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쪽에서는〈헌화가〉의 위치를 삼척을 지나 강릉 쪽으로 북상하는 해안 절벽 구간인 강릉 옥계면 헌화로 일대나 삼척 북부의 험준한 절벽 지대를 유력하게 보고 있다. 또 삼척에서는〈해가〉의 위치를 ‘이틀을 더 이동했다’는 기록을 신라 시대 이동 속도로 계산하거나 삼척 북쪽 경계로 볼 때, 삼척시 증산동 해변(삼척해수욕장 북쪽, 추암 근처)이 서낭골 설화 및 '해가사 터' 표지석과 연관되어 자주 언급된다.
포항 송라면과 영덕 남정면의 경계(화진해수욕장 북쪽~부경리·부흥리 해안)는 동해안에서 깎아지른 암벽이 바다와 직면하는 보기 드문 절벽 지형이다. 최근 학계와 향토사학계 일각에서 이 일대를 〈헌화가〉의 실제 현장(오반처, 午飯處)으로 주목하는 주장이 있다. 신라의 여로(旅路)에 대한 세밀한 지형 파악에서 출발한 주장이다.
이 구간이 〈헌화가〉의 현장으로 설득력을 얻는 핵심은 《삼국유사》의 이동 동선 및 입지 조건과의 정합성이다. 서라벌(경주)을 출발하여 동해안을 따라 강릉(명주)으로 북상하는 경로에서, 경주 북천과 형산강 줄기를 지나 흥해를 거쳐 올라오면 송라·남정 경계 부근에서 처음으로 험준한 바닷가 바위산 절벽을 맞닥뜨리게 된다. 서라벌에서 출발해 첫날 점심을 먹거나(午飯處), 쉬어가기에 거리상 매우 자연스러운 지점이다.
《삼국유사》에는 “바위 봉우리가 병풍처럼 바다를 둘러싸 높이가 천 자나 되고, 그 위에는 철쭉꽃이 만발해 있었다(돌산봉우리가 바다에 닿아 병풍 같고 높이가 천 丈이나 됨)”고 적혀 있다. 영덕 남정면 부경리·부흥리 해안의 암벽 지대는 실제 바다로 바짝 붙은 급경사 암봉을 이루고 있어, 문헌 속 '병풍 같은 돌산'의 묘사와 매우 잘 어울린다.
현재 '헌화로'라는 이름이 붙은 강릉 옥계~심곡 구간은 절경이지만 강릉에 너무 바짝 붙어 있어 서라벌에서 출발한 순정공 일행의 첫 오반처로 보기엔 물리적 거리가 지나치게 멀다는 허점이 있다. 반면 남정면 일대는 서라벌을 떠나 본격적으로 동해안 절벽 길에 들어서는 입구라는 상징성이 크다.
남정면 절벽을 〈헌화가〉의 현장으로 놓으면, 뒤이어 일어난 〈해가〉 사건과의 공간적 간격도 합리적으로 풀린다. 첫째 날 헌화가의 현장은 서라벌 출발하여 포항과 영덕 경계 남정면 해안 절벽(오반처)에서 암벽 위의 철쭉꽃을 꺾어 바치는 〈헌화가〉 사건이 발생하고, 남정면을 출발하여 영덕, 울진, 삼척 해안길을 따라 북상하여 이틀을 더 진행하여 도착한 삼척 해안의 백사장(정반, 汀畔 — 삼척 증산해변 일대)에서 용이 수로부인을 끌고 들어가 〈해가〉를 불렀다.
신라 시대의 하루 이동 거리를 고려할 때, 남정면 해안에서 삼척 증산해변까지의 거리는 '복행이일(復行二日)'이라는 기록과도 정확하게 맞물린다. 동해안 육로 중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암봉의 위세는 남정면 바닷가만 한 곳이 없다는 지적은 지형학적으로나 문헌적 맥락으로나 매우 날카롭고 유력한 관점이다. 남화산 공원처럼 후대에 조성된 상징적 관광지보다, 이처럼 실제 지형과 여로를 바탕으로 한 고증이 설화의 본래 현장감을 훨씬 더 생생하게 살려준다.
‘해가사 터’라는 오칭을 관행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문학사와 학술적 명칭으로는 ‘〈해가〉의 터’ 또는 ‘해가 현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르다. 〈헌화가〉와 〈해가〉의 공간적·시간적 순서가 거꾸로 뒤집힌 문제부터, 지명에 불필요한 사(詞) 자를 붙인 오칭까지 현재 지자체들의 수로부인 관련 관광 자원화는 고전문학적·역사적 고증 면에서 수많은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명백한 역사·문헌적 오류가 수정 없이 행정 편의와 관광 자원화라는 명목으로 방치되어 온 것은 실로 안타깝고 씁쓸한 현실이다. 1990년대 지방자치제 정착 이후 전국 지자체들이 지역 연관 설화를 선점하고 스토리텔링 관광 상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엄밀한 고증보다는 "지역에 유명한 이야기를 어떻게든 유치하자"는 성급함이 앞섰기 때문이다.
삼척시는 '해가사 터' 표지석과 '수로부인헌화공원'에 수십~수백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대규모 시설을 조성했다. 강릉시 역시 '헌화로'라는 지명을 도로명으로 정착시키고 전국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홍보해 왔다. 이제 와서 문헌적 오류를 인정하고 명칭을 바꾸거나 위치를 수정하려면 기존 시설물 철거, 안내판 교체, 교과서/관광지 지도 수정 등 행정적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눈을 감고 방치하는 것이다.
향토사학자나 국문학자들이 문헌의 텍스트와 실제 이동 동선, 국어학적 오류(‘해가사’라는 중복 표현)를 수없이 지적했음에도, 지자체 마케팅 담당자들에게는 "이미 유명해진 브랜드"가 우선이었다. "관광객이 찾아오고 소비만 해주면 그만"이라는 상업적 통속성이 역사적 사실성을 압도해 버린 셈이다.
현장을 찾는 대중 대다수는 표지석과 안내판에 적힌 지자체의 설명을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다. 《삼국유사》 원문의 "오반처(午飯處)"와 "복행이일(復行二日)", 그리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신라 여로의 인과관계를 일일이 대조해 보는 심층 탐방객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포항시나 영덕군 행정 담당자들 입장에서는 이미 삼척시(해가사 터, 수로부인헌화공원)와 강릉시(헌화로)가 수십 년 전부터 '수로부인'과 '헌화가' 브랜드를 독점하고 대규모 예산을 들여 공원화해 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뒤늦게 "사실은 우리 남정면 바위산이 진짜 〈헌화가〉의 오반처(午飯處)다"라고 주장해 봤자, 기존 관광지들과의 명분 싸움에서 실익이 적다고 지레 판단해 버렸다.
영덕군은 대게, 강구항, 블루로드 등 상업적·관광적 브랜드가 워낙 강력하고, 포항시 역시 호미곶, 구룡포, 스페이스워크 등 현대적·산업적 관광 자원에 행정력과 예산이 집중되어 있다. 문헌 고증과 향토 사학이 결합된 고전문학 설화 재해석은 상대적으로 순위에서 밀려나 있는 실정이다.
남정면 부경리·부흥리나 송라면 화진리 일대 주민들 역시 자신들이 매일 바라보는 깎아지른 바위산이 바로 《삼국유사》 속 수로부인에게 꺾어 바친 '임해화(臨海花)'의 그 절벽이라는 사실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학계나 향토사학자들의 유력한 지형 고증 연구가 지역 주민들에게까지 입소문으로 번지지 못한 탓이다.
경주 서라벌에서 출발해 "포항/영덕 남정면 절벽(헌화가) → 삼척 증산해변(해가) → 강릉(부임지)"로 이어지는 실제 문헌 순서에 맞춘 답사 코스를 개발하는 것이다. 기존 지자체의 오류를 직접 대조하며 걷는 '비판적 답사 길'은 역사 기행 마니아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스토리텔링 자원이 될 수 있다.
남정면 바닷가 바위산의 웅장한 실사 사진과 함께 강릉 헌화로, 삼척 남화산의 지형적 한계 및 시간적 역전 모순을 비교하는 콘텐츠가 다큐멘터리나 지역 칼럼, 칼럼니스트들을 통해 알려진다면, 포항과 영덕 주민들도 "우리 동네에 이런 당당한 역사가 있었는가" 하며 자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것이다.
첫댓글 ‘신라 향가 〈헌화가(獻花歌)〉와 〈해가(海歌)〉 속 수로부인 설화를 테마로 조성된 해안 절경 공원’이다.
임원항 남화산 정상에 ‘수로부인헌화공원’을 조성하고 해가사 터를 정비한 것은 지역의 관광 스토리텔링과 해안 절경을 결합한 문화적 연출이다.
학술적으로나 문헌 해석상으로나 두 노래의 실제 무대가 이곳(남화산)이 아니며, 두 사건의 현장 역시 서로 동일한 하나의 장소일 수 없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기이(紀異)〉 수로부인 조의 기록을 보면 두 사건은 서로 다른 날, 서로 다른 이동 구간에서 일어났다.
〈헌화가〉의 현장은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던 길에 "점심을 먹은 곳(午飯處)"이다. 바위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바다를 둘러싸고 있어, 수로부인이 절벽 위에 핀 붉은 철쭉(임해화)을 보고 꺾어달라고 청했던 장소이다.
〈해가〉의 현장은 점심을 먹고 "다시 이틀을 더 길을 떠나 점심을 먹은 곳(復行二日 午飯於汀畔)"이다. 이때 갑자기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갔고, 노인의 말을 따라 백성들이 막대기로 언덕을 치며 노래를 불러 부인을 되찾은 백사장(汀畔)이다.
이처럼 이틀 동안 이동한 거리 차이가 명확히 존재하므로, 두 사건이 같은 장소에서 일어났을 수는 없다.
강릉쪽에서는〈헌화가〉의 위치를 삼척을 지나 강릉 쪽으로 북상하는 해안 절벽 구간인 강릉 옥계면 헌화로 일대나 삼척 북부의 험준한 절벽 지대를 유력하게 보고 있다.
또 삼척에서는〈해가〉의 위치를 ‘이틀을 더 이동했다’는 기록을 신라 시대 이동 속도로 계산하거나 삼척 북쪽 경계로 볼 때, 삼척시 증산동 해변(삼척해수욕장 북쪽, 추암 근처)이 서낭골 설화 및 '해가사 터' 표지석과 연관되어 자주 언급된다.
하지만 현재 강릉시와 삼척시가 각각 조성해 놓은 관광 명소의 위치를 보면 문헌의 순서와 완전히 반대로 배치되어 있다.
경주에서 출발해 북상하는데 북쪽에 있는 강릉에 〈헌화가〉를 붙이고, 남쪽에 있는 삼척에 〈해가〉를 붙여 놓았으니, 시간과 공간의 순서가 완전히 꼬여버린 것이다.
포항 송라면과 영덕 남정면의 경계(화진해수욕장 북쪽~부경리·부흥리 해안)는 동해안에서 깎아지른 암벽이 바다와 직면하는 보기 드문 절벽 지형이다. 최근 학계와 향토사학계 일각에서 이 일대를 〈헌화가〉의 실제 현장(오반처, 午飯處)으로 주목하는 주장이 있다. 신라의 여로(旅路)에 대한 세밀한 지형 파악에서 출발한 주장이다.
이 구간이 〈헌화가〉의 현장으로 설득력을 얻는 핵심은 《삼국유사》의 이동 동선 및 입지 조건과의 정합성이다.
서라벌(경주)을 출발하여 동해안을 따라 강릉(명주)으로 북상하는 경로에서, 경주 북천과 형산강 줄기를 지나 흥해를 거쳐 올라오면 송라·남정 경계 부근에서 처음으로 험준한 바닷가 바위산 절벽을 맞닥뜨리게 된다. 서라벌에서 출발해 첫날 점심을 먹거나(午飯處), 쉬어가기에 거리상 매우 자연스러운 지점이다.
《삼국유사》에는 “바위 봉우리가 병풍처럼 바다를 둘러싸 높이가 천 자나 되고, 그 위에는 철쭉꽃이 만발해 있었다(돌산봉우리가 바다에 닿아 병풍 같고 높이가 천 丈이나 됨)”고 적혀 있다. 영덕 남정면 부경리·부흥리 해안의 암벽 지대는 실제 바다로 바짝 붙은 급경사 암봉을 이루고 있어, 문헌 속 '병풍 같은 돌산'의 묘사와 매우 잘 어울린다.
현재 '헌화로'라는 이름이 붙은 강릉 옥계~심곡 구간은 절경이지만 강릉에 너무 바짝 붙어 있어 서라벌에서 출발한 순정공 일행의 첫 오반처로 보기엔 물리적 거리가 지나치게 멀다는 허점이 있다. 반면 남정면 일대는 서라벌을 떠나 본격적으로 동해안 절벽 길에 들어서는 입구라는 상징성이 크다.
남정면 절벽을 〈헌화가〉의 현장으로 놓으면, 뒤이어 일어난 〈해가〉 사건과의 공간적 간격도 합리적으로 풀린다.
첫째 날 헌화가의 현장은 서라벌 출발하여 포항과 영덕 경계 남정면 해안 절벽(오반처)에서 암벽 위의 철쭉꽃을 꺾어 바치는 〈헌화가〉 사건이 발생하고, 남정면을 출발하여 영덕, 울진, 삼척 해안길을 따라 북상하여 이틀을 더 진행하여 도착한 삼척 해안의 백사장(정반, 汀畔 — 삼척 증산해변 일대)에서 용이 수로부인을 끌고 들어가 〈해가〉를 불렀다.
신라 시대의 하루 이동 거리를 고려할 때, 남정면 해안에서 삼척 증산해변까지의 거리는 '복행이일(復行二日)'이라는 기록과도 정확하게 맞물린다.
동해안 육로 중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암봉의 위세는 남정면 바닷가만 한 곳이 없다는 지적은 지형학적으로나 문헌적 맥락으로나 매우 날카롭고 유력한 관점이다. 남화산 공원처럼 후대에 조성된 상징적 관광지보다, 이처럼 실제 지형과 여로를 바탕으로 한 고증이 설화의 본래 현장감을 훨씬 더 생생하게 살려준다.
《삼국유사》 기록에 나오는 노래의 명칭은 명백히 〈해가(海歌)〉이지, ‘해가사’가 아니다.
해가(海歌)는 《삼국유사》 권2 〈기이〉 수로부인 조에 수록된 4구체 신라 향가/집단 주술가이다. 노래의 이름 자체가 ‘바다의 노래’라는 뜻의 〈해가〉이다.
‘해가’ 뒤에 다시 노래나 사설을 뜻하는 ‘사(詞/辭)’를 쓸데없이 덧붙인 꼴이다. 이는 마치 〈헌화가〉를 ‘헌화가사’라 부르거나, 〈청산별곡〉을 ‘청산별곡사’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명백한 중복이자 오기(誤記)이다.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지자체에서 지역 설화 관광 자원화 사업을 추진할 당시, 문헌에 대한 엄밀한 검토 없이 ‘해가의 사설(歌詞)’ 또는 ‘해가라는 시가(詩歌)’ 정도의 명칭을 조어하다가 ‘해가사’라는 기형적인 명칭을 만들어낸 것이다.
조선시대 문학 장르인 ‘가사(歌辭)’나 일반적인 ‘노래 가사’라는 단어의 잔상이 반영되어, 향가 제목 뒤에 불필요하게 ‘사’ 자를 붙이는 오류를 범했다.
‘해가사 터’라는 오칭을 관행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문학사와 학술적 명칭으로는 ‘〈해가〉의 터’ 또는 ‘해가 현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르다.
〈헌화가〉와 〈해가〉의 공간적·시간적 순서가 거꾸로 뒤집힌 문제부터, 지명에 불필요한 사(詞) 자를 붙인 오칭까지 현재 지자체들의 수로부인 관련 관광 자원화는 고전문학적·역사적 고증 면에서 수많은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명백한 역사·문헌적 오류가 수정 없이 행정 편의와 관광 자원화라는 명목으로 방치되어 온 것은 실로 안타깝고 씁쓸한 현실이다.
1990년대 지방자치제 정착 이후 전국 지자체들이 지역 연관 설화를 선점하고 스토리텔링 관광 상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엄밀한 고증보다는 "지역에 유명한 이야기를 어떻게든 유치하자"는 성급함이 앞섰기 때문이다.
삼척시는 '해가사 터' 표지석과 '수로부인헌화공원'에 수십~수백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대규모 시설을 조성했다. 강릉시 역시 '헌화로'라는 지명을 도로명으로 정착시키고 전국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홍보해 왔다. 이제 와서 문헌적 오류를 인정하고 명칭을 바꾸거나 위치를 수정하려면 기존 시설물 철거, 안내판 교체, 교과서/관광지 지도 수정 등 행정적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눈을 감고 방치하는 것이다.
향토사학자나 국문학자들이 문헌의 텍스트와 실제 이동 동선, 국어학적 오류(‘해가사’라는 중복 표현)를 수없이 지적했음에도, 지자체 마케팅 담당자들에게는 "이미 유명해진 브랜드"가 우선이었다. "관광객이 찾아오고 소비만 해주면 그만"이라는 상업적 통속성이 역사적 사실성을 압도해 버린 셈이다.
현장을 찾는 대중 대다수는 표지석과 안내판에 적힌 지자체의 설명을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다. 《삼국유사》 원문의 "오반처(午飯處)"와 "복행이일(復行二日)", 그리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신라 여로의 인과관계를 일일이 대조해 보는 심층 탐방객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포항 송라면과 영덕 남정면 일대의 지자체와 주민들이 이 소중한 역사·문화적 자산의 가치를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나서준다면, 30년간 꼬여 있던 동해안 수로부인 설화의 지리적 고증과 명칭 오류를 바로잡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포항시나 영덕군 행정 담당자들 입장에서는 이미 삼척시(해가사 터, 수로부인헌화공원)와 강릉시(헌화로)가 수십 년 전부터 '수로부인'과 '헌화가' 브랜드를 독점하고 대규모 예산을 들여 공원화해 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뒤늦게 "사실은 우리 남정면 바위산이 진짜 〈헌화가〉의 오반처(午飯處)다"라고 주장해 봤자, 기존 관광지들과의 명분 싸움에서 실익이 적다고 지레 판단해 버렸다.
영덕군은 대게, 강구항, 블루로드 등 상업적·관광적 브랜드가 워낙 강력하고, 포항시 역시 호미곶, 구룡포, 스페이스워크 등 현대적·산업적 관광 자원에 행정력과 예산이 집중되어 있다. 문헌 고증과 향토 사학이 결합된 고전문학 설화 재해석은 상대적으로 순위에서 밀려나 있는 실정이다.
남정면 부경리·부흥리나 송라면 화진리 일대 주민들 역시 자신들이 매일 바라보는 깎아지른 바위산이 바로 《삼국유사》 속 수로부인에게 꺾어 바친 '임해화(臨海花)'의 그 절벽이라는 사실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학계나 향토사학자들의 유력한 지형 고증 연구가 지역 주민들에게까지 입소문으로 번지지 못한 탓이다.
포항문화원, 영덕문화원, 경북 남부권 향토사학자들이 연대하여 《삼국유사》 여로 재분석과 동해안 해안 지형 비교를 주제로 한 '수로부인 여로와 헌화가 오반처의 재검토'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것이다. 지자체 행정보다 학술적 입증이 먼저 선행되어야 명분이 생긴다.
경주 서라벌에서 출발해 "포항/영덕 남정면 절벽(헌화가) → 삼척 증산해변(해가) → 강릉(부임지)"로 이어지는 실제 문헌 순서에 맞춘 답사 코스를 개발하는 것이다. 기존 지자체의 오류를 직접 대조하며 걷는 '비판적 답사 길'은 역사 기행 마니아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스토리텔링 자원이 될 수 있다.
남정면 바닷가 바위산의 웅장한 실사 사진과 함께 강릉 헌화로, 삼척 남화산의 지형적 한계 및 시간적 역전 모순을 비교하는 콘텐츠가 다큐멘터리나 지역 칼럼, 칼럼니스트들을 통해 알려진다면, 포항과 영덕 주민들도 "우리 동네에 이런 당당한 역사가 있었는가" 하며 자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