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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조슈아 : 믿음에 대한 설교 원고(일부분)
오늘 믿음에 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믿음은 바라는 것의 증거 입니다. 믿음에 관한 명확한 한 가지는 믿음은 '현재형'이라는 것 입니다. 그 점에 주목하십시오. 믿음은 현재형 입니다. 그러면 약속들은 무엇일까요? 지금 받는 것 입니다. 이 점에 주목하십시오. 지금 행하는 것 입니다. 지금 믿는 것 입니다. '지금' 우리의 하나님은 현재의 하나님입니다. 옆 사람에게 '나의 하나님은 현재의 하나님입니다' 라고 말하세요. 하나님은 지금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축복하시고 하나님은 지금 구원하십니다. 감사합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상의 실재 속에서의 확고부동한 확신 입니다. 주목하십시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상의 실재 속에서의 확고부동한 확신 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이루시지 않은 약속에 대한 '확신' 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에 대한 견고한 기대 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믿음을 정의해 보았는데 이제는 한 가지씩 설명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들은 것들을 가지고 믿음을 말할때 보이지 않는 것이 믿음의 토대가 됩니다. 이제 보이지 않는 것들은 무엇이고 보이는 것들은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세상을 가지고 말해보겠습니다.
이 세상은 보이는 것에서가 아닌 보이지 않는 것에서 세워졌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보이는 것을 믿으셨다면 하나님은 기반을 둘 어떤 것도 없으셨을 것 입니다. 창세기에서 읽은 것은 세상은 형체도 없고 공허했다 입니다. 하나님께서 신뢰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에 대한 믿음이셨습니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였죠.
하나님께서 신뢰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에 대한 믿음이셨습니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 것 입니다. 말하는 세상에서 그 믿음이 표현을 발견한 것 입니다.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는데 사용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존재하게 된 것 입니다.
오늘 날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존재하게 된 것 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믿음 입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존재하게 된 것 입니다. 나의 머리, 어깨, 무릎 발 모두 일어 서겠습니다.
나의 머리, 어깨, 무릎 발 손을 대세요 나의 머리, 어깨, 무릎 발 그것들은 모두 예수께 속했네! 나의 머리, 어깨, 무릎 발 나의 머리, 어깨, 무릎 발 나의 머리, 어깨, 무릎 발 그것들은 모두 예수께 속했네! 히브리서를 기억하십시오. 히브리서를 기억하십시오.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에 관해서 말하는 것은 믿음을 말하는 것 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믿음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들이 믿음으로 옵니다. 보이는 것의 예는 여러분입니다. 옆 사람에게 '보이는 것의 예는 당신 입니다' 라고 말하세요.
그것은 여러분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존재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되돌아 갑니다. 옆 사람에게 '나는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되돌아 간다' 라고 말하세요. 언젠가 여러분은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되돌아 갈 것 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머리되시는 분은 '예수' 입니다. 여러분은 보이지 않는 공동체로 되돌아 갈 것 입니다. 자리에 앉으십시오. 여러분이 저를 보실 수 있듯이 제 자신이 보이는 것의 좋은 예 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남자든 여자든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됩니다.
이 사람이 사망했다는 것은 더 이상 볼 수 없음을 뜻합니다. 그 사람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죠. 즉, 보이지 않는 것 은 믿음의 토대 입니다. 오늘날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부터 존재하게 된 것 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믿음의 토대 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영생 나는 영생을 살길 원하네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구원하시네 나는 영생을 살길 원하네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구원하시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 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반드시 믿음을 가지셔야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배우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반드시 믿음을 가지셔야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배우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믿음에 반대는 느낌입니다. 거의 대부분이 느낌에 따라 행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는다고 말한다면 반드시 구하고 치유하고 해방하시는 그분의 능력에 확신을 갖고 계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으시지만 확신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능력에 확신을 갖고 있다해도 상황이 좋을때만 그분의 능력에 확신을 갖죠. 만약 제가 예수님을 저의 구주로 믿는다면 시련 가운데서도 구원하시는 그분의 능력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어려움을 직면한 가운데서도 보호하시는 그분의 능력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반대인 것이 오늘날 문제 입니다. 여러분의 문제에 대해서 말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여러분은 믿음에 따라 행한다고 생각하시지만 느낌에 따라 행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크리스쳔으로서 느낌과 믿음의 차이점을 모르십니다. 믿음의 결과, 결실, 성과, 산물은 감정적일뿐만 아니라 마음의 영역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즉, 믿음의 사람으로서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저의 안락을 결정짓지 않습니다. 저의 평안을 결정짓지 않죠. 제가 말하는 그런 믿음을 여러분이 갖고 계신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하실 것 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서 만족하실 때 여러분이 남겨두신 것이 아무것이 없어도 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것 입니다.
옆 사람에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라고 말하세요.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근심치 않케 해줄 물 옆에 있을 때 여러분은 그 물에 가까이 가면서도 두려울 것 입니다.
여러분이 이 생명수 바로 옆에 계실 때 여러분은 당황스러움 없고 두려움, 걱정, 압박감이나 긴장감이 없는 그런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 입니다. 여기 계신분들중 몇이나 그런 상황을 맞을수 있을까요? 나사로의 무덤가에서 일어난 일 처럼 보통 상황은 감사하기 위해 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셔서 나사로의 몸을 보셨을 때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무엇이 감사다하는 것인가- 우리는 나사로의 몸을 일으키라 데려왔는데 감사를 드린다' '나사로의 죽음에 감사하는가, 무덤 안에 있는 시체에 대한 감사인가, 무엇에 대한 감사인가-' 그들은 자신들과 함께 예수께서도 우실 것이라 생각했죠 믿음의 결과는 감정적일뿐만 아니라 마음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믿음의 사람이 빈곤해 보일지라도 그는 여전히 행복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사람들로 부터 거절당해도,사람들이 그는 외롭다 라고 해도, 그의 얼굴에서 미소를 보게됩니다.
믿음의 사람을 만나보면 항상 주께 감사드립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위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 '감정' 이라는 부분에 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김정은 느낌입니다. 가끔 사람들은 그들의 영적 경험들을 느낌이나 감정에 바탕을 둡니다. '하나님의 영이 느껴집니다' '이 모든 것들로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집니다! (그 임재가) 어디서 느껴진다는 거죠? 외적인 느낌에 의해 '주여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여기 어딘가 계시는데..' 모든 것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의 빛 가운데 점검되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엔 모든 것들이 느낌입니다..
여러분들이 받는 어떤 표적이든 하나님의 빛 가운데 점검되어져야 합니다. 믿음은 느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끔 사람들은 그들의 영적 경험들을 느낌이나 감정에 바탕을 둡니다. 하나님께 조건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좋든 나쁘든 예수는 주님이십니다. 가끔 사람들은 그들의 영적 경험들을 느낌이나 감정에 바탕을 둡니다. 문제는 느낌이나 감정에 변화가 일어날때 생깁니다.
형제님 영국에서 온 형제님께 드릴 소식이 있습니다. 제가 그 전화를 받았습니다. 형제님은 빨리 듣길원하는데 전달자가 나중에 말씀드리겠다고 합니다. 집에 계신 분은 심각하게 몸이 아프십니다. 누구로부터 온 메시지인지 알고 싶으나 나중에 말해주겠다고만 합니다. 온통 메시지 생각뿐입니다. 형제님!? - 아,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계속 그 메시지를 알게 해달라 조르지만 나중에 말해주겠다는 말만 듣습니다. 잠자리에 들기까지 그 메시지에 연연하게 됩니다. 잠자리에서 그제서야 하나님께 물어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그 메시지가 무엇이죠?' 그러다 악몽을 꾸게 되죠. 그 메시지를 확증해주는 그런 악몽이 됩니다. 여러분이 염려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영역이 (그 염려로) 방해를 받습니다. 이것이 '문제는 느낌이나 감정에 변화가 일어날때 생겨난다'의 의미 입니다. 누군가가 형제님께 어디선가 온 소식을 전해주기로 했기 때문이죠. 그때 형제님의 느낌이나 감정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형제님은 그 메시지가 무엇일까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믿음은 느낌이 아닙니다. 그 점에 주목하십시오. 오늘날 크리스쳔들은 믿음과 느낌의 차이점을 모릅니다. 믿음과 느낌에 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변함없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그 믿음을 더 안정감있는 어떤 것에 두어야 합니다. 변함없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그 믿음을 여러분의 느낌보다 더 안정감있는 어떤 것에 두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느낌에 조종당할 때 절대로 여러분의 말에 한결같을수 없습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한결같을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는 인생입니다. 상황이 좋을 때 예수는 주님이시다 라고 말합니다. 상황이 고될때 여러분은 예수를 저주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감정과 느낌에 지배 당하시는 분들입니다. 변함없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그 믿음을 여러분의 느낌보다 더 안정감있는 어떤 것에 두어야 합니다. 즉 느낌은 안정감이 부족합니다. 구원받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당신은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옆 사람에게 구원받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당신은 구원 받은것이 아닙니다 라고 말하세요. 믿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기 때문에 당신은 구원 받았습니다. 구원받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당신은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기 때문에 당신은 구원 받았습니다.
사람에게는 걸을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성령께서 뜻하시는대로 걸으십니다. 사람에게 걸을수 있는 힘이 있으나 성령께서 뜻하시는대로 걸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어떤 매개체도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점에 주목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친히 나타내기 위해서 어떤 매개체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가 뜻하시는대로'의 의미는 당신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해서 어떤 매개체도 사용하실 수 있다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기 위해서 돌도 매개체로 사용하실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복도 매개체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혈류병의 문제를 갖고 있었던 여인을 기억하십시오. 그 여인이 예수님 옷자락에 손댔습니다. 하나님은 소리나 종의 음성을 사용하실수도 있습니다. 오순절날 일어난 일들을 기억하십시오. 소리였습니다. 그 후 성령께서 그들 위에 임하셨고 그들은 각기 다른 언어를 말하기 시작했죠. 사도행전 3장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십시오.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에게 '내게 은과 금은 없거니와'라고 말했습니다. 그분 스스로를 드러내신 것이 그 음성이였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바울과 실라에게 일어난 일을 보십시오. 그것도 단지 소리였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하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외치고 꾸짖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손과 발이 사슬에 묶여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들의 상황에 처해있었다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사슬에 묶인 상태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항상 주를 찬양하라 온 맘 다해 주를 찬양하라 항상 온 맘 다해 주를 찬양하라 그들은 사슬에 묶인 상태에서도 주님은 선하시다 라고 말 했습니다. 옆 사람에게 '내가 사슬에 묶여있어도 주님은 선하시다' 라고 말하세요. 사슬에 묶여 있든지 묶여 있지 않든지 주님은 선하시다. 내가 자유하든지 자유하지 않든지 주님은 선하시다. 내가 괜찮을때든 괜찮지 않을때든 주님은 선하시다. 항상 (선하시다) 여호수아에게 일어난 일을 기억하세요. 여리고 성을 돌았을때 한계가 깨어졌습니다. 다윗의 경우를 보면 새총의 문제였죠. 다윗이 절대 새총을 갖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너는 나의 적이다!' 라고 하지 않았죠. 다윗은 그냥 돌을 들어 던졌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정의내릴수 있다면 느낌은 무엇일까요? 느낌은 믿음의 반대입니다. 느낌과 감정은 우리가 보는 것에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가 읽고 듣는 것에 영향을 받습니다. 시편 12장을 기억하십시오. 모든 사람들이 이웃에게 거짓말한다 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웃에게 거짓말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것들에 노출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것에 노출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지 않는 것들이 어떤 것일까요? 만약 우리의 느낌이 우리의 믿음을 조종하도록 허락한다면 우리가 크리스쳔이 될 수는 있느나 사탄의 계략에 조종당할수도 있습니다. 만약 느낌이 우리의 믿음을 조종하도록 내어준다면 우리가 크리스쳔이 될 수는 있으나 사탄의 계략에 조종당할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에, 여러분이 읽고 듣는 것들과 눈에 보이는 환경들이 여러분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반드시 아셔야 할 점은 오늘 여러분이 최상의 기분일수도 있습니다. 내일은 피곤 하실수도 있죠. 그 다음주엔 외로울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똑같은 것을 말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분은 변함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최상의 기분일수도 있습니다. 내일은 피곤 하실수도 있죠. 그 다음주엔 외로울수도 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오 주여 영원히 주님의 말씀이 정해졌네 천국에서 그 말씀이 정해졌네 영원히 오 주여 히브리서 13장 8절 말씀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이 반드시 감사드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영원히 주께 감사드리네 십자가에 영원히 감사드립니다. 영원히 주께 감사드리네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심에 영원히 주께 감사드리네 영원히 십자가로 감사드리네 영원히 주께 감사드리네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심에 무슨 이유에서든, 무슨 일이 있던지 반드시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상황이 좋을 때는 예수는 주님이십니다. 상황이 고될때도 반드시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느낌에 관해서 많이 배우신 것 같습니다. 느낌은 우리가 보고 읽고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 것들에 조종을 당하게 되면 절대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시는 일들에 한결같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순간순간이 고양이에게 쫓기는 토끼와 같을 것 입니다. 고양이에게 쫓기는 토끼는 이리갔다 저리갔다 정신이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것은 믿음 안에서와 믿음 없음을 말합니다. 많은 크리스쳔들이 전쟁을 치릅니다. 그러나 두려움이 충만한 상태로 전쟁합니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쳔들을 보면은 어려움이 아주 멀리 있을 때에는 예수 이름을 아주 잘 부릅니다. 저기 먼 곳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전쟁은 멈출지어다!" 그러나 눈을 떴을때 전쟁이 코 앞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멀리 있던 어려움이 닥치지 않도록 막으려고 했으나 그 어려움이 코 앞에 닥칩니다.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우리의 영혼이 믿음으로 충만할때 그 믿음이 우리의 영혼을 우리가 기도하는 것들을 향한 강한 갈망으로 충만하게 합니다. 그 믿음이 우리의 영혼을 더 기도하고자 하는 강한 갈망으로 충만케 합니다. 심지어 시험(유혹)에 직면한 가운데 더 기도케하는 강한 갈망으로 충만케 합니다. 생명을 위협당하는 상황 가운데 더 기도케하는 강한 갈망으로 충만케 합니다.
다니엘서를 보시겠습니다. 6장 10절 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에게는 (그럼에도) 윗 방에 올라갈 담대함이 있었고, 그런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믿음이 우리의 영혼을 강한 갈망으로 충만케 합니다. 옆 사람에게 말하세요. 그 믿음은 우리가 구하는 것들을 위한 강한 갈망으로 우리의 영혼을 충만케 합니다. 심지어 그런 어려움을 직면한 가운데 더 기도할 갈망으로 충만케 합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을 직면한 가운데 더 기도케하는 갈망으로 충만케 합니다. 믿음이 마음의 영역에 영향을 준다면 이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무엇이든 하나님의 말씀의 빛 가운데 반드시 점검 되어져야함을 뜻합니다. 우리가 듣는 무엇이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의 빛 가운데 점검 되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읽는 무엇이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의 빛 가운데 점검 되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때 믿음의 사람으로서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전에 그 일을 환호하거나 절망하기엔 너무 이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감정적일뿐만 아니라 마음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옆 사람에게 " 당신에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어떤 일이 일어날때 그 일이 긍정적이라고 해도 환호하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도 전에 그 일이 부정적이라 해도 절망하기엔 너무 이릅니다. 기쁨이 신중하게 다뤄지지 않을때 그 기쁨은 곧 슬픔으로 뒤바뀔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