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동양사학자들(보통 자기 세부전공 아닌 경우, 교양서 차원 이야깁니다.)이 서양사를 평가할때 자신들의 역사적 경로/사상에 따라 평가하는 오류를 자주 범하듯, 서양사학자들도 일반적으로 같은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중국사를 다루는 서구사학자들이 조조를 '중국의 카이사르' 정도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군사적 재능이 뛰어난 간웅이며, 다방면에 유능함을 보였고, 자기중심적인 자아와 사람을 이끌 줄 아는 친화력 같은 공통점이 있었으니까요. 무엇보다 기존의 체제를 부수고 새로운 체제를 세웠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일단 그렇게 인식됩니다.)
행적과 성격, 능력만 보자면 두 영웅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양자에 대한 당대인들의 평가는 완전히 달랐지요. 카이사르는 당대부터 지금까지 빠와 까가 격렬히 나뉘는 논쟁적 인물이지만, 조조는 현대에는 몰라도 유교적 전통은 버젓히 살아있는 동안에는 '망탁조의'라고 불리며 더럽게 까였으니까요. 사실 조조같은 인물은 당대에나 지금에나, 동양인들의 세계관에선 받아들여지기 힘든 인물입니다. 하물며 당대인들이 충의지사라고 빨아재꼈는데 후대인들이 이제와서 이러쿵저러쿵 해본들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평가는 당대인들의 시각으로 내리는 것이 우선이니까요.
3줄요약
제갈량은 유교를 믿는 사람들에겐 존나 개쩌는 영웅이 맞다
그래서 코쟁이들이 보기엔 그냥 군벌두목 A에 불과한 놈이 왜 이렇게 빨리나 이해를 못할수도 있다.
동북아시아인들이 십자군을 '종교적 광신에 의한 미치광이 짓거리' 이상으로 해석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끗
ps : 중세유럽인들이 불멸의 영웅으로 빨던 사자심왕 리처드는 사대부적 가치로 평가하면 전쟁으로 국력 탕진해놓고 얻어낸건없는 병신암군새끼일겁니다(...) 중세유럽 정치의 컨텍스트를 전혀 이해를 못할테니까요. 원래 자기가 모르는 추상적인 가치는 다 불필요한거 아니겠습니까?
첫댓글 후한 말 삼국지 시기를 단순히 유교적 전통만으로 이해하는 건 좀 위험하다고 봐요. 지식인 층에서야 유교가 메이저였다지만, 일반 대중들 사이에선 도교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고. 게다가 당대인들의 가치관을 요모조모 뜯어보면 일반적인 유교의 가르침과는 좀 이질적인 부분이 있곤 합니다.
https://exidb.tistory.com/1422
당시의 민중종교이던 도교적 가치로 봐도 유씨가 황제인게 맞았다라..이것도 재밌군요 :) 좋은 스레드 소개감사합니다.
이렇게 되면 민중들사이에서 황건적은 호응을 받았는데, 망탁조의가 그렇게 욕먹던 이유도 설명이 되네요. 그 부분이 항상 의아했는데 감사합니다.
@George2021 그 놈들은 서구에서 똑같은 짓 했어도 개같이 까였을 겁니다. 단순히 동양 정신문화가 '달라서'는 아닙니다. 카이사르는 같은 로마인들에 대해 대량학살 저지른 적은 없었고 로마법에 대해 가능한 선에선 최대한 존중하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애초에 로마 공화정 자체가 거진 반쯤은 평민들 탄압하는 장치로 바뀌어져 있었고요. 하지만 한 제국은 그런 상황까진 아니었습니다. 아마 적어도 다재다능이란 면에선 조조가 카이사르를 능가하겠지만 특유의 똘끼가 강렬했기에 실패했던 거죠.
@마법의활 맞습니다, 사실 역사적 인물 카이사르는 술라와 마리우스에 비해서 굉장히 깔끔하게 숙청한 편이었지요. 오죽하면 자기가 사면해줬던 사람들에게 칼침맞아죽을정도였으니까요. (애초에 암살 자체가 공화정 전통 존중한다고 갈리아 근위대 해산했다가 벌어진 일이니까요.) 저도 말씀하신 연유로 조조를 '동양의 카이사르'로 칭하는건 잘못된 소개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비유가 제가 보던 서양인들 삼국지 개괄서에선 꽤 자주 보이더군요. 아마 카이사르가 갈리아인들 죽인거나 조조가 서주대학살 한거나 그게 그거 아니냐.. 같은 느낌이 아닐까 싶은데, 아쉽게도 당대 중원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안했지요.
@George2021 당대인이 문제가 아니라 현대 기준에서 봐도 되도 않는 얘기지요. 우리가 조선이 개같이 여진족들 족쳤다고 조선왕들 욕하진 않거든요. 하지만 서주대학살은 엄연히 같은 나라 사람들 죽인 건데.....무게가 같을 수가 없습니다.
ps. 이 지점에서 얼치기들이 나타나서 꼬옥 그냥 "그 당시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어요!" 따위 헛소리나 하지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ㅉㅉ
@마법의활 하긴 교양서 쓴다는 사람이 한제국 민중들의 천하관을 이해를 못하는건 그냥 공부 부족이라고 봐야겠군요(...)
@마법의활 ?? 근데 그당시에 조조에 대한 비난성명들을 봐도 다른건 거론해도
서주대학살은 거론이 안되서 그게 잔인할지언정 정치적파급력은 별로 없는일이라고들 하던데
그걸 얼치기라고 할거까지 있나요?
@松永久秀 정치적 파급력이 안 클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전형적인 위빠들의 헛소리고요. 그 엉터리 같은 나무위키에서마저 잘 반박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얼치기라고 하는 건 국가정체성이 근대에서만 있었다고 헛소리하는 PC충들의 개드립에 대해섭니다.
@마법의활 https://m.cafe.naver.com/ca-fe/web/cafes/10020104/articles/573692
https://cafe.naver.com/booheong/173752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eijin&no=22194
맹진학살이든 서주대학살이든 민간인 학살이 놀라울 정도로 거론이 안되서
그당시 백성취급은 가축과 인간사이쯤정도니까 역사서볼떄 유의해서 보라고들 얘길를 하길래 그런줄 알고있었는데
(전에 서현유저 관련해서도 보면 위진갤에선 서주대학살 항목을 서현의 분탕질의 결과물로 보더군요)
사료에 잘 안나옴에도 파급력이 클수밖에 없다고 보는이유가 있나요?
@松永久秀 위진갤이나 서현이나... 다 똑같은 놈들이네요. ㅋㅋ
@마법의활 삼도글 링크 캡처입니다(위진갤이나 부흥은 거의 이렇게 정리되었더군요)
결국 황제를 핍박한다든가 그런건 중요시해도 서주대학살에 대한 언급은 없다는게 걸리는데
나무위키의 반론이 더 설득력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더 있나요?
@松永久秀 어째서 그 두 커뮤니티의 동향이 그리도 중요한지 반문합니다. 둘 다 정반대 의미로 제대로 역사를 논하긴 어려운 공간입니다. 저보다 훨 뛰어난 분들이 거기에 많은것과 이는 별도 사항입니다.
@마법의활 어지간해서 거기서 실력있는사람들이 내놓는 여러 담론들이 논리가 탄탄해서인지(ex 이릉대전) 시간지나고보면
반대론자든 찬성론자든 그 프레임내에서 놀 정도로 파급력이 강한 모습을 여러번 봤고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49818592#cmt 다른커뮤니티 잘 안돌아다녔을땐 잘 몰랐는데
찾다보니까 인터넷에서 삼국지담론흐름에 영향력있는 네임드가 있다는게 파악되더군요)
전 판단이 잘 안되는 부분이 있어서 마활님 견해가 어떤지 궁금해서 질문해봤습니다
@마법의활 어 근데
당대인 또는 좀 시간차가 덜나는 후대인들이 쬬의 서주학살을 개까는 반례가 필요한 부분인거 같긴 한데요
@▦무장공비 서주대학살의 임팩트가 아무래도 서민층에 더 컸지만 사대부층에겐 황실을 학대한 게 훨 더 큰 건이었겠죠. 하지만 서주대학살이 정말로 별거 아니었다면 그 이후로도 이어지는 민중 차원에서의 조조 디스가 설명이 안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게, 서주대학살로 민중 전체가 또 조조를 비토하게 되지 않게 된 건 아예 논거로 쓸 수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동시에 조조한테는 혼란을 종식시켰다는 어마어마한 군공도 있었기 때문이죠.
지지자가 또 아주 없을 수는 없는 환경이라는 겁니다.
완전 민권의식이 이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 불과 한국 현대에서마저, 그 광주 학살 저지른 전두환마저도 당대에 그걸로 통치력이 크게 흔들리진 않았었던 점, 그리고 광주 학살에 대해 남의 일로 여기는 부류가 지금도 꽤 많은 것도 시사할 점입니다.
@▦무장공비 진짜 서주 외의 다른 지방엔 별 영향이 없었다면, 조조가 온다고하자 형주 백성들이 유비따라 피난갔던 일과 관우의 북상에 위나라 내부에서 호응하는 세력이 대거 나타나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활님 말씀대로 사대부들은 황실 핍박을 더 중요하게 보아서 기록해두지 않았겠지만, 일반 민중들 사이에선 반감이 적잖게 퍼져있다고 볼 근거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ㅇㅇㅋㅋㄹㅇ
그런 당대인의 평가가 단적으로 나타난게
"이밀의 진정표를 보고 울지 않으면 효를 모르는 자고 제갈량의 출사표를 보고 울지 않으면 충을 모르는자다."
라는 유명한 평이죠.
단 제갈량이나 강유의 북벌이 나라거덜낼 헛짓거리라고 보는 쪽도 당대에 없진 않았으니 복잡하죠
사자심왕의 예루살렘 출정 당시에도 백성부터 귀족에 이르는 대다수의 신민들이 환호했지만, 어느 주교 나리는 국내에 해결할 문제가 얼마나 많은데 이역만리 성지로 가서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상소문을 올렸었지요. 리처드답게 걍 씹어버리고 성지로 향하긴 했지만... 불가능해보이는 꿈을 향해 달려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는 반응들은 동서양,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마음이 들뜨는 사람들은 열광하고, 책임져야하는 사람들은 걱정하고...
가만히 앉아 국력차이로 인해 고사하기 전에 뭐라도 해야지요.
잔도난이 험난하다 한들 등애의 예도 있고, 몽골의 예도 있듯이
정신차린 대국이 작정하고 밀어버리면 소국은 밀립니다.
@구경하는사람24 그건 아닙니다. 이슬람 제국에게 상대가 안되니 아예 먼저 시비 거는 걸 일체포기한 7~8세기 로마의 예도 있습니다.
다만 그것과는 별도로 옹량 일대 방비가 상당히 해이한 측면을 놓칠 순 없었던 상황이 있습니다. 국력도 안되는데 어쩌구....따위는 이 상황을 간과한 것이지요.
@마법의활 한중-촉을 둘러쌓은 모든 곳을 방비하기에 촉의 국력이 모자른게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 촉이 틀어막아야 했던 곳이 크게만 봐도
양번-상용-한중,
양번-상용-촉,
남군-이릉-파-성도
장안- 한중
천수 - 한중
인데.. 제갈량은 가만히 있다가는 개처럼 두들겨 맞다가 결국 뚫릴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나 합니다.
서량을 먹고 장안을 틀어먹든 아니면 형주를 탈환하든 , 촉이 막아야 하는 길을 줄였어야 했다고 봅니다.
@구경하는사람24 기껏해야 세 군데입니다 결국. 한중, 성도, 촉만 잘 지키면 되죠. 가만히 있다고 개처럼 두들겨 맞는다고 하는데 패는 쪽도 먼저 지치게 되지요.
로마 제국은 아예 이슬람 제국하고 세력비가 1:10인데 이건 촉과 위의 세력비를 월등히 상회합니다. 게다가 이념적으로는 이슬람 제국쪽이 오히려 로마 제국을 멸망시켜야만 하는 충분한 당위가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이슬람 제국 전에 있었던 거대 제국으로 인식되고 있었기도 했고요. 기독교를 이슬람 이전 버전 떨어지는 종교로 취급하는 분위기도 있었고. 그리고 오히려 아나톨리아 쪽이 촉에 비해 경로도 더 많고 지키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이슬람 제국이 먼저 무리하게 무려 백 년 이상 패다가 로마측 우주방어에 지쳐버렸죠. (.....)
고구려 VS 신라 상황도 마찬가지로 죽령과 추풍령에서 사실 초반에 아주 그냥 백제가 먼저 그로기되어버리는 바람에 적어도 십 년 동안은 신라 혼자서 고구려를 상대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고구려가 먼저 패다가 지쳐버렸죠. ;;
물론 촉이 공세일 때 루트가 단순화되는 건 큰 이득이지만, 국력 소모나 위나라 측이 촉나라 측에 과도하게 신경쓰면서 자원과 인재를 그곳으로 집중할 위험
@구경하는사람24 이 커지게 됩니다. 로마 황제들이 괜히 빠가라서 이슬람측한테 한참 잘 이기고 역공 중인데 계속 편지 보내서 장군들 회군시킨 게 아닙니다.
물론 이걸 갖고 덜떨어진 위빠가 하하 제갈량은 바보였다 따위로 나오면, 저는 옹량의 민심이 극히 반 위나라적이었고 촉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으며 제갈량이 체제관리를 잘했다고 반론할 수 있으나, 공격루트 단순화만 들고 나오면
반례가 많기에 저는 그 부분으로 이론을 세우는 건 영 회의적입니다.
@마법의활 그렇군요. 그쪽 분야는 제가 공부하지 않고 자료를 찾아보지 않아서
생각이 얕습니다.
저는 지도를 보며 제갈량 사후 촉나라 장수와 위나라 장수 그리고 병력을 배치해보며
인선과 모의 시뮬레이터 해보았는데
지형적 이점이 있지만 모든 루트를 막기에는 장수의 무게감과 병력의 열세로 인해
촉이 답이 없다는 결론이 나서 그렇게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