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조 왕건 <제 46회>
씬 1 송악 황궁 외경 (밤)
곳곳에 횃불이 일렁거리고 번을 도는 군사들이 오가고 있다. 카메라 대전외경을 판하면...
궁예 (E) 지금 뭐라고 하시었나...? 중원이라....?
씬 2 동 대전 복도
내관들과 제조상궁들이 대기해 있다.
궁예 (E) 중원에 길이 있다...?
씬 3 동 대전
궁예가 아지태를 빤히 보고 있다. 이들 앞에 술상이 놓여있다.
궁예 무슨 길을 말하는 것이오...?
아지태 사실상 지금 중원엔 주인이 없사옵니다. 한때의 주인이었던 당나라가 지금은 이미 그 기운을 잃어 곳곳에서 반란과 저항에 부딪히고 있사옵니다.
궁예 그 얘기는 알고 있었소이다.
아지태 뿐만 아니라... 대 고려의 후신이었던 저 발해국 조차도 이미 중앙정부가 흔들려 광활한 영토가 곳곳이 균열되고 있사옵니다.
궁예 그 얘기도 들었소이다, 안타까운 얘기야.... 그 넓은 제국을.... 어떻게 세웠는가 말이야...
아지태 당나라가 조각나고 있고 발해가 균열되고 있사옵니다. 다시 말씀드리오면 온 우주에 중심이라는 저 중원대륙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옵니다.
궁예 맞아.... 그런 셈이지..
아지태 신라는 천년의 세월동안 저 당나라의 벽을 뚫지 못하고 예속되어 왔사옵니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신라는 천년을 버텼고 당나라와 그 이전에 중원을 지배했던 여러 나라들은 채 이삼백 년도 버티지 못하고 그 주인자리를 놓았사옵니다.
궁예 (더욱 이끌리듯) 그랬지... 암 그랬어...
아지태 말하자면 중원의 주인은 누구도 될 수가 있다. 이러한 논리가 성립되옵니다, 폐하.
궁예 ........ (더욱 고무되어 간다) 그렇지. 그랬어...
아지태 지금 이 시대에 저 흔들리는 대륙의 주인이 되고자 수많은 영웅들이 창궐하여 저마다 말을 몰아 달리고 있사옵니다. 폐하께서도 그 영웅들 중 한분이시옵니다.
궁예 ....... (감격) 하지만.. 이보시오, 아학사..?
아지태 예, 폐하.
궁예 나는 겨우 후삼국시대에 옛고구려의 작은 영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오. 대륙의 영웅들과 비교하다니, 당치않소.
아지태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폐하. 어찌 그리 나약한 말씀을 하시옵니까...? 폐하는 능히 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발해땅을 지나시고 옛 당나라 땅을 모두 도모하시어 당당히 중원의 패자가 되실수 있는 분이시옵니다.
궁예 .........
아지태 그러자면 먼저 웅대한 뜻과 의지를 대내외에 보이셔야 하옵니다.
궁예 어떻게 말인가...?
아지태 군신제우(君臣際遇)라 했사옵니다. 폐하와 소신의 뜻이 통했사옵니다. 하오면 폐하께 먼저 청주에서 말씀 올렸던 신의 이야기를 상기해 주시오소서.
궁예 청주에서라...? 대 동방국이라는 그 이야기 말인가..?
아지태 바로 보셨사옵니다. 폐하는 고려라는 틀 속에 갇혀 계셔서는 아니되옵니다. 그것은 이미 옛것이옵니다.
궁예 그 때문에 이미 신료들에게 이 일을 논의하라 하였소이다.
아지태 잘 하셨사옵니다. 낡은 옷을 벗지 않고서는 새 옷을 입으실 수가 없사옵니다.
궁예 좋은 생각이 있으시오...? 말해보오.
아지태 좋은 생각이 있사옵니다
궁예 있어...?
아지태 그러하옵니다. 통째로 나라의 모습을 바꾸는 일이옵니다.
궁예 .......?
씬 4 내원
종간이 은부를 여전히 바라보고 있다. 촛불이 휘항하게 타오르고 있다.
은부 아직도 아지태가 폐하의 대전에 들어있다 하옵니다.
종간 대체 무슨 요언을 그리 오래도록 하고 있단 말인가..? 낮에 대전에 들어갔는데.. 이 야심한 시간까지 대체 무슨 이야기를......
은부 보통 요물이 아닌 것 같사옵니다. 이 얼마나 시간이 오래 지났사옵니까..? 술상도 들여가고 가끔씩 웃음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하옵니다.
종간 (아픈 듯 눈 감으며) 그 이야기일 걸세.
은부 예....? 무슨..... 이야기 말이옵니까..?
종간 폐하께서 하신 그 이야기....
씬 5 다시 대전
궁예가 뚫어져라 아지태를 보고 있다.
궁예 말해보시게, 아학사. 좋은 생각이란 무엇인가..?
아지태 마하진단이옵니다.
궁예 마하진단...?
아지태 국호를 마진이라 하면 어떻겠사옵니까?
궁예 마진....?
아지태 그러하옵니다. 마하는 한없이 크다는 뜻이옵고, 진단은 동방국을 가리키는 말이옵니다. 그것을 줄여서 마진이라 하시오소서. 즉 대동방국이라는 뜻이옵니다.
궁예 마진이라.. 대동방국이라.. 참으로 뜻이 크고 웅대한 국호로구려.. 허허허... 아주 마음에 드오. 마진...마진....
아지태 진정한 미륵의 제국을 이제부터 여시는 것이옵니다. 고려는 폐하의 제국이 아니라 옛 고구려의 망령이옵니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시오소서. 국호 뿐 아니라 고구려의 부활을 지지하는 모든 세력과도 거리를 두시오소서.
궁예 (놀라서) 뭐라...? 짐의 신료들까지도 멀리하라는 것이오..?
아지태 그렇사옵니다. 백성들까지도 바꾸어야 하옵니다.
궁예 백성들까지...?
아지태 예, 폐하. 이곳은 고구려의 사람들로 가득차 있사옵니다. 고구려도 아니요, 신라도 아니요. 새로운 폐하의 백성이 요구되옵니다.
궁예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닌가..?
아지태 어려울 것 하나도 없사옵니다. 청주를 잊으셨사옵니까..?
궁예 청주...?
아지태 도읍을 옮기시오소서. 그리고 청주의 백성들을 모두 옮겨와 도성을 채우시오소서. 새 도성에 새 황궁, 그리고 새 백성이 폐하의 지지기반이 될 것이옵니다.
궁예 ..........백성들이 고단하지 않을까?
아지태 진시황제는 만리장성도 쌓았사옵니다. 나라의 큰 일을 위해서는 다소간의 불편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옵니다.
궁예 .........
아지태 하오나, 폐하, 서두르실 것은 없사옵니다. 자칫 잘못하면 저항하고 불만을 품는 무리들이 벌떼처럼 일어날 것이옵니다.
궁예 (끄덕인다) 옳은 말이야.. 그리 될 수도 있지.
아지태 모든 것은 때와 시기가 있사옵니다. 그 점은 신에게 맡겨 주시오소서. 새로운 제국, 마진제국의 앞날을 여는 때를 신이 말씀하여 올릴 것이옵니다.
궁예 마진이라.... 마진이라.......
감탄같은 궁예의 그 진지한 표정에서... 디졸브...
씬 6 왕건의 집 외경
이치 (E) 허허.. 무에 그리 오래 생각하시옵니까?
씬 7 동 집 안
왕건이 바둑판을 보며 뭔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이치 장군?
왕건 (생각에서 깨어나며) ....?
이치 허허허.. 장고 끝에 악수라 하였사옵니다. 어서 두시오소서.
왕건 ......(바둑판을 다시금 건성으로 들여다보고는) 아무래도 이 사람이 진 것 같소이다.
이치 지시다니요? 아직 전투가 한창이 아니옵니까? 대마가 달리고 있사옵니다.
왕건 아니오, 끝난 바둑이올시다. 허허허....
이치 .....(사이) 장군? 아직도 폐하께서 내주신 그 숙제에 빠져 계시옵니까..?
왕건 허허허.... 사실 그렇소이다.
이치 신라에서도 또 백제에서도 난다하는 인걸들이 장군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어떻게 고려를 무너뜨릴 것인가...? 단숨에 기선을 제압하고....
왕건 (끄덕이며) 그렇겠지요.
이치 (바둑판을 보며) 때때로 바둑판은 전쟁을 연상케 하옵니다. 아주 적절한 비유가 될 수 있습지요. 모든 것이 이 바둑판처럼 선명하게 보인다면 그리 어려울 것이 없을 터인데..... 아니 그렇사옵니까...?
왕건 바둑판처럼 이라....?
이치 그렇지 않사옵니까...? 가령, 지금처럼 장군께서 이쪽 대마를 잘 살려나가시다가 갑자기 축에서 덜미를 잡히셨단 말이옵니다?
왕건 ......?
이치 뭐, 전쟁이 그렇게 쉽게 보이는 것은 아니겠습니다마는... 적에 헛점이나 급소를 안다면 일이 한결 쉬워지지 않을까... 생각이 되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소장도 모르옵니다마는...하하하.....
왕건이 이치의 말을 듣고 있다가 뭔가 번쩍 한다. 그리고 이치를 보고 있다.
이치 왜 그렇게 보시옵니까, 장군..?
왕건 우리의 주 적이 누구라고 보시오..?
이치 그야, 지금으로서는 신라라기보다 백제가 급하지 않겠사옵니까?
왕건 그렇다면... 백제의 급소라면 어디가 될까..?
이치 하하하... 그걸 소인이 알 수 있다면 오늘날 이 자리에 있겠사옵니까? 소인은 다만 한동안 장군을 뫼시고 도우라는 영을 받자와 왔을 뿐이옵니다. 그저 아는 것이라고는 물 밖에 없을 뿐이옵니다.
왕건 물이라.... ?
이치 소인은 금강을 젖줄 삼아 살아왔사옵니다. 장군께서는 바다를 터전 삼고 오늘에 이르시지 않았사옵니까..? 우리는 그 점이 같은 것 같사옵니다, 하하하... 그래서 폐하께서 소인을 보내신 것 같구요.
왕건은 더 이상 대꾸가 없다. 뭔가가 자꾸 생각이 짚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왕건을 이치가 이상한 듯 보고 있다.
왕건 우리가 아는 것은 물이지... 강과 바다... 강과 바다..... 그래..
이치 ........
왕건 우리는 바다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그 바닷길로는 신라도 백제도 모두 길이 열려있지. 그렇다면... 이보시오, 이장군..?
이치 예, 장군.
왕건 그렇다면, 백제의 급소가 어디쯤 될까..? 바닷길로 갈 수 있는 백제의 급소 말이요?
이치 예...?
왕건 집안 사람들을 좀 만나 보아야 되겠소이다. 함께 가시겠소이까?
이치 아니, 장군...
뻥해서 보는 이치의 얼굴에서....
씬 8 왕건의 집/회의장
왕건을 중심으로 왕평달과 왕식렴, 왕신, 두 사부, 세 의형제, 그리고 이치가 모여 있다.
왕건 여기 이치 장군이 아주 중요한 생각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모두들 ........ ?
이치 아, 제가 무슨.... ?
왕건 우리의 주 적은 백제이옵니다. 백제의 급소가 어디인가를 아는 것은 오래도록 제가 고민해온 해답이 될 것 같습니다.... 그건 물입니다. 가장 우리가 잘 다룰 수 있는 것이지요.
모두들 .........
왕평달 백제와 우리가 연결될 수 있는 바닷길이라면 그것은 서남해일 것이야. 견훤왕이 거기에서 일어났고 유일하게 백제가 안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
왕건 그렇습니다. 그점을 여기 이치 장군이 바둑판에서 깨우쳐 주었습니다.
이치 아, 아니올습니다. 허허, 이거야 어디....
왕식렴 서남해의 상징은 금성이옵니다.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고 백제가 오월국이나 일본국 등과 교역을 하는 유일한 포구이기도 하옵니다. 그 서남해 일대를 능창이라는 장수가 맡아 지키고 있사옵니다. 일명 수달이라고 불리우는 사람이지요.
박술희 수달이라구요?
왕식렴 그렇습니다. 물에서는 귀신같은 자라 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박술희 하하하.. 거 별명 한 번 재밌습니다 그려.. 수달이라.. 하하하..
유금필이 헛기침을 한다. 조용히 하라는 것이다.
박술희 ........(웃다가 말고 눈치를 본다)
왕평달 서남해라면 백제의 수군이 대거 몰려있는 곳이야. 만만치가 않을 터인데....
왕건 지금 백제군의 주력군이 어느 쪽에 나가 있는가...?
유금필 백제의 군사력은 동으로는 남해, 함안, 고성 쪽에 집결되어 있고 위로는 금강을 경계로 하고 있사옵니다.
능산 곧 추수가 끝나면 백제군의 대 이동이 있을 것이라는 첩보가 있사옵니다. 지난번에 대야성 전투에서 참패한 이후, 고성과 함안 쪽의 병력을 동쪽으로 발진시켜 김해와 동래, 양주의 해안로를 거쳐 신라의 서라벌을 도모하려는 계책인 듯 하옵니다.
왕건 그렇겠지... 그렇다면 병력이 대규모가 필요할 것인데...
유금필 그러하옵니다. 상당한 대군이 움직여야 할 것이옵니다.
왕건 그렇다면 백제가 군사를 일으킨 연후에 우리가 서남해를 친다면 아주 적기일 것인데....
이치 그러하옵니다, 장군. 그리 될 수만 있다면 일단 전면전을 피할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변사부 하지만, 주군....
모두들 ........? (변사부 보며)
변사부 수군을 이끌고 가 상륙전을 펼치는 것이옵니다. 상당히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옵니다.
마사부 무모할 수도 있습니다. 적은 육지에 있고 우리는 바다에 있사옵니다. 가능하겠사옵니까..?
왕식렴 수달이라는 장군은 용맹하기가 백제국 제일이라 들었사옵니다. 또한 바다 사정에 밝고 따르는 부하가 많은데 우리가 쉽게 저들을 상대할 수 있겠사옵니까..?
왕건 ......... 물론 쉬운 일은 아니야..... 어찌한다...?
능산 이제부터라도 세작을 띄워 그곳 사정을 좀 더 세밀히 살펴 보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왕평달 옳은 말일세. 적을 모르고서야 어찌 싸움에 임할 수 가 있겠는가..?
이치 감히 나설 일은 아니옵니다마는...수군을 움직여 상륙작전을 펴는 일은 수천의 군사와 수백 척의 전함이 필요하옵니다. 그 일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계획조차 무의미하지 않겠사옵니까...?
왕건 맞소이다. 좀 무모한 것 같구려. 생각은 좋지만... 현실이 따르지를 않아요. 아는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어찌한다...?
왕건은 거푸 긴 한숨을 내쉬고 있다. 답답한 것이다. 그런 왕건을 왕평달이 보다가 넌지시 한마디 한다.
왕평달 서남해라면.... 군사들의 첩보보다는 장사꾼들이 더 사정이 빨라...
왕건 ..........?
왕평달 그동안 식렴이도 그 일 ?문에 여러가지 많은 첩보들을 수집해 왔지마는... 우리보다 더 밝은 사람이 하나 있어.
모두들 ......?
왕평달 정주의 유장자야...
왕건 예......?
왕평달 그쪽과 소금을 거래하고 있거든. 정주의 유장자는 지금으로서는 우리 송악보다도 더 커...규모가 말일세... 그 사람밖에는 없어.
왕건 ..........? 유장자...?
씬 9 박지윤의 집 외경(밤)
대문이 열리고 유장자와 장자 1,2가 들어선다.
하인 어서들 오시오소서.
유장자 안에 계시는가?
하인 예.. 벌써부터 기다리고 계시옵니다요.
유장자 가세..
장자들이 하인의 인도로 사랑으로 향한다.
씬 10 동 사랑
장자들이 안으로 들어선다. 박지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맞는다. 박수문, 수경 형제도 일어나 예를 갖춘다.
박지윤 어서들 오십시오.
수문 형제 어서 오시오소서.
박지윤 자, 들 앉으시지요.
유장자 얼마 전에 광평성에서 뵈었는데 어인 일이시오이까?
박지윤 긴히 의논을 모아야 할 일이 있어서요. 자, 차나 한잔씩들 하시면서 이야기하십시다. 어흠...
박지윤이 그들 앞에 놓여진 찻잔에 차를 따른다. 유장자가 그런 박지윤을 잠시 바라본다.
모두들 긴장해 있다.
박지윤 들 아시겠습니다마는... 폐하께서는 뭔가 엄청난 변화를 다짐하신 듯 싶소이다.
장자2 이야기 들었습니다.
박지윤 아무래도 폐하께서는 이미 고려를 버리려 작정하시었고.....
장자2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 아니옵니까? 그래, 뭔가 윤곽이라도 드러났소이까? 신료들끼리 의논을 하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박지윤 뭐, 그런 것은 아직 아니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청주에서 아지태라는 사람이 올라왔소이다.
유장자 아지태 그 사람이 왔습니까?
박지윤 폐하께서 고려를 버리시고 새 나라 운운하시는 것은 다 그 자가 폐하의 심중을 흐려놓았기 때문이올시다. 앞으로가 걱정이예요.
장자1 이 나라 고려가 이만큼 나라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우리 패서인들의 공헌이 컸소이다. 재물이면 재물, 군사면 군사 모두 다 내어드렸어요. 헌데 이제와서 고려를 버리시다니요?
유장자 뭐 그렇다고 나라를 버리자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나라 이름을 바꾸자 하시는 것이예요. 너무 과민하게 생각하는 것도 좋지 않을 듯 싶습니다마는....
박지윤 허어, 그 무슨 말씀을... 이 나라의 근본은 옛 고구려이올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고구려의 선조들을 조상으로 하고 있소이다. 어찌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수 있겠소이까? 고려라는 기반 자체를 잊으시겠다하시는 겝니다.
유장자 조정을 보거나 또 전장터에 나가있는 장수들을 보거나 모두가 이 고려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폐하도 그걸 모르시지는 않을 거예요. 다만, 폐하의 뜻은 고려를 넘어서 저 중원대륙을 바라보자 하시는 것이지요.
박지윤 뜻이 너무 크면 무리가 따르는 법이외다. 당장 고구려의 후손인 우리들이 이렇게 불안해서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소이까? 그래서 우리끼리라도 훗날을 생각해 보자 해서 모이자한 것이외다.
장자1 정말로.... 고려가 없어지는 것이오이까?
유장자 허허... 이럴 ?일수록 모두들 침착해야 합니다. 나라 이름을 한번 바꿔보자는 것인데... 공연히 잘못 나서서 화를 자초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모두들 ..........
박지윤 허면, 유장자께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유장자 좀 더 지켜보십시다. 신료들의 태반이 우리 패서계 즉, 고구려의 후손들이 올시다. 이 터전에서 일어나신 폐하가 설마 우리를 버리시겠소이까..?
박지윤 자고나면 인심이 바뀌는 난세이올시다. 삼국이 죽고 죽이는 살벌한 전쟁에 휘말려 있어요. 우리가 모시는 우리의 주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가... 그에 따라서 우리 목숨도 왔다갔다 하는 것 아닙니까....?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닙니다. 우리끼리라도 혹시 있을지도 모를 뭔가에 대해서 대비를 해야 합니다.
유장자 조금 더 지켜 보십시다. 일단은 조금 더.... 그리고 이 일은 기왕에 우리 동향들끼리 의논할 일이라면 앞으로는 왕장군도 참여를 시켰으면 하는데 어떻소이까..?
박지윤 왕건 장군 말씀이오...?
유장자 그렇소이다. 왕장군에 대한 폐하의 신임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외다. 정 그렇게 앞날이 모두 불안들 하시다면 그럴 수록 우리는 왕장군을 가까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패서인들의 지위를 보장받거나 지킬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박지윤 듣고보니 그 말씀은 참으로 경청할만 합니다. 일리가 있으신 말씀이예요. 허허, 이거 왜 이리 하루하루가 답답하고 불안한고.... 미꾸라지 한마리가 온 연못을 흐린다더니... 아지탠가 뭔가가 나타나 나라를 아주 쑥밭으로 만들고 있지 않소이까....?
모두들 착잡한 표정이다.
씬 11 황궁 외경
씬 12 동 대전 앞 길
궁예와 아지태가 가까이 붙어 걸어온다. 대전 내관이 앞서서 내원 앞에 이른다.
궁예 아학사. 여기가 내원이오. 그대도 들었겠지만 종간이라는 내 사형이 학자들과 승려들을 모아 나라의 정책을 운영하는 곳이오.
아지태 일찍이 그 명성을 잘 듣고 있었사옵니다. 종간이라는 학자가 대단히 명석하고 훌륭하다 들었사옵니다.
궁예 맞소이다. 이 나라의 첫째 가는 기둥이오. 앞으로 잘들 지내시라고 내 몸소 아학사를 이리 데려온 것이오.
아지태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내관은 안에 전하라.
내관 예, 폐하. (큰 소리로) 황제폐하 납시오. (더 크게) 황제폐하 납시오.
그러자 곧 내원의 문이 열리고 종간과 내원의 관리들이 일제히 나와 허리를 숙인다. 이미 종간과 아지태는 시선을 마주보고 있다. 찰나의 불꽃튀는 마찰이 지나쳐 간다. 그리고....
궁예 내원, 학사 아지태라 하오. 내가 일찍이 말한 청주의 그 사람이오.
아지태 내원어른, 아지태라 하옵니다.
종간 종간이라 하오. 자, 폐하, 안으로 드시오소서.
궁예 그럽시다.
이들이 안으로 들면...
씬 13 동 내원 안
아지태 이곳 내원은 폐하와 이 제국의 정신적인 모든 것을 관장하는 곳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종간 .... 그렇소이다. 아학사도 많은 공부를 거쳐 세상의 존경을 받는다 들었소이다마는....
아지태 아아... (두손을 저으며) 천만의 말씀이옵니다. 그저 천자문 정도 뗀 걸 가지고 별 말씀을 다하시옵니다.
종간 허허허... 겸손이란 모르시는 분인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오이다.
궁예 (그제서야) 허허허... 내원 손님에게 그 무슨....
아지태 헤헤헤... 소생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모양이옵니다, 내원어른.
그러자 잠시 노려보던 종간이 방안이 무너져라 호통을 친다.
종간 네, 이 사악한 자야. 여기가 어디라고 간교한 세치 혓바닥으로 폐하의 안목을 흐리게 하느냐..?
그 말에 모두들 기겁을 하며 종간을 본다. 궁예도 뻥해 있다.
종간 대 동방국이라니...? 그 말은 일찍이 폐하께서 이 나라를 출범시킬 때부터 해오신 말씀이니라. 간교함으로 눈을 흐리게 하고 귀를 막고 요설로서 이루지 못할 꿈을 현실처럼 속이고 있으니 능지처참을 할 놈이 아닌가..?
종간의 호통에 사람들은 잠시 어리둥절 놀라해 있지만 아지태는 전혀 동요없이 듣고 있다가 껄껄껄 웃는다.
아지태 이보시오, 내원어른. 그만 이 사람을 떠보시오소서. 소인 아지태, 간담이 써늘하여 어디 이곳에 있겠소이까...?
궁예 (그제서야) 허어, 내원... 손님을 시험하는 것이 지나치신 것 같구려. 허허허.... 자자, 그만들 와서 좋은 얘기좀 나누십시다.
아지태 내원어른, 이 사람은 저 청주 고을에서 내원어른의 함자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사옵니다. 내원어른이야 말로 폐하를 뫼시어 고려국의 기업을 연 사실적인 주역이 아니시옵니까..?
종간 ........ (말없이 본다)
아지태 이 사람을 많이 가르쳐 주시오소서. 이 나이 되도록 주인과 나라를 만나지 못하고 떠돌다가 이제서야 이곳에 이르렀사옵니다. 본래 학문이나 사상은 그것을 따지고 반박해 줄 상대가 있어야 발전한다 하였사옵니다. 소생 아지태가 이제부터 그 역을 맡겠사옵니다. 많이 가르쳐 주시오소서, 내원어른.
종간 .........
궁예 자자.. 참으로 귀한 만남의 자리요. 오늘은 짐이 술을 한잔 내야 겠소이다. 즐겁게 한잔 마셔 보십시다. 허허, 황후는 어디가셨는고...? 자리를 함께 하면 좋을 것을.....
내관 황후전에 신천의 대부인께서 와 계시는 것으로 아옵니다.
궁예 허허, 그런가...? 그럼 우리끼리 하지... 수랏간에 일러 자리를 보도록 하라.
내관 예, 폐하.
궁예 자자, 들 앉으십시다.
아직도 불꽃이 튀는 그들의 시선에서.......
씬 14 황후전
백씨가 와 있다. 연화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비단에 수를 놓고 있다. 비단에는 학이 비상하는 모습이 거의 완성되어 있다.
백씨 마마, 학이 마치 살아서 하늘을 나는 것 같사옵니다. 세상에... 이쁘기도 하여라.
연화 ....... (씁쓸한 미소)
백씨 하루종일 이렇게 수만 놓으실 참입니까..? 바깥 바람도 좀 쏘이시고...
연화 이 학처럼 훨훨 날아보고 싶습니다.
백씨 (웃으며)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헌데 왜 그런 말씀을....?
연화 훨훨 날아올라서....(구역질을 한다) 이 궁궐을 벗어나고...
백씨 ...... (그제서야 놀라고)
연화 또 송악을 벗어나서 아주 멀리 바다 건너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곳으로..... (다시 구역질)...
말입니다.
백씨 마마.. 어디가 편치 않으시옵니까...?
연화 (서글픈 웃음) 두 분이 아주 기뻐하실 일이 생겼습니다.
백씨 예...?
연화 (한참 말없이 보다가) .... 아이를 가졌습니다.
백씨 (놀라) 예? 회... 회임을 하셨단 말씀이옵니까?
연화 ..........
백씨 마마...!
연화 기쁘시옵니까...?
백씨 기쁘다 마다요... 나라의 경사가 아니옵니까...? 황손을 보시는 일이 아니시옵니까..? 그것이 사실이옵니까, 마마...?
연화 그렇게도 기쁘시옵니까..?
백씨 그렇지 않구요. 폐하께서는 이 일을 알고 계시옵니까..? 예? 알고 계시옵니까...?
연화 알고 모르고가 무엇이 그리 중요합니까..? 축복받지 못한 씨앗이 이 몸속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백씨 마마.... ? 그 무슨 무서운 말씀을...
연화 어머님은 모르십니다. 이 아이... 이 아이가 과연 제대로 자라나겠습니까..? 에미가 자신의 잉태를 증오하고 슬퍼하는데 과연 이것이 축복받을 일이겠습니까..? 그렇습니까..?
백씨 마마... (주변을 돌아보며) 왜 이러시옵니까, 마마..?
연화 사랑과 정을 모른채 태어나는 것처럼 더 큰 비극이 과연 있습니까, 어머님...?
백씨 누가 듣사옵니다, 마마... 제발....
씬 15 유장자의 집 마당 (밤)
왕건과 유금필, 능산, 박술희들이 골목길을 돌아와 유장자 집 앞에 이른다.
박술희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집사 (E) 뉘시오...?
대문이 열리고 집사가 고개를 내밀다 놀란다.
집사 아니, 송악의 왕장군이 아니시옵니까...?
왕건 어른신께선 안에 계시는가?
집사 예, 장군. 소인이 뫼시겠사옵니다.
왕건들, 집사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향한다.
씬 16 동 거소 앞
왕건들이 그 곳에 이른다. 집사가 안에 아뢴다.
집사 어르신, 송악의 왕장자께서 오셨사옵니다.
문이 열리고 유장자가 나온다.
유장자 오, 왕장군이 아니신가? 어서 오시게. 허허, 이 밤중에... 자 어서 안으로...
씬 17 동 안
유장자와 왕건들이 앉아 있다.
유장자 허허허.. 헌데, 기별도 없이 어인 일이신가?
왕건 어르신께 고견을 구할 것이 있어 이렇게 불쑥 찾아뵈었사옵니다.
유장자 고견이라....?
왕건 이미 눈치는 채고 계셨을 줄로 아옵니다마는... 폐하께오선 지금 이 답답한 삼국의 대치상황에서 이 나라가 기선을 제압하고 획기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 오라 명하셨사옵니다.
유장자 ........ 알고 있었네. 막연하고도 어려운 주문이지...
왕건 우리는 그 중 백제를 취하여 발을 묶어 놓고 훗날의 통일을 대비할 수 있는 거점을 확보해야 하겠다고 결론을 지었사옵니다.
유장자 허허.. 대단하이. 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왕건 물론 어렵사옵니다... 그래서 찾아뵈었사옵니다.
유장자 허허허.. 장사만 아는 늙은이가 어찌 전쟁에 대해 알겠는가?
왕건 장사나 전쟁이나 싸움이란 마찬가지가 아니겠사옵니까...?
유장자 마찬가지라....? 핫하하하... 하긴 그렇기는 허이... 장사도 싸움이지 . 상대를 알아야 하고 또 상대를 이겨야 하고 그래야 목적한 것을 거래할 수 있으니 말일세. 암, 장사도 싸움이지...
그 때 유씨(부용)가 밖에서 아뢴다.
유씨(E) 아버님, 술상 대령이옵니다.
유장자 오 그래.. 들이거라.
유씨가 시녀에게 상을 들려 들어온다.
유장자 어서 오너라. 왕장군.
왕건 예, 어르신
유장자 내 딸아이일세.
왕건 아 예..
유장자 이 분이 송악의 왕건 장군이니라. 인사드리거라.
유씨 부용이라 하옵니다.
왕건 예.. 왕건이라고 합니다.
유장자 허허허.. 그래 상을 보았으면 나가 보거라.
유씨 예...
유씨가 시녀들과 함께 밖으로 나간다.
유장자 모처럼 장부다운 대장부를 보니 부끄러운 모양일세. 허허허...
왕건 ..........아, 예....
유장자 자, 들 한잔 하고... (술을 따른다) 자 드시게. (마시고) 그래, 백제 땅에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왕건 저는 바닷길을 거슬러 내려가 백제의 서남해를 취하고 싶사옵니다. 금성 말이옵니다.
유장자 (술을 마시다 숨을 멈춘다) 금성...?
왕건 그러하옵니다.
유장자 금성이라...? 지금 가능하다고 보는가.. 그 이야기가....?
왕건 무리인 줄은 아옵니다. 적어도 금성에 상륙하려면은 이천의 대군과 백척 이상의 전함이 필요합니다.
유장자 ........
왕건 이 나라에서는 오로지 장자어른께서만이 그 일을 해 주실 수가 있사옵니다.
유장자 내가...?
왕건 그러하옵니다. 송악이 그 중 절반을 부담하고 그 나머지를 장자어른께서 맡아 주신다면 가능한 일이옵니다.
한동안 유장자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눈을 뜬다.
유장자 그것만으로 가능하겠는가..?
왕건 또 있사옵니다.
유장자 말해 보시게.
왕건 그 쪽에서 상당한 세력이 우리의 상륙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어려운 전투가 되옵니다.
유장자 날보고 그 일을 하라...?
왕건 그러하옵니다. 장자어른께서도 그 쪽과 큰 거래를 트고 계시는 것으로 아옵니다. 도와주시오소서.
유장자 기상천외한 생각을 하였군 그래. 그러고보면 왕장군도 역시 뱃사람의 후예라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일세. 그런 생각을 다 해내다니....? 술 드시게.
왕건 도와주시겠사옵니까...?
유장자 백척의 배와 이천의 군사라...? 군사야 나라에서 대겠지마는... 내 몫으로 적어도 오십 척의 배를 준비해 주어야 한다..?
왕건 그 일도 그 일이지마는 저 안에 우리의 세력을 구축해 주시는 것이 더 큰 일이 될 것이옵니다.
유장자 허허, 이런.... 이보시게, 왕장군..? 이것은 부탁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아예 결정을 보고 온 것이 아닌가...?
왕건 도와주시오소서. 나라의 전기를 마련하는 일이옵니다.
유장자 허허, 이것 참..... 백제 땅에 고려를 세운다..? 허허, 이거참....
씬 18 백제 황궁 외경
견훤 (E)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겐가...? .
씬 19 동 대전
견훤 앞에 오다린과 종례가 함께 시립해 있다.
견훤 형편이 어려우니 이번에 부담할 재원만은 다시 한번 생각을 해달라...? 허허.. 이런, 이런... 이보시오, 종례태수..?
종례 예, 폐하.
견훤 그대는 여기 있는 수달장군과 더불어 짐이 나라를 건국하는데 아주 큰 공을 세웠소이다. 헌데... 언제부턴가, 영 사람이 달라져갔어.
종례 폐하, 그런 것이 아니오라....
견훤 짐의 영토는 이미 삼한의 반을 육박하고 있어. 머지않아 저 신라를 복속시키고 고려를 정벌한 후에 우리 대 백제국은 북으로 북으로 달려갈 생각이오. 그러자면, 무엇으로 이를 감당하겠소. 허허, 이런...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건 바로 그대들같은 부호들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란 말이야. 그걸 피하려한단 말인가..?
오다린 .........
수달 폐하, 이 분들도 나름대로 충성을 다 바치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근자에 들어 어려움이 있는 듯 하옵니다.
견훤 그대는 가만있어.
오다린 ..........
견훤 그대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그대들의 힘으로만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렇지가 않아. 그거야말로. 수많은 백성들의 피눈물을 짜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그대들의 재산을 몰수해도 시원치 않은 일이야.
오다린 폐, 폐하...
견훤 백성들은 열 말의 곡식을 추수하면 그 중 일곱 말을 다투어 바쳐오고 있어. 그 충성을 생각하면 짐은 눈물이 나... 헌데 그대 같은 부호들이 이리저리 몸을 사리는 것을 보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울화가 치민단 말씀이야. 다시 한번 이르지만 짐이 그대들의 재물과 기반을 지켜주기 때문에 그대들이 존재하는 것이야. 이 점을 잊지말고 과인이 내린 영을 충실히 지키도록 하오. 모두들 아시겠소..?
일제히 예, 폐하......
오다린 .......
종례 ........
견훤 그 일은 이 정도 했으니까 그만 돌아들 가 보고... 이보시게, 이찬.
능환 예, 폐하.
오다린과 종례들, 호족들이 그곳을 빠져 나간다.
견훤 아무래도 이 기회에 두 태자를 지방도독으로 내보냈으면 하는데..
능환 아직은 너무 이른 결정이 아니시옵니까?
견훤 아니야.. 태자들은 황궁에서 편하게 자라 세상을 너무 몰라. 지난 번 대야성에서 망신을 당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어.
능환 ........
견훤 그리하도록 하게.
씬 20 황후전
황후 박씨가 놀라고 있다.
박씨 뭐라? 두 태자를 시골로 보낸다고? 아니 그 어린 아이들을... 아니된다. 아니돼.
옥이 폐하의 명이시옵니다.
박씨 해도해도 너무하시는구나. 이제는 두 태자들을 내게서 떨어뜨려 놓으시려 하시다니.
옥이 마마..
박씨 다 그 년 때문이야.. 고비 그것이 들어온 이후로 폐하께서 변하셨어. 그 년 때문이야..
박씨의 그 앙칼진 모습에서... .
씬 21 동 대전
견훤과 최승우가 마주해 있다.
견훤 지방의 호족들이 이렇게 부담을 느껴서야 어찌 큰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단 말인가...? 참 답답한 일이야....
최승우 장사란 농사와 달리 때때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사옵니다. 너그러히 보아 주시오소서. 그래도 그동안 적지 않이 많은 일을 했사옵니다.
견훤 뭐, 그야... 그렇기는 하지만 서도.... 하도 엄살들을 떨길래... 엄하게 한번 해 본 것이야..... 그래, 고려 쪽의 사정은 어떠한가?
최승우 순행에서 돌아온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하옵니다. 다만 신료들의 직임이 다소 변했사온데 그 중 왕건이라는 장수가 관직에서 물러났다 하옵니다.
견훤 왕건.....?
최승우 예..
견훤 왕건이라면 궁예의 심복 중에 심복이 아닌가?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견훤 음... 뭔가 이유가 있겠지.. 그 점을 좀 더 알아보게나.
최승우 예... 폐하.
그 때 밖에서 내관이 아뢴다.
내관(E) 폐하, 승평부인께서 오셨사옵니다.
견훤 오 그래? 들라하게.
최승우 허면 소신은 이만 물러가 있겠사옵니다.
견훤 그리하게.
고비가 들어와 최승우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는다.
견훤 어서오게 어서와.. 허허허...
고비 말씀 중이신데 신첩이 방해가 된 것이 아니옵니까, 폐하?
견훤 아니야.. 그렇지 않아도 부르려고 했네..
고비 신첩을 말씀이옵니까?
견훤 그럼.... 아이는 잘 노는가?
고비 예, 폐하.. 아무래도 사내 아기씨 같사옵니다. 발길질이 얼마나 거센지 모르옵니다.
견훤 오 그래? 허허허.. 그래야지.. 사내놈을 낳아야지.. 이 아비를 쏙 빼닮은 강한 놈 말이야.
고비 호호호... 태자분들이 그렇게 많으신데 또 아드님을 원하시옵니까?
견훤 그 아이들은 그 아이들이고... 부인이 낳는 아이는 또 다른 게지... 아니 그런가?
고비 신첩은 후실의 자식이라고 괄시만 받지 않는다면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견훤 무슨 소리? 누가 낳았든 내 혈육이 아닌가? 나는 모두 공평하게 대할 것이야. 걱정 말게.
고비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눈물)
견훤 허허.. 우는 겐가? 이런... 자 이리 오게.. 이리와..
고비가 견훤에게 안긴다.
견훤 아무 걱정 말게. 짐이 있는 한 아무도 부인과 아이를 괄시하지 못할 게야. 내가 용서하지 않을 게야.
씬 22 동 대궐 일각
신검과 양검, 능환이 함께 있다.
양검 외지로 나간다구요?
능환 예, 두 분께서는 전선으로 가실 것이옵니다.
신검 .......
양검 우리를 외지로 내치시는 것이 아니옵니까?
능환 그리 생각하지 마시오소서. 일선의 경험을 쌓으시게 하려는 폐하의 배려시옵니다.
양검 어마마마 말씀이 맞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우리를 멀리하시려는 것입니다.
신검 .........
능환 ...........
씬 23 인서트
멀리 석양이 지고 있다.
씬 24 길
오다린과 종례가 오고 있다.
종례 (도리질 하며) 아무리 보아도 내가 옛날에 뵈었던 페하가 아니시오. 폐하는 아주 몰라보게 변하셨어요.
오다린 ......
종례 그나저나 이걸 어찌 한다.....? 그 많은 군역비의 재원을 우리가 무슨 수로 감당한단 말이오...? 지난번에는 황궁을 짖는다고 한동안 다 내주었는데.... 이번에는 끝도 없는 군역비의 재원을 대라 하니....
오다린 해도해도 너무 하십니다.... 이렇게 다 빼앗기고 대체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소이까?
종례 그러게 말이오.. 재산과 지위를 다 보존해 준다더니... 빼앗아가기만 하고 아무런 보상이 없소이다.
오다린 수달, 그 사람도 그렇소이다. 간 쓸개 다 내주고 폐하에게 아첨만 떨고 있지 않소?
종례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오. 이러다가 다 죽습니다. 다 죽어요.
씬 25 송악 황궁 외경(밤)
궁예 (E) 뭐라....? 백제 속에 고려의 땅을 만들어...?
씬 26
동 황궁 대전
궁예가 놀라서 왕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궁예 아니 이보시게, 아우. 내가 어려운 일을 알아보라 하였지마는 어떻게 그렇게 무모한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허허허.... 이 사람아, 아니 어떻게 백제 가운데 고려의 깃발을 꼽는단 말인가..?
왕건 가능한 일이옵니다, 폐하.
궁예 가능해...?
왕건 물론 그러기까지에는 상당한 시일과 모험이 따르옵니다
궁에 그렇겠지... 그래, 백제 어디다가 짐의 깃발을 꽂을 생각인고....? 빨리 듣고 싶구먼 그래...
왕건 서남해이옵니다. 금성 포구 말이옵니다. 견훤왕은 지금 내륙으로 뻗어나갈 생각 뿐 백제로서는 후방에 속해 있는 금성을 전혀 경계하지 않고 있사옵니다. 그 허를 찌르고 들어가 우리의 성을 쌓자는 것이옵니다.
궁예 (크게 심호흡하며) 꿈같은 이야기로구먼..... 이보게, 아우? 그게 정말 실현 가능성이 있는가..?
왕건 쉽지는 않사옵니다. 이 일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자면 여러가지 폐하의 도움이 필요하옵니다.
궁예 허허허... 나는 아우만 믿네.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는가? 말해 보게..
왕건 정주의 유장자 어른은 조선술에 있어서 이 나라 제일입니다. 그 배를 건조하도록 도와주시오소서.
궁예 그리하지.. 부역, 세금 모두 감면토록 하세.. 또 뭐가 있는가..?
왕건 이천 명의 수군과 백여 척의 전함이 필요하옵니다. 이 모든 것을 준비하자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옵니다. 그때까지 모든 일을 대외에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하옵니다.
궁예 그래야겠지... 그러한 엄청난 일을 준비하자면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해야지, 그리 함세... 내 특별히 조처해 놓겠네....
왕건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듣고 보니 참으로 장대하고 기가 막힌 계획일세 그려. 그 일이 성공된다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이 다 놀랄 일이 될 것이로구먼.... 과연 아우일세. 아우아니고서야 누가 그런 생각을 해낼수 있단 말인가..?
왕건 과찬이시옵니다, 폐하.
궁예 이러니까 내가 아우를 어찌 신임 안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하하하...그리고 이보게, 아우...?
왕건 예, 폐하....
궁예 그건 그리하도록 하고.. 내 아무래도 이참에 도읍을 옮기고 나라의 이름도 새롭게 정하려 하는데.. 아우의 생각은 어떤가..?
왕건 나라 이름을 바꾸는 것이야 폐하께오서 일찍이 말씀을 하시었사옵니다. 헌데 도읍까지..... 옮기신다 하시옵니까?
궁예 여러모로 그것이 맞을 것 같네 그려. 나라 이름을 바꿀 바에야 그 중심이 되는 곳도 바꾸는 것이 낫지 않은가...? 그리고 사실 이 송악은 짐의 것이라기보다 아우의 것이 아닌가..?
왕건 폐하...? 그 무슨...?
궁예 허허허.... 이 사람 놀라기는...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왕건 참담한 말씀이시옵니다. 이 나라 모두가 폐하의 것이온데 어찌 신의 것이 있을 수 있사옵니까...?
궁예 그렇지가 않아. 아무튼 나라 이름이야 뭐 다음에 논한다 하더라도 도읍을 옮기는 일은 좀 서둘렀으면 하는데....
왕건 폐하... 백성들이.... 고단하지 않겠사옵니까..?
궁예 진시황은 만리장성도 쌓았어.
왕건 예....?
궁예 이보게, 아우.. 큰 일을 하자면 백성들의 고통 쯤은 때로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야. 아니 그런가, 아우...?
<46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