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농도
김미정
실내에선 맨발이어도 괜찮습니다
좌식 테이블에 앉아 바깥을 본다 노부부가 보폭을 맞춰 걸어가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단청은 기울어도 색은 깊지 않고 손을 잡고 반딧불이 같은 윤슬을 오래 보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너무반짝거리는 것은 무섭다고 언젠가 몽골에서 쏟아질 듯 별무리가 그랬다
고요를 고요로 답하지 않기 위해서 술을 빚는다고
승려인 그가 빚은 술을 다기에 부어준다
누룩은 곡자 냄새가 나지 않게 하룻밤 이슬을 맞히고 낱알들이 아슬하게 고 두밥을 짓기
발효의 시간과 증류되는 비의 시간을 거쳐 100일
곰이 사람이 되는 시간 풀벌레 사이로 톡톡 터지는 소리를 듣는 일이 자신의 정적을 깨트리는 방식이라고
이별한 지 오래되었다고 말하는 그의 귀가 붉었다
이곳 처마에는 빨간 고추를 엮어 발처럼 매달아 두었다 이른 잠자리는 담장에 날개를 세운 채로 앉아있다 마당은 습하고 밥 짓는 연기가 저녁처럼 고인다
그가 빚은 발효의 시간 그다음 침묵이 건너가는 시간이 올 수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어딘가를 가라킬 수도 우리는 서로 낯설거나 오래되었거나 지난 계절 방파제에서 흰 골목으로 이어지는 담벼락에는 보랏빛이 한창이었는데 수국은 산성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고
우리는 신선도에 따라 말이 없어진다 낯설거나 오래되었거나
증류되는 비의 시간 그 속에 눈물이, 이별한 나를 건져내고 있다
ㅡ계간 《아토포스》(2026, 여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