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가 내 삶의 중요한 숙제가 된 지 오래다. 추석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벌초공지를 하는 문자가 날아온다. 우리는 집안이 넓어 재종반이 27명이다. 할아버지 형제가 네 분이다 보니 이렇게 자손이 많은 셈이다. 7대조까지 우리가 벌초를 담당해야 하니 30기는 족히 된다. 여기저기 이산 저산에 산재해 있다 보니 몇 명씩 조를 짜서 나누어 벌초를 하니 수월한 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점차 벌초 오는 자손수가 줄어드는 데다 기후온난화로 여름날씨에 한다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전통풍습으로 추석 명절이면 차례를 지낸후 성묘를 다녀오는 것이 관습이었다. 그래서 추석 보름 전에 처서가 지난 후 벌초를 했다. 요즘은 처서의 개념조차 희박하여 찬기운으로 모기 주둥이가 삐뚤어진다는 처서에 열대야가 극성인 시절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질 것이 분명하다. 통계에 의하면 겨울이 한 달 짧아졌고 여름이 한 달 길어졌다 한다. 봄은 보름 일찍 오고 가을은 보름 늦게 오고.
그제 벌초하는 날 더위를 먹어 따운 될 뻔 했다. 4시 20분에 집을 나서 5시 40분에 경주에 있는 산소에 도착하여 예초기를 작동하기 시작했다. 두 시간 만에 베는 작업을 끝내고 치우는 작업을 막 끝낼 즈음 후발대가 도착했다. 부모님 산소는 백 평이나 되기 때문에 공동작업을 하기 전에 해치워야 하는데 다른 산소에 비해 따따불로 시간이 더 걸린다. 우리 조 6명이 담당해야 할 산소는 조부모 산소를 비롯해 15기다.
마치니 11시가 넘었다. 34도가 넘는 날 5시간 작업을 했더니 몸은 파김치 수준이 되었다. 이제 내 나이 70대 중반이라서 그런지 열사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이왕해야 할 일이지만 이 더운 염천에 해야 하는지 답답했다.
그래서 벌초하는 날짜를 두달 지연시켜 가을에 하자고 운을 떼보았으나 추석성묘를 해야한다 해서 내려놨다.그래봐야 근본 해결이 되는 것 도 아니다.
묘사나 벌초를 우리 세대에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데는 다들 공감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이제 조상에 대한 관념 자체가 사라졌다. 간신이 멀어져 가는 풍속을 잡아매려는 6.70대 세대가 불쌍해 보인다. 부모를 봉양한 마지막 세대이며, 자식들에게 외면받는 첫 세대가 되었다. 과도기라도 엄중한 과도기다.
이 답답한 현실을 타개해 보려고 기회 있을 때마다 토론해 봐도 걱정으로 탄식만 할 뿐 매번 유야무야다.
이제 시대적인 조류에 맞춰 나부터 실행해야겠다. 나는 작년 며느리를 보면서 통보했다. 설 추석명절 차례는 안 지낼 테니 시갓집 들릴 계획은 잡지 말고 여행이나 떠나라 했고, 부모님 제사는 합쳐서 지낸 지 10년이 넘었지만 우리끼리 간소하게 지낼 테니 오지 않아도 된다고 약속했다. 아들은 할아버지 산소는 지가 책임진다고 말은 하지만, 내가 죽기 전 어떤 방식으로든 자식에게 맡기지 않으려고 결심했다. 자식을 하나만 낳는 세태에 대를 이을 손자를 본다는 확신도 없다. 언젠가는 조상 산소가 애물단지가 될 텐데 내 선에서 해결하는 것이 답인 것 같다. 공원묘지로 이장하거나, 평장하고 화강석 판석으로 덮어 벌초를 하지 않아도 되게 하거나, 화장하여 납골당에 모시거나 할 작정이다. 유튜브에 보니 어떤 집안은 봉분을 시멘트콘크리트로 포장한 경우도 있었다.
30년 풍수를 공부해 보니 화장해도 아무 지장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산골하지만 않는다면. 일본이나 중국은 오래전부터 화장하는 문화다.
세월만큼 빠른 게 없다. 더 빨리 변한 건 세상 민심이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한다. 너무 급속히 변하는 세태가 어지로울 지경이다. 아무도 이 도도한 물결을 거스릴 수 없다.
조상님들도 달라진 이 세상을 이해하고 계실 거라 믿고 싶다.
남자 평균수명이 82세이니 살 날이 8년 남았다. 그때 까지는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해 놓고 죽으리라 각오를 다진다.
첫댓글 잘읽고 갑니다.
추석이 다가오는데 시의적절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모두 공감합니다 만 산골이란 대목에서 눈이 주춤거리기도 했습니다.저의 생각이 아직 정리되지 못한 때문입니다.
지극히 공감되는 글입니다. 기운 내시기 바랍니다.
시기 적절한 글에 공감도 합니다.
한 여름에 뙤약볕 에서 일하는 분들 조심해야 합니당
충성
조상 선산관리 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ㆍ
공감하기에 댓글 답니다 ㆍ건강하십시요 ㆍ
참 멋진 가치관을 가지셔서 추천 꾸욱 눌렀습니다.
"요즘 것들은 쯧쯧쯧..."이 아니라 요즘 사람들의 가치관을 혜량해 주심에 감동했습니다.
날마다 건강 하시길 응원합니다^^
간소화~
이제는 간소화가 필요한 시기인거 같아요.
장고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산골은 하지 마시고 평장을 하시면서 흙으로 돌아가시게 하는게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도자기에 넣어서 묻는것은 옳지못한 것입니다)
추석이 다가오면 벌초 문제가
보통 문제가 아니더군요.
자손들에게 짐 지우지 않으려고
하시는 장고 님 멋지십니다.
저는 지금부터 아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나 죽으면 화장해서
선산에 뿌려 달라고요.
3년 전 아들 내외가 제 생일때
사 온 올리브 나무를 잘 키우고
있는데, 그 나무를 심어 주면
참 좋겠다고 해요.
장고 님 글을 읽다보니 문득
함형수 시인의
해바라기의 비명이라는 시가
생각나네요.
시원시원한 글 잘 읽었습니다.
지난 3월 고국방문때 선산 관리문제로 친척들과 어려운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어
매우 공감이 되는 글입니다.
제 집안은 자손이 귀하고 외국에 많이 거주해서 선산 관리나 성묘가 당면한 큰 문제입니다.
대부분 공감합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농경시대 제사와 벌초는
중요한 가족행사지만
이제는 정리할 때가 온것같습니다
저희도 내일 부모님산소를 찾아뵙고
내년봄 이천호국원으로 이장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