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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처럼 여기시는 것이 아닌가
창 31:10-16
10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11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14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15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16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창 31:10-16 / 가축들이 교미할 때가 되어 내가 꿈을 꾸면 언제나 암컷을 타고 있는 수컷은 얼룩무늬가 있거나 점이 있거나 줄무늬가 있는 것들이었소. 11) 그 꿈속에서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야곱아' 하고 나를 부르시기에 `예' 하고 대답하니까 그가 이렇게 말씀하셨소. 12) `자, 보아라 네 눈으로도 분명히 보고 있듯이 암컷을 타고 있는 수컷이 모두 얼룩무늬가 있거나 점이 있거나 줄무늬가 있는 것들 아니냐? 라반이 지금까지 네게 어떻게 해왔는지를 내가 다 알고 있다. 13) 나는 벧엘에서 네게 나타났던 그 하나님이다. 네가 그곳에서 베고 잤던 돌로 기념비를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내게 맹세한 일이 있지 않더냐? 이제 너는 이곳을 떠나거라. 네가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거라.' 14) 라헬과 레아는 이 말을 다 듣고 나서 입을 떼었다.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물려주신 것이 하나도 없지요. 15) 그래요. 아버지는 우리를 마치 남처럼 대했어요. 우리를 당신에게 팔아 넘기고는 그렇게 해서 받은 돈까지도 모조리 다 가로챘어요! 16)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에게 빼앗아 준 이 모든 재산은 우리와 우리 자식들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신 대로 하십시오'
야곱이 아내들을 설득하기 위해 자신이 끔으로 받은 하나님의 계시를 아내들과 공유합니다.
야곱의 꿈(10-12) 야곱이 라반과 계약을 맺었을 즈음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의미심장한 꿈을 꿉니다. 야곱은 꿈속에서 ‘얼룩무늬 있는 숫양과 점 있는 숫양과 아롱진 숫양’(라반과의 계약에서 야곱의 소유로 인정받은 양)만이 양 떼 위에 올라 탄 것을 봅니다. 그리고 이 상징적인 장면에 대한 하나님의 설명을 듣습니다. 그 동안 라반이 야곱에게 행한 비열한 행동을 하나님께서 모두 보셨고, 이에 앞으로 태어날 양들이 야곱의 소유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야곱은 혼자 간직했던 그 꿈을 두 아내와 공유합니다. 야곱의 소유가 갑자기 늘어난 진짜 이유를 아내들도 알아야했기 때문입니다.
벧엘의 하나님(13) 야곱은 꿈에 벧엘의 하나님으로부터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벧엘의 하나님은 야곱에게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땅은 바로 가나안 땅입니다(창 28:13-15). 야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야곱은 아내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하며 라반의 집을 떠나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말합니다.
라헬과 레아의 동의(14-16) 라헬과 레아는 야곱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자신들의 아버지 라반이 야곱만 속인 것이 아니라 자신들까지도 이용하였다고 말합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해 7년을 수고하였지만 그 품삯(일종의 결혼지참금)을 라헬에게 돌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첫날 밤 야곱이 모르게 라헬 대신 레아를 넣어준 뒤 또 다시 라헬을 위해 7년을 일하였지만 그 품삯 역시 라헬이나 레아에게 돌리지 않았습니다(창 29:20-30). 그녀들은 아버지 라반이 자신들을 남처럼 취급했다고 말합니다. 이에 라헬과 레아는 야곱의 늘어난 소유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아 주신 것임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라헬과 레아는 야곱의 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어느덧 라헬과 레아는 야곱과 함께 하나님의 언약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그녀들은 야곱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로 결단합니다. 믿음의 가장이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순위를 두고 가정을 이끌 때 야곱의 가정처럼 반드시 하나님의 복을 거둘 것입니다. 잔꾀로 딸들을 이용하려 했던 라반은 자신들의 딸들에게 버림을 받게 됩니다. 라반은 자신이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적용: 라헬과 레아는 혈연관계보다 야곱이 전한 하나님의뜻을 따릅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자신의 삶에 올 때 어떤 결단을 하시겠습니까?
떠나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 일에 대한 가족들의 동의를 유도하기 위해, 타인을 비방하고 나쁘게 말하는 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방식입니다. 그들이 반대한다하여도 그 일은 결국 이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린 오늘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하나님의 방법과 다른 우리의 지략과 방법을 모색합니다. 그리고 그로인해 또 다른 위기를 잉태합니다. 그 때마다 우린 “주의 일을 했는데 이런 일이 왜?”라고 의아해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이뤄져야 합니다. 시작할 때도, 중간에도, 결과에도 항상 무릎 꿇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설 교 >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야곱이 사랑하는 라헬, 레아 두 아내를 양치는 들판에 불러내어 가족회의를 합니다. 그는 최근의 여러 가지 환경과 변화된 상황들을 이야기합니다.
“처남들이 거칠게 대하고 장인의 안색이 변해서 여기에 계속 살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근심하던 중 때마침 하나님께서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의 땅으로 돌아가라.’라고 하셨소.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를 위해 힘써 일했는데 그대들의 아버지는 열 번이나 임금을 속이고 나를 억울하게 했소.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대들의 아버지 재산을 빼앗아 내게 주셔서 내가 거부가 되었소.”
그리고 그가 거부가 되게 된 사연을 간증합니다.
“내가 꿈에 보니 양들이 새끼를 밸 때 암양을 탄 숫양이 다 얼룩지고 점 있고 아롱진 것이었소.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야곱아! 양 떼를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이 다 얼룩지고 점 있고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보았노라.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 네가 거기서 돌기둥에 기름을 붓고 서원을 하지 않았느냐? 이제는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라고 말씀하셨소.”
하나님은 벧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배하고 기도하는 곳의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그때 라헬과 레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서방님, 그렇게 하세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대로 출생지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아버지 집에서 받을 무슨 분깃이나 유업이 있겠습니까? 아버지는 우리 두 딸을 팔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우리에게 준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다 가져 갔습니다. 이런 아버지께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에게서 빼앗아 우리에게 주신 것은 다 우리의 것이고 우리 자식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신 대로 당신의 고향으로 갑시다.”
그러니 야곱은 이제 부담 없이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삶의 큰 변화를 맞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깨우쳐 주시는, 보석 같은 교훈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라반의 재산을 야곱에게 옮기실 때 잘나고 건강한 흰 양들과 검은 염소들을 사용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양은 흰 것이 우성이고, 얼룩지고 점 있고 아롱진 것은 열성입니다. 그래서 얼룩지고 점 있고 아롱진 것은 아주 희귀하고, 대개 그런 양들은 약합니다. 염소도 새까만 것이 우성이고 얼룩진 것은 열성이라 염소들은 거의 다 검고 또 검은 염소가 강하고 튼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얼룩지고 점 있고 아롱진 양들을 택하시니 그것들이 강해지고, 얼룩진 염소를 택하시니 그 염소가 강해집니다. 그래서 그 양들과 염소들이 새끼를 낳으면 다 얼룩지고 점 있고 아롱진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얼룩지고 점 있고 아롱진 양들과 염소들로, 약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로 큰 기적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도 그렇게 쓰십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똑똑한 사람, 공부를 많이 한 사람, 가문 좋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들 중에서 공부를 제일 많이 한 사람이 세무 직원 마태이고, 빌립이 계산을 조금 빨리 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출신, 도시 출신도 없습니다. 그들은 거의 다 갈릴리 시골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입니다.
이스라엘에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들이 가득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천대 받고 못나고 내놓을 것 없는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세계를 구원하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 27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할렐루야!
잘나고 똑똑하고 준비된 사람이 큰 일을 하면 “와! 그 사람, 똑똑하더니 그렇게 큰 일을 이루었구나.” 라고 하니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잘 것 없고 약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사용하셔서 그 사람이 큰 일을 하면 그 사람의 능력으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으니 “아!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저렇게 되었구나.” 라고 하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매미는 이슬을 먹고 삽니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삽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드시고 사십니다. 우리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똑똑하고 너무 잘나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 양곡교회가 10만 성도, 50만 성도가 되어도 만일 제가 잘나고 똑똑한 사람, 탁월한 인물 같으면 “지용수 목사가 훌륭해서 그런 교회를 이루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잘 것 없고 내놓을 것 없고 정말 부족하여 보리떡 같으니 우리 양곡교회가 그런 큰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하시니 양곡교회가 위대하게 되었구나.”라고 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고 죄를 지을 때 하나님께서 미디안 군대를 붙여 그들을 압제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7년 동안 고통을 당합니다. 농사를 지어 놓으면 미디안 사람들이 와서 다 빼앗아 갑니다. 양 떼, 소 떼, 나귀 떼도 가리지 않고 끌고 갑니다. 파종할 때는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까지 데리고 와서 토지소산을 멸하여 소망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산 속에 굴을 파고 거기에 양식과 귀한 것을 숨겨 놓고 타작도 산 속에 숨어서 했습니다. 그러다가도 미디안 사람, 동방 사람, 아말렉 사람이 떼를 지어 쳐들어오면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한 사람을 세우십니다. 그가 바로 기드온입니다.
미디안 군대가 해변의 모래처럼 많은 군사를 이끌고 와서 이스라엘을 싹 쓸어버리겠다며 진을 쳤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통해 그들을 막아 싸우게 하셨습니다. 군사를 모으니 32,000명이 모였습니다. 32,000명으로도 해변의 모래알같이 많은 미디안 연합군을 맞아 싸우는 것이 역부족인데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아, 군사가 너무 많다.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게 하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하나님 말씀대로 “여러분 중에 겁이 나고 두려운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라.”라고 하니 22,000명이 돌아가고, 10,000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군사가 너무 많으니 그들을 물가로 데리고 가라.”라고 하셨습니다. 기드온이 10,000명을 물가로 데리고 가니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물을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사람과 무릎을 꿇고 그냥 마시는 자를 구별하여 따로 세우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물을 마시게 하였더니 물을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사람은 300명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00명만 두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돌려보내라.”
여러분,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물을 마실 때도 주의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그 300명으로 어떻게 바다 모래같이 많은 미디안 군대를 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세 대로 나뉘어 오른손에는 나팔, 왼손에는 안에다 횃불을 감춘 항아리를 들고 가서 깊은 밤이 되자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라고 외쳤습니다.
밤에는 개 한 마리가 짖어도 온 동네가 얼마나 시끄럽습니까? 그런데 300명이 횃불을 들고 함께 외치며 나팔을 부니 그 많은 미디안 군사들이 정신을 잃어 서로가 서로를 죽입니다. 그래서 300명이 그 많은 미디안 군사를 쳐서 이깁니다. 기드온의 군사 300명은 한 사람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할렐루야!
300명이 한 일이라고는 나팔을 불고 소리를 친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영광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사업에 크게 성공하려면 하나님께 영광을 많이 돌리시기 바랍니다. 일터에서 크게 되기 원하시면 하나님께 영광을 많이 올려 드리시기 바랍니다.
제가 매일 새벽에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 한국과 세계의 목사님들 중에서 가장 부족한 종이니 이 종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지용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그러니 하나님께서 저를 기쁘게 사용하시고,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크게 될수록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에 좋은, 귀한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몸이 약합니까?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쓰시기가 좋은 것입니다. 공부를 못했습니까?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쓰시기가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IQ, EQ가 좋지 않습니까?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쓰시기가 좋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쓰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디엘 무디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설교문을 보면 철자가 다 틀립니다. 설교도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문장이 수두룩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입만 열면 은혜가 넘쳐 수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고 미국이, 영국이, 세계가 새로워졌습니다. 디엘 무디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나라 S회사의 K사장은 몸이 약해서 고등학교를 중퇴했습니다. 그런데 1994년도에 자동차가 종잇장처럼 찌그러지는 대형 사고를 당했지만 그는 다행히 타박상만 입고 살았습니다. 그 사고 현장에서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닫습니다.
‘아! 순간에 죽을 수도 있구나. 이렇게 차가 찌그러지는 와중에도 내가 산 것은 하나님의 뜻이겠구나. 이제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겠구나. 내가 비록 약하고 공부한 것도 없지만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겠다.’
그래서 10년 전, 그는 오천만 원으로 3평짜리 사무실을 얻어 직원 두 사람과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그 회사의 매출액이 750억 원을 넘는다고 하는데, 매출액의 상당 부분을 떼어 주님을 위해 선하게 쓰고 있습니다.
그는 ‘몸도 약하고 배운 것도 없고 전 재산이 5,000만 원뿐이었던 내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라고 간증합니다.
이름을 말하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회사인데 제가 말하지 않는 것은 조심하기 위해서입니다. 간증을 하면 마귀가 공격을 합니다. 그래서 간증을 너무 많이 하면 마귀의 공격으로 간증이 부끄럽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손해가 많습니다. 간증이 빛나도록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배우지 못하고 허약해도 하나님을 위해 살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공부를 많이 한 인텔리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최고의 지성인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과거에 배운 모든 것은 분토만도 못하다. 내게는 십자가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또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보면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바울을 귀하게 들어 써 주신 것입니다. 잘나도 겸손하고 못나도 겸손하고 하나님만 높이면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니 잘 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IQ, EQ가 낮은데 공부를 잘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더 잘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라반이 네게 행한 것을 다 보았노라. 라반이 너를 억울하게 한 것을 다 보았노라.”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가 억울한 일 당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다 보십니다. 누가 우리를 억울하게 하고, 누가 우리를 속이고, 누가 우리를 아프게 하는지를 다 보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너를 범하는 자는 내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나는 부족해도 하나님의 자녀고 하나님의 눈동자다.”
라반이 야곱을 억울하게 만드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보고 계시다가 마지막에 라반의 집에 쌓인 재산을 야곱에게 다 옮겨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억울함을 보시고 그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우리의 변호사이시고 우리의 대변인이십니다. 우리 옆에 계셔서 우리의 손을 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아하수에로 왕의 궁전 내시인 빅다나와 데레스가 왕을 죽이려고 모함하는 것을 궁궐 문지기로 일하는 모르드개가 들었습니다. 그것을 바로 보고하여 빅다나와 데레스는 죽고 왕은 살게 됩니다. 그런데 왕이 자기 생명을 건져준 모르드개를 잊어버리고 세월을 보냅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는 하만 총리의 미움을 받아 50규빗 높이의 장대에 달려 죽게 됩니다. 모르드개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다 죽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하수에로 왕이 아무리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아 옆에 있는 신하에게 궁중 일기를 읽게 합니다. 신하가 궁중일기를 펴니 빅다나와 데레스가 왕을 모살하려던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것을 읽으니 왕이 듣고 깜짝 놀라며 묻습니다.
“아니? 그러면 내 생명을 구원해 준 그에게 어떤 존귀한 관작이나 큰 상을 베풀었는가?”
“아무것도 내리지 않은 줄 압니다.”
“어찌 그럴 수 있나? 내가 큰 실수를 했구먼. 여봐라! 밖에 누구 없느냐?”
마침 그때 하만 총리가 50규빗 높이의 장대에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는 허락을 받으러 왔습니다.
“하만 총리가 있나이다.”
“들어오게 하라.”
하만이 들어왔습니다.
“하만! 내가 존귀하게 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그때 하만은 ‘왕이 나 외에 누구를 존귀하게 해주고 싶겠나?’라고 착각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왕께서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왕의 의복을 입히시고 왕관을 씌우시고 왕께서 타시는 말을 타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에게 그 말고삐를 잡게 하시고 성내를 돌면서 ‘왕께서 높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한다.’라고 반포하게 하소서.”
그러자 왕이 “그래, 그러면 자네가 말한 그대로 궁전 문 앞에 앉은 모르드개에게 행하게. 그에게 왕관을 씌우고 내 옷을 입히고 내 말을 태워서 자네가 그 고삐를 잡고 시내를 돌게.”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저놈이 내 자리를 엿보는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하만을 죽이고 하만의 총리직과 집을 모르드개에게 줍니다.
하나님께서 모르드개의 억울함을 풀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회사에서, 집에서, 그 어디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습니까? 절대로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반드시 풀어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아, 이제는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back to your native land).”
따라 합시다.
“출생지로 돌아가라.”
이제 야곱은 20년간 살았던 처가살이를 끝내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처가살이를 하는 동안에도 7년은 라헬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라헬을 향한 사랑 때문에 7년을 수일처럼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 다음 7년도 억울한 일이 없었습니다. 정당하게 임금을 받았습니다. 두 아내를 얻었고 자식을 낳는 기쁨에 잘 살았습니다. 그 다음 3,4년간은 임금을 열 번이나 사기 당했습니다. 억울하게 살았습니다. 마지막 1,2년은 잘되었습니다.
그러나 행복했던 날들도 지나가고, 속으며 살았던 날들도 지나가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억울하게 살았던 날들도 지나가고, 잘되었던 날들도 지나갔습니다. 처남들의 거친 태도, 장인어른의 좋지 않은 안색도 다 지나갔습니다.
따라 합시다.
“다 지나가는 것이다. 다 지나가는 것이다.”
여러분, 좋은 일이 있어도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그것도 지나갑니다. 장사가 잘되어도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그것도 지나갑니다.
이 지역의 큰 빌딩 주인이었던 한 분은 얼마나 돈을 잘 벌었는지 모릅니다. 이 지역의 돈은 거의 다 그 집으로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잘 되어서 큰 빌딩을 또 지었습니다. 그런데 IMF가 터졌습니다. 빌딩이 텅 비게 되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 부도가 났습니다.
잘된 것도 지나가고, 행복한 순간도 지나가고, 그저 그런 삶도 지나갑니다. 사람들이 거칠게 대했던 날들도 다 지나갑니다. 그러니 누가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이것도 지나간다.’ 하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따라 합시다.
“지나간다.”
시어머니가 잔소리를 해도, 남편이 좀 힘들게 해도 그것도 지나갑니다.
밀라노 대성전은 이탈리아의 대표적 고딕 건물입니다. 그 성전의 문이 세 개인데, 그 첫째 문에는 아름다운 장미가 조각되어 있고 그 밑에 ‘기쁘고 좋은 순간도 지나간다. 잠시 후에.’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둘째 문에는 슬피 통곡하는 남자의 조각과 ‘괴롭고 아픈 일도 잠시 지나간다.’라는 글귀가 있고, 마지막 문인 셋째 문에는 ‘영원한 것, 그것만 중하다.’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영원한 것만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합니까? 그 행복도 지나갑니다. 거울 앞에서 ‘아! 내가 봐도 나는 예뻐.’라고 합니까? 그것도 지나갑니다. 가끔 하는 말이지만, 제가 몇 년 전만 해도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면서 거울을 보면 17세 소년처럼 보였습니다. 이제는 아무리 보아도 소년 같지 않습니다. 세월이 조금 더 지나면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제가 시간이 없어 TV를 보지 않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제 설교를 봅니다. 그 때마다 ‘전에 얼굴이 아닌데…….’ 하게 됩니다.
따라 합시다.
“지나간다.”
여러분이 제 설교를 들으며 은혜를 받지만 저도 지나갑니다. 너도 가고 나도 가고 다 갑니다. 우리의 종착역은 천국입니다.
「저 건너편 강 언덕에 아름다운 낙원 있네 믿는 이만 그곳으로 가겠네
저 황금 문 들어가서 주님 함께 살리로다」 할렐루야!
여기에 있는 학생들도 내일 모레면 아줌마 아저씨가 되고 나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됩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 너무 마음을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재산이 불어나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 재미에 너무 빠지면 하나님께서 흔들어버리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지만 우리의 참 본향은 이 땅에 있지 않습니다.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우리가 고향에 가지만 그 고향은 잠깐 다녀오는 고향이지, 참 본향이 아닙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여기에서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영원히 사는 곳은 천국입니다.
우리의 재물을 은행에 너무 많이 두면 나중에 가슴을 치게 됩니다. 은행에 아무리 많이 쌓아 두어도 죽을 때 한 푼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에서 21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 보물이 천국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잊어 버려야 됩니다.
내가 실수한 것, 죄 지은 것, 잘못 산 것을 잊어버립시다. 과거는 강물에 흘러간 톱밥입니다.
제가 첫 목회를 할 때의 일입니다.
어떤 스님이 인생에 허무를 느껴 집으로 돌아가 자살을 하려고 하는데 우리 집사님 한 분이 전도를 해서 그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D도시의 장로님 딸과 중매를 해서 그가 결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식 때 신부 교회의 목사님이 주례를 하시고 제가 기도를 했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식사를 하면서 앞에 앉아 있는 분을 보니 아는 분이었습니다.
“○○ 아니세요?”
“아, 전도사님. 맞습니다. 제가 ○○입니다.”
“저도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제가 “열심히 믿음 생활하세요.”라고 한다는 것이 그만 제 입에서 “열심히 계세요.”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글은 잘못 썼을 때 지우면 되는데 말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말에는 지우개가 없습니다. 그 말을 하고 나니 얼마나 부끄러운지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다 그 말을 들었을 것 아닙니까?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의자에서 “열심히 계세요. 열심히 계세요.”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집에 가니 아내가 “이제 오세요?”라고 하는데 그것도 “열심히 계세요.”라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저녁상을 받았는데 밥에서도, 국에서도 “열심히 계세요. 열심히 계세요.”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밤에 성경을 펴도 “열심히 계세요. 열심히 계세요.”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리에 누우니 마귀가 ‘목사는 평생 말로 살아야 되는데 인사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목회를 하려 하느냐? 일찍이 농사나 지으러 가라.’라고 했습니다. 새벽기도도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설교 준비를 하는데도 “열심히 계세요. 열심히 계세요.” 하는 말이 자꾸만 떠올라 제대로 설교 준비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열심히 계세요. 열심히 계세요.”라는 말 때문에 3일 동안 그렇게 처져서 살았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한심했습니다. 그래도 힘없이 성경을 차례차례 읽는데, 이사야 43장 18, 19절 말씀이 저를 쳤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그 말씀을 읽는 순간 ‘그래, 열심히 계시면 어떻고 안 계시면 어떠냐?’라는 생각과 함께 힘이 솟아났습니다.
따라 합시다.
“남의 허물, 3일 안 간다.”
사람들은 남의 허물을 3일도 기억하지 않는데 저는 계속해서 ‘열심히 계세요. 열심히 계세요.’라는 말에 묶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제가 그것을 탁 털고 나와서 오늘에 이르렀지, 만일 계속 ‘열심히 계세요.’를 뿌리치지 못했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여러분, 실수한 것을 잊어버립시다. 죄 지은 것을 잊어버립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과거의 허물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실수한 것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부끄러운 삶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다 잊어버리고 새 일을 행합시다. 그렇게 살다가 영원한 천국,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가 정말 죄와 슬픔을 다 잊고 영원 복락을 누리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