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후가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인 요람(여호람)을 죽이고 반란에 성공했지만, 아직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는 접수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에는 아합의 아들 칠십 명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1절). 그래서 예후는 사마리아에 사마리아에 있는 귀족들과 장로들과 아합의 아들들을 교육하는 자에게 편지를 보내어 아합의 아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여 왕으로 세우라고 전합니다(1절~3절). 물론 예후가 이런 편지를 보낸 것은 짐심으로 아합의 아들 중에서 왕을 세우라는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엘리사가 보낸 선지자의 제자는 분명히 예후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고, 이를 통해 반역을 시행했기 때문에 예후는 자기가 이스라엘 왕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아합의 아들을 비롯한 왕족들이 사마리아에 살고 있고, 사마리아는 여러 무기들을 갖춘 견고한 성이었으며, 요람 왕을 죽인 예후를 이스라엘 왕으로 받아들일지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섣불리 사마리아로 진격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편지를 보냈을 것입니다(2절). 그러나 예후의 이런 내용의 편지는 “너희가 나를 거부하고 아합의 아들 중 한 명을 왕으로 세워서 나와 맞설 테면 맞서보라”라는 자신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이 아무리 강해도 나와 맞서서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자신감입니다.
예후가 이미 이스라엘의 왕 요람과 유다의 왕인 아하시야까지 죽였고, 이세벨까지 죽였다는 소식을 들은 사마리아 성의 귀족들과 장로들을 비롯한 권세자들은 예후를 왕으로 인정하고 섬기겠다고 답합니다(4절, 5절). 이런 응답은 예후가 바라던 것이었기에 예후는 곧바로 다시 편지하여 아합의 아들들을 죽여 그 머리를 가지고 이스르엘로 오라고 하였고(6절), 사마리아의 귀족들과 권세자들은 왕자 칠십 명을 죽여서 그들의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에 있는 예후에게 보냈습니다(7절). 그런데 예후는 아합 왕의 아들들의 머리를 이스르엘 성문 어귀에 두게 하였고(8절), 그 다음날 성문으로 나간 예후는 여러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자신은 이스라엘의 요람 왕과 유다의 아하시야 왕을 죽였지만, 이스르엘에 있는 자신이 사마리아 성에 있는 아합의 자손들을 죽일 수는 없다는 것을 언급하여, 아합의 자손들까지 이렇게 죽임당한 것은 사마리아 성에 있는 고관(高官)들과 지도자들도 예후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것을 선포하는 의미로 “너희는 의롭도다. 나는 내 주를 배반하여 죽였거니와 이 여러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냐?”(9절)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정말 의롭다면 이러한 상황을 잘 보고 잘 판단하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상황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아합의 집을 심판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10절). 예후는 열왕기상 21:19~24에 나오는 엘리야가 아합에게 전한 말씀에 대해 상기(想起)시킨 것입니다. 예후는 자신이 이렇게 이스라엘의 왕을 죽인 것과 아합의 모든 아들이 죽임당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것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에 대한 정당성(正當性)을 피력(披瀝)하는 것이도 합니다.
그리고 예후는 이스르엘에 남아있는 아합과 요람에게 속한 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귀족들과 측근들과 제사장들까지 모두 죽여서 아합의 잔당(殘黨)들까지 모두 죽입니다(11절). 제사장들까지 죽인 것은 너무 심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아론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제사장들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여로보암이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았었기에(왕상 12:31, 32), 온전한 제사장으로 보기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예후는 오므리 왕조의 씨를 말려 버렸습니다.
예후가 사마리아로 향하면서 유다의 왕인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 그들을 모두 죽이는 사건이 벌어집니다(12절~14절). 유다 왕 아하시야는 아합의 딸인 아달랴의 아들이었기에 아하시야와 관계된 형제들도 모두 아합 가문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후는 이들도 모두 죽였는데, 그 숫자가 42명이나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다가 예후를 맞이하러 나온 레갑(Recab) 자손인 여호나답(Jehonadab)을 만나게 됩니다(15절). 여호나답은 요나답(Jonadab)이라고도 불립니다. 레갑 자손들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을 순수하게 지켰던 자손들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레갑 자손인 여호나답을 예후와 만나게 하여 이스라엘의 종교 개혁을 돕고자 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후는 여호나답이 예후와 함께할 것이지를 확인하고 자기 병거에 태웁니다(15절). 예후는 여호나답에게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라고 말합니다(16절). 예후는 레갑 자손이 신앙적으로 얼마나 신실한 자들인지를 알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여호나답에게 “하나님을 위해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여 주겠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이란 표현에서 “열심”이란 단어는 히브리어 원문에서 키느아(קִנְאָה)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이 단어는 열정(Ador), 열심(Zeal)로도 번역되지만, 질투(Jealousy)라고도 번역됩니다. 그렇기에 이 표현은 예후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열심과 열정을 보여주겠다는 의미도 되지만,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처럼 자기도 하나님을 위한 질투를 보여 주겠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을 척결(剔抉)할 것이라는 의지를 내포(內包)하고 있습니다.
예후는 사마리아로 가서 사마리아에 남아있는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모두 죽여 진멸하여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루었습니다(17절). 그래서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오므리 왕조를 완전히 멸절하였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오므리 왕조 중에 가장 극악(極惡)했고, 아합을 향한 엘리야의 예언도 있었기에 오므리 왕가(王家)라고 하기보다는 아합에게 속한 자들로 표현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섬기며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아합과 그의 자손들을 완전히 멸하시고 예후를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것은 샅샅이 끊어버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악(惡)은 모양이라도 싫어하시고, 악한 것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끊어버리시고, 철저히 응징(膺懲)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선하신 하나님 편에 서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살아가는 자와 뜻을 함께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자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나는 지금 누구와 더 어울리고 있으며, 하나님 편에 온전히 서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행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자들과 어울리는 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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