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라제네카!
오늘 09:00쯤 고송은 식빵에 딸기쨈 발라 식사 때우려 부엌에서 행주를 들썩이다가 큼직한 지네에 손 끝을 한 방 물리곤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다. 온몸에 통증 몰려오고 어지럽다며 방바닥에 누웠다. 하지만 지네에 물렸다해서 목숨 읽었단 말을 듣진 못했으니 두어시간 지나면 가라앉겠지 생각하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는데 신음소릴 내는 걸 보니 아프긴 아팠었나보다. 고송은 오늘 처음 지네에게 물린 게 아녔고 몇 해 전에도 물린 적 있었고 나 또한 서재에서 책 읽던 중 지네에 물린 적 있었기에 그 아픔을 가늠할만했다.
11:00시엔 읍내 대정의원에 코로나 백신 접종 예약을 했었기에 세수도 하고 면도도 했다. 코로나! 세계적인 유행병이기에 각국이 서둘러 백신을 만들긴 했지만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임상실험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서둘러 배포했기에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은 것 아니던가! 화이자는 그나마 부작용이 덜하지만 오늘 내가 맞아야 할 아스트라제네카의 경우엔 사망에 이른 부작용도 부지기수다. 만약 이 백신을 맞고 내가 부작용 일으켜 명을 달리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고민하던 중 며칠 전 저녁 식사시간 식탁에 앉아 고송에게 이런저런 유언?을 했다.
만약에 내가 죽을지 모르니,
첫째, 우리는 같은 날 백신접종하지 말고 시차를 두자. 그래야 남은 사람이 장례 치러줄 게 아니겠는가! 생각해보면 먼저 가는 사람이 장땡이고 남아서 일 치룰 사람은 흙싸리 껍데기다. 그리고 65년 살아오면서 겪어보니 남자가 먼저가야 행복이란 점은 진즉에 알았다. 여자는 하다못해 걸레질이라도 하여 자식과 손자들에게 밥값을 하지만 남자는 혼자 남으면 홀아비 냄새만 피워대며 귀찮게구니 새깽이들도 좋아하는 놈 없다. 나에게 먼저 갈 복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복을 바랜다는 기분으로 내가 먼저 백신을 맞는다.
둘째, 장례는 하루만 치뤄라. 사람들은 보통 3일장하지만 나는 3일장을 치룰만치 이 세상에 해 놓은 일이 없기에 과분한 처사다 그러니 단 하루만 치룬 후 사체는 매장하지 말고 화장한 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피운재근처 나무 곁에 대충 뿌려라. 그리고 나 죽었다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에게 알려 그들을 번거롭게 하지 말고 딸에게만 연락한 후 당신과 둘이서 조촐하게 장례를 치뤄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논어와 주역 2권을 땅속 적당한 곳에 묻어라.
세째, 내가 즉각 죽지 않고 시름시름 앓는다면 나 살리려 큰 병원에 다니지 마라. 그리고 나를 치료하던 어떤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가 잘했네 못했네 트집잡으며 시끄럽게 굴지마라. 내가 죽은 건 하늘이 데려간 일이지 의사나 간호사가 치료를 잘못해서 가는 게 아니다. 그러니 주변사람에게 책임을 묻지마라.
네째, 울지마라. 道家쪽은 사람 죽으면 잘 죽었다고 축하하며 놀래불러주었다. 나는 도가사상가들의 그런 행동을 좋아한다. 이 세상 태어난 것 치고 죽지 않는 게 어디 있는가! 개도 나무도 바위도 저 산과 강도 죽는다. 심지어 태양도 죽고 하늘의 별도 모두 죽는 것이다. 그러니 나 죽은 게 뭐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슬퍼할 일 있겠는가! 그리고 얼른 나를 잊어라. 그게 바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11:00시 되어 대정의원 문을 열었다. 사람들 많았다. 살펴보니 죄다 70줄 가까운 노친네들이고 마스크를 쓴 채 목에 무슨 목줄을 매달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송은 지네에 물려 아픈 통증을 억누른 채 쭐래쭐래 나를 따라 옆에 앉았다.
내 차례되어 오른쪽 어깨쭉지를 열고 주사바늘 내 살속에 파고드는 장면을 바라보았더니 파리 한 마리 앉는듯한 간지럼 비슷한 느낌 들었을 때 약물은 모두 주입되었다. 그러자 뭔가 시간체크하는 기계 하나 주면서 밖에 나가 의자에 앉은 후 15분을 기다리란다. 기다리는동안 이런생각 저런생각을 해봤다. 차라리 이 백신이 부작용을 낳아 그냥 이대로 조물주 곁으로 갔으면 좋겠단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어제 읽었던 시가 생각났다.
百年世事空花裏
一片身心水月間
獨許萬山深密處
晝長趺坐掩松關
육십오년 내 세상살이 모두가 부질없는 空花요
거추장스런 몸뚱이와 끊임없는 마음걱정은 한 줄기 水일레라
청양 대망골에 홀로 앉아 그윽히 바라보는 저 深密處
날 찾는 이 없어 책상앞에 가부좌틀고 松關을 걸었다오.
이 시처럼 그대로 내 마음의 松關을 걸고 조물주 곁으로 가고 싶었다. 이런 생각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15분이 지났고 나는 아무런 부작용없이 말짱했다. 곁에 있던 고송은 말짱한 내 모습이 좋았는지 자기가 아파했던 지네의 통증은 생각하지 않은 채 얼굴에 안도하는 표정을 떠 올렸다. 그리곤 내게 하는 말이 “백신 맞으면 잘 먹어야 한대요...” 라면서 어디가서 칼국수라도 하잔다. 거부하고 싶은 생각 없이 그저 따랐다. 그러다가 비봉소재 어떤 농협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파는 해장국이던가 그게 생각나서 찾아가 한 그릇하고 피운재로 귀가했다.
그리곤 나도 고송도 늘어지게 한 잠 청하고 지금서 일어났다. 오늘 하루의 일과는 이렇게 굴러갔고 내일도 그렇게 다가올 것이다...
첫댓글 하하 재미있는 글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가 이렇게 굴러갔고 또 내일도 그렇게 다가와 지나갈 것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글 입니다
덕분에 오늘 하루 피곤함 가셨답니다
누구는 동창회 장부를 정리하여 마눌님한테 부탁했다고 해서 두고두고 웃었는데. .
어서 좋은 세상 오길 기원하입시다
자연 속에 내 한 몸 맡기고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면서 해열제를 준비하셨나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