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 Those who call on the name of the Lord )
로마 우르반 대학(Urban College) 강당에는 ‘그리고 그다음에는?’이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16세기 법대를 다니던 한 학생이 학비가 없어서 당시 부자인 필립보 넬리(Folippo Neri)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넬리는 경제 지원을 약속하면서 학생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습니다. “자넨 이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학교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돈을 벌고 집도 사야지요.” “그리고 그다음에는?” “결혼하고 자식을 낳겠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나이가 들겠지요.” “그리고 그다음에는?”
학생은 더 얘기할 것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이 때 노인 넬리는 분명하고 강한 어투로 “그리고 그다음에는 죽음이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영원이다. 내가 어디서 오고 왜 살고 어디로 가는지에 답을 얻지 못한다면, 인생의 가운데 것을 다 빼면 죽음을 위해 사는 것밖에 안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 인생의 답은 영원히 찾을 수 없습니다.
중세교회가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할 때 말틴 루터는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선포했습니다. 칼뱅도 인간은 완전히 타락했기에 어떤 조건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구원받을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재앙과 사탄과 지옥 권세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복음을 알게 되면 천년의 응답이 오지만 복음을 모르면 천년의 재앙이 오게 됩니다. 복음이 없는 현장은 흑암과 재앙, 지옥 배경으로 행복이 없습니다. 이들을 위로하고 치유해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약속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셨고 양의 피 바르는 날 해방시키셨고,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말씀 주셨고, 베드로와 바울은 주는 그리스도라 고백했습니다.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기생 라합도, 베드로도, 바울도 이 언약을 잡고 영원한 구원을 받았습니다. 길과 진리, 생명 되신 예수의 이름은 절대 해결입니다. 이 복음의 능력을 전달하고 위로하고 치유하는 주인공으로 서야 합니다.
이 언약으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생기를 불어넣을 너 하나님의 사람아!!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2/04/2025 |
첫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