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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로마서 9장 14절에 “그러면 무엇을 우리가 말할 것이냐 불의가 하나님과 함께 있느냐 그것은 되지 않노라”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9장 14~23절은 하나님의 자유와 목적에 관한 내용입니다.1) 불의가 하나님과 함께 절대 있지 아니한 이유는 왜입니까?2)
1.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실 자를 자비를 베푸십니다.
로마서 9장 15절에 “내가 자비를 베푸는 자를 내가 자비를 베풀겠고 불쌍히 여기는 자를 불쌍히 여기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3장 19절에 “나의 모든 선함이 너의 앞에 지나가게 하겠고 내가 은혜로울 자에 은혜롭고 동정을 보일 자에 동정을 보이겠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은혜와 동정을 보이시는 것은 아닙니다.3) 하나님께서는 주권으로 선택하여 자비를 베푸시고 불쌍히 여기시는데 칼 바르트와 윌리엄 바클레이의 보편구원론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4)
로마서 9장 16절에 “그러면 원하는 자가 아니고 달리는 자도 아니나 자비를 베푸시는(who has mercy) 하나님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겠다고 소원함으로써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겠다고 달음박질하여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사람의 활동이나 공로에 달려 있지 아니하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은 사람에게 아니라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5) 하나님의 자비는 인류의 원함이나 달리는 것에 의지하지 않습니다.6)
구원은 하나님의 뜻이며 전적으로 그의 결정권에 속하는 것입니다.7) 하나님께는 자신이 원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실 권한이 있습니다.8)
이 일에 하나님을 향하여 송사할 수 있는 그 어떤 근거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누구라도 불평한 근거가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하실 자유권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9)
이는 성경이 파라오에게 말하기를 “그것 안으로 내가 너를 세웠으니 내가 너 안에 나의 능력을 보이고 나의 이름이 전도되기 위해서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롬 9:17).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심에서의 절대주권을 소유하신 분이십니다.10)
출애굽기 9장 16절에 “그러나 이것을 위해서 내가 너를 서게 하였으니 나의 능력을 보게 하고 모든 땅 안에 나의 이름을 말하기 위해서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신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11)
어떤 사람 또는 사건이 무대에 나타나게 하나님께서 허용하십니다.12) 하나님께서 파라오를 그렇게 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허용하신 것입니다.
그런즉 그런 까닭에 그가 원하시는 자를 그가 자비를 베푸시나, 그가 원하시는 자를(whom) 그가 굳히십니다(롬 9:18).
본문 18절에 굳힌다(harden)고 번역한 단어(스클레뤼노)는 “단단하게 하다”(harden), “굳어지다”(become hard)를 뜻합니다.
헬라어로 “스클레이뤼노”며 영어 “skeleton”과 관련됩니다. “골격”이나 “해골”을 뜻하며, 말라서 딱딱하게 굳어진 상태를 뜻합니다. 영어로 “굳어지다”, “단단해지게 되다”, “완고하게 되다”로 번역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집트로 돌아가기에 너의 갈 때 너의 손에 둔 기적(wonder)들을 보라 그것들을 파라오의 앞에 행하였고 내가 그의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그가 백성을 보내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4:21).
태양이 땅을 비추기 때문에 땅이 굳어지지 않고 얼어붙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굳어지지 않게 됩니다.
사도행전 2장 22~23절에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들을 들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너희의 가운데 안에 그 나사렛 출신의 예수를 통하여 행하신 능력들과 기적들과 표적들에 너희를 향하여 증명함을 받은 남자를 그를. 하나님의 결정된 목적과 예지에 내어주신 그를 너희가 죽였으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모든 일의 배후에서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13)
우리는 모두 양처럼 헤매었으며 사람이 그의 길에 돌렸고 하나님께서 그 안에 우리 모두의 죄악을 도달시키신 것입니다(사 53:6).
이사야 29장 9~10절에 “너희는 지체하고 몹시 놀라라 너희는 눈멀라, 그들이 술 취하였고 포도주가 아니며 그들이 비틀거렸고 독주가 아니니. 야훼께서 너희에게 깊은 잠의 영(spirit)을 부으셨으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신명기 29장 2~4절에 “야훼께서 모든 그 땅에 행하신 일을 보았으니. 너희의 눈이 본 그 큰 시험들이니, 즉 그 큰 표적들과 기적들이고. 그가 너희에게 아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주지 아니하셨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미 있는 악을 악화시키십니다.14)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의 마음속 욕구 안에 그들을 넘겨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그 치욕의 정욕 안으로 넘겨주십니다(롬 1:26).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그 불량한 정신 안으로 넘겨주십니다(롬 1:28).
햇빛이 땅에 비추어지지 아니하는 때 땅은 굳어지고 얼어붙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이런 식으로 굳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15)
하나님께서는 또 율법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십니다.16) 하나님께서는 욕구를 격동시키셔서 사람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시는데 요셉의 형들에게 요셉을 팔게 하셔서 요셉을 이집트로 보내셨습니다.17)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주시나, 특별은총은 선택된 자들만 주십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님의 결심과 목적과 주권에 달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부족하였습니다(롬 3:23). 죄의 급료들은 죽음이기에 인류는 죽음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롬 6:23).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서 일부분만을 구원하시기로 하셨습니다.
2.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언쟁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9장 20절에 “너는 어떤 자이기에 하나님께 언쟁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왜 그가 비난하시느냐 그의 의지에 누가 대적함이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반대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언쟁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반대파가 되어서 그와 다툴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Creator)시고 우리는 창조물(Creature)일 뿐입니다.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똑바로 설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 대하여 큰소리를 칩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반대하여 말합니다.
형성된 것이 형성한 자에게 ‘왜 당신은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라고 말하지 아니할 것입니다(롬 9:20).
“형성하다”(플랏소)는 “형성하다”, “모양 짓는다”를 뜻합니다. 진흙과 같은 부드러운 덩어리로써 “형성하다”라는 의미입니다. 토기장이가 토기를 형성하듯이, 하나님께서 인류를 형성하셨습니다.
“형성된 것”(플라스마)은 헬라어로 “플라스마”인데, 여기서 “플라스틱”(plastic)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사람이 플라스틱을 형성하였듯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형성하셨습니다. 형성된 사람은 형성한 분에게 “당신은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라고 반박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9장 21~24절에 “또한 진흙의 토기장이가 바로 그 덩어리에서 영예 안으로 그릇을, 치욕 안으로인 바를 만들 권리를 갖지 아니하느냐? 만일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리셨기에 바라시는 그 하나님께서 멸망으로 준비함을 받은 진노의 그릇들을 많은 오래 참음에 가져오셨고. 자비의 그릇들에 대하여 그가 그의 영광의 부(富)를 알리셨기 위해서라. 오직 유대인들에서 아니나 이방인들에게서도 그 부르신 자들이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토기장이에게 진흙을 가지고 그 뜻대로 만들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사 29:16, 45:9, 64:8, 렘 18:1~11).
“만들다”라는 말이 나오므로 창조에 대한 말씀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이것은 창조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보시기에 좋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죄 없는 존재로 창조하셨기에 불공평이 없습니다. 사람이 타락한 것은 사람의 책임입니다. 사람들은 같은 처지에 놓였으며 죽은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에는 불공평이 작용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들 중 일부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왜 모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는 것입니까?”라고 물을 권한이 사람에게는 전혀 없습니다. 그는 그가 불쌍히 여기고자 바라시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무엇을 만들 것이냐’는 토기장이에게 달렸으며, 하나님께서도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신다면 ‘하나님의 뜻’에 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만드실 주권과 권위를 가지고 계십니다(롬 9:21).
하나님의 풍부한 오래 참음을 경멸하지 아니하여야만 합니다(롬 2:4). 그는 진노의 그릇들에 대하여 많은 오래 참으므로 견디십니다(롬 9:22).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진노를 나타내고 싶어 하십니다.18)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이유는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19) 그는 진노의 그릇들에 대하여 많은 오래 참으므로 견디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진실로 알고 싶다면, 그분의 자비를 나타내시고 베푸시는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20)
파라오와 그 군대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그의 진노가 나타났으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와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진노의 그릇들을 통해 나타남으로 그것을 알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영광이 부유함도 자비의 그릇들을 통해 나타납니다. 자비의 그릇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 영광의 부유함을 알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통하여 그의 영광의 부유함을 알 수 있습니다.
호세아에서 말씀하시듯 “나의 백성이 아닌 자를 나의 백성을 부르고 사랑함을 받지 않은 자를 사랑함을 받은 자를 그러할 것이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아니라’라는 것이 그들에 말함을 받은 그 장소 안에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라고 부름을 받을 것이라.”라고 로마서 9장 25~26절에 기록되었습니다.
25절은 파울이 호세아 2장 23절로부터 자유롭게 인용한 것입니다.21)
호세아 2장 23절에 “내가 나를 위하여 그 땅 가운데 씨를 뿌릴 것이고 내가 긍휼히 여김을 받지 않던 자를 긍휼히 여기기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이 아니던 자를 향해 “너는 나의 백성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호 2:23).
26절은 파울이 호세아 1장 10절에서 축자적으로 인용한 것입니다.22)
그들에 ‘너희는 나의 백성이 아니라’라고 말하여졌던 장소에 되겠으며 그들에 ‘사시는 신(神)의 아들들이라’라고 말하여질 것입니다(호 1:10).
여기 “나의 백성이 아닌 자”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모두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나의 백성이 아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수가 바다의 모래 같다면 그 남은 자가 구원되리니. 말씀을 이행하고 완수하시는 주께서 땅에 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라”라고 로마서 9장 27~28절에 기록되었습니다.
이사야 10장 22절에 “너의 백성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있다 할지라도 나머지가 돌아올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큰 군대들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뒤에 남겨두지 않으셨으면 소돔과 같이 우리가 되고 고모라와 같이 우리가 비교함을 받았노라”라고 이사야가 앞서 말한 것에 따라서입니다(롬 9:29).
“큰 군대”(사바오드)는 “만군(萬軍)”, “군세”(hosts)를 뜻하며, “군대들”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츠바오트)를 음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살아남은 사람을 적음처럼 놓아두지 않으셨으면 그들은 마치 소돔처럼 되며 고모라에 닮았을(be like) 것입니다(사 1:9).
이사야 1장 9절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로마서 9장 29절에서 “씨”인데 이것은 파울이 히브리어 성경이 아닌 70인역을 인용하였기 때문입니다. 70인역의 번역자들은 “살아남은 자들”을 “씨”로 바꾸어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차이점이 생긴 이유는 70인역의 번역자들에 기인합니다. 파울은 70인역을 인용한 까닭에 “씨”를 뒤에 남겨두었다고 기록합니다.
로마서 9장 6~29절의 목적은 6절의 주장을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불신 현상이 놀랄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유대인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의 믿음도 예언의 성취기 때문에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23)
1) Douglas 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W. B. Eerdmans, 1996), 588.
2)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592.
3)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9』,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5), 213.
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9』, 215.
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9』, 218.
6)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593.
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9』, 220.
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9』, 222.
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9』, 223.
1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9』, 225.
1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9』, 227.
1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9』, 229.
1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9』, 236.
1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9』, 239.
1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9』, 240.
1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9』, 241.
1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9』, 242.
1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9』, 301.
1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9』, 303.
2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9』, 306.
21)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611.
22)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612.
23) 최종상, 『이방인의 사도가 쓴 로마서』 (서울: 아가페, 2003), 254.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나를 살게 하는 힘. 감사를 많이 할수록 행복도
커진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 그동안 감사를 소홀히 했다면
먼저 웃고, 먼저 사랑하고, 먼저 감사하자. 그리하면 나의 삶은 행복할 것입니다.
오늘도 누군가에게 빛과 소금이 되는 즐거운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