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길을 떠났는데 날이 저물어 어느 마을의 큰 집에 유숙을 청하니 젊은 부인 혼자 사는 집이었습니다. 부인이 안내한 방은 서책이 가득하고문방사우(文房四友: 종이 붓먹 벼루)가 잘 정돈되어 있었으나 장기간 비워 두었던 방 같았습니다.
부인이 차려준 저녁상을 먹고 나니 다시 술상을 들여왔습니다. 그리고 부인은 나가지 않고 계속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선비가 어찌할 바를 몰라 부인을 쳐다보려니 부인은 화려한 비단옷에 칠보 단장을 하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치마폭에는 '원차인간종(願借人間種)' 사람의 씨를 빌려 주시기 원합니다 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선비가 그녀에게 그 글의 연유와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칠십세가 넘는 퇴재상(宰相)인데 후사가 없자 열아홉살인 이 부인을 설득하여 씨받이를 하게된 것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며 이 가문의 후사(後嗣)를 이어 준다면 결초보은(結草報恩: 그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다.) 하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비는 퇴재상과 부인의 생년월일시를 묻고 지성이면 감천이라면서 좋은 일이 반듯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고는
“큰 장닭에 인삼을 넣어 정성껏 삼계탕을 다려서 퇴재상께 드리고 인시(寅時:새벽 03~05시) 에 재상과 동침(寢)을 하면 필히 옥동자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선비는 필묵(筆墨)을 가져다가 원차인간종(願借人間種) 이란 글씨 옆에 난기천상안(難欺天上眼: 하늘의 눈을 속이기는 어렵다.)이라는 글씨를 써 주었습니다.
이 글을 읽은 퇴재상은 하늘을 속이려 했던 자기의 처사를 크게 뉘우쳤습니다
선비가 떠났다는 말을 들고 다음날 부지런히 상경(上京)하여 임금님을 배알했습니다
비단보에 싼 보재기를 푼후 선비가 쓴 치마의 글귀를 임금님게 보여드리면서 그 글의 사연을 설명하고 이번 과거시험은 별과(科)를 먼저 보게 해서 제세경륜(濟世經綸: 세상을 구할만한 역량이 있는 사람) 능력을 갖춘 사람이 사람을 꼭 뽑고난 뒤에 본과(本科)시험을 보게 하자고 건의를 했습니다.
과거 시험 선비가 과거마당에 들어가니 ‘원차인간종(願借人間種)’ 다섯자가 문제로 나왔고 선비는 일필휘지 (글씨를 단숨에 죽 내려씀)로 ‘난기천상안(難欺天上眼)’ 즉 "하늘의 눈을 속일수 없다"란 답안을 써 제일 먼저 올렸습니다,
곧 바로 합격해서 어전(御前)으로 불림을 받고 임금님을 배알(拜謁)하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이 퇴재상에게 이글을 전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선비는 "한(漢)나라 명장 이광(李廣)장군의 射石爲虎 (사석위호): 호랑이를 잡으려 온정신의 힘을 다해 쏜 화살이 바위를 꿰뚫는다"는 고사를 얘기하고 퇴재상님의 부부도 온 정신을 집중을 하시면 그런 기적이 일어날 것을 확신한 것 뿐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