군의 가치에 어긋난다고 결론짓고 징계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 존 커비의 반응을 보도한 2024년 당시 워싱턴 포스트 기사 일부. 커비 대변인은 해당 영상이 '매우 충격적' 이며 '군인으로서 혐오스럽고 지독한 행위를 보여주는 것' 이라고 지적했다. (사진: 워싱턴 포스트 2024년 9월 20일 기사 'Israeli forces shove at least four men off West Bank roof, videos show')
충격에 빠진 타임라인과 더 충격적인 대통령의 설명
대통령의 게시물은 순식간에 알티를 타며 확산되었고 엑스 이용자들은 대통령이 잘못된 정보를 재게시한 경솔함에 더해 외교적 조치(‘알아봐야겠습니다’) 까지 언급했다며 충격에 빠졌다. 그 와중에도 몇몇 대통령 지지자들은 ‘역시, 해외 인권상황에도 관심을 갖는 인권변호사 대통령’, '이런 메시지는 김대중 대통령도 못 내놓은 차원의 메시지', ‘내가 그동안 이재명을 잘못봤다’ 며 선의로 해석했지만 ‘경솔한 처신’, ‘대통령이 어떻게 기본적인 팩트체크를 안 하나’ 같은 비판이 이어졌다.
조금 다행이라면....... (사진: 이재명 대통령 X) 논란이 커지자 이 대통령은 원 트윗 게시 4시간 만인 6시 경, 추가로 글을 올려 설명에 나섰다. "영상은 2024년 9월 발생한 실제 상황"이라고 설명한 대통령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시신이었다는 점이 조금 다행"이라면서도, 시신 유기 역시 국제법 위반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자신이 썼던 게시물이 평화와 인권의 메시지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설명글 역시 다른 관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아무리 시신에 대해 벌어진 일이었다고 해도 참혹한 상황에 대해 ‘다행’이라는 표현은 경솔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국제망신은 자동번역을 타고
마침 4월 9일(한국시간) 부터 전면 적용된 엑스의 그록(Grok) AI 자동번역 기능이 이재명 대통령의 게시물을 세계 각국의 언어로 전파하며 국제적 이슈로 크게 키웠다. 외신 기자들과 해외 활동가들은 대통령의 정보 처리 능력, 경솔한 에스엔에스 사용을 비판했다. 24만 여명의 팔로워를 가진, 반중 성향의 호주의 정치 활동가 @Drew Pavlou 는 이재명 대통령의 해당 트윗을 인용알티 하며 ‘This is who the South Korean President decided to boost on Twitter today.’ (이것이(혹은 이 사람이) 바로 오늘 한국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띄워주기로(홍보하기로) 결정한 대상이다) 라고 꼬집으며 하나의 이미지를 첨부했다. 그 이미지는 대통령이 인용알티한 @Jvnior 가 과거에 게시한 이미지로 유럽 지도에 기도하는 이슬람 교도의 모양이 그려진 '악의적인 밈(Meme, 온라인 혐오, 유희용 콘텐츠)' 이었다.
호주의 정치 활동가 드류 파블로우의 X 계정. (사진: 드류 파블로우 X)
이 외에도 여러 사용자들이 지적했듯, 대통령이 인용한 원출처 계정은 평소 이스라엘과 여러 계층에 대한 음모론을 주로 게시해왔다. 한 때 G7물망에 올랐던, 세계 경제규모 10위권 선진국 대통령의 공식 메시지에 인종적 혐오를 퍼뜨리는 계정이 공유된 것이다. 물 들어온 김에 노 저은 것일까, @Jvnior 계정은 곧장 이재명 대통령 계정에 ‘우리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취지의, 장문의 감사 메시지를 보냈다. 국제 망신 사건의 정점을 찍는 메시지였다.
경솔한 판단력, 마비된 공적 검증 시스템
대통령의 메시지는 그것이 연설이든 SNS든 똑같은 무게를 갖는다. 대통령의 공식계정에 노출되는 메시지는 청와대 홍보수석실, 외교부, 국정원 등 여러 기관의 다단계 스크리닝을 거쳐 나가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전쟁이나 외교 분쟁 같은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는 단어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골라야 한다. 그런데, 금요일 후에 갑작스레 전해진 메시지에서는 당연히 따라야 할 공적 검증이나 팩트체크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외교나 소통의 전문성이 있는 보좌진이 미리 개입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초유의 대형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그 어떤 보좌진도 그런 내용의 계정을 신뢰할 리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스마트폰을 들고 혐오 계정의 글을 직접 인용알티 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결국 이번 사태는 이 나라 대통령의 공식 소통 채널이 대통령 개인의 사적 영역, 감정 해소 수단으로 전락했고 전혀 관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통령은 대체 왜 그런 가짜뉴스를 알티했을까? 아마도 'Live footage' 라는 헤드라인에 낚여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이 내용을 알아봐야겠다는 의무감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불과 며칠 전 만해도 가짜뉴스가 반란이라던 대통령이 말이다.
"시신이라 조금 다행" 이라는 지도자의 언어
대통령의 대응도 부적절했다. '실수로 가짜뉴스 계정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공유했다, 죄송하다' 라고 해야 할 문제를 크게 키웠다. 해당 트윗이 가짜뉴스임이 드러나자 이 대통령은 이후 트윗에서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시신이라) 조금 다행"이라는 표현을 썼다. 놀랍고, 또 충격적인 표현이다. 소위 ‘인권변호사’ 임을 경력으로 내세운 정치인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든 감수성이다. 대통령이 부연했다시피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학대와 고문도 범죄지만, 시신을 유기하고 모독하는 행위 역시 국제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범죄 행위다. 그럼에도 자신의 오류를 무마하기 위해 비극의 경중을 따지며 '시신이라 다행'이라는 수식어를 굳이 붙인 것은, 영상 속 피해자들에 대한 예의를 잊은 경솔한 처사다. "죽은 뒤에 던져졌으니 괜찮다"는 식의 설명은 대체 무엇을 설명하기 위함일까.
가짜뉴스에 흔들리는 한국 대통령, 외교는? 국격은?
야당은 한 목소리로 이 대통령의 메시지를 비판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의 해당 SNS를 공유한 뒤 “혹시 해킹? 출처도, 사실관계도 불분명한 영상인데,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이 전쟁 국면에서 사실상 이란 편?”이라고 지적했다. 성일종 국회 국방위원장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직접 가짜뉴스를 퍼 나르며 다른 나라를 악마화했으니 이 심각한 외교적 문제를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라며 “도대체 청와대 참모들은 뭐 하고 있느냐. 이게 대한민국 청와대 수준이냐”고 비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유튜브 이상한 것 보다가 망가진 사람을 좀 안다. 중차대한 외교·안보 사안은 본인이 뽑고 세금으로 월급 받는 참모들과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다뤄달라”고 꼬집었다.
이 사건을 가장 먼저 접한 X 계정 사용자들은 이번 사건이 한국과 타국간의 외교적 분쟁이 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국가 원수가 공식 채널을 통해 특정 국가의 군대를 '나치'나 '일제 강점기'에 비유하고 사실관계가 틀린 내용을 공유한 것은 이스라엘 정부 입장에서 묵과하기 어려운 심각한 외교적 모욕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지적됐다. 특히 이 대통령이 인용한 소스가 유명한 가짜뉴스, 혐오 조장 계정이었다는 점, 이후 설명에서 "시신이라 다행"이라는 식의 부적절한 해명을 내놓은 것은 한국정부의 공적 시스템과 외교적 신뢰도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행위라는 점에서 특히 뼈아픈 부분이다.
주한미국대사관. (사진: 연합뉴스)
각국에 주재하는 모든 대사관은 기본적인 업무로서 주재국의 여론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미국, 이스라엘 같은 정보강국들은 한국 사회 곳곳에 매우 촘촘한 정보망을 갖추고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주요인사들의 행보와 메시지를 모니터링 하고 있다. SNS에 대한 모니터링은 거의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특이사항은 바로 본국 지도부에 보고되며 이런 자료들은 향후 정상외교에서 상대국에 대한 기본자료로 활용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이번 X 메시지 사고는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지도자가 '선동적인 허위 정보에 휘둘리는 불안정한 파트너'라는 인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형사고다. 당장은 이스라엘이나 미국에서 공식 적으로는 아무런 항의나 반응이 없을 수 있다. 연설이나 공식문서가 아니라 SNS 메시지이기 때문에 '해프닝'으로 지나가는 것 처럼(청와대도 그러기만을 바랄 것이다) 보일 수도 있다.
가짜뉴스? 국민 겁박하기 전에...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위치는 그 영향력이 너무나 크고, 또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사고는 무마되지 않고 대한민국의 국가 신뢰도에 어떻게든 영향을 끼칠 것이다. 외신과 해외 각국의 활동가, 정치인, 인플루언서들에게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은 이미 ‘가짜뉴스 계정에 선동된 대통령’ 이다. 이런 낙인이 초래할 결과는 어떨까. 국제무대에서의 발언권 약화? 중동문제 악화 시 불이익? 외교무대에서의 소통 오류? 예측할 수 없는 암울한 가능성이 너무나 많다.
대통령의 SNS는 사적인 일기장이 아니다. 그 한마디가 곧 대한민국의 외교적 입장이며 국격의 척도다. 이번 사태는 검증 없는 공적 소통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내로남불'식 가짜뉴스 잣대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불과 며칠 전에 '가짜뉴스 엄단'을 외쳤다. 대통령 발언 이틀만에 경찰청에는 '가짜뉴스 분석팀' 이 신설됐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민에게 엄포를 놓기 전에, 자신의 스마트폰 속에 갇힌 확증편향부터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고 국민을 부끄럽게 만든 이번 '디지털 외교 참사'에 대해, 대통령은 "(시신이라) 조금 다행"이라는 황당한 변명대신 진심 어린 사과로 답해야 할 것이다.
이건 어떨까? 대통령이 당분간 X를 좀 덜 보고 휴대폰을 그 손에서 좀 내려놓은 다음, 위기에 빠진 우리 경제와 무너져가는 민주주의, 법치주의 같은 ‘진짜뉴스’들에 진지하게 집중해 보는 것도 우리 모두와, 또 세계를 위해 좋은 일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