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칼럼은 6기 알바노조의 칼럼입니다.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시위로 장애인 이동권에 관한 관심이 촉발되었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출근길 시위를 비난하며 논란이 가중되었다.
이동권, 접근권, 노동권 등의 말에 ‘권’이라는 글자가 붙는 이유는 현재 누군가는 마땅히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장애인권은 복지가 아니라 권리이다. 시혜적 성격의 복지는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라는 권력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권리는 누구나 마땅히 가지고 있다. 권리를 지원하기 위한 법과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복지’적인 관점으로 권리를 보장하려 하므로 최소한의 수준밖에 안 된다.
이동권 보장이 절박한 장애인들이 앞장서 시위를 벌이고는 있지만, 지하철 승강기는 오히려 노인과 임산부, 영유아 등 비장애인 교통약자들이 더 많이 이용하며 그 혜택을 골고루 나눠 누리고 있다.
저상버스는 어떨까. 경기도 산하 경기연구원이 지난 2017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저상버스에 대한 만족도는 '일반인 > 유모차 > 휠체어 장애인' 순이었다.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막상 저상버스를 이용하려고 해도 탑승과 안전장치 체결에 시간도 걸리고 버스 기사의 눈치가 보인다고 결과가 나왔지만 노약자를 포함한 일반인들이 훨씬 만족스럽게 저상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자체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2017년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등록된 장애인 가운데 88%가 후천적 영향으로 장애인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장애인은 2020년 기준으로 등록된 사람은 263만 명 정도이고 등록 안 된 사람까지 포함하면 300만 명 이상이다.
장애란 무엇일까? 의사소통이 어려운 이민자는 장애인일까? 의사소통이 안 되는 이민자는 스웨덴에서는 장애인이다. 의사소통이 될 때까지 지원해준다. 비만은 장애일까? 미국에서는 비만도 장애이다. 장애인은 나라마다 다른 것이다.
OECD 평균 장애인 출현율은 18.8%지만 한국은 5.4%이다. EU는 장애의 정의를 ‘6개월간 건강상의 문제로 활동에 제한이 있는 자’라고 규정하여 출현율이 높다. 뉴질랜드의 경우 교통사고 등으로 6개월간 목발만 짚어도 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지원받고 완쾌되면 비장애인이 된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고 한 사회의 장애인이 편안한 생활을 누리면 구성원 모두가 그 혜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장애인의 인권은 모두의 인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장애인 이동권이 논란이 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이제는 장애인 이동권을 넘어 장애인 노동권으로 나아가야 할 시대이다. 장애인은 복지에 대한 권리는 인정받지만, 노동권이 있는 노동자로 대우받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장애인 고용정책은 직업재활시설(장애인 보호 작업장, 장애인 근로사업장, 장애인직업적응 시설)과 공공기관·민간기업의 의무고용이라는 두 축으로 운영되고 있다.
장애인 노동자들은 신체적·정신적 손상이 있다는 이유로 사회적 약자로 취급되거나 사회에서 형성한 차별의 장벽에 의해 무능력한 존재로 취급되었고, 노동정책 수립 과정에서도 배제되었다.
그 결과 장애인복지 혜택을 받으려면 최저임금을 받으면 안 되거나(기초생활보장법 6조의3), 장애인을 고용하는 보호작업장 등에서는 최저임금을 안 줘도 되거나(최저임금법 7조), 보호작업장에서 훈련생이라는 이름으로 동일한 일을 해도 임금을 절반만 줘도 된다(장애인고용법).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장애인의 노동은 평가절하된다.
또한 의무고용제도는 유명무실화되어 아예 대놓고 장애인을 채용하지 않고 벌금을 내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나마 의무고용제도를 통해 취업더라도 정규직은 39%에 불과하다. 또한 장애인의 불안정한 처지를 악용하여 연차유급휴가 등 근로기준법상의 권리를 위반하거나 직장내괴롭힘, 폭언, 폭행 등의 범죄행위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제는 직업재활대상으로 이해되던 장애인 노동을 일반 노동의 한 과정으로 인식해야 하고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은 헌법상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우선 「최저임금법」 제7조,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부터 삭제해야 한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은 2016년 7,935명, 2017년 8,623명, 2018년 9,413명으로 해마다 그 수가 늘고 있다. 장애인의 월평균 임금은 약 40만 원이고(시급 3,416원, 일평균 5.9시간 근로) 85%가 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하고 있다. (2020년 기준)
현재 「최저임금법」 제7조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에 따라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는 고용노동부의 인가를 거쳐 최저임금 적용 제외 대상이 될 수 있다.
최저임금은 생존과 직결된 것으로,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필수조건이다. 법적으로 최저임금제도의 목적은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으로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규정돼 있는데, 이 법은 노동자면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비로소 법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헌법상 보장된 최저임금의 권리를 단지 생산성을 기준으로 평가하여 적용을 제외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당장 장애인의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을 삭제해야 하며, 장애인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먼저 하고 국가 또는 기업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두 번째로, 사회적 공공일자리에서 나아가 중증장애인의 장애 유형별로 직무 개발을 할 수 있는 노동 기회가 확대되어야 한다.
장애인 일자리 정책이 양적인 목표를 우선하면서 현재 장애인 고용정책은 경증장애인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중증장애인들은 노동의 기회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중증장애인만을 위한 특수한 일자리가 아닌 다양한 직무개발을 통해 비장애인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더불어, 장애 다양성을 고려하여 적절한 기술교육과 훈련이 포함된 통합적인 고용지원서비스가 필요하다.
세 번째로, 장애인 의무 고용률 준수 및 부담금 상향 조정과 포괄적인 법제정이 필요하다. 장애인 의무 고용제도는 1991년 「장애인고용촉진법」 시행과 동시에 적용된 제도이다. 이에 따라 국가·지방자치단체와 상시근로자 5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는 장애인을 일정 비율 이상 고용해야 한다. 2022년 기준 정부·공공기관 3.6%, 민간사업주 3.1%로 의무 고용률이 정해져 있고 만약 의무 고용률을 준수하지 못했을 경우 사업주는 비율에 따라 차등적으로 부담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조차도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의무고용률 위반에 대한 벌금제도 자체가 면피성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겠는가.
기업들이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은 대가로 납부한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기금’은 2018년 9,495억 원에서 2021년 1조 2천억 원을 넘겼다.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준수하지 않는 기업에는 정부 지원 배제 등 조치를 하고 부담금을 실질적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장애인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포괄적인 법을 제정하여 고용률 준수를 강제하고 직장내괴롭힘, 폭언, 폭행 등 위법행위의 경우 강력한 가중처벌을 통해 근절해 나가야 한다.
장애인 고용을 꺼리는 것은 기업의 이윤 때문이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한 경영이 화두이다. 장애인 노동권 보장으로 우리 사회에 차별이 사라지고 장애인이 당당하게 사회 구성원이자 노동자로 살아간다면 기업의 이윤을 넘어 사회공동체적 가치와 국가경쟁력 향상을 통해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결국 답답한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 당사자들이 나섰다. 장애인 노동자들은 2019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장애인일반노동조합을 조직하면서 장애인의 노동권을 찾고자 실질적 교섭상대방으로 정부를 설정하고 투쟁해 나아가고 있다.
장애인에게 노동권을 보장함으로써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노동권도 한 발짝 나아갈 것이다. 저상버스와 지하철 승강기가 그랬던 것처럼 장애인 노동권 보장이 비장애인의 노동권을 신장시키고 모든 노동자의 삶을 연쇄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 장애인 노동권 투쟁에 함께 연대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