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멋쟁이와 갈롱쟁이 -
권다품(영철)
경상도 사투리에 "갈롱쟁이"란 말이 있다.
"갈롱쟁이"라는 말은 경상도에서는 "귀염받으려고 알랑거리는 말이나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을 뜯한다.
비슷한 말로는 "차림새, 행동, 됨됨이 따위가 세련되고 아름답다"는 뜻의 "깔롱쟁이"란 예쁜 말도 있다.
그런데, 우리 고향에서는, 귀염받으려고 얼굴이나 머리, 몸을 꾸미고, 예쁜 옷을 입고 알랑거리는 아이나 여자"란 뜻으로 쓰였던 걸 보면, "갈롱쟁이"란 말이 맞을 것 같다.
옛날 시골에서는 어린 여중생이 갈롱을 부리면, "대가리 피도 안 마른 가시나가 벌써 고래 갈롱에나 신경쓰마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나?" 하고, 야단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국민학생이면서도 살림이 좀 여유가 있거나, 선생님의 자녀들은 옷을 깔끔하게 입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런 아이들이 부러운 마음에 "갈롱쟁이"라고 놀리기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시골 국민학교 아이들은 대부분 꾸미지도 않았다.
세수도 않고 학교가는 아이들도 있었는가 하면, 세수를 한다고 해도, 얼음 언 개울가에서 한참 망설이고 앉았다가, 세수 안 하고 그냥 들어가면 야단맞을 것 같으니까, 손가락 끝으로 겨우 물 몇 번 찍어 바르고 뛰어들어가며 소리만 "세수 다 했다."며 지르며, 불 앞으로 띄어가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학교를 오고 가면서 친구들과 "팔자"라는 게임도 하고, 요즘으로 친다면 레슬링처럼 안고 구불고 하다가 힘이 딸려서 밑에서 못 빠져나올 정도가 되면, "고상"이라고 항복하면 풀어주는 "고상내기"라는 게임을 하다보면, 땀과 흙이 범벅이 되어, 세수를 한다고 해도 표시가 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국민학교 고학년으로 접어들거나, 혹시 예쁜 여학생이라도 보이거나, 눈에 띄이고 싶은 예쁜 누나라도 있으면, 세수도 하고 머리에 물칠을 해서 빗질을 해 볼 때도 있었다.
그러면, 엄마가 "아직 대가리 소똥도 안 벗겨진 기, 벌써 갈롱은 부리고 싶거마는...." 했던 걸 보면, 어릴 때는 사내 아이라도 이렇게 "갈롱"이라는 말을 썼던 것 같다.
헬스장에서 런닝머신을 하다가, 길거리에 참 맑은 여학생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옛날 시골에서 썼던 "멋"이란 말과 "갈롱"이란 말이 생각났다.
"멋쟁이"란 말과 "갈롱쟁이"란 말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멋쟁이"는, '외적인 멋이 내면의 멋과 어울려서, 일부러 티를 내지 않아도, 말이나 행동이나 몸에서 그 멋이 자연스럽게 풍겨나오는 그런 사람'을 말하지 않을까 싶다.
옛날 우리 동네에서는, 공부보다 옷이나 머리 등 외모에 유달리 신경쓰는 여학생을 "갈롱쟁이"라 했다.
그런데, 그때는 "공부, 공부" 하던 때라, 공부 안 하고 외적인 멋만 부린다고 그런 말을 해서 그렇지, 요즘 개념으로 말하면 '공부보다 패션에 더 신경쓰는 사람'이라는 뜻의 말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옛날에는, 예뻐보이고 싶은 마음에, 공부보다 외적인 멋에 신경을 쓰는, 그래도 순수한 "갈롱쟁이"들은 있었어도, 요즘처럼 천박한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하는 아이들은 없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왜 이렇게 천박해져 버렸을까?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들의 천박함들을 보고 배운 것은 아닐까?
학자들은 금방 태어난 아이는 모든 게 신기해서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 하얀 백지같은 뇌에 그대로 새긴다고 한다.
그렇게 새겨진 것들은 성격으로 형성되고,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고....
그렇다면, 엄마 아빠가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어놓고, 아이에게 야단을 친다?
전문 학자들은 애기를 낳았으면, 그 애기가 다 자랄 때까지는 말 한 마디, 생각 한 조각마져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아이의 뇌에 선명하게 새겨지기 때문이라잖은가.
외적인 아름다움만 가꾸지 말고, 말이나 행동도 그에 어울리게 좀 가꿨으면 좋겠다.
멋쟁이!
예쁜 차림에 어울리는 내면을 가진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일 것 같다.
정말 멋진 말이지 않은가?
그래도 옛날 "갈롱쟁이"들은 요즘 아이들처럼 천박한 말이나 험악한 욕은 하지 않고, 그런 말들을 부끄러워할 줄도 알았는데, 세상 참....
나는 옷장에서 옷을 찾을 때, '나는 이런 옷을 입을 자격이 될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도 사람이라, "영철이 옷 세련되고 멋지다!"란 말을 듣고 싶지, "영철이 옷은 세련되고 멋지네."란 말을 듣고 싶지는 않다.
2023년 3월 3일 오전 11시 23분,
권다품(영철)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