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 월간 미르
2024년 3월호
Vol.404
국악관현악과 합창의 만남달다 / 미리보기 1
국립국악관현악단 <한국의 숨결>
국악관현악과 합창의 만남
만물이 생동하는 봄 3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한국의 숨결’을 노래한다.
한국 창작 음악을 이끌고 있는 작곡가 이영조, 우효원이 국악관현악과 합창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색다른 무대로 관객을 초대한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무대는 늘 새로운 도전으로 가득하다. 로봇 지휘자와의 공연처럼 세상을 놀라게 하는 과감한 도전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도전의 본질은 국악관현악을 기본 소재로 삼아 다양한 방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적 시도에 있다. 3월 2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일 관현악시리즈Ⅲ <한국의 숨결>은 ‘국악관현악’과 서양음악의 성악 양식인 ‘합창’의 만남을 시도한다. 2020년 초연한 ‘시조 칸타타’(작곡 이영조), 2021년 초연한 ‘천년의 노래, 리버스(REBIRTH)’(작곡 우효원)가 그 주인공이다.
두 곡은 한국 음악계를 대표하는 두 작곡가 이영조(81), 우효원(50)의 작품이다. 이들에게도 새로운 도전과 같은 작업이었다. 서양음악 전공자로 국악관현악과 합창이 어우러진 작품을 창작하는 일은 흔치 않다. 두 작곡가 모두 공들여 만든 작품을 다시 선보이는 이번 무대의 의미가 남다르다. 창작 음악은 끊임없는 연주 기회를 얻을 때 더욱 발전하고 진화하기 때문이다. KBS국악관현악단 상임 지휘자 박상후(40)의 새로운 해석이 더해질 이번 무대는 국립합창단과 소프라노 이유라, 테너 존 노, 정가 보컬리스트 하윤주가 함께한다.
전통의 진솔한 ‘맛’과 논리적인 서양 악곡의 이색 만남
“창문을 열고 들판을 바라보니
어느새 푸르른 들풀 창 밑에 가득 찼네
오호라 봄일지고.”
‘시조 칸타타’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2020년 10월 2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관현악단 68명과 합창단 80명을 비롯해 150여 명의 연주자가 함께한 웅장한 무대였다. 이영조 작곡가는 서양음악을 전공했지만, 국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 창작 음악 발전을 이끌어온 음악계의 ‘거목’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으로부터 합창과 함께할 수 있는 악곡 작곡을 위촉받은 그는 우리 고유의 정형시이자 전통음악의 한 갈래인 시조와 독창·중창·합창으로 이뤄진 서양 고전음악 ‘칸타타’를 재료로 삼아 작곡에 나섰다.
“한국 전통음악에는 깊은 감성과 예술성이 있습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으로부터 이 작품을 위촉받았을 때, 독창·중창은 물론 소프라노와 테너, 그리고 우리의 정가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구성을 떠올렸습니다. ‘시조 칸타타’는 우리만의 진솔한 맛을 서양의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악곡 형식의 그릇으로 담아낸 곡입니다.”
‘시조 칸타타’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주제 아래 자연·사랑·효를 노래한 시조를 가사로 삼아 곡을 구성했다. 초연은 60분에 달했는데, 이번 공연에선 이를 30분 길이로 축약해 무대에 올린다. ‘시조 칸타타’를 통해 이영조 작곡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자연’의 소중함이다. 이영조 작곡가는 “우리는 자연에서 크고 깊은 감동과 감탄을 받고 누렸으며, 자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침도 얻었다”라며 “이 작품은 낡은 옛이야기가 아니라, 첨단 기기들과 함께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양식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령의 한국 문화론, ‘한국적 합창음악’ 재탄생
“아리랑 부를 때 ‘너와 나’ 되네,
쓰리랑 부를 때 ‘우리’가 되네
환희의 노래 불러라, 기쁨의 춤을 추어라
아리랑 쓰리랑 다 함께 부르자 아리아리 아라리요.”
‘천년의 노래, 리버스’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2021년 9월 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재개관 기념 공연에서 초연한 곡이다. 63인조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59인을 포함해 120여 명이 만든 대형 무대였다. ‘한국적 합창음악’ 전문 작곡가로 불리는 우효원 작곡가의 작품이다. 우효원 작곡가는 지휘자 윤학원과 함께 국제 무대에 발표할 작품을 다수 작업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우효원 작곡가는 “우리가 잘하는 것, 나만의 음악을 찾아가다 보니 한국적 소재가 나의 옷처럼 입혀진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 곡은 문학평론가이자 언론인, 시인이었으며 ‘시대의 석학’이었던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작사에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이어령의 한국 문화론을 담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한국인의 신화』 『뿌리를 찾는 노래』 『한국인 이야기』 등에서 발췌한 내용을 가사로 엮었다. 이어령이 한국인의 사상적 원형으로 지목한 단군 설화 속 ‘신시(神市)’, 삶의 자세로 강조한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등이 국악관현악과 함께 어우러져 깊은 감동을 전한다. 우효원 작곡가는 “이어령 선생님의 깊은 성찰의 언어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데 많은 한계가 있었지만, 그 덕분에 더욱 단단하게 음악을 끌어갈 수 있었다”며 “음악과 함께 가사의 내용과 깊이를 봐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어령 선생님의 놀라운 지식과 창의적인 발상도 놀라웠지만, 선생님의 지위와 나이를 잊게 할 정도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투병 중에도 열정적으로 웃으시며 몇 시간씩 작품 이야기를 하셨죠. 초연 이후 4개월 뒤 작고하셨을 때는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깊은 애정으로 칭찬해 주셨고, 해외 공연까지 이야기하셨는데요. 이 곡이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 마지막 작품이 됐습니다.”
‘우리 음악’의 폭넓은 스펙트럼 확인할 무대
이번 공연의 중요한 관람 포인트는 단연 두 작곡가다. 이들은 한국 창작 음악을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밀어오며 동시대의 ‘우리 음악’을 만들어왔다. 이영조 작곡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오페라 <처용>(1987)을 작곡하는 등 ‘우리말’의 음악화에 대한 고민을 이어왔다. 우효원 작곡가는 인천시립합창단 전임 작곡가, 국립합창단 전속 작곡가로 활약하며 ‘한국적 합창음악’을 국내외로 알려왔다. 이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국악관현악 합창곡’은 국악관현악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바로미터다. 지금 시대의 ‘우리 음악’이 지닌 폭넓은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다.
두 작곡가에게 ‘국악관현악’은 더이상 낯설지 않다. 이영조 작곡가는 “서양음악은 악기마다 각각의 역할이 나뉘어 있지만 국악기는 그렇지 않다”며 “국악관현악은 꾸준한 악기 개량 등을 통해 현재에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효원 작곡가는 “국악관현악을 작곡하면서 국악기의 다채로운 매력을 매번 느끼며 공부한다”며 “잠재력이 많은 국악관현악을 계속해서 연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글. 장병호
『이데일리』 문화부 기자. 어쩌다 보니 공연을 계속 담당하고 있다.
공연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종종 받는다. 공연보다 ‘공연계’에 대한 애정으로 본업에 임하고 있다
국립극장> 2024년 3월호 (ntok.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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