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영어책
손유심
언니가 걸어오고 있었다. 발등에 닿을락 말락 한실크 스커트가 흰 가운들과 환자복 사이에서 눈에 띄었다. 어떤 마찰도 없이 찰랑찰랑한 치맛자락과 급할 것 없어 보이는 걸음걸이에는 삶의 어떠한 하중도 느껴지지 않았다. 누가 봐도 수술을 앞둔 환자의 보호자처럼 보이진 않았다. 내가 입고 있는 느슨한 밴딩 데님바지와 하늘하늘한 실크 스커트는 패턴의 직조가 다르 듯 언니와 나는 삶의 패턴도 달랐다.
- 너밖에 없네. 네가 어머니를 모셔야겠다.
큰오빠가 말했다. 그 곁에 있던 맏딸인 언니와 작은 오빠가 나를 쳐다보았다. 왜 나밖에 없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태생부터 예외라는 듯 입을 꾹 다물고 내 반응을 기다렸다. 아마도 내가 여자이고 결혼을 하지 않아서, 돌보아야 할 자식도 없으니까, 정규직 직장을 다니지 않으니까, 오랫동안 네가 엄마를 잘 보살펴왔으니까, 네가 가장 잘하니까 당연히 내가 엄마를 돌보아야 한다고 셋이서 합의한 모양이다. 고령의 엄마를 시골에서 모셔왔고, 내 인생에 없을 줄 알았던 돌봄의 삶이 시작되었다.
엄마가 척추관협착증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방에 들어갔다. 의사는 다른 노인도 많이 하는 수술이라고 안심하라고 했지만 팔순을 훌쩍 넘긴 고령이라 마취가 걱정되었다.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어서 복도를 서성이는데, 아까부터 언니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과 언니를 찾기 위해 중앙 복도로 나왔다. 기웃거리다 보호자 대기실이 따로 있는 것을 보았다. 벽면에는 각종 사인이 표시되는 모니터와 TV가 있고, 커피와 캔 음료가 진열된 자동판매기도 보였다. 여남은 보호자들이 정면을 향해 등지고 앉았는데, 아무도 차를 마시거나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지나가다가 힐끗 언니를 본 것 같았다. 잘못 봤나 싶어 다시 확인했다. 스마트폰을 보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쳇, 여기 있었으면서… 한소리를 하려고 가까이 가다가 멈칫했다. 언니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해외여행 영어회화책이었다. 하도 열중하느라 사람이 가까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다가올 가을에 유럽으로 해외여행을 간다고 알음알음 준비해왔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를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떤 사람은 내게 효녀라고 말했다. 공원에서, 동네병원에서 만난 노인들은 엄마와 나를 번갈아 보고는 한결같이 내가 딸인지 며느리인지를 궁금해했다. 딸이라고 씩씩하게 대답하면 착한 효녀라고 칭찬하듯 말했다. 그러나 다른 해석이 필요한 하얀 거짓말에 가까웠다. 노인 돌봄은 유능하고 잘난 시람의 일이 아닌 밀실 구석의 허드렛일 혹은 일용직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인생을 잘못 쓰고 있나, 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돌봄이 절대 필요한 노인의 마지막 여생에 곁에 있어 주는 것뿐인데 나를 덜 진화한 인간으로 보는 것 같았다. 내 수고로 노쇠한 엄마에게 큰 위안이 될 것이고, 그건 고귀한 인간의 일이지 않나, 그게 내 인정과 도리이고 합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효도가 아니라 사랑이고 쓸모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었다.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지치기 시작했고,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미래의 시간까지 다 써버린 것 같았다. 이럭저럭 인생이 다 지나가는 건가 불안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미미하더라도 내가 원하고 계획했던 일은 손에서 놓치 말자 했지만, 모든 생각의 시작과 끝은 엄마였다. 아파트 거실 창밖으로 오가는 사람도 없는 앞마당을 내다보며 나를 기다릴 것이다. 약은 잘 챙겨 드셨나, 차려놓고 나온 점심은 드셨나, 죄책감에 늘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읽던 책을 덮고 서둘러 도서관을 나선다. 이 돌봄이 끝나면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내게 아직 미래가 남아있을까, 나는 점점 작아지기만 했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언니를 본 후 곧 그 방을 나왔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비상구 계단을 내려왔다. 다 버리고 멀리 도망갈 생각밖에 없었다. 1층 주차장 출입구가 있는 에스컬레이터 뒤에서 주차장을 보는 척하며 팔짱을 끼고 침착해지기를 기다렸다. 가족 어느 누구도 내게 고마워하지 않았다. 힘들고 고단한 나를 알아주기를 바랐지만 해가 갈수록 나는 점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어디로 갈까, 생각하는데 어느새 가득 고인 눈물이 볼을 타고 팔 위로 뚝뚝 떨어졌다. 나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마침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공간이었고, 또 이곳이 병원이라서 참 다행이란 생각도 했다.
소소하거나 원대하거나 우리는 늘 ‘미미한 어떤 것’을 계획하고 움직인다. 그것에 의지해 하루를 살아가고 불완전한 존재를 견딘다. 희망, 소망, 꿈, 버킷리스트라고 말하는 것들이다. 이게 없는 삶도 있을 터인데, 그런 경우에는 삶의 하중을 감당하기가 참 힘들다. 그때 내가 그랬다.
원래는 있었으나 휩쓸리고 납작해지지 않으려 버둥거리다가 잃어버린 것들. 그러지 않았다면 가족이 이기적이고 치졸해도, 가능성과 반전의 기회가 내 인생에서 줄어들어도 크게 휘청이진 않았을 것이다. 그날 느닷없는 울음의 정체는 언니의 영어책이 환기시킨 내 욕망의 간절함이었다.
엄마의 두 번째 기일을 앞두고 있다. 지나온 기억마다 후회와 자책의 지뢰밭이지만, 이제 오롯이 내 삶을 궁리중이다.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도서관에서 열리는 인문학 강좌를 신청해 두었다. 자수 블라우스와 예쁜 신발도 샀다.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떠나는 전날의 새내기처럼 설레었다. 이제 내 일상의 배경도 하나씩 달라지고 있다. 나에 대한 환한 희망을 품는다.
- 2024 제16회 강원문학신인작품상 수필부문 당선작
[프로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기획편집자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