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에선 좌청룡 우백호에 북쪽으론 현무가 남쪽엔 주작이란 신령스런 새가 위치한다.
이곳 강진 주작,덕룡산은 좌측엔 당연시 룡인 덕룡산이 자리를 하고 있지만 우측엔 산 전체가
붉은 봉황이 나래를 펴고 있는 듯 하다 하여, 아니면 이곳이 우리 조선 반도의 최남단이란
연유로 우백호가 아닌 이름 그대로 봄철이면 참꽃(진달래)이 주작의 벼슬처럼 붉게 피어
오르는 주작산이 불끈 솟아 있다.
난 이번 생에선 가벼운 거짓말 조차 않는 비교적 착한 삶을 살아 왔다. 허나 구태여
지은 죄를 들먹일려고 들면 젊었던 시절 주변의 숱한 여자들 울린 죄가 많기는 많다.
그렇다면 어느 전생에서 많은 죄를 지었던 것일까? 확실한 연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생은
피곤하기 짝이 없는 생이다. 내 띠동갑 누님의 말에 의하면
멀쩡한 허우대에 머리가 터질 정도로 박식한 놈 치고 너 처럼 형편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 처럼 좌우간 이놈의 이번 생은 한마디로 표현 하면 마른 걸레
쥐어 짜는 듯한 이도 아니면 젖은 소깝(솔잎) 태우는 것 처럼 매쾌한 연기만 풀 풀 솟으며
탈듯 말듯한 인생이였기에 내가 살아 오면서 제일 부러운 삶을 사는 사람은 딱 두 종류의
인간 군상이였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머리맡에 빈 쏘주병과 새우깡 봉투를 널부러 뜨려 두고 남의 가게
추녀 밑에서 곤한 잠을 주무시고 있는 노숙인과 고속버스 타이어가 주져 앉을 정도로
길길이 막춤을 추어 대며 전국을 투어하는 행락객들이다.
이 두 인간 군상은 자의든 타의든 일체의 스트레스 없이 아무런 생각 조차 할 필요가
없는 참으로 푠한 삶을 사는 것만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2010년 이때 쯔음 즐기던 담배를 끊기 무섭게 부풀어 오르는 뱃때지를 감당키 어렵기도
하였고 내 인생 처음으로 삶에서 약간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여력이 생기기도 하여 좌우를
둘러 보다 찾아 들었던 곳이 바로 이곳 명품 느림보 산악회 였었고 그해 봄 어느 날 예정된
산행지 또한 바로 이곳 주작산이였다. 더불어 무항산 무항심이란
맹자의 말씀이 생각 난다.
일정한 수입 즉 주머니에 쪈이 낙낙하지 않은 놈은 항시 똥 마려운 개 처럼 안절 부절을
못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작산을 향하던 느림보 리무진의 내 옆 좌석에는 이곳 주작산을 찾았던 인연으로 자신의
닉 네임을 주작으로 쓰고 계시던 어느 노 신사분이 한 분 앉아 계셨는데 본인 또한 오래 전에
담배를 끊었고 또 어느 해에는 즐기던 술 마져 끊었을 뿐 아니라 몇 해 전에는 여자 마져
끊고는 나이도 있고 하여 힘든 산행 보다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다니며 사진 촬영을
하는 재미로 전국을 다닌 다는 것이다. 말씀을 들으며 쏙으로만 궁시렁 거려 보았던 말이
여자를 끊고 사느니 심판의 날에 불벼락을 대갈통에 뒤집어 쓰는 게 헐 낫다는 것이였었다.
이 노 신사분은 아마도 젊었던 시절 밑바닥 인생에서 부터 시작하여 수중 모터나 양수기
등을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하시며 자수 성가를 이루신 분이신데 호주에도 일정한 기반이
있어 잦은 내왕이 있는 듯 하였었는데 요즈음은 느림보에 뜨음 하시다.
오늘 덕룡산 들머리는 동쪽 소석문인데 능선 까지 오르는 초반 산세가 역시나 만만치가
않더니만 막상 능선을 오르고 나니 설악산 용아장성을 방불케 하는 덕룡의 등 지느러미
또한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짜릿 쨔릿한 재미로 아랫도리가 약간은 후들 거릴 즈음
내 고향친구 껏님은 넘쳐 나는 힘을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듯이 평탄한 우회로는 구태여
외면을 하곤 가파른 암릉길을 청솔모 처럼 깡총 깡총 거리며 오르 내린다.
껏님께서 언니 언니라고 부르는 어느 느림보 벗님이 한분 계신데 이 분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산행을 할 즈음이면 의례 나처럼 항시 후미에서 어정 거린다.
축구공 처럼 든실 든실한 엉덩이짝을 보아 산행 솜씨가 만만치가 않을 듯 한데 어째서리
후미를 고집하는지? 혹시나 후미 대장님의 중책을 맡고 계신지? 이도 아니면 으 으 음
젊었던 시절 온 동네 처녀들을 숱하게 울리고 다녔던 이 사람에게 흑심을 품고는 작업을
하고져 역부러 나와 발걸음을 맞추는 것이 아닌 가 하여 그 사유를 물었던 적이 있었다.
물고기에게 먹이를 줄 적에 땡 땡 거리며 종을 울리게 되면 나중엔 먹이 없이 빈 종만 울려도
고기들이 몰려 드는 조건 반사란 걸 아느냐며 역으로 되 물어 보시기에 고다꾜 다니던 시절
배운 기억이 난다고 했더니만 자신은 그 조건 반사를 위해서 산행 속도를 늦춘다는 헛깨비
씨나락 까 먹는 말씀을 하신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작렬하는 주작 덕룡의 붉디 붉은 진달래를 감상키 위해 많은 산벗들이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주작의 벼슬을 오르 내리며 남도 최고의 명산을 함께 즐기고
있었고 어떤 분들은 오소재에서 부터 우리가 출발했던 소석문까지 완죤 종주 산행마져
감당하고 있었는데 베낭에 달린 꼬리표를 보니 충북 청주에서 오신 분들이 많이 눈에 들어
온다.
독일과 더불어 이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븐 종족이 바로 일본이고 이러한 일본을 쪽바리니
왜놈이니 하며 아주 우습게 아는 유일한 민족이 바로 조선 민족인데 이러한 일본이 과거에
우리 백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또한 사실이여서 그런지 일본 민족과 더불어 우리나라
충청도 사람들은 특색이 그 속내를 좀체 드러내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다.
군바리 제대하고 약 2년 간을 대전과 청주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그랬지만 난 충청도 사람들을 참으로 좋아 한다. 이 분들은
우리 갱상도 사람들 처럼 남에게 자극적이거나 격한 언사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남이 자신의 팔을 비틀면 우리 경상도 사람들이라면 이 자슥이 미칫나? 팔 안 놓으면
패 지깃뿐다꼬 지랄 발광을 떨겠지만 충청도 분들은 어째 이런데요? 멋땀시 이런데요?
하면서 목에 칼을 드리 대도 찍소리 하지 않고 누워 있는 양 처럼 순하게 있다가 팔을 너무
심하게 비틀다 막상 부러지게 되면 그때서야 거어 바 팔 부러졋자녀 그러면서 훌쩍거린다.
말이 느리다는 건 그만큼 생각이 깊어서 언사에 신중하다는 것인데 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남들이 충청도를 멍청도라 하니깐 덩달아서 충청도 사람들을 우습게 아는데
옛 어르신 말씀에 의하면 충청도 양반 발 꼬린내가 지독하다는 것 처럼 요즘에서야
충청도 사람들의 진가를 알게 된 몇 몇 사람들이 충청도를 엄청도라 부르게 있는데 머리
회전 빠르고 매사를 딱 부러 지게 처리하는 호남 사람들 어르고 뺨 치는 사람들이 바로
이 엄청도 사람들이라고들 한다.
우리 느림보엔 강 대장님을 비롯하여 기라성 같은 엄청도 출신들이 즐비한데 인격과 품성이
말 그대로 타의 모범이 되는 훌륭한 분들 이시다. 근데 좀 전에
언급한 조건 반사란게 대체 머냐구요? 으 으 음 저도 듣고 보니 간단한 일이더군요.
산행을 다니다 보면 남편이나 아내를 집에 두고 혼자서 산엘 나오시는 분들의 경우에
집에서 산행을 다니지 말라고 태클을 거는 일 때문에 애로가 많다는 분들이 왕 왕 있는데
이 껏님의 언니의 경우에는 화요일만 되면 남푠께서 등을 떼 미는 것도 부족해서 불고기
듬뿍 담은 뻰또 까지 싸 주시면서 산행을 다녀 오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자신의 남푠이 조건 반사에 걸려 들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자신은
산행을 할 적에 비교적 천천히 걸으며 자신의 체력의 반만 산행에 투자를 하고 비축해 둔
여분의 반 체력은 산행을 마치고 느림보 리무진에서 내리기 무섭게 집으로 가져 와선
부리나케 샤워를 하고는 몸에서 물이 뚝 뚝 떨어 지는 상태로 안방으로 들어 오면 급하디
급한 옆지님께서 등쪽의 물은 본인이 직접 딲아 주시기 무섭게 황룡 청룡이 승천을 하면서
두꺼비 도돔바 맘보춤을 추게 되는데...
남편의 입장에선 산행은 곧 흑탄 백탄의 연기를 피워 올리는 풍차 돌리기를 자연 연상케
되어 아내가 산행만 간다고 하면 입을 쪄억 벌리곤 허벌레한 미소를 짓는다는 것이다.
앞으로 아내가 혹은 남푠이 산행을 못가게 한다고 너스레를 떠시는 산벗들이 우리 느림보
에선 절때로 없었으면 합니다. 해결하는 방뻡은 아주 간단합니다.
산행을 천천히 하곤 그 여분의 체력을 집에서 쏟으면 다음 산행 또한 무난한 마음으로
떠나 올 수가 있져. 구럼 산행을 할 적에
맨 선두에 서서 아랫도리에서 다마 부딪히는 소리가 쩔그렁 쩔그렁 나도록 부리나케 내 빼는
분들은 대체 어떤 분들이냐구요?
아내가 공장문을 닫았거나 남푠이 공장 기계를 돌리는 기술이 없는 탓에 흑탄 백탄은
고사하고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부화를 끄기 위해서 쏜쌀 같이 앞으로 내 달리는 거라고
하기는 하더군요. 흐 흐
동봉 서봉을 넘은 어느 고개마루에 당도하여 이정표를 보시던 염 고문님께서 앞으로 남은
코스의 키로수와 집결 시간을 계산해 보시더니 이쯤해서 하산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신다.
생수 같이 맑은 계곡물이 철철 거리고 자연 동백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계곡길로 하산을
하여 그림 같은 저수지를 지나니 멀리서 전 사장님의 느림보 리무진이 보인다.
난 느림보를 따라 다니며 평소에 동경해 왔던 노숙인과 행락객의 두 꿈을 모두 이루었다.
행락객의 꿈은 산행을 따라 다니니 자연적으로 이루었고 노숙인의 꿈 또한 어렵지 않게
이루어 보았다. 산행을 마치고
벌어 지는 뒷풀이에서 거나하게 마신 술 덕분에 오리역에서 하차를 하여 갈짓자 걸음으로
음식점이 즐비한 뒷길로 오노라면 국민은행 건물 옆에 주차장이 있는데 이 주차장
담장에서 날씨가 좋은 계절이면 노숙인의 꿈을 이루곤 했었다. 담장의 높이가 무릎 정도
까지 올라 오고 그 너비가 두뼘 정도 되어서 등산 베낭을 베고 반듯하게 누우면 신 성일도
부럽지 않고 돈 병철이도 부럽지 않다.
어떤 날은 얼굴에 빗방울이 떨어 져서야 일어 난 적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대가리에 헤드
렌턴을 두르고 온 동네를 휘 젓고 돌아 댕기던 예폔네가 발로 뱃때지를 걷어 차는 통에
후다닥 일어 난 적도 있었지만 벗님들도 심심할 적에 함 해 보셔요.
멍에와 굴레를 벗어 난 참 자연인의 일부 나마 즐겨 보실려면 ...
분당 탄천변에서 언젠가는 자연인이 되고 싶은 돌삐 드립니다.
첫댓글 분당 탄천변에 하얀 벚꽃이 흐드러졌습니다.
간혹 꽃망울만 매단채 언제 필까..망설이는 몇그루만 빼놓고..
만화방창..호시절에 집에서 이마에 갈매기 그리며 살면 뭣하나요..
자연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속병 안 생깁니다.
나이들어 울화병은 본인 책임이라하였습니다.
훌훌 털어버리고 자연 속으로 풍덩~~~~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노라면 세상이 내꺼 되는거지요.
소싯적 밤벚꽃놀이가 유행하던 창경원..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때는 그것 또한 호사였습니다.
탄천으로 밤벚꽃놀이 오셔요.
돌삐님 쐬주는 제가 준비하지요..ㅎㅎ
룡의필력을 보는듯 대단한문장력에
머리숙여집니다..꾸벅ㅡㅡ
국민은행 옆의 주차장에서 주무실때 소주가 모자라시면 주차장 앞의
"김치찌게(솜씨마을)"집에 들러서 소주한잔 하고 주무시면 됩니다..
제 얘기하시면 외상도 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