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1-17
그 무렵 11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 제자들과 많은 군중도 그분과 함께 갔다. 12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13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14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15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16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7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임신부님 강론
연중 제24주, 9월 19일, 화, 루카 7,11-17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루카7,14)
+찬미예수님
과부에게 외아들은 모든 것의 모든 것입니다. 그 외아들이 죽었다면 과부의 마음은 찢어지다 못해 거의 죽음의 상태일 것입니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아마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엾은 마음”라는 말의 그리스어는 동사 “스플란크니조마이”(splanchnizomai)입니다. 이 말은 “창자가 움직이다” “내장이 찢어지도록 아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역시 과부의 슬픔을 보시고 이렇듯 공감을 하시며 같은 아픔을 느꼈습니다.
우리 말에도 “애가 타다. 애간장이 타다”란 표현은 애는 창자를 뜻하고 간장 역시 간과 내장을 뜻하는 말입니다. 간과 창자가 타는 듯한 아픔입니다.
“연민(compassione, 동정심, 가엾은 마음)에 마음을 열고 무관심으로 마음을 닫지 마십시오 연민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게 해줍니다. 연민은 마음의 안경 같은 겁니다. 현실 차원을 정말로 깨닫게 해줍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수차례 연민에 사로잡히십니다. 연민은 하느님의 언어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보면, 연민은 예수님과 더불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모세에게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다’(탈출 3,7)고 말씀하신 하느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백성을 구원하라고 모세를 파견하신 것도 하느님의 연민입니다. 우리 하느님은 연민의 하느님이시고, 말하자면, 연민은 하느님의 약함이지만, 동시에 그분의 힘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성자를 파견하도록 그분을 움직이게 한 것도 바로 연민이기 때문입니다. 연민은 하느님의 언어입니다. 인간의 언어는 많은 경우 무관심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루카7,14) 예수님께서는 연민의 어루만짐을 통해 젊은이를 소생시킵니다.
연민은 우리들 사이에 무관심으로 죽은 이들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윤해영 수녀의 “연민 사랑으로 가는 길”이란 책에 실려 있는 ‘몸의 중심’이라는 글입니다.
“사람 몸의 중심은 어디일까요?
머리일까요?
가슴일까요?
배일까요?
사람 몸의 중심은 아픈 곳입니다.
손이 아프면 손 쪽으로 온 신경이 쏠리게 되지요.
그래서 손이 아프면 손이 중심이고요.
발이 아프면 발이 중심이 되는 거예요.
손끝이 아프면 손끝을 돌봐주고
발톱이 아프면 발톱을 돌봐 줘야지
다 제치고 머리를 돌보나요?
지금 당신이 아픈 곳이 당신 몸의 중심이에요
마음이면 마음을
머리면 머리를
바로 그 부분을 어루만져 주세요.”
그리스도인은 아프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연민과 어루만짐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무관심이 아니라 연민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비심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무태성당 이민락 라우렌시오 신부
첫댓글 + 찬미예수님
아멘 감사합니다 !!
+ 찬미예수님
"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다. "
" 애 간장이 다 녹는다."
라는 말은 그러한 아픔을
겪어 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아 듣고 이해 할 수 없는
말 일것입니다.
그 끊어 진 듯한 창자를
아물게 해 다시 이어 주시고,
다 녹은 듯한 간장이 제 형체를
찾게 해 주시는 분은,
사람을 지으신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받아
들이고,가슴 깊은 곳으로 부터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으로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을 때만
알아 들을 수 있는 말 일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마주치게되는
삶의 행태에서 보게 되는
많고 많은 삶의 색깔과 모양을
있는 그대로 보고, 또한 내 비칠
수 있는 마음의 안경같은 것
이라는 말이 틀림 없는것 같습니다.
하느님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어서 연민은 하느님의 언어로 ,
그 깊이와 폭을 인간이
바르게 가늠할 수 없는 것
이리라 생각 됩니다
애련함이 크신 하느님께서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독생성자를 보내주시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저희를 구원해 주심을 저희는 오직 감사드릴 뿐입니다.
주님을 믿는 저희는 또한 애련함을 가지어 이웃의 아픔을 돌보고 눈물을 닥아주고 위로하고 사랑하며 도우게 하소서.
지금 우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시었습니다.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눈물을 그치게하시고 기쁨을 주실거라 저희는 믿사옵니다.
아프고 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연민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어 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소서.
♡젊은이여 내가 너에게 말한다.일어나라.♡
아멘.
서로를 생각하고 이해하고
보듬어 주면서 살아 갈 수
있으려면 하느님의
품안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깊이 느낌으로서 그 자비를,
함께 하게 되는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줄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먼저 ,하느님 자비에 자신을
온전히 맡겨 드리는 가운데 살 수
있을 은총 을 빌어야 겠습니다.
아멘.
신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