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왕비의 만남에서 시작되는 후계자교육
중국 주나라의 문왕이 애써 구한 배필은 바로 태사(太姒)였다.
그녀는 남편을 잘 내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왕이라는 훌륭한 아들을 낳아 길렀다.
태사의 내조와 자녀교육에 힘입어 문왕과 무왕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이상국가로 알려진 주나라의 건국 시조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이유에서 태사는 그녀의 시어머니 태임(太妊)과 함께 유학자들에게 최고의 현모양처로 숭상된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대유학자 이율곡의 어머니 신 씨는 스스로를 ‘사임당(師任堂)’이라 했다.
이때 ‘사임(師任)’이란 ‘태임을 스승으로 모신다’는 뜻으로, 태사의 시어머니 태임을 본받아 남편을 잘 내조하고 자녀를 잘 양육하겠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조선 왕실에서도 태임, 태사 같은 현모양처를 왕의 배우자로 구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간택제도 역시 그런 노력 중 하나였다.
간택을 통해 최고의 현모양처를 고르고자 했고, 이렇게 간택된 왕비는 임신 전과 임신 중 그리고 출산 후에도 좋은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노력했다.
임신 전부터 몸과 마음을 조심하고, 임신 중에는 태교를 하며, 출산 후에는 자녀를 위한 좋은 선생님들을 모신다.
이런 노력이 모두 조선 왕실의 후계자교육이다.
하지만 조선 왕실의 후계자교육은 무엇보다도 원자교육과 세자교육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말·행동버릇이 형성되는 3세 전에 시작되는 원자교육
원칙적으로 왕비의 큰아들인 원자는 장차 세자가 되고 왕이 될 사람이다.
그러므로 조선 왕실에서는 당대 최고의 교육 이념과 교육 방법 그리고 선생님들을 동원해 원자를 교육했다.
조선시대 원자교육의 기본 방향은 태종대에 논의되기 시작해 중종대에 확립되었다.
중종대에 조광조로 대표되는 사림의 노력으로 원자교육을 비롯한 유교의례가 대거 실현되었던 것이다.
조광조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왕이 필요하고, 좋은 왕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자교육이 필수적이라 생각했다.
조광조에게 원자교육의 기본 모델은 주나라 성왕(成王) 교육이었다.
조광조는 주나라의 경우 원자는 생후 3일부터 교육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들어 당시 3세인 원자에게 즉시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원자교육은 늦어도 3세가 넘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 근거는 『동의보감』의 다음과 같은 내용 이었다.
“대개 아이가 태어난 지 32일이 지나면 한 번 변하게 된다.
한 번 변할 때마다 성정(性情)이 전에 비해 달라진다.
왜 그런가?
한 번 변할 때마다 오장과 육부 그리고 생각과 지식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중략) 아이가 태어난 지 320일이 지나면 비로소 치아가 나고 말을 할 수 있으며 기쁨과 노여움을 알게 된다.”
-『동의보감』 잡병편, 소아(小兒)-
아이들은 생후 11개월쯤 되면 치아가 나고 말을 시작한다.
그뿐만 아니라 기쁨과 노여움 같은 감정도 알게 된다.
생후 11개월이면 보통 두 살이고, 개인차 또는 태어난 달 등을 고려한다면 아이들이 말을 시작하는 나이는 두세 살이라 할 수 있다.
말을 시작할 때 교육을 해야 한다면 두세 살부터 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우리 속담 중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이 있다.
하필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태어난 뒤 처음으로 말을하고 걷기 시작하는 때가 보통 두세 살이기 때문이다.
이때 기쁨과 노여움 같은 감정을 알게 되고 자신의 감정과 의지대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사람의 말버릇과 행동버릇이 형성되는 최초의 시점인 것이다.
말버릇과 행동버릇, 감정 표현 방법이 만들어지는 두세 살에 이를 바르게 가르친다면 천성처럼 몸에 밸 것이다.
그렇게 몸에 밴 언행이 여든까지 즉, 죽을 때까지 간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원자의 교육을 늦어도 두세 살에 시작해야 한다는 믿음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중종은 조광조 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원자교육을 시작했는데, 이때 조광조 등이 보양청(輔養廳)1)의 원자 보양관(元子 輔養官)2)으로 임명되어 원자교육을 담당했다.
이때의 교육은 문자 교육이 아니라 원자 보양관이 몸과 말로 보여주는 교육, 즉 신교(身敎)3)였다.
바른 예절에서 바른 행동과 바른 마음이 나온다
신교(身敎)는 특정한 재능 또는 기술을 일찍부터 가르치고자 하는 재능교육과는 사뭇 다른 관점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인간으로서의 말과 행동 그리고 감정 표현을 바르게 닦아놓은 뒤에 필요한 재능과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는 재능과 기술은 나중에라도 배울 수 있지만, 바른말과 바른 행동 그리고 바른 감정 표현은 그렇지 않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두세 살부터 보양청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한 원자는 5세 정도가 되면 본격적으로 문자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문자 교육은 유교 경전과 역사서를 이용했다.
조선이 유교 국가이기에 유교 군주에게 필요한 식견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문자 교육은 강학청(講學廳)에서 담당했는데, 강학청 선생님들은 보양청 선생님들이 그대로 이어받는 것이 관행이었다.
원자가 8세가 되면 세자에 책봉된다.
왕세자가 되면 성균관에서 입학례를 거행한 후 시강원(侍講院) 선생님들로부터 교육, 즉 서연(書筵)을 받았다.
왕세자와 선생님들이 만나 수업하는 모든 절차는 서연진강의(書筵進講儀)에 따라 거행되었다.
왕세자의 교육은 예절로 시작해서 예절로 끝났다.
왕세자로 하여금 복잡한 예절을 수업 때마다 실천하도록 한 이유는 예절을 통해 왕세자의 언행을 바르게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책을 통한 문자 교육만 아니라 선생님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예절 하나하나가 모두 교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왕세자의 서연교육은 바른 예절에서 바른 행동이 나오고 나아가 바른 마음도 나온다고 생각했던 우리 조상들의 교육철학을 잘 보여준다.
1) 보양청: 조선시대 세자와 세손을 보좌하고 가르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2) 원자 보양관: 조선시대 보양청에서 원자를 모시면서 교육하는 직무를 맡았던 관원
3) 신교: 몸소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교육
글. 신명호(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 <조선왕실의 자녀교육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