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나을 사랑 하신다.
2009. 8. 9.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이는 누구일까? 신앙의 성조(聖祖) 아브라함, 모세, 성왕
다위, 사도들 그 외에 순교성인들, 증거자들.... 의인들... 그렇지. 그런데 그런
반열(班列)에 들지 못하는 나 같은 것을 사랑하실까? 일반(一般)신자들 중에도
정말 성인(聖人)같이 잘 사는 사람들, 기도 잘하는 사람들 등등 많은데 나 같은
무지렁이가 어떻게 하느님의 눈에 띨까?
누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그분의 눈에 띠는 정도 이상으로
사랑을 받을 것이다. 하느님은 하느님을 닮은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도 할 줄 모르고, 못난 무지렁이 같은 겸손한 사람이 어찌 하느
님을 안 닮았다는 말일까?
그런데 그가 자신을 정말로 무지렁이라고 생각하고 잘난 축에는 도저히 낄
생각을 하지도 못하고 그렇기에는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 하다고 생각
한다면 그는 하느님의 눈에 드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어째서?
그는 자기가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면형무아(麵形無我)이신 예수님을
닮았기 때문이다.
면형무아라는 것은 면형 안에 숨어계신 그리스도를 지칭(指稱)하는 것이다.
면형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거처(居處)하시는 곳이며 신비(神秘)생활의
극치(極致)를 말하는 것이다. 성체(聖體, 그리소의 몸)를 이룰 면병(麪餠)을
만들기 위해서는 순수(純粹)한 밀가루에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드는 것인데 누
룩은 사욕을 상징한다.
그래서 누룩을 넣으면 성체를 이루지 못(않는다)한다. 사욕이 있는 사람은
면형무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면형은 형상만 남아 있고 실체(實體)는
그리스도 예수님이 되신 것이다. 이것은 신비(神秘)이다. 그래서 미사 때
거양성체 후에 “신앙의 신비여! 우리는 주의 죽으심을 전하며 주의 부활
하심을 굳세게 믿나이다.”하는 것이다.
무아는 자기를 완전히 제어한 하느님의 뜻대로만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면병이 그리스도로 축성한 후에는 밀가루 떡(면병)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몸인
것이다. 그래서 영성체 때 사제나 “성체 분배자(分配者)’가 성체를 들고 “그리
스도의 몸” 하면 영성체(領聖體) 하는 자는 “아멘”(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렇게 가톨릭에서는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 된다고 하여 화체설(化體
說)이라고 하고, 프로테스탄트에서는 기념설(記念說)이라 하여 성체가 아니고
성만찬을 기념하는 뜻만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성체를 모르
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너희는 주의 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
하라”(마르 8. 15)고 하시고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
는데 이는 그들의 가르침을 조심하라(마태 16, 11-12)고 하신 말씀이신 것이다.
이렇게 욕심(慾心)과 사욕(邪慾)이 없는 순수한 사람이라야 면형무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욕과 잡념까지도 없는 사람이라야 성령께서 내림(來臨)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悔改)하여 마음에 불순(不純)한 것들을
비워야 성령께서 오시어 하느님과 일치(一致)된 성인(聖人)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허심촌(虛心村, http://cafe.daum.net/hsdorf) 김 토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