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세탁소에서 바느질하면서도 모국어를 안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참 대견해 보였어요. 글을 안쓰던 이들도 고달픈 이민생활을 하면서 겪는 순간순간의 아픔 등 안에 품고 있던 것을 표현하고 싶어하지요.”
뉴욕에서 60여명의 시인과 수필가를 발굴해온 김정기 시인이 최근 한국수필가협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평범한 이민자들의 잠재적인 문학성을 지도해온 김 시인은 뉴욕 문단의 ‘대모’다.
“이민자들은 잠재적인 작가들이지요. 이민이라는 특별한 체험은 우리의 재산이며, 글쓰기는 그 체험을 느낌으로 승화시켜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이민문학의 거성인 의사 시인 마종기씨는 이렇게 고백한다.
“한국인이 별로 없는 중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미국 의사들과 매일 부딪히며 미국 환자들을 보며 영어로만 생활해야 하는 고된 미국 생활에서 모국어를 다듬으며 모국어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시를 쓰는 시간은 내게 축복일 수 밖에 없었다.”
낯선 땅에서 늘 언어장벽에 늘 부딪히며 사는 우리 속엔 다른 피부색과 서투른 영어로 인해 주변인으로 대우받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피해의식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한인 교회를 찾고, 한식을 먹고, 한국어로 꿈을 꾸고 있지 않은가?
발표를 전제로 한 글을 쓰게 되면 종종 자신을 올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나와의 대화가 아니라 타자에게 자신의 고귀한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유혹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김정기 시인은 글 쓰는 이들에게 단순히 발표하며 느끼는 성취감보다 지속적으로 치열한 문학정신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 그는 “시(詩)란 말(言)을 절(寺)에서처럼 수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 “글쓰기도 수행의 한 방법입니다. 부처님 말씀이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하셨어요. 일어남과 사라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마음의 작용들을 깨우치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라고 하셨습니다.”
한인 최초의 스님 교수, 하버드대학 출신 혜민 스님이 최근 수필집 ‘젊은 날의 깨달음’을 냈다. 최근 스님은 최근 미동부한국문인협회원들을 모아놓고 특강을 했다. 주제는 ‘스님들이 왜 책을 쓰나’. 속세의 욕망을 거세하고 살아가는 그들이 깊은 명상의 우물에서 길어 올리는 글은 어쩐지 맑을 것 같다.
혜민 스님은 이 특강에서 자신이 글을 쓰는 패턴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소개했다.
첫째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서 쓰는 글이다. 스님은 초등학교 시절 지독히도 추웠던 어느 겨울날 담임 선생이 ‘난방 규정’을 어기고 난로에 불을 때웠다가 교감에게 혼나는 장면을 목격했다. 선생이 그 때 ‘정해진 규칙만 보고 사람을 보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지 마라”고 한 말이 어느 과목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고 소개한다.
둘째는 외국에 살며 체험하면서 기존의 편견에서 뒤집어지는 체험을 쓴 글이다. 스님도 여느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스님은 일본 유학 중 긴자역 찹쌀떡 가게에서 청각장애인이 일하는 것을 보고 일본인의 세심한 배려와 성숙한 시민정신에 감동받았다고 적고 있다.
다음은 남의 좋지 않은 행동을 통해 타산지석으로 삼고 싶은 이야기다. 한 신도의 예를 들며 장미 같은 화려함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사람보다 소나무처럼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이 더 감동적이라는 글이다.
넷째는 타인의 행동에서 귀감이 될만한 것을 발견한 후 쓰는 것이다. 하버드대학원 재학 중 스님은 여름방학 때 북경으로 존이라는 미국인학생과 함께 북경으로 연수갔다. 스님은 주말마다 관광에 바빴는데, 존은 주말마다 사라지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존은 시골에서 에이즈에 감염된 고아들을 봉사하러 다녔다. 그것이 스님이 하버드를 통해 배운 최고의 가르침이었다고 술회한다.
마지막으로 사건의 원인을 찾아 내 안으로 찾아 들어가는 글이다. 새로 산 칼로 과일을 깎던 중 손가락을 베인 스님은 상처를 치료하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는다. 살아가면서 소독약이나 반창고 같은 역할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는 내용이다.
책 읽기의 계절 가을, 우리가 왜 글을 쓰는지도 자문하고 싶은 시간이다.
박숙희 특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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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최초의 스님 교수가 아닌데 오보가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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