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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환의 명시감상} 1권에서
김치와 서정시
송수권
같은 접속어로만 가지고 말 하더라도
'하더라도'가 아니라 '하였는디'로
'그런데'가 아니라 '그리하였는디'로
전라도 말가락에만 있는 판소리 표준어
그 細柳靑靑 휘늘어진 말씨로만 빚은 서정시
이제 우리 서정은 비닐깡통 속에 들어 있고
윤나는 버터의 질 속에 유해색소와 함께
섞여 있다
감옥소의 뒷마당 내리는 눈 속에
쓰레기 하치장 바퀴벌레의 단단한 갑피질 속에
김치맛이 돌지 않은 솔벤油처럼
우리 서정시는 반들거린다
맵고 짜고 새콤한 그 맛!
통영갓을 썼던 그 시대에도
개털모자를 쓰고 북만주를 떠돌았던
독립군의 모자 속에서도
얼큰하고 맵고 짜고
헬멧이 유행이었던 일제치하
아니 해방 후 중절모 속에서도
4,19 이후 신동엽의 쭈그렁 등산모 속에서도
그 맛은 그 맛인 것!
요즘은 물 건너 아메리칸들도 좋아한다는 군
사할린 콜사코프 남쪽 항구
한평생 안개 속을 떠돌다 눈감은
李老馬씨의 무덤 속에서도
뻘겋게 김나는 김치
오늘은 세 마치 장단으로
오리발 궁둥이를 달싹이는
이승엽의 방망이 끝에 터지는 알싸한 그 맛!
우리 서정시 또는 김치
----송수권, [김치와 서정시]({애지}, 2005년 여름호) 전문
나는 이미 문태준의 [가재미]를 분석하면서, “시는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문학의 장르이며, 그것은 서정시와 서사시로 나타나게 된다. 서사시의 주인공이 통개인적이며 문화적 영웅으로서 그가 소속된 국가와 인류 전체를 구원하는 인물이라면, 서정시의 주인공은 사적인 개인으로서 자기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또, 그리고, 그 감정을 통해서 만인들의 심금을 울리게 된다. 따라서 이때의 주관적인 감정은 보편적인 감정으로 승화되고, 그 감정의 토대가 되는 그의 삶은 우리 인간들의 근본적인 원형이 된다. 시는 맑고 깨끗한 영혼을 얻기 위한 방법적인 수단이기도 하고, 또한 시는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연출해내기 위한 방법적인 수단이기도 하다”라고, 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역설한 바가 있었다. 시는 T.S 엘리어트가 역설한 바가 있듯이, 그 주체자의 모국어와 깊숙이 관련이 있고, 그 모국어와의 관계를 빼어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는 어떤 것이다. 왜냐하면 외국어로 사고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외국어로 느끼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산문은 외국어로 번역해도 그 뜻이 잘 전달되지만, 민족어의 특수한 형식인 시는 전혀 그렇지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는 가장 민족적인 문학 장르이며, 언제, 어느 때나 최종심급은 그 주체자의 생활 현실(물질적 토대)일 뿐인 것이다.
송수권 시인은 1940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고,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75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이후, {꿈꾸는 섬},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 노을}, {파천무}, {아내의 맨발} 등의 시집을 출간했고,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영랑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송수권 시인은 ’남도의 말‘과 그 ’판소리 가락‘으로 대한민국 서정시의 진수를 선보여 왔지만, 그러나 그의 서정시는 토속적인 세계로 움추러 들지 않고, 그 토속적인 세계를 넘어서서, 대한민국 서정시의 진수를 선보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속적인 세계는 어떠한 시대의 변화도 거부하고 움추러 든 세계를 말하지만, 서정시의 세계는 자기가 살고 있는 토속적인 현실에 밑줄을 치면서도, 그 토속의 세계를 보편의 세계로 승화시켜 나가고 있는 세계이다. 고백과 독백의 언어인 서정시의 언어가 만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보편적인 언어로 승화되고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송수권 시인은 “같은 접속어로만 가지고 말 하더라도/ '하더라도'가 아니라 '하였는디'로/ '그런데'가 아니라 '그리하였는디'로/ 전라도 말가락에만 있는 판소리 표준어/그 細柳靑靑 휘늘어진 말씨로만 빚은 서정시“를 그 이상적인 모형으로 제시해놓고 있는 데, 왜냐하면 그가 살고 있는 언어의 현실은 ‘남도의 말’과 ‘판소리 가락’에 의해서만이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송수권 시인은 ”전라도 말가락에만 있는 판소리 표준어“와 ”그 細柳靑靑 휘늘어진 말씨로만 빚은 서정시“를 최고의 서정시로 치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맹목적인 토속주의도 아니고, 더 더군다나 그토록 편협한 지역주의도 아니다. 오늘날, ”하더라도'가 아니라 '하였는디'로/ '그런데'가 아니라 '그리하였는디'로“라는 전라도의 사투리가 판소리의 표준어가 되어가고 있듯이, ”그 세유청청 휘늘어진 말씨로만 빚은 서정시“가 우리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곧바로 대한민국 서정시의 진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언어 영역의 확대는 그 주체자의 영역의 확대이고, 그 주체자의 영역의 확대는 세계 영역의 확대이다. 표준어와 사투리의 구분은 지극히 인위적인 것이며, 그것은 시대의 환경에 따라서 그 위치는 언제든지 뒤바뀔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송수권 시인은 “이제 우리 서정은 비닐깡통 속에 들어 있고/ 윤나는 버터의 질 속에 유해색소와 함께/섞여 있다”라고 탄식을 하게 된다. 또한 그는 오늘날의 서정시는 “감옥소의 뒷마당 내리는 눈 속에/ 쓰레기 하치장 바퀴벌레의 단단한 갑피질 속에/ 김치맛이 돌지 않은 솔벤油처럼” 반들거린다고 탄식을 하게 된다. 현대사회는 자본과 상품이 실시간대로 국경을 넘나들고, 세계화의 흐름 속에 그 모든 전통들을 망가뜨려가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돈의 가치가 최고의 가치가 되고, 모든 사건과 사고들은 오직 그 돈의 움직임에 따라서 발생하게 된다. 눈 앞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제 아무리 썩지 않는 비닐깡통도 문제가 될 리가 없고, 눈 앞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들의 건강을 해치는 ‘유해색소’의 사용도 문제가 될 리가 없다. 또한 남극과 북극의 빙산이 녹아내리고 그 온실 효과에 의해서 온갖 기상이변이 속출해도 더 이상----더욱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의 문제가 될 리가 없고, “감옥소의 뒷마당 내리는 눈 속에/ 쓰레기 하치장 바퀴벌레의 단단한 갑피질 속에/ 김치맛이 돌지 않은 솔벤油처럼/ 우리 서정시”가 반들거려도 문제가 될 리가 없다. 어느 독일 사람은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과연 서정시가 가능한가라고 고통스럽게 물은 바가 있지만, 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야 말로 서정시가 그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모든 역사와 전통이 파괴되고, 더 이상의 삶이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생태환경이 파괴되어가고 있는 오늘날,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존재하는 서정시는 그 물질적인 토대를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송수권 시인의 [김치와 서정시]는 비닐깡통과 솔벤油 속에서 반들거리는 서정시의 종말을 예감하면서도, 그러나 그의 서정시의 화려한 부활을 기원하고 있는 시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는 인간의 피와 땀과 생명이고, 만일, 그 시가 사라진다면, 우리 인간들의 삶 자체도 끝장을 보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의 사유와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인간을 생각해보고, 또한 노래도 잃고 꿈도 잃어버린 인간을 생각해보아라! 그는 눈뜬 봉사이며, 말 못하는 벙어리이며, 나사가 빠지고 녹이 슬어버린 기계 인간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송수권 시인은 서정시의 화려한 부활과 그 물적 토대의 온전한 회복을 꿈꾸면서, 서정시와 김치를 대등한 관계로 파악한다. 왜냐하면 김치는 “맵고 짜고 새콤한 그 맛”도 있지만, “통영갓을 썼던 그 시대에도/ 개털모자를 쓰고 북만주를 떠돌았던/ 독립군의 모자 속에서도/ 얼큰하고 맵고 짜고/ 헬멧이 유행이었던 일제치하/ 아니 해방 후 중절모 속에서도/ 4,19 이후 신동엽의 쭈그렁 등산모 속에서도” 언제나 “그 맛은 그 맛인 것”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시대가 수없이 바뀌어도, 이를테면, 통영갓을 썼던 그 시대에서부터 4,19 이후 신동엽의 쭈그렁 등산모에 이르기까지, 그 모자의 양식이 수없이 바뀌어도, 김치맛은 언제, 어느 때나 “맵고 짜고 새콤한 그 맛”이지 않으면 안 된다. 송수권 시인이 바로 이 지점에서 느닷없이 통영갓, 개털모자, 독립군의 모자, 헬멧, 중절모, 쭈그렁 등산모 등을 그 시대의 순서에 따라서 나열한 것은 그 모자가 단순한 모자가 아니라, 우리 인간들의 두뇌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자의 변모는 두뇌(사유)의 변모이며, 두뇌의 변모는 그 인간 사회의 변모를 뜻하게 된다. 그러나 김치와 서정시는 그 인간의 사유와 시대의 변모를 넘어서서 존재한다. 언제, 어느 때나 그 맛을 그대로 지니고 있지 않으면 안 되고, 오히려, 거꾸로 “요즘은 물 건너 아메리칸들도 좋아한다는군”이라는 시구에서처럼,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맛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버지인 태양’, ‘어머니인 대지’가 ‘원형상징의 언어’이듯이, 원형상징이란 수많은 인종, 시대, 문화적 환경의 변모와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변모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말한다. 김치도 원형상징의 언어가 되어야 하고, 서정시도 원형상징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김치란 무엇인가? 김치란 대한민국 특유의 채소 가공식품이며, 2001년도에, 드디어 국제식품규격위원회로부터 ‘국제식품 규격’으로 승인을 받은 바가 있다. 김치란 무, 배추, 오이 등을 소금에 절여서 고추, 마늘, 생강, 파, 젓갈 등의 양념을 넣고 저온에서 발효시킨 식품으로, 우리 한국인들의 식탁에서는 빼어놓을 수 없는 반찬임을 뜻한다. 지방에서는 김치를 지漬라고 불렀고, 제사 때는 침채沈菜로, 그리고 궁중에서는 젓국지, 짠지, 싱건지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김치의 기원은 머나 먼 상고시대上古時代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김치는 각종 무기질과 비타민의 공급원이 되어주고 있다. 젓산균 의해서 장腸을 청소해주고, 동물성 젓갈류들은 쌀에서 부족한 단백질을 공급해준다. 마늘에서 비롯된 항암 효과와 함께, 변비, 장염, 결장염, 동맥경화, 빈혈, 식욕증진은 물론, 이제는 ’사스‘, 즉, ’조류독감‘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내가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김치의 종류를 찾아본 결과, 김치의 종류는 놀라웁게도 300여 가지가 넘고 있었고, 나는 그 수많은 김치의 종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정말로 한국인인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배추를 이용해서 만들 수 있는 김치류: 배추 김치, 통배추 김치, 보쌈 김치, 양배추 김치, 속대 김치, 강지, 백김치, 씨도리 김치, 얼가리 김치, 봄동 겉저리 김치, 배추 겉저리 김치, 동아 석박지 김치, 배추 석박지 김치, 배추 동치미, 연배추 물김치, 배추 물김치, 평안도 통배추국 물김치, 풋배추 물김치, 소금 배추 물 김치, 배추꼬지 장아찌배추잎 짱아찌, 배추 짠지, 배추쌈 오이 소박이, 배추 시래기지 등.
무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김치류: 총각 김치, 알타리 김치, 빨간 무김치, 숙김치, 서거리 김치, 채 김치, 비늘 김치, 무청김치, 나박 김치, 애무 김치, 단무지, 열무감자 김치, 비지미, 무 묶음김치, 무 백김치, 무 명태 김치, 무 국화 김치, 무 배 김치, 무 장아찌, 무 말랭이, 파 김치, 무 짠지, 무 석박지, 무 겉저리 김치, 알 깍두기, 굴 깍두기, 아마기 깍두기, 명태 깍두기, 쑥갓 깍두기, 우엉 깍두기, 쑥 깍두기, 대구 깍두기, 대구알 깍두기 ,즉석용 후인 깍두기, 열무 오이 깍두기, 오이 깍두기, 풋고추 깍두기, 풋고추잎 깍두기, 삶은 무 깍두기, 창란젓 깍두기, 동치미, 서울 동치미 ,나복 동치미, 실과 동치미, 무청 동치미, 총각무 동치미, 알타리 동치미, 궁중식 동치미, 알타리 국물 동치미, 열무 물 동치미, 열무 오이물 동치미, 무채 짱아찌, 무청 짱아찌, 무 말랭이 젓 짱아찌, 무 짠지, 무 배추 고추잎 짠지, 열무 짠지, 빨간무 소배기, 무청 소배기, 무 생채 등.
오이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김치류: 오이 깍두기, 인삼오이 물김치, 오이 물김치, 소박이 김치, 호배추 소박이 김치, 오이 소박이, 통대구 소박이, 배추쌈 오이 소박이, 고추 소박이, 오이 송송이 등.
기타 야채들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김치류: 호박 김치, 깻잎 김치, 미나리 김치, 냉이 김치, 시금치 김치, 콩나물 김치, 고들빼기 김치, 박 김치, 죽순 김치, 쑥갓 김치, 고구마줄기 김치, 고춧잎 김치, 가지 김치, 달래 김치, 메밀순 김치, 도라지 김치, 두릅 김치, 부추 김치, 고추 김치, 풋마늘 김치, 실파 김치, 쪽파 김치, 오징어 파김치, 전라도 파김치, 황해도 파김치, 상치 겉저리 김치, 실파 겉저리 김치, 깻잎 양파 김치, 겉저리 김치, 부추 겉저리 김치, 석류 김치, 갓지, 율장 김치, 시금치 물김치, 가지 물김치, 돌나무 물김치, 콩나물 콩물김치, 더덕 물김치, 삭물김치, 마늘 장아찌, 마늘쫑 장아찌, 달래 장아찌, 고춧잎 장아찌, 풋고추 장아찌, 파 짠지, 파강회 짠지, 부추 짠지, 삭힌 고추 짠지, 갓 소박이, 더덕 소박이, 도라지 생채, 노각 생채, 파 생채, 더덕 생채 등.
해물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김치류: 파래김치, 미역김치, 청각김치, 청각 물김치 등.
육류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김치류: 가자미 식혜, 마른고기 식혜 ,굴 김치, 꽁치 김치, 새치 김치, 대구 김치, 북어 김치, 오징어 김치, 전복 김치, 닭 김치, 꿩 김치, 제육 김치, 오징어 생채, 제육 생채, 통돼지 소박이, 굴 깍두기, 아마기 깍두기, 명태 깍두기, 대구 깍두기, 대궐 깍두기, 창란젓 깍두기 등.
우리 한구인들은 과연 어떻게 해서 ‘김치의 브랜드’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가꾸고, 그 ‘김치문화’를 세계적인 음식문화로 가꾸어 나갈 수가 있을 것인가? 수많은 생명공학자들과 요리연구가와, 그리고, 정부와 기업들과 시민단체들이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이 ‘김치문화’의 초석을 연구해보고 또 연구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김치는 요즈음 미국인들과 일본인들도 좋아하고, “사할린 콜사코프 남쪽 항구/ 한평생 안개 속을 떠돌다 눈감은/ 李老馬씨의 무덤 속에서도/ 뻘겋게 김나는 김치”이기 때문이다. 한 번 시인이고자 한 사람은 영원히 시인임을 포기할 수가 없듯이, 진짜로 김치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李老馬씨'처럼 그 무덤 속에서도 그 맛을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송수권 시인은 그 ‘김치’와 ‘서정시’의 맛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고 멋지게 표현해 놓고 있다.
오늘은 세 마치 장단으로
오리발 궁둥이를 달싹이는
이승엽의 방망이 끝에 터지는 알싸한 그 맛!
우리 서정시 또는 김치
오늘도 전라도의 ‘세 마치 장단’으로 그 특유의 오리발 궁둥이를 달싹이며 ‘아시아의 홈런왕’이 되어가고 있는 이승엽, 그 이승엽의 힘의 원천이 이 ‘김치’와 ‘서정시’에 있다는 것이다. 송수권 시인은 ‘남도의 말’과 그 ‘판소리 가락’으로 대한민국 서정시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 끌어올렸고, 또한 우리 한국어의 아름다움과 우리 한국어의 영광을 위하여 오늘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같은 접속어로만 가지고 말 하더라도/ '하더라도'가 아니라 '하였는디'로/ '그런데'가 아니라 '그리하였는디'로/ 전라도 말가락에만 있는 판소리 표준어/ 그 細柳靑靑 휘늘어진 말씨로만 빚은 서정시”라는 아름답고 멋들어진 제일급의 시구와 “오늘은 세 마치 장단으로/ 오리발 궁둥이를 달싹이는/ 이승엽의 방망이 끝에 터지는 알싸한 그 맛/ 우리 서정시 또는 김치”라는 아름답고 멋들어진 제일급의 시구가 바로 그것이다. 송수권 시인의 [김치와 서정시]를 읽다보면 서정시가 종말을 맞이한 이 시대에도 그의 ‘김치’와 ‘서정시’는 언제나 “맵고 짜고 새콤한 그 맛”을 잃지 않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만일, 아우슈비츠 이후와 자본주의 사회 이후에도 우리 인간들이 살아만 남는다면, 인간성의 회복과 함께, 그 생태환경의 파괴도 곧 복원시킬 수가 있을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시는 우리 인간들의 노래이자 꿈 자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서정시의 진수는 송수권 시인의 시이며, 송수권 시인의 시는 대한민국 서정시의 진수라고 해도 틀림이 없다.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도 건너지 않는 사람과는 일체 사귈 필요가 없다. 그는 잔머리의 대가이며, 그의 소심함은 인간이라는 종의 쇠약화에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의로운 사건이나 일 앞에서는 언제, 어느 때나 사나이 대장부답고 대범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논쟁을 포기할 때 그는 위대한 사상가의 길도 포기하는 것이며, 적 앞에서 용기를 갖지 못할 때, 그는 그의 위대한 삶의 양식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문화의 성과는 가장 잔인하고 처절한 전쟁의 성과일 수밖에 없다. 백일장, 노래자랑, 장기자랑, 김치축제, 소싸움대회, 스포츠, 맛자랑, 연극경연, 미술전람회, 음악회, 학술대회, 잡지발행, 대학입시,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선거, 무역수출 등, 이 모든 축제의 형식도 가상의 적과 실제의 적들과의 싸움(경쟁)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는 전쟁의 형식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어떤 문화, 어떤 축제의 형식도 세계적인 대사건으로 연출해내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한국인들이 가장 찬란하고 화려한 인식의 제전(앎의 투쟁)에서 철두철미하게 패배를 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모든 것을 맡겨만 준다면 이 ‘김치축제’를 세계적인 축제로 연출해낼 수도 있을 것이고, 또, 그리고, 나에게 모든 것을 맡겨만 준다면, 이 서정시의 축제를 세계적인 인식의 대제전으로 연출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낙천주의 사상의 창시자인만큼 우리 한국인들과 모든 인류의 영광을 위하여 나 자신을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천성이 호전적이고 전투적이며, 그 어떠한 싸움도 마다하지를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