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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 다 가지면 행복하니? 어깨동무 1967년 창간호 국민학교 다닐 때 아이들이 어찌나 많은 지 한 반에 보통 70명이 넘었다. 10반을 넘었으니 쉬는 시간에 운동장을 내려다보면 거짓말 안 보태고 새 카맣게 보였다. 원래 4학년이 되면 남과 여 반으로 나뉘었는데 내가 들어 간 반은 남녀 합반으로 6학년까지 그대로 갔다. 몇 학년 때인가 기억이 안 나는데 내 짝궁은 몹시 마르고 까무잡잡한 여 자 아이였다. 짝꿍은 도시락을 한 번도 가져오지 않았고 옥수수 빵을 받 아먹었다. 그런데 그 빵도 다 먹지 않고 남겨서 가방에 넣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연필이니 공책도 없을 때가 많았고 그림 도구는 아예 준비를 해오지 않았 다. 그래서 내 것을 많이 썼는데 정말 아껴서 잘 쓰려고 하는 것이 보여 반 쯤 쓴 크레용 셋트와 도화지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그 애가 빵을 받아서 자리에 앉는데 그 냄새가 너무 좋아서 내 도시락과 바꾸어 먹자고 했다. 그래도 되느냐고 하면서 짝꿍은 너무나 맛있게 도시락을 비웠고 나는 옥수수 빵을 잘 먹었다. 내가 짝꿍에게 앞으로 종종 바꾸어 먹자고 했더니 그 애는 그렇게 좋아했 다. 나는 그 시절만 해도 빵순이었고 옥수수 빵은 밥보다 훨씬 맛있었다. 아버지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저 미소를 지으며 밥을 많이 담아 가 라고 할 뿐이었다. 다음 날도 바꾸어 먹었는데 그 애는 반 정도 먹고 남겨 서 새까만 빈 도시락에 모두 담는 것이었다. 나는 왜 그러느냐고 묻지도 않고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또 미주알고주알 다 말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짝꿍이 어디 사느냐고 물었으나 나 는 몰랐다. 그런 일이 되풀이 되고 어느 날 아버지가 하굣길에 나를 기다리고 있었 다. 짝꿍과 함께 나오던 길이었는데 아버지는 그 애 집에 가자고 했다. 짝꿍은 무서워하면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쌀밥 과 빵을 바꾸어 먹은 일을 들켜 혼을 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울음이 터졌다 고 후일 그 애가 내게 말했다. 아버지는 무릎을 구부리고 앉으며 그 아이를 안아 주었고 우리는 함께 짝 꿍의 집까지 걸어갔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고갈산 밑의 동네는 온통 루핑 지붕 집이었고 생전 처음 가보는 이상한 세계였다. 나는 못 들어가고 아버지만 들어갔는데, 한참 있다 나온 아버지의 손을 잡 고 동네를 벗어날 때 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아버지는 짝꿍에게 잘 해주라고 했다. "니 나이 때의 아이라 한창 먹을 때인데 도시락을 반 남겨서 집에 가져간 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지. 아버지는 그 이유가 궁금했었어. 밥을 가져 가서 저녁으로 먹는다면 그렇게 굶기는 부모는 못 쓰는 사람들인 것이야. 그런데 네 짝꿍은 그 밥을 가져가서 물을 넣고 끓여 아픈 아버지께 죽을 끓여 드린 거야. 아버지가 많이 아파서 어머니가 장사해서 겨우 먹고 사는데 아버지 끓여 줄 쌀 한 줌이 없는 것이야. 새까만 보리밥만 해먹으니 아픈 사람이 먹지 를 못하는데 쌀밥 죽을 먹고 많이 원기를 차렸다고 하는구나. 심청이 못 지않은 아이야." 아버지가 짝꿍의 집에 무엇을 해주었는지 나는 다 모른다. 짝꿍의 어머니 가 시장의 난전 한 곳에서 고정적인 장사를 하게 되었고 쌀가마니가 왔다 고 그 애가 내게 울면서 말해서 알았다. 아버지는 그 애가 심청이 같은 효녀이기에 작은 도움을 주었다고만 했고 나도 그렇게만 알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알면 시끄러워지 고 싸움이 나기 때문에 그런 일은 말하지 않는 것이 옳았다. 언제나 말하지만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니었고 때론 아버지의 자선은 지나 칠 때가 있다는 것을 나도 알았다. 장사해서 남 다 퍼준다고 엄마가 대들 면 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두 개 다 가지면 행복하니? 곳간에 많이 쌓아 두면 더 행복하냐? 쪼끔만 나누어 주면 심간(心肝 : 깊은 마음속)이 편한데 그것이 더 좋지 않니?" 쪼끔만 나누어주면 심간이 편하다... 심간이 편하다는 그 말의 뜻을 나는 요즘 알아가는 듯하다. 두 개 가지고 있어서 행복이 두 배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어 그 행복감이 주는 느 낌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두 개를 나누어 나는 한 개만 있게 되었는데, 그 충만한 느낌은 두 배, 세 배가 되니 아버지가 왜 그랬는지를 이제야 알게 된다. 이북에 있는 조부모님이 집에 찾아오는 사람 그 누구도 빈손으로 보내지 않았는데 한 번도 재산이 준 적이 없노라고 아버지는 늘 내게 말했다. 나누어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준 이 유산이 내게는 무엇보다 귀한 유산이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그저 습관이 되어 나눈 시간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 두 개 다 가져서 행복하니? 껄껄 웃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렇게도 선명하다. 글 권영심(변호사) 후기 짝꿍은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하고 공장으로 간 것으로 기억합니다. 엄마 혼자의 힘으로 꾸려나가기엔 너무 힘겨웠나 봅니다. 그래도 쌀밥을 배부 르게 먹고 동생들이 웃었다면서 눈물짓던 그 아이는 아마 훌륭한 맏이의 노릇을 해 내었을 겁니다. 추운 계절엔 예전의 기억들이 더 선명해집니다. 지금도 시린 삶을 사는 사람들이 그때보다 적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너무나 넓고 호화로운 집 을 티브이에서 보면서 저런 집에서 혼자 살면 정말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천상병 시인이 삶을 소풍으로 표현하셨지만 울 아버지야말로 소풍같이 사셨습니다. 언제나 돌아갈 곳 이북 내 고향에 가기까지 소풍 나온 것처 럼 살아가자... 때때로 무너지게 하는 망향의 그리움이 아버지 전 생애의 고통이었으나 그럼에도 아버지는 양손에 사과를 쥐고 있으면 옆의 사람에게 서슴없이 한 개를 주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요. 그것이 사람의 순리라고 알게 되도록 말입니다. *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향수를 뿌리는 것 같다. 뿌릴 때는 자기에게도 몇 방울 정도는 묻기 때문이다. - 윈스턴 처칠 |
추억의 교과서와 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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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다녀가신 고운 걸음
감사합니다~
동트는아침 님 !
감기 유의하셔서
따듯하고 편안한
겨울보내세요
~^^
오늘도 아름다운 글을 읽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도 한 반이 60명이 넘었답니다.
1.2학년 때는 우유가루를 주었고, 3학년 부터 급식빵 옥수수빵을 주었지요.
그 시절 도시락을 안갖고 오는 친구들이 수두룩 했었지요.
그 시절 생각이 많이 나는군요.
고맙게 잘 감상했습니다.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망실봉님!
반갑습니다
바다고동 님 !
제가 다닌 시골학교에서도
옥수수 죽으로 급식햇어요~
어린시절을 회상케하는
좋은 댓글 남겨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이 글 오래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때
읽으면서 눈가에 이슬이
맻혔었지요.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어서
힘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거지요.
행복이 무었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
감사합니다
소산 님 !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
오늘도
님의 활기찬 일상을
응원합니다 ~^^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두 개 다 가지면 행복하니
좋은 글 고맙습니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한가지 협조부탁 드립니다
맨위 제목란에는 부호 사용을 금하고 있습니다 / 외에는요
두 개 다 가지면 행복하니
이렇게 수정 부탁 드립니다^^
반갑습니다
다녀가신 고운 걸음,,
소중한 멘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핑크하트 님 !
따듯하고 평안한
좋은 하루 보내시고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