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빵집 사장님들을 설득하는 방법.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건 2년 전인 2022년 1월27일이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2년 뒤부터 적용하기로 했는데 그게 바로 오늘이다. 국민의힘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2년을 더 미루자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민주당 등의 동의를 얻지 못했고 드디어 오늘부터 5인 이상 사업장에 전면 적용된다.
그런데 반응이 왜 이래?
보수 언론을 보면 이 법 때문에 소상공인들이 예비 전과자가 될 판이다. 조선일보는 “영세 업체들의 절규가 묻혔다”고 절규했고 동아일보는 “직원 5명 식당도 ‘중대재해 처벌’”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직원 수를 4명으로 줄여야 할 판”이라고 엄살을 떨기도 했다. 한국경제는 마장동 축산 시장을 찾아가 “구속될 수도 있다는데 그럼 곧장 폐업하라는 얘기 아니냐”는 코멘트를 끌어내기도 했다.
고용노동부가 빵집도 처벌 대상이 된다는 프레임을 꺼내면서 논의가 이상한 방향으로 튀기 시작했다. 이정식(고용노동부 장관)이 실제로 한 말이다.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이 확대 시행된다면 상시 근로자가 5명 이상인 동네 음식점이나 제과점 사장님도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 대상이 된다.”
눈여겨 볼 부분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진보 성향 언론의 대응이다. 경향신문은 “공포 마케팅”이라고 평가했다. 한겨레는 칼럼에서 “근거 없는 공포 조장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과장에 속지 마세요”라는 해설 기사를 내기도 했다.
핵심은 이것이다.
고용노동부가 50인 미만 사업장 확대를 앞두고 미련을 못 버렸던 건 맞다. “동네 빵집까지 범법자로 만든다”고 엄포를 놓은 건 한 번 더 미뤄달라는 의도였겠지만 실패했다.
빵집 사장님들도 감옥간다는 건 과장된 설명 같지만 애초에 그러라고 만든 법이다. 수천 명 있는 공장이든 대여섯 명이 일하는 동네 빵집이든 사람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법이다.
미묘하게 논의가 비틀어졌지만 사실 공포 마케팅의 단계는 지났고 이제는 모두가 좀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60%의 산업 재해 사망 사고가 발생한다. 이제 이런 사업장들도 중대재해처벌법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프레임의 왜곡.
빵집 주인을 감옥 보내는 법이라서 문제인 게 아니고, 빵집 주인은 감옥 갈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빵집 주인도 책임이 있다면 감옥 가는 게 맞다. 이해하기 쉬우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빵집 주인은 감옥에 안 간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보수 언론의 공포 마케팅은 애초에 빵집 주인들 겁을 주려는 목적이 아니다. 처벌을 받게 될 사람들이 겁을 집어 먹고 있고 이들을 지키려고 전선을 넓히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빵집 주인들 겁먹을 필요 없다“고 반박하기 시작하면 보수 언론의 프레임에 말려들게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는 이게 맞는 방향이라는 것이다. 빵집이든 주유소든 공사 현장이든 제조업 공장이든 어디서든 사람 죽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게 핵심이다. “빵집 사장을 감옥에 보낼 작정이냐”고 물으면 “필요하다면 보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빵집 사장님 걱정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만약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이 유예되지 않으면 800만명 근로자의 고용과 일자리에 미친다”고 협박할 때 이에 대한 대답은 “목숨을 지킬 수 없는 일자리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돼야 한다.
돌려 말할 것 없다. 실제로 50인 미만 음식점 등에서 사망 사고가 없었던 게 아니다. 앞으로는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이행해야 할 책임을 지게 된다.
첫째,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했거나,
둘째,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했거나,
셋째, 급성 중독 등이 1년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가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된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은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이었는데, 중대재해처벌법은 1년 이상 징역, 10억 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됐다.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무조건 처벌 받는 게 아니라 법에 정해진 안전 조치를 다했다고 판단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 안전 보건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6개월마다 점검을 해야 한다. 빵집 사장이라면 혹시나 반죽 기계나 오븐을 다루다가 사고가 발생할 위험을 검토하고 대비해야 한다. 일하는 사람이 20명 이상일 경우 안전보건 담당자를 지정해야 하는데 새로 채용해야 하는 건 아니다. 기존 직원이나 경영자가 겸임해도 된다.
TMI.
“피묻은 빵을 먹을 순 없다”며 불매운동이 확산되기도 했지만 파리바게뜨는 동네 빵집과 구분해야 한다. 50인 이상 사업장인 데다 여러 차례 비슷한 사고가 반복됐는데 안전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평택 SPL 공장에서 소스 배합기에 끼어 죽는 사고가 있었고 샤니 공장에서는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도 있었다. 장례식장에 빵을 보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평택 공장에서는 사고 8일 전에 비슷한 사고가 있었는데 “기간제는 알아서 하라”는 답변을 들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돼 재판까지 간 사건은 12건. 이 가운데 실형을 받은 사건은 한국제강 1건 뿐이다. 그나마 법정 하한선인 징역 1년에 그쳤다. 그나마 월급 사장(성형식)만 잡혀갔고 77% 지분을 보유한 하종식(한국제강 공동대표)은 빠져 나가서 논란이 됐다.
헛소리에 맞서는 방법.
5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하기는 이르다(2년만 더 늦추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망 사고의 절반 이상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 헛소리에 맞서기 위해 모든 헛소리를 반박할 필요는 없다.
여전히 해마다 2000명 이상이 일터에서 죽는다. 날마다 김용균이 있었고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일하다 죽지 않는 법을 만들자는데 50인 미만 사업장을 예외로 둘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https://slownews.kr/103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