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학 / 이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포스트잇 플래그가 흔들렸다
시가 될 씨눈에 표시해나가는 작은 깃발들
약제사 루크 하워드란 사람이 구름학을 만들었다는 문장에서
나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
그는 온종일 약방에서 일하느라 구름을 볼 수 없었다
약을 분류하고 쪼개고 빻는 동안 유리창 밖으로 구름이 장관을 이루었다
아무도 이름 불러준 적 없는 구름덩이들이 형상을 바꾸며
아침에서 저녁으로 지구 반대편으로 흘러갔다
올라가고 펼쳐지고 흩어지고 떨어지는 구름들*
시시각각 변하고 사라지는 구름에게
그러나 처음으로 이름을 붙여 준 사람이었다
과학자가 아닌 약제사라서가 아니라
사라지는 것에 이름을 붙여 주어서가 아니라
퇴근 후에야 그가 온전히 구름을 볼 수 있었다는 것
뭉치고 파묻고 떠돌고 부서지는 구름들
얼마나 많은 구름들이 그의 눈동자 속에서 낱낱이 살았을까
구름학이란 글자 옆에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인다
깃발 위에 동그라미를 치고 나는 그 안에
시라고 써넣었다
*구름이 올라가고 펼쳐지고 흩어지고 떨어지니: 괴테의 시「하워드에 따른 구름 형상들」에서 인용.
ㅡ 웹진 《님Nim》 202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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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잠 시인
충남 홍성 출생. 단국대 국문학과 졸업.
1995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해변의 개』 『늦게 오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