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16일 오후 1시.
나는 신촌 전철역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건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오후 2시.
나는 구의역 3번 출구를 나와 동부지법에 다다랐다.
이미 9호 법정은 방청객들로 꽉 차 있었다.
나는 공판 내내 서 있었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내가 힘들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나는 김명호 교수를 보았다.
가끔 그는 방청석을 향해 고개를 돌리곤 했다.
그리고 방청객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힘겨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약간 수척해 보이는 얼굴은 불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안경 너머로 그의 눈물 어린 눈동자를 보았다..
공판은 2시간이 넘게 계속되었다.
김 교수의 날카로운 질문과 이의제기에 얼굴을 붉히며 당혹해하는 재판장.
재판장은 김 교수에 대한 분풀이를 방청객에게 해대고 있었다.
검사는 김 교수의 얼굴을 제대로 주시하지 못했다.
김 교수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정당함을 주장할 때에도 검사는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이 날의 공판은 나에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마치 피고와 재판장이 뒤바뀐 느낌이었다.
공판이 거의 끝나갈 무렵, 법정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누군가가 김 교수를 동조하는 듯한, 그리고 재판장을 조롱하는 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재판장은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자수’를 권고했다.
재판장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시간만 끌고 있었다.
김 교수는 재판부를 향해 ‘개판’이라고 쏘아붙였고, 재판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게 감치명령을 내렸다.
재판장은 자신의 명령에 걸맞은 법령을 찾기 위해 꽤 오랫동안 법전을 뒤적였다.
바로 이때, 김 교수가 입을 열었다.
“여태껏 단 한 번도 법전을 보시지 않더니 이제야 법전을 뒤적이시는군요.”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니, 그건 비웃음이었다.
분노와 좌절, 한이 서린 피눈물 나는 웃음이었다.
4시 10분.
공판이 끝났다.
김 교수는 피고인석에서 일어나 호송을 받으며 법정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금 방청객들을 향해 고맙다는 인사와 더불어 승리의 손짓을 보냈다.
나는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나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나는 박수를 치면서 눈물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오후 5시.
나는 신촌 전철역을 나와 나의 연구실을 향해 걷고 있었다.
가는 길에 나는 제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김 교수를 떠올렸다.
누가 그에게서 제자들을 빼앗아갔는가?
누가 그를 죽음의 나락으로 떠밀었는가?
아니,
누가 그를 사법개혁의 선봉에 서게 했는가?
누가 그에게 한국사회의 미래를 떠맡겼는가?
오늘 나는 김 교수에게 빚을 갚지 못했다.
나는 그 빚을 평생 갚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자유의 몸이 되기까지 나는 또 다시 그를 만나러 갈 것이다.
동부지법 9호 법정에서 나는 ‘의로운 인간’을 보았다..
첫댓글 오늘도 힘겨운 싸움을 하셨군요...사법부도 우리도 모두 김교수님에게 빚진자 입니다. 김교수님의 어깨에 놓여진 우리 모두의 짐을 어찌 해야 할지...마음이 무겁습니다. 공판에 참석하지 못한 회원들을 위해 빠르게 공판후기를 올려주신 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김교수님께서 당한 처지를 생각하면..가슴이 저며오고...위의 공판과정을 읽노라면..내내..가슴이 조마 조마합니다.. 김교수님 행여나...의로운 사람인채 남아 있음으로 해서..칼자루 쥔 재판부에게 미운털 박히는것 아닌지..두근거립니다..
요즘 통 바빠 들어오지 못했는데 다음 뉴스에 김교수님께서 감치되셨단 것들 보고 들어왔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군요. 정말 마음이 아프네요. 하루 빨리 김교수님께서 복직도 하시고 무죄판결도 받으셔서 이 긴 싸움이 끝났으면 ...김교수님에게도 어서 따뜻한 봄이 오길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빛진자라는 이야기 마음에 와닿습니다. 우리대한민국 국민 모두 빚진자라고 저는 사견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형소법을 형소법답게 만들려는 교수님의 노고.옳음을 옳게끔 만들려는 그분의 생각 그리고 논리적인 말씀 감동입니다.그러나 안타깝습니다.보기에 너무 힘듭니다.
증거현출 투쟁에 자신이 있기에 , 칼자루를 김교수님께서 뺏어오셔야지요!!!! 우리모두가 . 판검경의 뻥에 약해지면 안됩니다. 교수신분이 판사신분보다 법전탐구는 더 깊죠? 늘 연구하니까! 판검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만 하다가 공개법정에서 김교수님께 들켜버리니 분풀이 할 수 밖에요!!!!
한마디로 시장 바닥이였어요... 신성한 법정??? 글쎄요... 그 시장 바닥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 김명호교수님이였구요...무슨 공판이 그런가요... 시장 바닥에서 엉뚱한 채찍을 김명호 교수님이 맞으셨네...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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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법정 문 앞에 있는 규칙판의 법정 규칙' 1의 라' 에 법정에서 재판 도중 왔다 갔다 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람들 왔다 갔다해서 집중 못하고, 판사 따로 검사 따로 변호사 따로 자기 할 말 위주로 하고, 김명호교수님 세 군데 다 설명해야 하고 그나마 증인들이 좀 낫고, 조용하면 졸고 시끄러우면 우왕 좌왕 그러다 튀면 겁 주고. 그리고 방청 질서도 지켜 주셔야 중간에 방청객 발언도 힘이 나죠.. 마구 어수선 한데 방청객이 발언하면 더 괘씸해 보이잖아요.. 다음 부터는 법정에 한번 들어오면 휴정하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마세요.. 김명호교수님 구명을 위해 어렵게 참관하셨다면 끝까지 성의를 보이시구요. 되도록이면 지각하지 마세요.
이역만리에서 방청하시러 와서 한국의 법정 현실을 목격하셨군요 , 앞으로 국가발전을 위해 선진국사례와 비교분석하여 사법부 내부 통신망에 올려 보기로 해요 . 그래야 사법부도 이것 저것 정보를 수용하여 개선하겠죠? 현대판 쇄국주의 사법부 형편 없었나 보군요 , 정말 그렇게 !!!????
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신성한 재판은 판사,검사,변호사만 만드는것이 아니라 방청객들도 같이 만드는 것입니다. 재판중 끼리끼리 떠들고 발언권도 얻지 않고 불쑥 말하고 핸드폰울리고 재판장을 조롱,비웃는듯한 행동...그 모든것은 김교수님께 도움이 안될것 같네요. 언론의 먹이감,판사들의 먹이감이 될뿐이죠. 바로 이런 기회를 상대편에게 주고 온것은 아닌지....오늘은 기분이 몹시 씁쓸하고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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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역시 이번 재판은 참담한 기분이었습니다.검사측의 "공소사실 어떤 특정한 부분을 입증하는..형사소송규칙132조 2항.."(이젠 외울정도ㅜ.ㅡ)증인선택은 한마디로 "쇼"입니다.말도 안되는 증인과 증거를 댈수 밖에 없는 검사측이 이젠 측은하기까지 합니다.김교수 말대로" 법대로 하면 빨리 끝낼수 있다"는 당연한 말이 왜이리 가슴아프게 박히는지.../다음 공판때는 좀더 성숙하고 경건한 방청질서를 보여줘서 김교수에게 "누"가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어제 정말 마음이 많이 안타까왔습니다. ㅜ.ㅡ
휴머니스트님께 감사드립니다.그리고 전국의 교수님들이 카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주셨으면 합니다.사법부와 사학재단이 교수신분을 노동자 신분 보다도 못하게 만들었잖아요.이러한 사법부와 사학재단(국공립대학이라고 나을 것은 없지만)에 저항하고자 김교수가 앞장선 것이 석궁시위의 진정한 의미이지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